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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2. 5. 7.~9.(토~월) - 음력(4. 7.~9.), 일출 06:00~일몰 19:10
●산행지: 모악지맥(母岳枝脈)/ 유각치 비박
●산행코스: 운암삼거리(27번로)-401.7m봉-엄재/ 터널/ 49도로-387.6m봉-535m봉-국사봉(543m)-밤티재/ 터널/ 714도로-화율봉(609m)-고수재-대창골-배재-장근재-남봉/ 제3헬기장-모악산(793m)/ 송신소-헬기장-매봉-유각치/ 712도로-상목산(459.7m)-403.8m봉-매봉(215.5m)-구덕마을-21번국도/ 쑥고개-183.6m봉-21번국도/ 지하통로-117.3m봉-21번국도-95.3m봉-천잠산(159.3m)/산불감시초소-생태통로 터널/ 쓰레기처리장-도로-148.6m봉-새터육교-새터마을-115.3m봉-79.4m봉-호남고속도로/이서휴게소 통로-동둔마을-둔산-문화방송 송신소-불로사거리/백자동 716도로-효정-폴리텍대학-농원육교/호남선철도-김제온천사거리-60.2m봉-승방산(57.6m)-두악산(59.6m)/전망대-하정로-복지교차로/702번로/지평선산단(43.9m봉)-호남권 종자처리센타-소동교차로/712번로-대동1육교/대동농공단지/29번로-대동2육교/서해안고속도로-남산서원 갈림길-만경삼거리/711번로-가실삼거리/ 702번로-성덕산(26.5m)-모산경로당-하수내마을-진봉면사무소-석소-석치마을-31.9m봉-니성산(61.9m)-국사봉(61.3m)-전선포 제방-데크 전망대(35.5m)-망해사/ 망해사 2층 전망대-진봉산(73.2m)-심포제방-66.1m봉-당산나무 쉼터-54.4m봉-안부사거리-봉화산(84.9m)-서해안 거전리 종점(국립새만금수목원예정지)-시내버스 0.7km
●먹거리: 생수2.5리터, 옥수수호빵, 햄버거빵, 콜라, 양갱2, 단백질바2, 에너지바2, 사탕25, 게비스콘3
●준비물: 하계텐트, 윈드스토퍼, 바람막이, 메트,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팔토시, 안대, 귀마개, 마스크2, 양말, 여분의류, 띠지43
●거리: 약 93.8Km
●소요시간: 41.08h
●누구랑: 나홀로
●경비: 무궁화15,000, 편의점14,300, 에스페란토점심17,000, 동생과 저녁138,900, 뒤풀14,000
●날씨: 9~22, 첫날 오전만 약간 흐림
●산행경과:
* 5. 7.(토) : 25km
- 08:05 : 운암(雲岩)삼거리/ 초당골(막은댐)정류장/ 27번국도
- 08:33 : 모악지맥분기점(359m봉)/ 삼시군봉(완주군 구이면, 임실군 운암면 → 정읍시 산외면)/ 삼파수
- 10:10 : 엄재(俺峙, 156m)/ 49번군도
- 11:10~12:20~43 : 독금산갈림봉(387.6m)/ 편도 1.1km, 왕복 50분 소요
- 11:48 : 독금산(獨金山, 388m)
- 13:06~17 : 닭봉분기점
- 13:11 : 닭봉(鷄峰, 453.1m)/ 폐헬기장/ 삼각점봉
- 14:28 : 삼시군봉(완주군 구이면, 정읍시 산외면 → 김제시 금산면)/ 상두분맥갈림봉
- 14:35 : 국사봉(國師峰, 536.3m)/ 헬기장
- 15:12 : 밤티(栗峙)재/ 터널/ 면계(김제시 금산면 - 완주군 구이면)
- 16:20 : 화율봉
- 17:15 : 배재
- 17:41 : 장군재
- 18:28 : 전망대
- 18:48 : 모악산(母岳山, 793.5m)/ KBS송신소/ 1등삼각점(갈담 11/ )/ 삼시군봉(김제시, 완주군 → 전주시)
- 19:00 : 북봉(735m)
- 19:29 : 매봉(622m)/ 칼날능선
- 20:15 : 독배주차장갈림길
- 20:30~47 : 유각치(有角峙)/ 712번지방도/ 전주-김제 금산면 지방도(우림로)
- 21:05 : 비박
* 5. 8.(일) : 44.9km
- 05:10 : 출발
- 05:45 : 450m봉/ 삼면봉(전주시 완산구, 김제시 금산면 → 금구면)
- 05:52 : 상목산(上木山, 459.7m)/ 묘고산(妙高山)/ 목조데크 전망대/ 정자
- 06:49 : 매봉산(225m)
- 07:21 : 매봉(251.5m)/ 삼각점봉/ 산불감시초소/ 삼각점봉/ 경계(김제시 금구면 - 전주시 용복동)
- 07:46 : 구덕마을
- 09:15 : 쑥고개 옛길/ 1번국도/ 지하통로
- 09:35 : 그린피아추모공원
- 09:57 : 천잠산(天蠶山, 159.3m)/ 삼면봉(전주시 완산구 삼천동3가, 전주시 완산구 용복동 → 완주군 이서면)
- 11:04 : 이서면 이성리 새터육교/ 1번국도/ 27번국도
- 11:57 : 대고개/ 면계(김제시 금구면 - 완주군 이서면)
- 12:22 : 79.4m봉/ 삼각점봉/ 신지앵곡길/ 이서면 은교리
- 12:37 :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 지하통로
- 12:52 : 팥죽이로
- 13:07~49 : 에스페란토설렁탕
- 14:05 : 애통리사거리/ 삼면경계면(김제시 금구면, 완주 이서면 → 김제 용지면)/ 716번지방도(콩쥐팥쥐로)
- 14:24 : 불로사거리
- 14:51 : 무수 버스정류장/ 콩쥐팥쥐로
- 15:09 : 점촌사거리
- 15:30 : 순동사거리/ 김제시 순동/ 만경머리
- 15:50 : 김제온천사거리
- 16:28 : 승반산(升盤山, 57.6m)/ 승방산/ 삼각점봉
- 16:50 : 삼수동삼거리/ 익산-김제간 23번국도/ 관망대정거장/ 김제시 흥사동 - 백산면 경계
- 17:04 : 두악산(斗岳山, 57m)
- 17:32 : 김제시 백산면 복지삼거리/ 교차로/ 702번지방도
- 17:51 : 지평선마을 사거리
- 18:10 : 712번지방도(백석로)/ 호남권 종자처리센타
- 18:23 : 소동교차로
- 18:42 : 대동1육교/ 대동농공단지/ 김제-군산 29번국도
- 18:46 : 삼읍면경계(김제시 만경읍, 김제시 백석면 → 성덕면)
- 18:56 : 대동2육교/ 서해안고속도로
* 5. 9.(월) : 23.9km
- 06:50 : 대동2육교 출발
- 07:13~26 : 남산서원 입구/ 왕복1.0km
- 07:29 : 27.5m봉/ 삼각점봉
- 07:43 : 만경삼거리/ 삼면경계면(김제시 성덕면, 김제시 만경읍 → 진봉면)/ 711번로
- 07:51 : 가실삼거리/ 면계(성덕면 - 진봉면)
- 08:26 : 성덕산(聖德山, 26.5m)
- 08:37 : 면계(성덕면 - 진봉면)
- 09:06 : 하수내마을
- 09:27 : 종야마을
- 10:15 :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인향마을
- 10:23 : 니성산(尼城山, 61.9m)/ 암봉산/ 삼각점봉
- 10:42 : (國事峰, 61.3m)
- 11:23~46 : 망해사갈림길
- 11:30 : 망해사(望海寺)
- 12:19~26 : 심포 제방과 심포항(深浦港)
- 12:35~8 : 66.1m봉
- 12:53 : 당산나무 쉼터/ 안하마을
- 13:10 : 봉화산(烽火山, 84.9m)/ 삼각점봉
- 13:43 : 서해안 거전(巨田)마을 종점/ 만경강 우/ 국립새만금수목원예정지/ 시내버스 0.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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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간별 세부거리
운암삼거리-1km-모악지맥분기점-3.9km-엄재-1.3km-독금산갈림봉-3.3km-국사봉-1.9km-밤티재-3.4km-배재-2.6km-모악산-5.1km-유각치-2.1km-매봉산-1.3km-매봉-1.1km-구덕마을/21번도로-3.5km-천잠산-2.7km-1번국도-4.2km-호남고속도로-1.7km-구암마을-4.2km-애통리-5.7km-김제온천 사거리-1.7km-승반산-1.2km-두악산-6.7km-소동교차로-4.8km-서해안고속도로-3.1km-만경삼거리-6.1km-진봉마을-5.8km-니성산-0.8km-국사봉-2.1km-진봉산-2.5km-봉화산-1.2km-거전종점
* 구간별 거리
- 운암삼거리~유각치 23.3km
-. 분기점~밤티재 13.2km (접속 1.8km 포함)
-. 밤티재~구덕마을/ 21번국도 17km
-. 밤티재~모악산 6.2km
- 21번국도/ 구덕마을~거전교/ 거전종점 54.4km
-. 유각치~하정로/은빛가든 32.5km
-. 유각치~김제온천사거리 30.4km
-. 독배마을~불로삼거리 20.4km
- 하정로/은빛가든~거전교/ 거전종점 32.5km
-. 불로삼거리~진봉초교 27.6km
-. 성덕산~거전종점 17.5km
-. 석치마을~거전종점 10km
* 식수 보충 및 참고사항
- 쑥고개: 그린피아추모공원 외딴집 우물 물보충 가능
- 새터마을: 인가 물보충 가능
-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
- 에스페란토골프장: 정문 설렁탕집
- 애통리 사거리: 하나로마트/ 구멍가게, 음식점
- 흥복사: 감로수
- 승반산북쪽 관망대정거장: GS25편의점, 수퍼
- 콩쥐팥쥐로: 편의점 다수, 음식점
- 만경삼거리: 주유소
- 진봉초교 앞: 식수보충 가능
- 망해사: 수돗물, 자판기
- 심포항: 음식점
* 모악지맥 임실군 초당골 운암삼거리 가는 교통편
- 서울~전주: 05:30~18:20, 21:20, 22:20, 24시, 13,800~22.100, 2.40h 소요
- 국민은행 금암지점~학래마을정류장: 970번(송천동에서 첫차 06:10분, 북문정류장 40분 도착)
- 학래마을정류장~운암삼거리: 91. 92번 부릉부릉마을버스, 23분
- 기린대로 병무청정류장~운암삼거리: 202번 농어촌버스, 07:10분, 1.18h 소요
- 임실군 군내버스~전주고: 201번(상운암), 202번(운암대교), 203번(관촌)
*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거전 버스정류소~김제버스터미널: 09:14, 10:50, 11:27, 12:25, 13:05,... 1시간 1대꼴, 0.55h
- 김제버스터미널~전주버스터미널: 11:50, 12:15, 12:40, 13:05, 13:25, 13:40, 14:30, 15:10, 16, 0.50h, 3,900원
- 김제 터미널~동서울터미널: 14:30, 19:30, 3.40h, 19,700
- 전주고속버스터미널~서울 센트럴시티: 11:25,.. 16시,.. 18:20,.. 2.35h, 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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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를 향하는 모악지맥은 전반부 모악산을 지나고 후반부 두악산 이후로는 소설 아리랑의 배경지 징게맹게를 휘젓고 다니는군요. 그나마 간척, 호남야산개발사업으로 구릉지를 초토화해 도로가 마루금인게 특징입니다.
일제시대 김제평야에서 공출하는 쌀이 심포항을 통하지 않고 동진강을 건너 부안 줄포로 반출되었습니다. 지금은 줄포까지 뻘이 들어와 있지만 곰소만으로 나가는게 서해로 빠지기가 수월한 모양입니다.
개인적 일정으로 홀대모 봄모임에 맞출려던 모악지맥을 앞당겨 다녀왔습니다.^^
코로나시즌이 끝나고 인공암벽이 속속 오픈하고 있네요. 근 3년 동안 홀대모에서 활동하며 굵직한 산줄기를 재미있게 진행하였습니다. 현재 20개의 지맥을 마쳤는데 나머지는 아껴서 하겠습니다. 느긋하게 한다면 5년이면 마칠 수 있겠고, 이제 지맥을 하는 방법을 터득했으니, 기회가 닿는다면 좀더 정성스럽게 진행할 자신도 생겼습니다.
무궁화로 전주에 새벽 1시 도착하여 역전 근처에서 비박 후 병무청으로 옮겨 첫차를 타고 운암삼거리로 들어갔고, 준희선생님과 약속으로 독금산에도 다녀오고, 첫날은 유각치에서 올라선 동굴앞에서 비박했습니다. 이제 비박하러 산정으로 올라가지 않네요.^^ 둘쨋날은 대동2육교 서해안고속도로까지 갔습니다. 김제에 사는 동생 가족과 보리한우로 저녁을 먹고, 아파트에서 편히 쉬고 다음날 7시에 출발하여 13:44분에 거전 종점에 닿았습니다.
모악지맥은 국도1호선과 호남고속도로, 호남선 철로,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나기도 하지만 구덕마을에서 처음 새만금-포항간 고속도로를 접한 이후 여러 번 마주치게 됩니다. 이서면 걸치기마을과 대고개 사이, 두악산전망대를 내려서며, 대동1육교와 대동2육교 사이, 남산서원 가며 묘라리에서, 진봉면 종야마을에서 들판으로 석치마을을 찾아가며, 마지막으로 심포항에서 66.1m봉을 오르며 만납니다. 봉화산에서 내려서며 보게되는 새만금 남북도로와 연결되는 것이죠.
횟집이 즐비하고 손님들로 붐볐던 거전마을 종점이 포구였다는 사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뱃일 하는 사람과 배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보상이 주어지며, 옛 영화는 과거로 사라졌습니다. 한때는 간첩 출몰로 예비군에게 실탄이 지급되어 해안 초소에 배치되는 일도 있었고, 탐조등이 바다를 휘저으며 간첩선을 색출하던 시절도 있었다는데 갑문을 열면 바닷물이 들어오고 경운기가 갯벌을 누비며 백합을 실어나르던 그날의 과거를 이젠 거전 종점의 팽나무만이 기억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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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악지맥(母岳枝脈)이란?
