추억 줍기
박무형
종로3가에서 문학회 모임을 마치고, 혼자 낙원동에 있는 실버극장에 갔다. 고교 때 보았던 영화「가극왕 카루소」가 문득 향수처럼 떠올라서였다. 그런데 그 영화는 안산에 있는 <명화극장>이란 곳에서 상영 중이라 했다. 안내 프로그램에서 장소를 잘 못 본 탓이었을까. 영화 제목도 원래의 타이틀이「위대한 카루소Great Caruso」였다. 내친김에 안산까지 원정 관람가기로 했다.
요즘 들어 시내 영화관에도 잘 가지 않던 내가 돌출행동을 한 것이다. 그것은 ‘엔리코 카루소’라는 주인공에게 이끌려서였다. 부산에서 학생단체 관람으로 그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테너 <마리오 란자>가 카루소 역으로 나왔고, 그의 늠름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량 역시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안산행 전철을 타고 가면서 영화에 빠져 지냈던 그 시절을 회상했다. 그때 영화의 명장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때 공부보다 영화에 더 심취했던 나는 수업을 빼먹고 개봉영화를 먼저 보곤 했다. 그 이튿날, 교실에서 친구들에게 영화 리플릿을 펼쳐 보이며 자랑했다. 그때는 한 개봉관에서만 새 영화를 상영했다.
미국 서부영화가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시절, 존 웨인이 나오는「역마차」, 게리 쿠퍼가 나오는「하이눈」, 애런 래드가 나오는「셰인」등이 우리를 들뜨게 했다. 이들 서부극의 마지막 장면들, 열혈 주인공이 비루한 악당을 전광석화처럼 처치하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장쾌한 라스트 씬은 주제음악과 함께 긴 여운을 남겼다.
「스카라무슈」라는 검객영화에 푹 빠져 몇 번이고 다시 본 적도 있었다. 스튜어드 그랜저와 멜 화라가 극장 안에서 맞닥뜨려 무대와 로비, 계단, 발코니, 객석을 휩쓸고 다니며 혈투를 벌였던 검술 장면은 그야말로 스릴과 박력이 넘쳐 흘렀다. 그 동작들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때 나는 그 영향을 받아서 휀싱을 무척 배우고싶어 했다.
안산역에서 내렸더니 <명화극장>은 그보다 두 정거장 못 미친 중앙역 부근에 있어 찾는데 애를 먹었다. 역 맞은편 빌딩 지하 극장에 들어서자 마침「위대한 카루소」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한 시대 뒤처진 초기의 총천연색 화면, 매끄럽지 못한 음향으로 진행됐으나 내겐 낡은 추억을 담아오는 애드벌룬처럼 다가섰다.
자막에 나오는 주연이 마리오 란자와 안 브라이스. 여 주연 안 브라이스는 당시 뮤지컬 영화「황태자의 첫사랑」,「로즈 마리」같은 여러 영화에 나왔던 인기스타였다. 무엇보다 감독이 ‘리처드 소프’라는 것도 반가웠다. 그동안 잊혔던 왕년의 명감독을 여기서 만나다니. 그가 만들었던 영화들,「흑기사(아이반호)」,「원탁의 기사」가 떠올랐다.
영화는 불세출의 테너 가수 카루소의 일대기를 펼쳐 나갔다. 그가 출연했던 많은 오페라 장면들이 펼쳐지고, 내가 좋아하는 오페라 아리아도 많이 나왔다. 대학 시절, 카루소의 SP 음반을 소장하고 이를 유난히도 자랑하던 선배가 그의 방에서 해설을 곁들여 마냥 들려주곤 했었던 곡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오페라「팔리아치」에서, 참담한 슬픔과 분노를 안고 절규하듯 부르는 어릿광대의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는 과히 절창중의 절창이었다. 그리고「사랑의 묘약」에서 짝사랑의 성취에 감읍하며 그윽이 부르는 얼뜨기 시골 총각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 그 서정적 아리아는 숨이 멎을 정도로 가슴 저미게했다. 인간의 목소리가 최상의 악기라는 베토벤의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카루소의 인간적인 편린도 여기저기서 보였다. 인기가 오를수록 겸손하고, 한번 맺은 인간관계는 끝까지 의리를 지키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성심껏 노래를 불러주는 소탈함도 돋보였다. 그렇게 수더분한 인품 때문에 만인이 그를 더 사랑한 것 같았다. 그런 실례를 바로 보여주는 한 장면이 있었다.
카루소가 한창 열창하고 있는데 무대 옆 막간에서 그의 매니저로부터 “It's a girl”이라는 피켓 사인을 받게 된다. 그의 딸 순산 소식이었다. 초조했던 그의 얼굴엔 웃음이 피었고, 무대 출연진과 스태프들,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이를 알게 되자 모두가 기뻐했고, 그 소식이 발코니를 넘어서 위 아래층의 모든 관객에게 릴레이식으로 전달되자 객석 전체가 온통 축하의 도가니로 들떴다. 그러면서도 오페라는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었다.
카루소는 40대 후반 젊은 나이에 무대 위에서, 각혈을 손수건에 감추면서도 노래를 끝까지 부르다 쓰러졌다. 주치의가 휴식을 강하게 권고했으나 지병인 늑막염을 참으며 약속된 스케줄을 강행했다. 최선의 연주를 위해 성대를 혹사했고, 연속된 세계연주 여행으로 과로가 겹쳤을 것이다. 그의 음악인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위대한 카루소」영화도 끝났다. 영화관엔 얼마 안 되던 관객들도 떠나고 나와 몇 사람이 남았다. 나처럼 멀리서 그 영화를 보러 왔다는 사람도 있었고 어제 오늘 연달아 온 사람도 있었다. 안산까지 와서 카루소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이 나에겐 큰 축복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많은 교훈도 받았다.
금아 선생님은 옛날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추어진 보물의 장소를 잊은 사람과 같다고 했다. 내 과거 속에 자수정처럼 알알이 박혀있는 체험의 기억들. 그들은 비단 흘러간 영화에서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기억들은 아침 햇살처럼 다사로웠던 유년기, 석류 속처럼 알알이 싱그러웠던 사춘기, 그리고 다방 커피처럼 달고 쓰고 끈적했던 청 장년기에 각각 파일처럼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현재의 일상 속에서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 나는 내일도 추억을 줏으러 떠날 것이다.
첫댓글 나도 영화광이죠.
학창시절엔 진주극장 국보극장에서 학생출입금지 영화를 많이 보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멀리 대구의 만경관까지 원정관람도 하였으며 서울의 종로3가에 위치한 단성사 피카디리극장까지 1박2일 영화관람한 적도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의 여주인공 오리비아 데 하비랜드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주연배우 스티브리브스의 육체미를 기억합니다.
옛날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추어진 보물의 장소를 잊은 사람과 같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양선생님! 학창시절 같은 영화광이었다니 반갑습니다. 부산에서의 고교시절, 개봉영화는 남포동의 동아극장, 재 상영영화는 서면에 있던 통일관에서 주로 봤습니다. 게리쿠퍼와 스추어드 그랜져는 저의 우상이었죠. 저도 여배우 올리비아드 해빌란드 팬이았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연 비비안리보다 그녀가 더 좋았더랬습니다. 평생 본 영화중 2/3이상을 그때 본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기억의 파편들' 보물이지요. 노후에 좋은 취미를 가졌습니다. 나도 간혹 옛 영화를 찾습니다.
언제 한번 같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