모악지맥은 호남정맥이 임실군 운암면 마암리 삼계봉(350m)에서 좌로 방향을 전환하여 묵방산(墨防山, 538m)으로 이어지다가, 묵방산에서 북쪽으로 약 1.3km, 옥정호 초당골에서 약 1km 떨어진 355m봉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국사봉(國師峰, 541m), 모악산(母岳山, 793.5m), 유각치, 묘고산(妙高山)에 닿는다. 묘고산에서 서쪽으로 구성산(九城山, 489.7m) 줄기를 갈라놓고 북쪽으로 달리며 매봉(249.9m), 천잠산(天蠶山, 153m)에 이르면 방향을 서쪽으로 꺽는다. 승반산(升盤山, 58.5m), 두악산(斗岳山, 59.6m), 이성산(尼城山, 60.9m), 국사봉(國師峰, 61.3m), 진봉산(進鳳山, 72.2m), 봉화산(烽火山, 85m)을 일구고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새만금간척지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77km, 실거리 84.8km의 산줄기로 만경강과 동진강의 수계를 가른다.
* 모악지맥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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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악지맥을 지나는 동네
* 임실군(任實郡)
전북 중심부에 있어 전주시와 더불어 전북 도내의 시, 군들하고만 경계를 접하고 있다. 동쪽이 장수군과 남원시, 서쪽이 정읍시, 남쪽이 순창군, 북쪽이 완주군과 접해 있다. 전주시와 남원시 사이에 끼어있어서 두 도시의 생활권에 포함되어 있다. 임실(任實)이란 지명은 백제 때는 잉힐군(仍肹郡)이었으며 경덕왕 16년(757)에 임실군으로 고쳤다. [임실]은 한자 취음으로 "임"은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 "실"은 실(谷:마을)로 '서울'처럼 순우리말로 전해지는 지명이다. 임실군은 마한에 속하여 신운신국에 해당하였으며(임실군지 1977), 백제시대 잉힐군(대동지지)으로 거사물현과 마돌현을 거느렸다.(삼국사기 지리3) 고려태조 왕건(17세)이 상이암에서 기도하고 환희담을 남겼으며 983년 전라도 전주목에 임실군을 두었다. 1250년 최자의 보한집에 오수의견설화가 처음 등장하고 고려때는 남원부 진관에 속하였다가 고려 명종(明宗)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종(太宗) 13년에 임실현으로 삼았으며 감무를 고쳐 현감(縣監)으로 삼았다. 임실의 별칭은 운수(雲水)이다. 운수는 조선시대 임실현청의 객사와 군기고 부근에 있었던 운수정(雲水井)에서 유래하였다. 전하기를 신관(新官)이 부임하면 처음 이 우물물을 마시게 하였는데, 이렇게 운수정 우물을 마신 사람은 아무리 성급하고 포악한 관리라 하더라도 선정을 베풀게 되었다고 한다. 1906년 두입지 정리 및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원부 6개방이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상동면과 하동면이 성수면으로, 남면과 둔남면이 둔덕면으로, 신덕면과 원신평 일부가 신덕면으로, 오지면과 석현면, 아산면이 삼계면으로, 상북면과 하북면이 오천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이후 임실군 영계면이 순창군으로 편입되고 1935. 3. 1. 오천면을 관촌면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북 동북권 3개군의 머릿글자를 따서 무진장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남권의 임실과 순창, 남원 세 고장의 머릿글자를 따서 임순남으로 한데 묶어서 부르기도 한다. 낙농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외지인들이 임실하면 대부분 치즈를 떠올린다. 전반적으로 산이 많은 고장이다. 관촌면, 임실읍, 오수면 일대는 비교적 평탄하지만 나머지 지역은 산이 많다. 특히 순창군과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있는 회문산은 한국전쟁 당시에 험준한 지세에 의지하여 빨치산 활동을 한 남부군의 주요 거점이기도 했다. 임실군과 정읍시의 경계에는 섬진강댐이 있으며 이 댐으로 생겨난 옥정호가 임실군 운암면과 정읍시 산내면 일대에 걸쳐 있다. 원래 운암면에 댐식 수력발전소가 있었으나 섬진강댐이 건설되면서 기존의 댐은 수몰되고 발전소는 폐쇄되었다. 현재 옥정호 물은 동진강 수계로 넘어가 정읍시 칠보면의 유역 변경식 수력발전소에서 전력 생산 및 상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산업은 낙동업으로, 한국에 귀화한 벨기에 출신 카톨릭 신부 지정환의 노력으로 1967년 임실읍 성가리에 한국 최초의 치즈 공장이 설립되었고, 이후 임실 치즈가 임실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16년 2월 4일, 임실치즈를 뿌리내리게 한 지정환 신부가 법무부로부터 특별 귀화허가를 받아 한국인이 되었다. 한국에 온지 57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전주시에 있었던 제35보병사단 사령부가 2013년 12월에 임실읍으로 이전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정읍시(井邑市)
전북 서남부에 위치한 시로 도농복합시이다. 북쪽으로 김제시와 완주군, 동쪽으로 임실군, 서쪽으로 부안군과 고창군, 남쪽으로 순창군과 전남 장상군과 접해 있다. 지리적으로는 호남의 양대 도시인 광주광역시와 전주시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마한의 고비리국, 초산도비리국이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백제 때 정촌현, 대시산군, 고사부리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757년 신라 경덕왕이 정촌현을 정읍현으로 개칭하고 태산군(현재 태인면)의 영현으로 삼았다. 이때 고사부리군은 고부군으로 개칭되었다. 936년 정읍현을 고부군의 속현으로 삼고 감무를 설치했다. 이후 951년에는 고부군에 안남도호부를 설치하였고, 1019년에는 안남도호부를 폐지하고 다시 고부군으로 환원하였다. 조선 시대 1409년 고려 시대의 태산군과 인의현이 합쳐져 태인군이 되었다. 1421년 태인향교가 신축되었다. 1593년 입암산성이 수축되었다.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압정에 반발하여 고부의 농민들이 봉기하였다. 이 민란은 이후 동학농민혁명으로 확산되어 동학혁명의 발상지가 되었다. 고부면과 덕천면 등지에 관련 유적지가 상당수 있다. 호남정맥과 영산기맥이 통과해 산지를 이루는 군의 동남부를 제외한 그 밖의 대부분 지역은 구릉지와 평야지대이다. 동남부에는 상두산(象頭山, 575m)·국사봉(國士峰, 543m)·묵방산(墨方山, 538m)·국사봉(國師峰, 655m)·고당산(高堂山, 640m)·칠보산(七寶山, 486m)·내장산(內藏山, 763m)·입암산(笠巖山, 626m)·방장산(方丈山, 734m) 등 호남정맥과 영산기맥의 비교적 높은 산들이 시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다. 내장산은 동쪽으로 트인 말굽형으로 하고 있는 월령봉(420m)·서래봉(580m)·불출봉(610m)·망해봉(640m)·연지봉(蓮池峰, 720m)·까치봉(680m)·신선봉(神仙峰, 763m)·연자봉(660m)·장군봉(將軍峰, 670m)의 9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남정맥과 영산기맥의 산지에 연이어 해발고도 100m 미만의 구릉지가 동남부에 널리 분포하며 밭으로 이용되고 있고, 두승산(斗升山, 444m)·동소산(東所山, 225m)·천태산(天台山, 195m)·천애산(天涯山, 198m)·성황산 등의 구릉성 산지가 곳곳에 분포한다. 산지와 구릉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해발고도 50m 미만의 넓은 평야로 김제평야의 일부를 이룬다. 충적평야는 해발고도 10∼30m 정도의 낮은 지대로 동진강과 고부천 유역에 발달해 있다. 이 충적평야는 빙기에 해수준이 낮아져 깊게 파인 침식곡을 후빙기에 하천이 퇴적한 매적곡에 해당해 하천의 크기에 비해 그 면적이 넓다. 동진강은 산외면의 흑방산에서 발원해, 옹동면의 상두산에서 발원한 용호천(龍虎川)과 내장산에서 발원한 정읍천을 신태인읍에서 합류한 뒤, 김제시와 부안군의 경계를 이루면서 황해로 흘러든다. 그리고 고부천은 고창군에서 발원해 시의 서쪽 경계를 이루면서 북진해 황해로 흘러든다. 넓은 충적평야는 일찍부터 경지로 개간되고 관개수리시설이 갖추어졌다. 전남과 전북의 경계가 제대로 나누어지는 곳이다. 영산기맥의 고개인 갈재(한자어로 노령)을 넘으면 전남이다. 실제로 과거부터 전남과 전북이 교류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현재는 갈재 아래에 뚫린 호남고속도로의 호남터널로 전남북을 왔다갔다한다. 문화적으로도 이 노령산맥이 전남과 전북의 경계가 되어서, 전남 장성과 붙어 있어도 정읍 사투리는 전남의 사투리와 많이 다르며 여느 전북지방 방언과 별 차이 없다. 또한 주민들은 전남권의 대도시 광주광역시보다는 전북권의 대도시 전주시를 더 가깝게 생각한다. 실제로 직선거리로든, 호남고속도로나 1번국도 등의 교통로 기준으로든 전주가 광주보다 좀 더 가깝기도 하다. 유명한 관광지로 국립공원 내장산이 있고, 그 외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 라벤더농원 등이 있다. 특이한것은. 시내에 충무공 이순신을 모시는 충렬사가 있다. 이순신 장군과 정읍이 무슨 관계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분이 정읍현의 현감을 맡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의 충렬사 및 충무공원은 해방 이후에 조성된 것이며, 원래는 시가지 남쪽의 과교동에서 모셨다고 한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완주군(完州郡)
완주군은 전북 북부에 있는 군이다. 전주시를 둘러싸며, 동쪽으로 진안군, 서쪽으로 익산시, 김제시, 남쪽으로 정읍시, 임실군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대둔산을 경계로 충남 논산시, 금산군과 도계를 이룬다. 행정구역은 3읍 10면이고, 전주시내에 있던 군청이 2012년 6월 용진읍으로 이전하였다. 완주군의 북부는 과거 고산군(高山郡)이었고, 중부는 우주현(紆州縣)이었으며, 남부는 전주부였다. 1914년 4월 1일 고산군이 전주군에 병합되고,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분리·승격되면서, 완주군으로 개칭되었다. 군의 명칭은 전주의 옛 이름인 '완산주(完山州)'에서 따왔다. 구 전주부였던 지역과 고산군이었던 지역은 500년 동안 별개의 지역이었다. 위 지역중 고산면, 비봉면, 동상면, 화산면, 경천면, 운주면은 구 고산군 지역이며, 나머지 부분은 구 전주부이다. 군의 북동쪽과 동쪽에는 금강정맥과 금남기맥의 대둔산(878m)·천등산(707m)을 비롯해 선치봉(759m)·봉수대산(581m)·칠백이고지(701m)·왕사봉(718m)·운장산(1,126m)·연석산(917m)·원등산(713m)·만덕산(762m) 등이 솟아 있다. 북부는 금강정맥으로 작봉산(418m)·까치봉(456m)·함박봉(403m) 등 500m 이하의 비교적 낮은 산들이 솟아 있고, 군의 남서부에는 모악지맥의 모악산(794m)이 있다. 하천으로는 동부산지에서 발원한 고산천이 동상면·고산면·봉동읍을 지나 소양천과 합류하고, 상관면과 전주시를 북서류하는 전주천과 삼례읍·전주시의 경계에서 합해져 만경강에 유입된다. 전북 서부의 평야 지역과 동부의 산간 지역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평야와 산지가 두루 분포해 있다. 봉동, 삼례, 용진, 이서는 평야가 우세하고 나머지는 산지가 우세한데, 특히 화산, 운주, 경천, 동상 지역은 내륙의 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산간 오지이다. 비봉면에 호남 유일의 석회동굴인 천호동굴이 있고, 고산에서 대아리, 동상을 거쳐 소양으로 가다 보면 위봉산성과 위봉폭포를 볼 수 있다. 군 최북단의 논산시, 금산군 경계와 접점을 이루는 지점에 대둔산이, 전주시, 김제시 경계와 접점을 이루는 지점에 모악산이 있는데, 두 산 모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1914년 4월 1일 전주군(구 전주부)과 고산군이 전주군으로 통합되었다. 현 완주군 중 고산면, 비봉면, 동상면, 화산면, 경천면, 운주면이 구 고산군에 해당되며, 나머지는 구 전주군에 해당된다. 1935년 10월 1일 전주군 전주읍이 전주부(이후 1949년 전주시로 개칭)로 승격됨에 따라, 전주군의 잔여지역이 완주군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전주 시가지의 교외 지역이 일제강점기 때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주시에 편입되었다. 전주시와 완주군은 원래 같은 전주군이었다가, 일제강점기 때 도농분리정책으로 인해 도시지역인 전주부와 농촌지역인 완주군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전북의 시군들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고, 전라남북도 군 단위 지자체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다. 봉동읍에 전주 3공단이 조성되고 신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지금은 역전. 근래에 인구 2만 명을 넘어 고창읍, 부안읍과 맞먹는 규모로 증가했지만, 구 읍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의 버스 및 대형 상용차량을 생산하는 공장, LS엠트론의 트랙터, 궤도 및 사출성형기를 생산하는 공장과 전북현대모터스 프로축구단 클럽하우스가 봉동읍에 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전주시(全州市)
전북 중앙부에 위치한 시로 전북도청 소재지이자 전북 최대도시이다. 동북방향에서부터 동쪽과 남쪽을 완주군이 전부 감싸고, 서쪽으로는 김제시, 완주군 이서면, 서북방향으로 익산시가 접한다. 완주군이 시 경계의 대부분과 맞닿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김제시와, 북쪽으로는 익산시와 접하고 있다. 북동으로부터 남서로 호남정맥의 지류인 기린봉, 고덕산, 남고산, 모악산 등이 뻗어 있으며, 시 곳곳에 200m 내외의 황방산, 가련산, 건지산, 완산칠봉 등이 자리잡고 있어 전체적으로 산이 남쪽에서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만경강의 제1지류인 전주천은 시 남동쪽에 있는 관촌평야에서 기원하여 시역을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관통하여 흐르며, 덕진구 전미동에서 소양천과 합류해 만경강 본류를 이루어 시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 전주천의 지류인 삼천은 시의 남동쪽을 지나는 호남정맥의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완주군 구이면에서 들어와 시의 서쪽을 북쪽으로 흐르다 덕진구 팔복동(추천)에서 전주천에 합류한다. 한때 전주에 속했던 지역 중 일부는 완주군의 소속으로 되어 있다. 신라 때 9주 5소경 중 하나인 전주의 중심도시인 주치(州治)였다. 일찍이 후백제가 수도로 삼았던 곳이었으며, 고려 치세 전반 동안 전주는 전라도의 중심 도시였고,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전주의 별칭이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 호남의 으뜸 도시). 애초에 전라도의 '전'이 바로 전주(全州)이다. 조선의 왕성(王姓)이 바로 전주 이씨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전주 이씨이고, 북한 김일성도 '전주 김씨'다. 조선 왕조 발상지라 '풍패지향(豊沛之鄕)'으로 불렸는데, 태조 이성계의 본관이 전주(전주 이씨)이기 때문. 그래서 전주는 사대문에 풍(豊)자와 패(沛)자가 들어간다. 이성계의 실제 출생지는 함경도 영흥이지만 조선 왕조는 왕조의 발상지를 전라도 전주로 한다. 조경단(肇慶壇)이 있는 건지산(乾止山)은 조선 왕실의 지중한 영내(領內)로써 한그루의 나무, 한포기의 풀잎도 함부로 못다루던 금역지대이다. 한 고조 유방(劉邦)이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가는 길에 풍패(豊沛)에 들러 승리를 기념하며 고향 사람들을 모은 자리에서 대풍가(大風歌)를 읊었듯, 이성계는 왜구를 평정하고 돌아가는 길에 전주(全州)에 들러 황산대첩의 대승을 기념하며 전주 이씨 종친들을 모은 자리에서 대풍가(大風歌)를 읊으며 드디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할 포부를 드러낸다. 삼한시대에 마한의 영토였던 이곳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비사벌 또는 비자화로서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가 설치되었다가 565년에 폐지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완산주를 다시 설치하고, 757년(경덕왕 16)에 전주(全州)로 개칭되어 행정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후 전주는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고장이 되었다. 고려시대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후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전주의 별호는 완산(完山)·견성(甄城)이었다. 1935년에 전주면이 부로 승격되어 독립하고 1949년에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광역시인 광주를 빼면 큰 도시가 적은 호남에서는 유일하게 대도시 특례를 받는 도시로 전북 제1의 도시, 호남 제2의 도시이다. 무엇보다도 조선 뿌리가 되는 도시이다 보니 인지도가 높으며 일본에서도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다음으로 인지도가 높다. 한국적인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다. 전주에 들어오는 톨게이트도 한옥, 톨게이트를 지나 전주를 들어오는 관문은 상술한 '호남제일문' 이라는 한옥문이 맞이한다. 전주역 또한 한옥의 모습이다. 전주 시내 이름인 '객사'부터가 조선시대 중앙 관리들이 전주에 내려오면 머물던 객사 뒷거리에서 따온 이름이다. 또한 전북대학교에 가면 신정문과 일부 건물들이 한옥으로 되어있다. 전주시는 계속해서 이러한 전통과의 조화를 이룬 도시를 만드는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광주가 혁명, 저항, 민주 등 뜨거운 이미지가 강하다면, 전주는 한국적, 여유, 예술 등 부드러운 이미지가 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김제시(金堤市)
전북 중서부에 위치한 시로 동쪽으로 전주시, 완주군, 서쪽으로 군산시, 남쪽으로 정읍시, 부안군, 북쪽으로 군산시, 익산시와 접해 있다. 전북의 3대 도시인 전주, 익산, 군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동부의 용지, 금구, 금산(원평)은 전주 생활권이고 북부의 백구, 공덕, 청하, 만경은 군산 또는 익산 생활권에 속한다. 남단의 부량면은 신태인과 가까우므로 정읍 생활권에 속하기도 한다. 마한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고학적으로는 4세기 초반에 이미 백제의 직접 지배 영역화되어가는 것으로 드러나며, 이는 4세기 중반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던 목지국 잔여 세력이 자리한, 천안 및 그 이남 충청도 내륙 남부보다 앞선 것이었다. 아무래도 해안으로 백제의 무력이 침투되기 더 유리했던 게 원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 때 벽골현(碧骨縣)이었는데, 이는 당시부터 있었던 벽골제와 유래가 같다. 백제가 망한 직후에 벌어진 백제부흥운동 당시에 잠깐 백제부흥운동군의 임시 수도기도 했다. 통일신라 경덕왕의 전국 지명 한화정책으로 지금까지 쓰이는 지명인 김제군이 되었다. 4개의 속현이 있었는데 만경현(萬頃縣, 만경면), 평고현(平皐縣, 용지면), 이성현(利城縣, 청하면), 무읍현(武邑縣, 성덕면)이었다. 그리고 청해진의 장보고가 암살되고 나서 그 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조정에 의해 김제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후로는 후백제의 강역이었고, 후백제가 망한 후에는 고려에 편입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조선시대에는 김제군(金堤郡)·금구현(金溝縣)·만경현(萬頃縣) 등 3개 독립 군현이 있었다. 지금의 김제시 중심시가지와 백산면·용지면·백구면·죽산면·부량면은 옛 김제군 지역, 금구면·황산면·봉남면·금산면 일대는 옛 금구현 지역, 만경읍·진봉면·성덕면·청하면·공덕면 일대는 옛 만경현 지역에 해당한다. 1896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김제·금구·만경이 모두 전라북도에 속해졌다. 1914년 4월 1일 만경군, 금구군을 편입하여 통합했고 1931년 11월 1일 김제면이 김제읍으로 승격되었다. 곡창 지대가 있었기에 아무래도 일본 자원의 침투가 많아, 나름대로 일본인 식민자들에게 많은 수탈을 당한 지역이기도 하다. 1949년 진봉면에서 광활면이 분리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 김제읍과 월촌면이 김제시로 승격되었다. 1994년 백구면 강흥리, 도덕리, 도도리, 남정리가 전주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김제군과 김제시가 김제시로 통합되었고 동년 3월 만경면이 만경읍으로 승격되었다. 후빙기 이래로 고대에는 오늘날 논으로 일구고 있는 지역 대부분이 바다였다. 그렇던 것이 남북으로 큰 강이 두 개나 흘러들며 토사물을 운반해 쌓은 덕에 지금의 김제평야가 만들어졌고, 이는 곧 한반도 최대의 곡창 지대라는 지리적 입지를 만들어 주었다. 김제, 정읍, 부안이 경계를 맞닿은 동진강 하류 지역은 한국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테마로 한 지역 축제인 김제 지평선 축제가 9, 10월에 벽골제 일원에서 열린다. 지평선 축제는 김제시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타 축제와의 차별화시도에 성공한 덕분에, 관광객도 많이 늘어나고 축제 규모 역시 상당히 커져 현재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축제로 자리잡았다. 또한 서북부 진봉반도에는 심포항이라는 작은 어항(漁港)이 있었지만 새만금이 들어서면서 제 기능을 잃었다. 새만금 계획에 따르면 방수제 밖에 위치한 하항으로 기능할 수 있으나 바다 밖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새만금 내부를 움직이는 유람선 정도가 다닐 수 있을 듯 하다. 그밖에 부량의 벽골제를 비롯하여 백산의 돌제, 만경의 능제 등 저수지가 산재해 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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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울먹울먹 비가 올랑말랑 신발이 잠깐 젖는 정도였지만 일기예보를 믿고 빨리 운암호를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 운암(雲岩)삼거리/ 초당골(막은댐)정류장/ 27번국도
호남정맥이 마암교에 내려서서 도로를 따르다가 임실군 운암면 마암리와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경계에 있는 운암삼거리 어부집에서 왼쪽 양회임도가 들머리다. 개활지를 지나 옥정호와 운암대교를 돌아보고 잡목지를 지나 대형 원형물탱크가 설치된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가파른 오름을 따르기 시작하여 분기점에 도착한다.
♤ 나래산(543.9m)/ 익산(翼山)
옥정호를 가로질러 27번국도가 지나는 운암대교(1989년 준공)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뾰족한 산이 나래산이다. 임실군 운암면 운종리에 있는 나래산은 남쪽을 제외하고 주변이 옥정호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사면으로 27번국도가 지나가는 운암터널이 있으며 익산(翼山)이라고도 부른다. 『여지도서』 (임실)에 "익산은 백련산에서 뻗어나온다. 관아의 서쪽 40리에 있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후 『임실읍지』, 『호남읍지』 등에도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호남지도』에 운암대천(雲岩大川) 서편, 율치 북쪽의 산으로 익산이 표사되어 있는 것을 비롯해 『해동지도』, 『광여도』 등에 "익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 지명과 관련해 임진왜란 때 왜적이 섬진강을 따라 이곳으로 쳐돌어오자 수많은 아군이 있는 것척럼 위장하기 위해서 이 산에 군량미를 쌓아놓은 노적가리처럼 이엉을 엮어서 덮어 놓았다. 전라도 사투리로 이엉을 날개 또는 나래라고 하는데, 그래서 나래산으로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 묵방산(墨防山, 538m)
묵방산은 정읍시 산외면과 임실군 운암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묵방산은 호남정맥의 산줄기인데 북쪽으로는 초당골-오봉산-경각산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성옥산-왕자산-구절재-고당산이 이어진다. 조선시대 임실지리지에서 묵방산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대동지지』, 『여지고』 등에서 태인현(지금의 정읍시) "묵방산은 남동쪽 45리에 있는 산이다. 라고 수록되어 있어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해동여지도』(임실)에 현 서쪽 태인과의 경계지역이며, 종산치(終山峙) 남쪽의 산으로 묵방산이 묘사되어 있고 『1872년지방지』에도 수록되어 있다. 국사봉, 오봉산, 나래산, 회문산 등과 함께 옥정호(玉井湖)라고도 불리는 갈담저수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산으로 오르는 능선 곳곳에서 옥정호가 내려다보이지만, 정상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전망이 좋지 않은 편이다. 전북 남부를 흐르는 동진강(東津江, 44.7km)이 바로 묵방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한다고 알려져 있다. 산 아래 여우치(如牛峙, 284m)라는 고개에는 여우치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 모악지맥분기점(359m봉)/ 삼시군봉(완주군 구이면, 임실군 운암면 → 정읍시 산외면)/ 삼파수
초당골의 막은댐 어부집(식당) 뒤 몇 기의 묘소를 지나 소나무숲과 밭길을 걷는다. 휴경지를 지나 오르막을 올라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전북산사랑회가 설치한 이정표가 있는 모악지맥 분기점에 닿는다. 이곳은 삼시군봉이자 삼파수로서 동쪽 만경강, 남쪽 섬진강, 서쪽 동진강을 가르는 중요한 길목이다. 호남정맥이 오봉산 직전 국사봉갈림길에서 임실군 운암면을 만나 면계를 따르다가 여기 모악지맥 분기점에 이르고 정맥은 왼쪽 묵방산으로 향하지만 모악지맥은 이곳에서 임실군과 작별하고 오른쪽으로 완주군과 정읍시의 경계를 따른다.
- 초당골에서 20분 소요된다.
♤ 완주군 구이면(九耳面)
완주군 최남단에 위치하며 북쪽은 전주시, 남쪽은 김제시 금구면과 임실면, 동쪽은 임실군 신덕면과 상관면, 남서쪽은 정읍시 산외면과 접해 있는 도시 근교의 중산간 지역이다. 구이면은 고려시대에 ‘귀이동’으로 불렸다. 본래 지명은 구이동면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남쪽으로 처음이 30리, 끝이 50리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구이동면(龜耳洞面)이 “관아에서 3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구이동면(龜耳洞面)의 ‘거북 귀(龜)’자를 ‘나라 이름 구(佉)’로 바꿔서 발음하기 좋게 바꾸고 다시 ‘나라 이름 구(佉)’가 쓰기가 어려워서 ‘아홉 구(九)’로 바꾸었다. 그리고 동(洞)자를 뺀 후 ‘구이(九耳)’로 개칭되었다. 1914년에 난전면의 일부를 병합하고 구이면이라 칭했다. 1935년에 전주군이 전주부로 승격하면서 완주군으로 편입되었다. 구이면은 모악산 서쪽에 있어 김제시 금산면과 경계를 이루며, 남에서 북으로 삼천천이 흘러 전주천과 합류해 만경강을 이룬다. 모악산과 경각산 사이에 저수지를 끼고 삼천천이 흐르며, 남북으로 국도 제27호선[순창-전주 구간]인 4차선 고속화도로와 동서로 국도 대체 우회도로[구이-상관]가 개통되어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 장가산(401.7m)/ 취전산/ 삼각점봉
바위봉우리이다. 지맥은 좌틀한다. 산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지며 동쪽으로 27번 국도와 백여리가 보이고, 서쪽엔 산외면 화죽리가 인사한다. 동쪽에 6기의 묘소가 있는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가야 한다.
- 3등삼각점(갈담 311/ 1984 복구)이 있다.
♤ 엄재(俺峙, 156m)/ 49번군도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호동마을과 정읍시 산외면 화죽리 엄계마을을 잇는 1차선 도로이다. 엄재에는 정읍시 산외면, 완주군 구이면의 경계를 알리는 안내판과 수분점이 있다. 왼쪽 산외면 화죽리에 엄계마을이 있고, 오른쪽 백여리 호덕리골에 호동(虎童)마을이 있다. 아래로 정읍과 완주를 잇는 엄재터널이 뚫려 지금은 한적한 고개로 변해있다. 엄재터널이 통과하는 등고선상의 250m를 지나서 왼쪽 아래의 엄계저수지를 조망하고 내려가 도로에 도착한다. 엄재 절개지 상단부 낙석방지용 철망 콘크리트 옹벽으로 올랐으나 아래에 하우스 주택이 있어 들머리를 고개넘어 호동마을로 바꿔 두었다.
- 완주군 구이면 호동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는 입구에서 도로를 버리고 왼쪽 능선으로 올라선다.
거리가 부담입니다만 준희선생님과 언약도 했겠다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전북에 사는게 아닌 이상 모악지맥에서 아니면 따로 독금산을 찾기란 쉽지 않을것 같아서리....
♤ 독금산갈림길(387.6m)/ 편도 1.1km, 왕복 50분 소요
북서쪽으로 국사봉과 구장 마을, 서쪽 독금산, 동쪽 호동 마을이 한눈에 잡힌다. '중시조 초계최씨 신제공 경린용운공파 세손비'에서 한숨 돌리고 독금산갈림길로 된비알을 올라서는데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누군가 설치해둔 밧줄을 붙잡을 수 있다. 엄재에서 독금산갈림길까지 55분 소요되고, 독금산을 왕복하는데 다시 50분이 소요된다.
♤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象頭里)
상두리는 코끼리 머리를 닮은 상두산(575m) 밑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라 붙여진 지명이고 九將 (구장)마을은 아홉명에 장수가 나온다는 형세라 불리어진 지명이다. 동쪽에는 國事峰(국사봉)이라는 봉우리가 있고 남쪽으로는 독금산과 만병지 라는 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구장마을 바로 아랫동네 지명이 만명의 병사가 머무른다는 萬兵里(만병리)가 있다.
- 국사봉 바로 옆 상두분맥 갈림봉(533m)에서 상두산까지는 5.2km이다.
♤ 독금산(獨金山, 388m)
김일성의 전주김씨 시조묘가 있는 모악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려온 용맥은 국사봉(535.3m)을 만들고 독금산을 형성한다. 깍아지른 벼랑위의 정상에 서면 사방팔방 막힘없는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지는 곳이다. 동남쪽으로 오봉산, 백련산, 회문산까지 옥정호를 휘감는 호남정맥의 마루금 주위로 산그리메가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독금산-국사봉 구간은 동쪽으로는 경각산과 치마산으로 흐르는 호남정맥 마루금을 서남쪽으로는 백암산 입암산으로 넘어가는 영산기맥의 능선을 놓칠 순 없다.
♤ 닭봉(鷄峰, 453.1m)/ 폐헬기장/ 삼각점봉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와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와 안덕리의 경계에 있는 봉으로 동으로 원안덕, 북쪽 모악산이 다가온다. 닭봉으로 가는 길은 수월하다. 닭봉은 지맥에서 50m 벗어나 있다. 바로 옆 봉우리가 계곡리로 내려서는 백운산(450m)이다. 계곡리 뒷산이 닭의 형국이라 하는데 닭산을 말함으로 보인다.
- 3등삼각점(갈담 312/ 1984 재설)이 있다.
♤ 국사봉(國師峰, 536.3m)/ 삼시군봉(완주군 구이면, 정읍시 산외면 → 김제시 금산면)/ 헬기장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엄밀히 말하면 국사봉은 구이면에 있고 잠시 진행하면 만나는 삼거리 상두분맥갈림길이 삼시군경계지점이다. 지맥의 왼쪽이 정읍시에서 김제시로 바뀌는 지점으로 만경강과 동진강의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 마을에서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데 좌우의 산골짜기마다 천주교 박해 때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피신 온 신자들 마을이 곳곳에 남아있다. 화율리의 상화, 하화 마을과 구이면 안덕리의 양생동 마을이 대표적이다. 국사봉이라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정상에서 조망은 훌륭하다. 서로는 코끼리 모양의 상두산, 북으로 모악산·운장산·연석산이 뚜렷하다. 북동으로 고덕산과 경각산, 동으로 오봉산, 남으로 추월산과 회문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국사봉에서 원평천을 가르는 상두산으로 가는 상두분맥(원평분맥)을 나눈다. 밤티재(1.8km) 방향으로 우틀한다. 밤티재 직전에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 소재 또다른 국사봉이 나타난다. 스승 사(師) 자를 쓰는 국사봉의 경우는 풍수지리상 임금과 신하가 조회하는 군신봉조(君臣奉朝) 형상이라고 한다. 즉 임금을 상징하는 국사봉을 정점으로 좌측엔 삼정승, 우측엔 육판서가 도열한 형국으로, 삼정승은 곧 세자를 어진 임금이 되도록 가르치는 스승이기에 국사봉으로 부른다고 한다. 육당 최남선(崔南善)은 일제에게 조선의 역사와 지리가 유린당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심춘순례(尋春巡禮)』에서 백제의 옛터인 모악산 정상에 올라 ‘금만경 큰 평야가 벌어지고 호남, 영남 사이의 여러 산들이 분파하여 가슴이 쾌활하기 그지없다. 10여 칸 쯤 되는 평평한 대(臺)에 서니 이것이 모악산 상봉 국사봉의 절정이다’라고 예찬했다.
- 김제시 금산면과 완주군 구이면 경계인 시군면계를 따라 모악산까지 진행한다.
♤ 밤티(栗峙)재/ 터널/ 김제시 금산면-완주군 구이면 경계
고안덕의 아담한 황토집과 농장이 보이는 밤재다. 서쪽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 동쪽 완주군 구이면 원안덕을 잇는 고개다. 밤티재 아래로 터널이 뚫려있다. 인근에 천주교와 관련된 마을이 다수 분포한다. 『해동지도』 (금구)에 '율치'가 기재되어 있고, 다른 고지도에는 모악산과 상두산을 연결하는 산줄기만 그려져 있다. 밤티재는 금산면 화율리 하화마을 동북쪽 뒷산에 밤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밤티재를 한자로 옮겨 율치(栗峙)라고도 부른다.
- 화율봉까지 15분 소요되고, 국사봉 1.6km, 모악산 6.2km 이정표가 서있다. 모악산 방향으로 올라선다.
♤ 화율봉(禾栗峰, 609m)
화율봉은 모악산의 남쪽 끝자락 봉우리로, 산 남서쪽에 위치한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에서 산줄기가 북쪽은 배재-장군재를 거쳐 모악산으로 가고, 남쪽은 밤재를 거쳐 국사봉 운암 초당골의 호남정맥으로 이어진다. 물줄기는 동쪽으로 원안덕에서 발원하는 삼천을 거쳐 만경강, 서쪽으로는 모악산과 상두산 자락에서 발원하는 원평천을 거쳐 동진강으로 흐르는 분수령이다.
- 모악산까지 5.3km 거리이고, 서쪽은 금산사 주차장과 모악랜드로 가는 길이다.
♤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禾栗里)
화율리는 조선 말기 금구군 수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화리와 율치리를 병합하여 화율리라 하고 김제군 수류면에 편입되었으며 1935년 수류면이 금산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제군 금산면 화율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율치, 상화 등이 있으며 율치는 하화 동쪽에 있는 마을로, 완주군 구이면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조금 못 미쳐 있다. 주위에 밤나무가 많이 있어 율치 또는 밤티라 하였다. 상화는 약 400년 전 장씨가 유목생활을 하면서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처음에는 상화, 하화로 있다가 두 마을을 합하면서 상화라고 하였다. 110여 년 전부터 카톨릭 교우촌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마을에 있는 수류성당은 1906년 목조로 지었다가 6.25전쟁 때 소실되어 1959년에 다시 지었다.
♤ 고수재(553m)
북쪽의 금산면 금산리와 남쪽의 구이면 안덕리를 잇는 고개이다.
- 화율봉 1.5km, 청련암 1.8km/ 정상 3.9km 이정표가 있다.
♤ 배재(531m)
금산리 금산사 방면의 안덕리 탑선 마을을 잇는 고개이다. 배재에서 서쪽은 청룡사, 동쪽은 완주군 구이면 미치 마을로 간다.
- 화율봉 2.5km, 청룡사 1km/ 탑선 1.3km, 정상 2.9km 이정표가 있다.
♤ 금산사(金山寺)
금산사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도립공원 남서부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이다. 금산사를 누가 창건했는지 기록이 정확히 남아 있지 않아 금산사를 부흥시킨 진표율사를 실질적인 창건자로 여기기도 하지만 경덕왕 21년인 8세기 초 진표율사가 순제법사에게 출가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그 훨씬 이전부터 절이 창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아있는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의 기록에 의하면 '599년 백제 법왕이 즉위하여 살생을 금지하는 법을 반포하고, 이듬해에 금산사에서 38명의 승려를 득도시켰다'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금산사는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후 762년(경덕왕 21년)부터 766년(혜공왕 2년) 사이에 진표율사가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일으킴으로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935년에는 후삼국 가운데 호남지역의 맹주였던 견훤이 아들인 신검에 의하여 왕위에서 쫓겨나 금산사에 유폐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 문종 33년(1097년)에는 혜덕왕사가 중창해서 86개동 43개의 암자를 설치했다고 한다. 충숙왕 15년(1328년)에는 원명해원 스님이 또 한 차례 중수하고, 임진왜란 때는 뇌묵당 처영스님이 금산사를 거점으로 의승병을 모집하고 왜군에 대항했다. 정유재란으로 호남까지 왜군이 밀려들어오자 금산사는 왜군에 의해 전소되었다가, 인조 13년(1635년) 수문대사에 의해 일부 복구되었고, 1725년에는 환성지안 스님이 화엄대법회를 개최해서 금산사에 1,400여 명의 대중이 몰려듦으로써 위협을 느낀 조정으로부터 제주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현재의 도량은 1961년 월주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일구기 시작해서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교, 극락교, 향적당, 적묵당, 보현당, 설법전, 요사채, 나한전, 조사전, 보제루 등을 신축하고 미륵전과 대적광전, 대장전, 상서전, 금강계단 등은 해체 복원해서 호남의 명찰로 만들었다.
♤ 장군재/ 헬기장
화율봉과 모악산 사이 가장 낮은 안부의 금산사와 안덕리를 잇는 고개로 장근재라고도 한다. 장군재가 장근재로 변한듯 하며 어느 시대 장군과 연관있는 지명인지는 실전되었지만 견훤과 신검의 후삼국시절 첨예하게 대립한 고려 태조 왕건과의 전선이 모악산 능선으로 형성되지 않았는지 짐작해 본다.
- 장군재에는 금산사로 내리는 서쪽 모악정과 북쪽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 남봉(775m)/ 제3헬기장
모악산 정상 직전에 있는 널찍한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이다. 정상으로 직진 방면은 군통신시설로 인하여 막혀있다. 정상 직전 왼쪽으로 우회하여 정상으로 진행한다.
- 오른쪽으로 구이저수지와 그 너머 호남정맥 경각산-불재-치미산 구간 마루금이 보인다.
♤ 모악산(母岳山, 793.5m)/ KBS송신소/ 1등삼각점(갈담 11/ )/ 삼시군봉(김제시, 완주군 → 전주시)
전북 완주군 구이면, 전북 김제시 금산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능선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동쪽 사면을 제외한 전사면이 비교적 완만하다.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구이 저수지에 흘러든 뒤 삼천천을 이루어 전주시로 흐른다.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두월천·원평천은 동진강에 흘러들며, 김제 벽골제의 수원이 되기도 한다. 서쪽 사면에 있는 금산사(金山寺)는 599년(법왕 1)에 창건된 것으로 신라 불교의 5교9산(五敎九山)의 하나이며, 여러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금산사지(金山寺誌)』를 보면 ‘엄뫼’라는 말이나 ‘큰뫼’라는 말은 아주 높은 산을 의미하는데,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산이라는 뜻으로 의역해서 ‘모악’이라 했고, ‘큰뫼’는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金山)’이라고 적었다고 되어 있다. 주위에 선각산·국사봉 등이 있다. 이 산은 저평한 호남평야에 우뚝 솟은 산이어서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가 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모악산 꼭대기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 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곳에 금이 많이 생산되어 금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주변에는 사금광산이 몇 군데 있다. 또한 이 일대는 계룡산의 신도안, 풍기의 금계동과 함께 풍수지리설에 의해 명당이라 하여 좋은 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한때 수십 개의 신흥종교 집단이 성행했으며, 미륵신앙의 본거지로서 용화교 등이 일어났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한국 거찰의 하나인 금산사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호남 4경의 하나로 꼽힌다. 1976년 모악산도립공원 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숙박 시설과 토산품 가게의 집단화, 주변의 신흥 종교집단의 단속·철거 등이 이루어졌다. 봄철에는 금산사 입구의 벚꽃이 유명하다. 정상으로 오르는 철문은 코비드-19로 닫혀있다. 정상부는 방송국 중계소 건물이 차지했다.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1등삼각점이 있고 건물의 옥상이 사실상 모악산의 정상 역할을 하고 있다. 전북 김제시, 전주시, 완주군이 갈라지는 삼시군봉이다. 정상에서 서북릉을 따라 매봉과 연불암 뒷산의 암벽지대를 지나 2.5km쯤에 이르면 또 다시 두 갈래 친다. 북쪽은 황소리 부근에서 여맥을 다하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모악지맥은 유각치(712번 지방도)에 닿는다.
- 송신소에 정상석과 삼각점(갈담 11/ 1987 재설)이 있다. 송신소 옥상이 정상보다 더 높아 최정상이다.
♤ 모악산 북봉/ 헬기장
모악산 정상에서 서쪽 금산사 매봉 방면으로 내려가면 첫번째 정상삼거리 이정표, 금산사길림길(720m)을 지나 북봉 헬기장에 이른다.
♤ 매봉(622m)/ 칼날능선
금곡사갈림길을 지나고 조망지에서 전주시내를 바라본다. 금선암갈림길을 지나고 매봉 직전이 염불암갈림길이다. 매봉 통과후 칼날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전주시내를 조망하고 테라스에 내려서면 서북쪽으로 가야할 방향의 상목산 마루금이 보인다. 상목산 왼쪽으로는 금구면 선암리 소재 구성산(489.7m)이다.
- 가운데 작은 돌무더기가 있고 이정표에 매봉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 독배주차장갈림길
오른쪽 직진은 완산구 용복동 독배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지맥은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좌틀하여야 한다. 용복동은 완주군이었으나 전주시 완산구로 편입되었다.
♤ 유각치(有角峙)/ 712번지방도/ 전주-김제 금산면 지방도(우림로)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와 전북 전주시 완산구 용복동을 잇는 고개이다. 산 아래 청도리의 자연마을로 유각(有角)·동곡(銅谷)·백운(白雲)·하운(夏雲)·청도 등이 있다. 유각은 청도리 동북쪽 김제시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이름의 유래에 관하여 옛날 유씨들의 제각이 있었다는 설, 옛날 말을 갈아타던 역이 있어 근방에 여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 전주와 김제의 경계가 되는 고갯마루가 각이 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전해 온다. 유각마을이 있는 금산면 청도리에는 유각천(有角川)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흘러 금평저수지로 유입된다.
- 절개지 위에 묘가 있고 왼쪽으로 도로에 내려서서 전주 방향으로 고개를 넘어, 도로 건너편에 있는 김제 24km, 금산사5km 도로교통 표지판이 들머리이다.
전주에서 금산사를 넘어가는 유각치에서 물이 600cc 뿐이 없어 물을 얻으러 택시를 불러 다녀와야 하나 하던 찰나에 탑차 한대가 멈춰서네요. 운동하는 분이라 1.5리터 물 한통을 다 주시네요.^^ 물을 채우고 상목산으로 올라가다 봉긋한 여섯기의 무덤을 지나 굴 앞에서 비박을 쳤습니다. 묘지는 바닥이 평탄하지 않고 위아래로 기울어져 있더군요. 굴 아래는 꽤 깊어 보였어요. 누가 사용하는 것처럼 깨끗했구요.
요즘은 다섯시만 되면 날이 밝습니다. 날이 환하게 밝아서 출발했습니다. 450m봉은 정상 직전에 봉우리 같지 않은 그러나 모악산 정상 만큼은 잘 바라다 보입니다.
♤ 450m봉/ 삼면봉(전주시 완산구, 김제시 금산면 → 금구면)
유각치에서 묘역과 계곡부를 따라 고도를 높이면 첫번째 약 350m봉우리에 오르고 두번째 올라서는 봉우리이다. 지맥은 우틀하여 상목산을 향한다.
♤ 상목산(上木山, 459.7m)/ 묘고산(妙高山)/ 목조데크 전망대/ 정자
김제 금구면 선암리와 월전리 경계에 위치한 상목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금구)에는 금구현의 7리에 묘고산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이나 이장들도 상목산에 대해서 유래를 잘 모르고 있었다. 다만 <디지털김제문화대전>에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에 있는 묘고산은 선암리와 월전리, 오봉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460m의 조그만 산이다. 대율천이 시작되는 곳으로 산꼭대기에 이르는 골짜기를 삼목 또는 상목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보일 뿐이다. 이렇게 상목산은 지명과 산의 유래가 다르고, 높이도 제 각각이다. 상목산의 물줄기는 동쪽은 만경강, 서쪽은 동진강 분수령을 이룬다. 김제시에서 명명한 상목산은 상목 냉굴과 당월저수지를 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지하자원의 수탈현장으로 선조들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1913년부터 일본인들이 선암광산과 금평광산 등을 설립하고 석금을 채굴하기 시작하였으며, 1945년 금광정비법이 시행되면서 폐쇄됐다. 금광에서 채굴이 왕성했던 김제는 과거 일본인에게 수탈의 대상이 될 만큼 폐 금광의 규모가 컸다. 현재 김제시 금구면 일대에는 봉림 냉굴, 양석 냉굴, 상목 냉굴, 오산수 직굴 등 폐쇄된 금광굴이 4곳이 남아있다. 김제시 소유인 상목냉굴을 제외하고 모두 사유지다. 청도리 주민들은 상목산을 고양이 형국이라서 고양이 묘(猫)를 쓰는 묘고산, 또는 이 산에 모기가 많다고 해서 모구산으로 부르고 있다. 산림이 훌륭하여 지자체에서 100억 이상 투입하여 자연휴양림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등산로는 구불구불한 토종 소나무 숲길로 이루어져 있다.
- 독배골로 이어지는 712번 도로와 그 너머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시가지와 모악산이 제대로 조망된다.
♤ 403.8m봉/ 삼각점봉/ 알바주의
상목산 정상에서 약 15m 거리에 헬기장 갈림길에서 오른쪽 당월저수지(2km) 방향으로 김제시 금구면과 전주시 완산구 용복동의 경계를 따라 진행한다. 넓은 공터인 403.8m봉에 오르면 4등삼각점이 있다. 금구면 오봉리 갈림길에서 우틀해도 되고 직진하여 403.8m봉을 찍고 우틀해도 된다. 왼쪽은 당월저수지 방향이다. 왼쪽 당월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가면 알바이다. 지맥길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 4등삼각점(전주 462/ 1984 복구)이 있다.
♤ 매봉산(200.8m)
봉우리라기 보다는 평탄한 지형이다. 왼쪽으로 우회길이 있다.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와 전주시 완산구 용복동의 경계로 아카시 잡목 구간이다.
♤ 매봉(251.5m)/ 삼각점봉/ 산불감시초소/ 삼각점봉/ 김제시 금구면 - 전주시 용복동 경계
지맥이 시계를 벗어나 잠시 전주시 용복동 내안을 지나며 천잠산으로 향한다. 정상부에 삼각점과 산불감시카메라철탑이 있다. 지나온 모악산 전체가 한꺼번에 조망된다. 지맥길은 서쪽으로 동진강의 지류인 두월천을, 동쪽으로는 만경강의 지류인 독배천을 만들면서 두 강의 수계가 확실하게 나뉘어진다.
- 산불감시초소 기둥에 모악지맥 맨발님 매봉 산패가 있다. 4등삼각점(전주 464/ 1984 재설)이 있다.
♤ 구덕고개
해주오씨 묘가 있는 개활지를 좌측으로 통과하면 대나무밭 뒤쪽으로 구덕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구덕마을에서 동북쪽이 마루금이나 포항-새만금 고속도로 공사중으로 구덕마을삼거리에서 오른쪽 구덕마을길로 우회하여 진행하기도 한다.
♤ 완산구 용복동 구덕마을
이 마을은 세개의 자연부락(동쪽의 서지, 남쪽의 봉암, 북쪽의 구덕)이 합쳐져 서지마을로 총칭되고 있고 적절한 기후와 토질 및 강수가 어우러져 전국적인 복숭아 생산지로 유명하다. 이 중 구덕마을은 마을 앞에 있는 쌍둥이 산(쌍산)에서 비추는 빛을 받아 유독 쌍둥이를 많이 낳았다는 일화가 있고 봉암마을의 동암은 새의 일 터라는 의미가 있는데 근처에 봉황이 많이 살고 있어 붙여졌다는 봉황산이 있고 이 산에 상석을 쓰면 새가 먹이를 구할 수 없어 상석을 쓰지 않는다는 일화가 있다.
♤ 21번국도/ 남원-순창으로 이어지는 호남로
구덕마을에서 21번 국도까지는 직선거리 330m 정도이다. 21번 국도는 도로 절개지와 중앙분리대가 있어 마루금 통과가 어려워 남쪽 방향의 지하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구덕마을 입구 21번국도에서 새터육교까지는 약 7.2km 거리이다. 암거를 통과하여 왼쪽 밭가장자리로 올라 묘지 아래로 진행한다.
구덕마을에서 21번국도 방면 마루금은 포항-새만금간 고속도로 건설 중에 있다. 이후에도 모악지맥에서 포항-새만금고속도로 현장은 여러번 마주치게 된다. 이서면 걸치기마을에서 올라서서 대고개로 가며 보게되고, 두악산전망대를 내려서며 백산면에서 보게되고, 대동1육교와 대동2육교 사이 성덕면에서 보게되고, 지평선중학교에서 능제 남산서원 가며 만경읍에서 보게되고, 진봉면 종야마을에서 석치마을을 찾아가며 보게되고, 마지막으로 심포항에서 66.1m봉을 오르며 보게 된다.
♤ 서지고개/ 전주시 완산구 용복동
지하통로를 지나 무명봉에 오르고, 능선에 오르면 남쪽(오른쪽)으로 전주시 완산구 용복동 서지마을이 보인다.
♤ 183.6m봉
과수원을 지나 183.6m봉 정상부에 경계석이 있고 쑥고개 절개지로 내려서기 전 묘지의 곡장에 95.3m봉 마모된 삼각점이 있다. 1번국도를 왼쪽으로 내려다 보며 절개지 위쪽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선다.
♤ 국도1호선
국도1호선은 전남 목포시에서 김제시를 통과하여 판문점을 거쳐 평북 신의주시까지 이르는 일반국도이다. 목포시에서 판문점까지의 길이는 498.7㎞이고, 목포시에서 신의주시까지는 939㎞이다. 전북 구간은 정읍시 감곡면 통석리에서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로 진입하여 금구면 대화리까지 호남고속국도와 평행하게 달리다가 금구면 금구리에서 지방도 714호선과 교차하고 대화리에서 시도 27호선이 나뉜다. 이후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과 연결되는 천잠산 쑥고개를 넘어서 전주시와 연결되는 14.08㎞다. 국도1호선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최초의 도로로 한국전쟁 이후 구간이 임진각까지 한정되었다. 그 뒤 1979~1983년 논산시와 대전광역시 구간, 완주군 삼례읍과 논산시 연무읍 구간, 1994~1999년 연기군 조치원읍 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 완공되었다. 2000년에는 경의선 도로 연결 공사로 개성공업지구와 연결되었다. 국도1호선은 전북 정읍시 감곡면 통석리에서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로 진입하여 지방도 714호선과 교차하며, 금산면 성계리에서 다시 지방도 712호선과 교차되어 호남고속국도로 이어진다.
♤ 쑥고개 옛길/ 1번국도/ 지하통로/ 구도로와 신도로가 연이어 있다.
1번/ 21번국도를 만나 오른쪽 양회임도로 내려서면 암거(지하통로)가 있다. 쑥고개 교차로에서 분기하는 쑥고개 지하통로를 이용한다. 오른쪽이 전주시 삼천동 장자동마을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용복동과 삼천동을 잇는 쑥고개 정상부에 쑥고개 버스정류장이 있다. 수인사 뒤쪽에 그린피아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전주 시내가 잘 보인다.
쑥고개에서 민가가 한 채 있는 곳으로 올라가 민가 뒤쪽에서 그린피아 추모공원 묘지 방향으로 직상하여 오르고,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천잠산에 이릅니다.
♤ 천잠산(天蠶山, 159.3m)/ 삼면봉(전주시 완산구 삼천동3가, 전주시 완산구 용복동 → 완주군 이서면)
완산구 용복동과 삼천동3가의 경계를 따르던 지맥의 왼쪽이 완주군 이서면으로 바뀌는 시군계 지점이다. 전주시와 완주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선인봉, 새터봉, 매봉산 등의 산들이 이어져 있다. 천잠산은 누에가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에서 모악산 방면의 조망이 좋다.
- 정상 직전 남동쪽 140m 위치에 산불감시탑이 있다. 왼쪽으로 김제시 금구면 대화리 대율저수지가 보이고 정상에서 등로를 버리고 지맥길은 우틀하여 3시 방향으로 내려선다.
♤ 완주군 이서면(伊西面)
이서면은 완주군의 서쪽에 있다. 1987년에 북쪽의 조촌읍, 1989년에 남동쪽의 완주군 구이면 용복, 중인, 원당리 등이 전주시로 편입되면서 완주군의 다른 지역과 지리적으로 분리된 월경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이서면은 전주시와 김제시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은 천잠산 등을 경계로 전주시, 남쪽은 김제시 금구면, 서쪽은 김제시 용지면, 북쪽은 전주시 조촌면과 접하고 있다. 이서면은 본래 전주군 이서면, 이남면 지역으로 이 일대에 있었던 폐현인 이성현(伊城縣)의 서쪽에 있는 지역이라 해서 ‘이서면’이라 칭했다. 이서면은 고려시대의 이성현(伊城縣)으로 조선시대에 들어서 1413년(태종 13)에 현재의 이름과 같은 전주군 이서면이라 칭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주의 서쪽 25리에 있다. 본래 백제의 두이현(豆伊縣)이었으며, 왕무(往武)라고도 한다. 신라 때에는 두성(杜城)으로 고쳐 내속시키고 고려에 와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문헌에 앵곡역은 ‘옛날에는 장곡역(長谷驛)이라 하였다. 부의 서쪽 30리에 있다. 고려 현종이 이 역에 묵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지도서』에는 이서면이 ‘관아에서 30리이고, 앵곡역과 이성폐현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해발고도 100~200m의 산지가 있으며, 북부는 대보화강암이 심층 풍화되어 적황색토로 이루어진 해발고도 50m 내외의 구릉성 평야지대다. 이서면은 수리시설과 토양관리가 잘 되어 있어 주요 벼농사 지대이다. 전북 서부 신시가지 개발, 혁신도시 선정, 콩쥐팥쥐 배경마을 고증 등으로 향후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천잠산을 내려서서 송전탑이 있는 무명봉에 오르고 좌틀로 휘어져 내려서면 생태통로 울타리입니다.
♤ 생태통로 터널/ 쓰레기처리장
전주광역쓰레기매립장 생태통로를 지나 철망 뚫린 곳으로 도로(삼산길)에 내려서서 삼거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세파트훈련소 표지판이 보이고, 왼쪽 묘지로 오르는 철계단으로 148.6m봉에 오른다. 148.6m봉은 아무런 표시가 없는 지나가는 둔덕이다. 지맥이 전주시와 이서면의 경계를 타고가다 이서면으로 접어드는 구간이다.
♤ 이서면 이성리 새터육교/ 1번국도/ 27번국도
호남로 구이-상관 대체도로인 1번국도를 새터육교로 통과하고 육교를 건너 삼거리에서 서쪽 방향 새터마을로 마루금을 진행한다.
-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불자절마을에서 원이성길로 진행한다.
♤ 713지방도/ 새터마을,걸치기마을/ 황새골
새터마을,걸치기마을이 있는 713번 지방도(이서-금구간)/ 이서남로에서 새터마을앞 정거장 맞은편 오른쪽 농로로 약 60m 진입하여 황새골 등산로를 이용한다.
새터마을에서 고속도로 터널공사중인 능선에 올라 115.3m봉을 통과하고 114m봉을 70m 지난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유턴하여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대고개에 내려섭니다.
♤ 대고개/ 김제시 금구면 - 완주군 이서면 경계
김제시 금구면 대화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후 애통리사거리까지 지맥의 왼쪽은 김제시 금구면이고 오른쪽은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의 경계를 따른다.
- 왼쪽(남쪽)으로 금구면 대화리 마을이 가깝게 보인다.
♤ 79.4m봉/ 삼각점봉/ 신지앵곡길/ 이서면 은교리
마루금 중심 좌측이 더나인골프클럽이다. 신지앵곡길을 통과하여 잡목숲을 올라 79.4m 삼각점봉에 오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옛 이성현에 앵곡역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고, 은교리에 앵곡마을과 앵곡제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조선 중엽 소설 속의 배경 '콩쥐팥쥐' 한옥마을이 지맥 가까이에 자리한다.
- 4등삼각점(전주 460/ 1984 복구)이 있다. 삼각점에서 도로쪽으로 살짝 내려서서 우틀로 진행한다.
♤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
지맥은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 서울방면 "이서"간판 왼쪽(남쪽)에 통로를 찾아 호남고속도로를 지하통로로 지난다. 이서휴게소에 들러 물과 식량을 보충해도 된다. 만경강과 동진강의 수계를 가르면서 호남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구암마을 뒤를 지나 2차선 도로를 따라서 완주군 이서면의 애통리 사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구암마을/ 동둔마을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 남쪽 통로를 통과하고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로 진입하여 구암마을 표지석이 있는 도로에 내려서고 이후 지맥길은 한동안 도로를 따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미래병원표지판 방향으로 향한다. 동둔마을버스정류장-둔산버스정류장-전주 MBC송신소-에스페란사 G.C.를 지나 애통리 사거리로 향한다.
김제에서 서울가는 고속버스가 이서 애통리에서 잠깐 정차하는군요. 할머니 한분이 정안휴게소까지 타시네요.
♤ 애통리사거리/ 삼면경계면(김제시 금구면, 완주군 이서면 → 김제시 용지면)/ 716번지방도(콩쥐팥쥐로)
전북 김제시 용지면은 지표면의 10%가 황토로 덮여 있는 황토의 고장이다. 검문소가 있던 애통리사거리에서 지맥은 이서면을 벗어나 좌틀하면서 온전히 김제시로 들어선다. 서쪽으로 전주-김제간 716지방도/ 콩쥐팥쥐로를 진행한다. 애통리사거리로 가지않고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질러서 716번지방도로 갈 수도 있다. 오른쪽에 모아아울렛 건물이 보인다. 삼면 경계인 애통리사거리에서 좌틀하여 김제시로 진입하며 4차선 포장도로인 716번지방도로 콩쥐팥쥐로를 따라 남서쪽으로 이어진다.
♤ 김제 벽골제(金堤 碧骨堤)/ 사적 제111호
전북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저수지이다. 백제 때 벼가 많이 생산되던 너른 평야 김제의 지명이 '볏골'이다. 풀이하자면 '벼 고을'이 볏골이 되었고, 한자로 옮겨지며 벽골이 되었다고 한다. 즉 벽골제를 풀이하자면 곧 '벼 고을의 둑'인 셈이다. 이곳의 지형은 전주의 완산칠봉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자락이 낮은 언덕을 이루면서 김제시 금구면, 용지면, 교동월촌동을 지나 포교의 초혜산에 이르러 멈추고, 상두산에서 뻗어 나온 또 하나의 줄기는 김제시 금산면, 정읍시 옹동, 감곡면을 거쳐 김제시 부량면 명금산에 이르러 멈춘다. 이 두 줄기 사이의 가장 좁은 평원에 저수지의 제방을 쌓았다. 백제는 3세기 말에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아우르고,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 오늘날의 전라남도 해안 지방까지 판도를 넓혔다. 이 시기는 고이왕으로부터 근초고왕에 이르는 80여 년으로, 고대 국가 발전의 준비 기간으로서 마한 세력을 완전히 아울렀다. 또한 기후가 온난하고 넓은 평야를 가진 서남 지방이 지배 아래 들어오자 수전도작(水田稻作)을 장려하고 관개 시설을 확충해 경제적 기반을 다져 나갔다. 김제 벽골제의 대역사가 이루어진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벽골제의 축조 연대가 330년(백제 비류왕 27)으로 기록되어 있다. 벽골제비는 1415년(태종 15)에 벽골제를 중수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것인데, 비문이 마멸되어 1684년(숙종 10)에 신털미산(15.9m) 정상에 중건되었다. 현재의 김제 벽골제는 길이 2,500m의 제방과 2개의 수문인 장생거(長生渠)와 경장거(經藏渠)만이 남아 있다. 또한 현재의 제방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동진수리조합에서 둑의 가운데를 파서 농지 관개용 간선 수로로 개조해 놓은 상태이다. 벽골제비는 현재 전면과 후면의 비문이 심하게 마멸되어 거의 판독할 수 없는 상태이다. 신털미산에 있던 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1975년 장생거 옆의 제방 위로 옮기고 비각을 설치하였다가 1980년 벽골제지 정화 공사로 인하여 제방 아래 현재 위치로 옮겼다. 1963년 1월 21일 김제 벽골제비 및 제방은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3월 김제 벽골제로 사적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김제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이자 최대의 농경 수리 문화 유적으로 각종 수리 시설 발달사의 산 교육장이라 할 수 있다.
♤ 불노사거리/ 김제시 용지면 불로리
716번지방도로가 지나는 4차선 사거리로 통행량이 많다. 불노사거리를 통과하여 용지면 효정리로 들어선다. 여산송씨 소윤공파 백제공 세천비가 있다. 금구면 입향조 송윤(宋倫)[1407~1468]은 문과에 급제하여 계공랑광흥창승을 지낼 때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아들 송극창(宋克昌)[1431~1476]과 함께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 사방마을에 은거하면서 정착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김제의 여산송씨는 송윤 후손의 불로파[일명 석성공파]와 송복 후손의 여꾸다리파로 나뉜다. 현재 불로파는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불로마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불로리 송씨·낙송(洛宋)이라고도 불린다. 여꾸다리파는 청하면과 백산면 일대에 세거하고 있다.
- GS칼텍스주유소 뒤편 담벼락 옆으로 30.4m봉/ 3등삼각점봉(익산 310/ )이 있다.
♤ 무수 버스정류장/ 콩쥐팥쥐로
애통리사거리에서 점촌사거리까지 716번 지방도로를 따르며 지맥의 오른쪽은 계속 용지면이지만 지맥의 왼쪽은 무수 버스터미널에서부터 금구면에서 황산면으로 바뀌어 점촌사거리까지 진행한다. 무수는 김제시 용지면 효정리에 있는 자연마을로 약 100여 년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양생동이라는 마을에서 광산 김씨 일가족 75명이 무려 10여 년에 걸쳐 이주하여 광산 김씨 집성촌을 이루고 아무런 근심 걱정없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수제라는 저수지가 남아있다.
♤ 한국폴리텍대학 전북캠퍼스/ 김제시 백학동
마루금인 716번 지방도를 따라 점촌삼거리를 지나고 지맥의 왼쪽이 금구면-황산면-폴리텍대학이 있는 백학동-순동으로 들어서 승반산으로 오른다. 도로 왼쪽으로 한국폴리텍Ⅴ대학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보인다. 폴리켁 대학은 전문 기술인을 양성하는 기능대학의 후신으로 7개 권역으로 묶어 운영하고 있다.
♤ 순동사거리/ 김제시 순동/ 만경머리
순동사거리에서 우틀하여 아리랑로를 따라 순동산업단지, 지평선산업단지 방면으로 진행한다. 아래로는 익산-정읍간 호남선이 지나고 있다.
- 김제온천사거리에 순동모란공원 표석이 있다.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를 지나, 구암마을 표지석에서 도로를 따라 11.3km, 약 3시간 소요되었습니다.
♤ 김제온천 사거리/ 김제 승방골 승방마을에 도착한다.
도로를 버리고 서쪽 인삼밭 농로로 진입하여 농로 끝에서 순흥안씨 안원공파 종가 묘소 묘비에서 60.2m봉에 오른다. 오른쪽으로 승방서원의 커다란 기와집 제각과 묘지가 보인다.
- 진입로 맞은편에 김제스파힐스C.C.가 있다.
♤ 김제시 승방서원(承芳書院)
김제시 흥사동 승방마을에 위치한 승방원은 1856년 동래정씨가 주동이 되어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의 사당 한 채와 강당이 있다. 김제에 입향한 동래정씨는 정인으로 호는 양헌이다. 정인은 대호군으로 1356년(공민왕5년) 강릉교주도도지휘사로 동해안에 왜구가 침입했을 때와 함경도 국경에서 여진족이 쳐들어와 나라가 위태로웠을 때 뛰어난 용병술로 군사들의 사기를 양양시켜 왜구를 물리치고 여진족을 격파하였다. 나이가 들자 벼슬을 그만두고 아름다운 벽골 김제에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정인의 빛나는 공적과 학덕이 본보기가 되어 김제 유림들이 김제시 흥사동에 승방서원을 세우고 배향하였다. 후손으로는 예조판서를 지낸 손자 정흥사, 홍문관직제학을 지낸 정곤, 사헌부대사헌을 지낸 정수홍, 우의정을 지낸 정언신등이 있다. 부패한 왕권을 시정하려다 모반으로 몰려 아들과 함께 자결한 정여립도 정인의 8대손이다. 1856년(철종7년)동래정씨가 주동이 되어 세울 당시에는 사당의 기능이 강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현판은 '승방서원'으로 걸려있고 사당과 강당이 있어 서원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농막으로 도로에 내려서서 아스팔트 도로를 따르다 승반산등산로 이정목 둥근 나무계단으로 오릅니다. 왼쪽에 흥복사 절이 있네요.
♤ 승반산(升盤山, 57.6m)/ 승방산/ 삼각점봉
전북 김제시 흥사동에 위치한 산이다. 승반산의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두악산과 백산저수지, 서쪽으로 백산 들녁이, 남쪽으로 김제 시가지가 펼쳐져 있으며, 동쪽으로 용지들녁이 보인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두월천(斗月川)은 만경강으로 합류하여 새만금으로 유입한다. 승반산은 쌀을 되는 되(升)를 거꾸로 엎어높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하나는 산자락에 고찰 흥복사가 있고 흥복사의 옛이름인 승가사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해동지도』(김제)에는 승가산 옆에 있는 봉우리로 표기되어 있다. 『호구총수』에는 백석면 승방산이라고 적혀있지만, 현재에도 승방 마을과 승방서원이 있어 그 유래를 짐작하게 한다. 향토지에 의하면, 1995년 주민들의 요청에 의하여 지명이 '승방'으로 정리되었다. 이 근처에는 승가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이루어진 약수터가 있으며 많은 시민들이 약수터를 찾고 있다.
- 맨발님 모악지맥 승반산 산패와 2등삼각점(익산 27/ )이 있다./ 원형대삼각점이다.
승방산에서 오른쪽 흐릿한 길로 내려서면 대나무 숲을 통과해 사과과수원을 지난다. 직진으로 절개지 그물망 울타리를 따라 내려선다. 도로가 어지럽게 새로 만들어진 흥사교차로가 복잡하다. 저 멀리 보이는 육교를 찾아 넘어서는데... 아직도 공사중으로 무단횡단은 지양하고 요령껏 진로를 찾아야 한다.
♤ 삼수동삼거리/ 익산-김제간 23번국도/ 관망대정거장/ 김제시 흥사동 - 백산면 경계
공사중인 승반산 북쪽 흥사IC교차로를 통과하고, 관망대정거장 마루금에 은빛가든 음식점이 있어 왼쪽 하정로로 진행한다. 하정로는 흥사IC에서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는 백산저수지 옆을 지나는 복지사거리까지의 지방도로이다. 하정로에서 두악산 진입로 친구네 찻집 입간판이 있다. 주변이 모텔촌이다. 지맥길은 두악산에서 다시 하정로로 내려서서 복지사거리까지 진행한다.
♤ 김제시 백산면(白山面)
김제시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다. 하정리·상정리·상리·조종리·수록리·부거리·석교리·하서리 등 8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김제와 익산을 잇는 도로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백석면(白石面)의 ‘백(白)’자와 연산면(延山面)의 ‘산(山)’자를 따서 백산면(白山面)이라 하였다. 동쪽으로 용지면, 서쪽으로 성덕면·만경면, 북쪽으로 청하면·공덕면, 남쪽으로 김제시와 이웃하고 있다가 1989년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되면서 백산면 하리·흥사리·상동리를 김제시로 분할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백산면이 되었다. 조종산(祖宗山) 등 해발 58m의 야산과 낮은 구릉지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동부의 부용천(芙蓉川) 주변과 남서부의 신평천(新坪川) 주변에 충적 평야가 펼쳐져 있다. 1966년부터 1969년까지 호남 야산 개발 사업과 더불어 백산저수지를 축조하였고, 김제시 검산동 양수장에서 백산저수지까지 약 5㎞의 능선을 따라 물 댈 도랑을 만들어 임실군 옥정댐의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함으로써 비옥한 농지를 조성하였다.
♤ 두악산(斗岳山, 57m)
두악산은 김제시 흥사동과 백산면 하정리 경계에 위치한다. 북서쪽에 백산저수지가 축조되어 백산면, 성덕면, 공덕면, 만경읍 등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동쪽으로 국도 23호선이 지나고 있고, 남쪽은 신평천(新坪川)이 발원하여 백산면과 성덕면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성덕면 남포리와 죽산면 대창리 경계에서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두악산은 김제평야에서 바라보면 마치 말(斗)에다 쌀을 담아놓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유래된 명칭이다. 동쪽으로 국도23호선이 지나고 있다. 두악산은 김제평야에 우뚝 솟아있어 그 자태가 수려하고 소나무가 울창해서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한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어 주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호남야산개발지구는 뽕밭이 지천이었다. 하지만 무분별한 중국산 누에고치 수입으로 양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듦에 따라 지금은 원예작목을 재배하는 온실들이 들어차 있다.
- 호남야산개발사업 당시 세운 전망대에 올라서면 북서쪽으로 백산저수지와 지평선산단의 모습이 조망된다. 통신탑 뒤로 모악산도 바라보인다.
두악산 전망대에서 멀리 익산의 미륵산과 함열의 함라산이 보였어요. 금강정맥을 마친 특권이겠죠.^^
♤ 두악산전망대/ 백산전망대
김제, 정읍 부안 완주 일대 평야지대는 ‘김만경평야(金萬頃平野)’ 혹은 ‘김제만경평야’로 불리며, 비옥한 미작지역으로 한국 최대의 유수의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한말 이후 일제의 통감부 시대를 거치는 동안 일인들에 의한 토지 투자와 그 뒤 산미증산정책에 의한 미곡 수탈 지역으로 전락하여 일인에 의한 대단위 개발 공사와 수리 사업 및 농장 경영이 이루어지던 지역이다. 구릉지는 홍수가 없고 식수를 얻기 편리한 지역이기 때문에 괴촌 (塊村)형태의 취락이 형성되었다. 일제시대에는 취락 주변 구릉지는 대부분 임야로 사용되었고, 소나무가 많았다. 두악산전망대는 1967~1971년 호남야산개발 당시 시민의 휴식 공간을 확보할 목적으로 1967년 호남야산개발 기공식이 있던 장소에 설치된 시민 휴식공간 겸 전망대이다. 호남야산개발 추진 당시 박정희 태통령은 두악산전망대에서 열린 기공식에 참석하였다. 호남 야산 개발은 쓸모없이 버려졌던 4,844㏊의 야산을 개발하여 1,139㏊는 수리안전답으로 조성하여 쌀을 생산하고, 3,705㏊는 뽕밭으로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이를 위하여 구릉지역에 관개수로를 개설하고, 검산동에 호남양수장을 시설하였으며, 220마력의 양수기를 이용하여 섬진댐에서 흘러오는 물을 구릉지에 위치한 백산저수지에 양수하였다. 구릉지를 연결하는 관개수로를 통하여 구릉 지역에 농업용수가 공급됨에 따라 백산, 공덕, 성덕, 만경 지역이 혜택을 입게 되었다. 흥사동은 1989년 김제시에 편입되기 전에 백산면에 속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두악산전망대를 일명 백산전망대라고도 한다.
♤ 하정로/ 팔봉도예 전통도자기학습장
하정로는 흥사IC에서 두악산을 우회하고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백산저수지 옆을 지나 복지사거리로 나가는 도로이다. 팔봉도예 전통도자기학습장은 고속도로 건설로 없어졌다. 복지사거리로 나가는 길에 왼쪽으로 새만금~포항간 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이고, 오른쪽엔 세계난초연구소 건물도 보인다.
702번 지방도로 가지않고, 702번 지방도로 가다가 지평선산단 가운데 길로 호남종자센터 끝까지 갔습니다.
♤ 김제시 백산면 복지삼거리/ 교차로/ 702번지방도/ 지평선 산단
복지마을을 지나면 복지삼거리이나 현재는 사거리다. 왼쪽으로 꺽어지며 바로 오른쪽 둔덕에 진주 강인기(寅基)묘가 있고 묘 뒤 잡목 속 43.9m봉에 4등삼각점(익산 436/ )이 있다. 좌틀하여 702번 지방도로 진행한다. 지맥의 왼쪽이 김제지평선 산단이다. 왼쪽 만경쪽에서 오른쪽 익산으로 가는 702번 지방도이고 오른쪽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 삼각점을 찍고 내려와 4차선을 따르면 안된다. 도로를 무단횡단으로 넘어와 2차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따라야 한다.
♤ 지평선마을
지맥길임에도 도로를 따라 무진장 걷는 길이 많다. 명색은 지맥이라 물을 나누는 낮은 구릉지였으나 지평선산단을 조성하느라 산길이 도로로 탈색된 곳이다. 지맥길은 서해안 저지대로 갈수록 저지대 평야지대로 마루금을 구분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아파트 건설부지를 지나며 지평선마을 사거리에서 편의점과 음식점을 만날 수 있다.
♤ 수록교차로/ 백산면 부거리
좌틀하여 김제대동농공단지 방면 712번지방도(백석로)로 진행한다. 수록교차로 이전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지평선산단2길 공장지대로 가도 된다. 공단 조성으로 지형이 변한 곳이다.
지맥길은 백산면 내를 통과하여 여기부터 만경읍과 백산면의 경계를 따라갑니다.
♤ 712번지방도(백석로)/ 호남권 종자처리센타/ 소동교차로
삼거리에서 왼쪽 도로를 따른다. 건너편에 호남권종자처리센터 건물이 보인다. 도로가에 있던 35.5m봉/ 삼각점봉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소동교차로 이후 대동1육교까지 마을길을 따르는 마루금의 흔적이 뚜렷하다. 도로로는 소동교차로 통과후 약 400m 진행하여 조산농장 안내판이 보이는 점촌3길로 우틀한다. 약 100m 거리에 부창정거장이 있다.
♤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富巨里) 부창마을
신평천이 발원하는 백산면 부거리는 마을이 물에 떠 있는 형국이라 부거(浮去)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김제군 연산면에서 백산면에 편입되면서 뜻이 전혀 다른 부거리(富巨里)로 바뀌었다. 동쪽은 하정리, 서쪽은 대동리, 북쪽은 수록리와 경계를 이루는 평지이다. 원부, 부건, 하건, 부신, 부창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부건마을은 수리시설이 없었던 옛적에 해마다 흉년이 들어 마를 ‘건(乾)’자를 썼는데, 해방 이후 세울 ‘건(建)’자로 고쳤다. 1967년 호남야산개발사업으로 농업용수가 풍부해지면서 부자마을이 되었다. 부거리 옹기마을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신자들에 의해 설립되어 2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옹기가마가 6개가 있었으나, 모두 소실되고 이 옹기가마와 작업장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부거리 옹기요지는 부거리 부창마을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의 말단 사면 밭 가운데에 있다.
♤ 대동1육교/ 대동농공단지/ 김제-군산 29번국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와 만경읍 대동리를 잇는 다리이다. 다리 아래로는 김제시와 군산시를 연결하는 국도 29호선이 남북으로 뻗어있다.
♤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大東里)
만경읍 동쪽에 있는 큰 마을이므로 대동리라 하였다. 동쪽으로 김제시 백산면 수록리, 남쪽으로 백산면 부거리, 서쪽으로 만경읍 장산리와 이웃하고 있으며, 대동리는 조선 말기 만경군 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죽(小竹)·내죽(內竹)·소동(小東)·농촌(農村) 일부, 남일면 부흥(復興) 일부, 김제군 연산면 산치리(山雉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동리라 하고 김제군 만경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만경면에 속하였으며, 동년 3월 2일 만경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가 되었다. 대부분 해발 고도 20m 안팎의 낮은 야산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1460년경(세조 6) 전주이씨 이희금(李希琴)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희금은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형인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의 증손으로, 1453년(단종 1) 일숙(壹叔)인 좌찬성 이양(李禳)이 3명의 재상들과 함께 순절하고[공주 동학사 「소혼각기(昭魂閣記)」 등재], 일문(一門) 삼육신이 화를 당할 때 몸을 피해 대동리까지 내려와 숨어 살았다고 한다. 동하제(東河堤)와 서하제(西河堤)에서 벼농사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서해안고속국도 서김제IC가 가까이 있고, 김제시와 군산시를 연결하는 국도 29호선이 남북으로 뻗어 있어 교통은 비교적 편리한 편이다. 교통이 편리한 이점을 살려 최근에 대동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주민들의 소득 증가에 도움을 주고 있다.
♤ 삼읍면경계면(김제시 만경읍, 김제시 백석면 → 성덕면)
대동1육교와 2육교 사이에서 지맥의 왼쪽이 백석면이 성덕면으로 바뀐다. 도로로 점촌3길을 따라가다 대동2육교로 우틀하는 사거리 지점에서 지맥의 왼쪽이 백산면에서 성덕면으로 바뀐다.
♤ 대동2육교/ 서해안고속도로
김제시 성덕면 대목리와 만경읍 대동리를 잇는 육교이다. 아래로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고 인근에 서김제IC가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벗어나서 만경의 능제를 오른쪽에 두고 국도를 따라가며 만경읍으로 줄기가 이어진다. 지맥길은 대동2육교를 건너 바로 좌틀하여 점촌5길로 진행하다가 점촌5길 대석리정거장사거리에서 우틀하여 서북쪽 29번국도(만경로)로 진행한다.
- 도로 오른쪽으로 능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 능제(菱堤)/ 만경읍 장산리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만경지는 행정지명으로 능지라고도 하는데 57만여평의 넓은 수면을 자랑하고 있는 김제평야의 농업 관개용 중심 저수지다. 남으로 벽골제와 함께 오랜 저수지의 하나인 만경능제가 위치한 오래전에 개간된 평야지역이다. 능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만경현조에도 능제라고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저수지이다. 능제저수지는 귀[굽이·귀퉁이]가 99곳이나 되는데, 귀가 100곳이 되면 나라에 큰 경사가 일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능제저수지는 본래 주변 구릉지의 물을 가두는 재래지(在來池)였으나, 1930년 1월 1일 확장 공사를 시작하고 그해 12월 31일 준공되어 운암호의 물을 받아 저장하는 양수저수지(揚水貯水池)가 되었다. 내문내, 외서리, 서문외, 북리, 내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외서는 만경읍성 밖의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말이 죽으면 묻던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대문내는 사대문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2010년 현재 능제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 전북도본부 동진지사가 관리하고 있다. 한발 빈도는 1년이며, 홍수 빈도는 50년이다.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사무소에서 익산 방향으로 300여 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김제시 만경읍과 성덕면이 경계를 이루고 김제와 군산 방향인 국도 29호선이 인접한 곳이다. 낚시터로도 이름을 얻고 있다. 이곳은 연안낚시를 즐겨하는 강태공의 명소로 대어 대물이 많은 저수지로 유명하다.
- 주로 겨울 낚시터로 좋다.
남산서원을 다녀오면 능제를 좀 더 읽을 수 있을것 같은데 거리가 부담입니다.
♤ 27.5m봉/ 삼각점봉/ 남산서원 입구/ 왕복1.0km
국도 29호선 남산서원 입구에서 능제저수지 귀에 있는 남산서원에 다녀오는데 왕복 1km이다. 남산서원 입구에 표지석을 조금 지나서 오른쪽 숲으로 들어간다. 남산서원 표석 뒤편 해주오씨 묘지 뒤 27.5m봉에 4등삼각점(이리 443/ 1980 복구)이 있다.
♤ 남산서원(南山書院)
전북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서원으로 국도 29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남산서원이라는 표지가 보이는데 그 구릉의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당히 넓은 부분이 잔디와 남산서원의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남산서원은 1574년(선조 7)에 창건, 1870년(고종 7)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70년 이 지역 유림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남산서원에서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였던 반구당 유지화(柳志和)[1599~1680]를 중심으로 순조 때 동강 남궁제(南宮濟)의 위패를 추가 배향하고 제향하고 있다. 유지화는 1633년(인조 11)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근친하는 일로 귀향하였다가, 병자호란을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통진현감·회덕현감 등에 제수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 뒤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반구당’이라는 편액을 걸고 명류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만년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호종공신에 추록되고 통정대부에 승서(陞敍)되었으나 조정의 명이 하달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효자의 정문이 세워졌다. 경의사 중앙에는 유지화와 남궁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현재 사당에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유지화와 남궁제를 기리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제향이 모셔진다.
♤ 장등산(長燈山, 41.9m)
만경읍 몽산리 만경농공단지에 있는 산으로 장등은‘봉회’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동산에서 곽산을 거쳐 길게 뻗은 등성이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진등’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산의 모양이 엎드려 있는 말의 잔등 같다하여 ‘잔등’이라 하였다고 한다. 산위에는 봉화대와 ‘여제단(厲祭壇)’이라 불리었던 기우제단이 있다. 제단은 높이 1.8m 되는 원형 안에 북쪽으로 다시 정사각형 단을 쌓았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 만경삼거리/ 삼면경계면(김제시 성덕면, 김제시 만경읍 → 진봉면)/ 711번로
지맥길은 만경교차로에서 왼쪽 "광활, 심포항, 진봉" 방면으로 좌틀한다. 오른쪽에 능제를 두고 남산서원갈림길을 지나서 만나는 만경삼거리에서 만경읍쪽으로 약 100m 지점이 삼면경계면이다. 지맥길은 왼쪽으로 좌틀하여 성덕읍과 진봉면의 경계인 711번지방도(해학로)를 따라 가실삼거리로 향한다. 모악지맥은 서서히 만경읍을 벗어나면서 만경강의 본류와 가까워지는 등 간척의 땅으로 진행하게 된다.
♤ 김제시 만경읍(萬頃邑)
전북 김제시 북부에 있는 읍으로 본래 김제군 만경면이었으나 1995년 김제군과 김제시가 통합되면서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은 백산면·청하면과, 서부는 진봉면과 접하며, 남부는 성덕면과 면한다. 북부는 만경강과 인접해 만경강 하구의 해안 퇴적 평야가 발달했다. 특히 만경읍의 평야는 예로부터 김제시의 대표적인 들로 불렸다고 한다. 유물·유적으로 조양사 소장묘법연화경과 만경향교 대성전 등이 보존되어 있다.
♤ 만경강/ 징개맹개
만경강은 금강·동진강과 함께 호남평야의 중앙부를 서쪽으로 가로지르며, 길이는 81.75㎞이다. 유역에는 전주시·익산시·김제시·완주군 등이 위치하고 있다.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의 밤재 남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동상면 대아저수지와 완주군 고산면, 봉동읍, 삼례읍, 전주시·익산시를 지나 김제시 진봉면과 군산시 회현면 사이에서 서해로 흘러든다. 곳곳에서 화평천·소양천·전주천·탑천 등의 물줄기가 흘러든다. 화평천과 합류된 뒤에는 고산천이라고 불리며, 전주천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만경강이라고 불린다. 김제시 만경읍을 거쳐서 내려오는 만경강은 김제시 진봉면 거전마을 부근에서 황해바다에 합류하게 된다. 넓은 들 가운데로 흐른다는 뜻이 담긴 만경강은 이 강 하류지역에 만경현(萬頃縣)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상류지역을 제외하고는 유속이 매우 느린 전형적인 곡류하천이며, 밀물 때는 완주군 삼례읍까지 하천수위가 상승하는 감조하천이다. 예로부터 관개와 주운(舟運)에 많이 이용되어왔으며, 배가 다닐 수 있는 구간은 익산시 춘포면 대장촌리까지이며, 하구와의 사이에 신환포(新煥浦:김제시)·목천포(木川浦:익산시)·사천리(沙川里:익산시) 등의 선착장이 있어 출곡기에 많이 이용되었다. 하곡의 변동이 심하고 홍수의 피해가 잦아 1938년 하류지역에 직강(直江)공사를 실시, 길이 76㎞에 이르는 제방이 축조되었다. 1989년에는 1922년에 축조된 대아 댐 아래 새로운 댐이 건설되어 익산·군산 등의 상·하수도와 전주공업단지의 공업용수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하구 일대의 간석지를 대상으로 새만금지구간척종합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라선과 호남고속도로가 삼례읍에서 만경강을 가로질러 지난다.
♤ 가실삼거리/ 면계(성덕면 - 진봉면)
가실삼거리에서 길은 두 군데로 갈린다. 우틀하여 도로따라 심포항/ 711번로로 가기도 하고 좀더 높아 보이는 성덕산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심포항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에 망해사까지 10km로 표시되어 있다.
♤ 김제시 진봉면 가실리(加實里)
가실리는 김제시 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서쪽은 진봉면과 광활면으로 펼쳐진 평야 지대, 동쪽은 낮은 야산 지대이다. 만경읍의 몽산(夢山, 41m), 장등산(長登山, 42.4m), 사직산(社稷山, 25m), 가실리의 뒷산인 성덕산(聖德山, 27m) 등의 야산 지대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고 그 경계에 마을들이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마을로 당시에는 큰동네·서당넘·달동네·새터 등으로 불렸다. 조선 말기 만경군 상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서리·정동리·부동·석교리 각 일부, 남이면 모산리·나시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가실리라 하고 김제군 진봉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진봉면 가실리가 되었다. 가실리 옆으로 펼쳐진 광활간척지는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간척된 땅으로, 필요한 용수는 멀리 원평천(院坪)에서 취수하고 신평천(新坪)과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2차 취수를 하고 있다.
가실삼거리에서 직진하여 계속 도로를 따르면 오른쪽에 S-OIL 주유소가 나오고, 모산, 성덕사 안내판이 보이는 조그마한 사거리까지 계속 직진하여 여기서 711번 도로를 버리고 모산마을로 우틀한다.
1차선 좁은 도로를 따라다 좌곡각지점에서 매실밭을 통해 성덕산을 다녀와야 합니다.
♤ 성덕산(聖德山, 26.5m)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 있는 산으로 성덕산 토성 터는 백제시대 무근촌현(武斤村縣)의 치소로 남쪽에 남포를 거느린 수로의 요지이다. 서해안에 가까운 평야 지대의 지형적 특징으로 보아 군사적 방어를 위하여 쌓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옛날 성덕사의 터가 있었던 곳으로 낮은 산이다. 김제는 해안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백제시대부터 각 국경 지대 및 각 요지에 이르는 지역과 군현의 치소(治所)에 군사적 방어를 위하여 성을 쌓았다. 대체로 산 정상을 중심으로 사면에 외곽을 두르는 테뫼식 산성을 많이 쌓았는데, 김제 성산성·사창산성(社倉山城)·만경리 만경읍성(萬頃里萬頃邑城)·성덕리 성덕산 토성(聖德里聖德山土城)·동지산리 토성(東之山里土城)·금구토성(金溝土城)·용호리 산성(龍湖里山城)·원평토성(院平土城)·선동리 상두산성(仙洞里象頭山城)·월성동 월성토성(月城洞月城土城)·도리봉성지·금산리 금산사 성지(金山里金山寺城址)·명금산 토성(鳴琴山土城)·황산산성·서암리 토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 주변에 묘지가 여러 기 있다. 정상석은 없고 4등삼각점(이리 435/ 1996 복구)이 있다.
♤ 성덕면 성덕리 모산경로당
성덕산에서 내려서서 성덕면 성덕리 모산경로당을 지나면서 비산비야로 여러 곳이 수로를 따르는 물길이다.
♤ 면계(성덕면 - 진봉면)
성덕면에서 진봉면으로 넘어가는 경계이다. 모산경로당에서 우틀하여 지나가는 작은 삼거리가 성덕면 성덕리 모산마을에서 진봉면 가실리 부동으로 넘어가는 면계이다. 성서마을로 내려서서 평야지대 청보리밭을 가로질러 진봉초등학교 방향으로 걷는데 북쪽으로 지평선 멀리 금강하구둑 오성산의 기상관측 시설(탁구공)이 보인다. 진봉반도 서쪽으로는 계화산과 내변산의 장군봉이 보인다.
♤ 김제시 진봉면 상궐리(上蕨里) 하수내마을
전북 김제시 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1914년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고사리 밭[궐전(蕨田)]을 중심으로 위쪽을 상궐(上蕨), 아래쪽을 하궐(下蕨)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만경군 상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872년에 제작된 지방군현도에 따르면 상궐리 대부분이 바다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궐리·신기리·석교리·하수내리·갈전리 각 일부, 북면 전중리·대덕리 각 일부, 하이도면 종야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궐리라 하고 김제군 진봉면에 편입하였다. 1920년대에 본격적으로 상궐리 일대에 간척 사업이 진행되어 낮은 구릉을 제외하고는 마을 대부분이 해안가의 낮은 평야 지대로 변모하였다. 자연마을로 상궐·하궐·석교·상수내·하수내·신흥·망해·오산·전중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상궐·하궐·풍촌을 제외하고는 모두 1920년대 이후에 진행된 간척 사업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진봉면 상궐리가 되었다.
- 삼거리 신부마을 표석이 있는 곳에서 좌틀한다.
♤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석소(石所)마을
전북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 있는 자연마을로 석소마을은 옛날 질 좋은 숫돌이 나서 나라에 바치게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으로 진봉반도(進鳳半島)의 간척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지만 낮은 구릉들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어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 주고 있다. 마을 앞산인 니성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진산(鎭山)처럼 여겨지고 있다.
♤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석치(石峙)마을
진봉면 고사리의 자연마을로 고사·인향(仁香)·석치(石峙)·석소(石所)·신석소·관기(館基)·평동·신고사, 중앙(中央), 종야(宗野), 옥정(玉井), 농장(農場) 등이 있다. 석치는 인향 동쪽에 있는 마을로 1525년경 평산신씨가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돌고개를 넘어서 나룻배를 타고 옥구를 왕래한 데서, 마을 이름을 돌고개의 한자 표기인 석치(石峙)라 하였다.
- 702번지방도로에서 산길로 들어선다. 석치정거장 맞은편 진입로는 막혀있고 약 80m 진행하여 오른쪽(북쪽) 지평선마을길로 진입한다.
♤ 니성산(尼城山, 61.9m)/ 암봉산/ 삼각점봉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 있는 산으로 현지에서는 나성산 또는 암봉산으로 불린다. 해안 구릉지대 고사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 주고 있다. 지맥 줄기는 국사봉에서 전선포넘어 진봉산으로 이어진다.
- 둥근 나무계단으로 정상에 오르고, 정상에서 조망은 없다. 4등삼각점(군산 417/ 1991 복구)이 있다.
♤ 국사봉(國事峰, 61.3m)
정상에 묘지가 있고 소나무에 맨발님 표지기가 매달려 있다. 진봉반도 육지 끝자락에 니성산과 진봉산 사이에 있다. 국사봉은 만경강이 서해와 만나는 곳으로 주변에 전선포와 고사 마을이 있다. 고지도에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조선지형도(군산)에는 고사리에 표기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인향리의 니성산도 그려져 있다. 만경강 하구와 새만금 간척지가 바라보이고, 진봉산 옆으로 동진강 넘어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에 계화산(244.9m)이 조망된다.
- 좌틀하여 내려서고 조금 내려선 묘지에서 오른쪽으도 등로가 보이지만 왼쪽 묘지방향으로 내린다.
♤ 전선포(戰船浦) 제방/ 망해사1km/ 전선마을0.4km/ 고사마을1km
진봉면 심포리 전선포(戰船浦)는 진봉산과 진봉면 고사리 국사봉 사이에 위치한 포구인데 일부는 제방을 쌓아 농경지로 변모하였으나, 일부는 해안으로 남아 있다. 이곳은 만경강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고군산열도와 계화도가 가까이 있어 어선의 닻을 내리던 항구였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해군 기지와 같은 군항(軍港)으로서 적선(敵船)과 대치하기 위해 전선을 매어 두던 곳이라고 한다.
금강정맥 청암산에서 남쪽으로 펼쳐진 옥계들판을 바라본 기억이 나네요. 그 즈음에 서해안길을 따라 박성태선생님이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만경강 건너로 모악지맥의 끄트머리가 새만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던 까막눈이었습니다.
♤ 데크 전망대/ 녹색명소전망대
만경강 조망 테라스에서 철새무리를 조망할 수 있다. 만경강 건너 왼쪽으로는 군산시 옥계면 평야, 오른쪽으로는 익산시이다. 그 뒤 산줄기가 함라에서 군산으로 이어지는 금강정맥, 오른쪽 미륵산에서부터 바로 앞 만경강 강건너로 1등삼각점이 있던 청암산 줄기가 가까이 보인다.
♤ 망해사(望海寺)
전북 김제시 진봉면 진봉산(進鳳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통장이 창건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754년(경덕왕 13) 법사 통장(通藏)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642년(의자왕 2) 거사 부설(浮雪)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뒤 1073년(문종 27) 심월(心月)이, 1371년(공민왕 20) 지각(智覺)이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거의 폐허화되었던 것을 1624년(인조 2) 조사 진묵(震默)이 중창하였다. 진묵은 이곳에 머물면서 많은 이적을 남겼는데 그 일화들이 오늘날까지 널리 전승되고 있다. 그 뒤 승려 관준(寬俊, 1850∼1919)이 다시 중창하고 수도하였으며, 1915년 계산(桂山)이 중창하였다.
1933년 주지 김정희(金整禧)가 본전을 중수하고 보광명전(普光明殿)과 칠성각 등을 신축하였다. 1977년 남파(南坡)가 요사와 망해대(望海臺)를 새로 짓고 보광명전·낙서전·칠성각 등을 복원 중수하였다. 1984년에 보광명전과 칠성각을 헐고 그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1986년에는 낙서전을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9년에는 종각을 새로 지었고, 1991년에는 대웅전을 중수하였으며 1989년에는 요사인 청조헌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이 서해의 섬들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서해의 일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승지이므로 망해사라 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칠성각, 요사채로 사용되는 청조헌(聽潮軒)·낙서전(樂西殿)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석비가 있다. 망해사는 사찰로서뿐 아니라, 이 지역의 명승지로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망해사를 정점으로 심포항 등 서해 연안에서는 가장 바다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서해의 낙조가 절경이다. 바닷물이 빠질 때면 망해사 아래로 드러나는 갯벌에서 조개를 캐며 갯벌체험을 할 수 있고, 해질 무렵이면 망해대에 올라 낙조와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다.
- 지맥길에서 50m 거리 옆에 있다. 바다를 향하고 있어 서해 일몰지로 유명한 절이다.
망해사에서 산신각 방향으로 오릅니다.
♤ 망해사 3층 전망대/ 진봉산 망해대
진봉산은 높이는 낮은 산이나 바닷가에 위치하여 절경을 이룬다. 만경강 하류의 서해에 위치한 망해사는 642년(의자왕 2)에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한 사찰이고 망해사 작서전은 1589년(선조 22)에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지은 것이라 한다. 망해사는 사찰로서뿐 아니라 이 지역 명승지로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망해사를 정점으로 심포항 등 서해 연안에서는 가장 바다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서해의 낙조가 절경이다. 바닷물이 빠질 때면 망해사 아래로 드러나는 갯벌에서 조개를 캐며 갯벌체험을 할 수 있고, 해질 무렵이면 망해대에 올라 낙조와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다. 해거름녁 풍경이 일품이다.
길이 너무 좋아서였을까요. 진봉산 삼각점과 산패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네요.
♤ 진봉산(進鳳山, 73.2m)/ 삼각점봉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와 심포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 산에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봉화대가 있으며 정상에 올라서면 서해의 망망대해과 석양녁에 일몰과 갯벌에 펼쳐지는 석양일몰의 장관을 볼수 있다. 산자락에 위치한 망해사는 642년(의자왕 2)에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한 사찰이고 망해사 낙서전(望海寺 樂西殿)은 1589년(선조 22)에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지은 것이라 한다. 진봉산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초당골(막은댐)을 지나 모악지맥 분기점에서 전남 광양시의 백운산까지 뻗어가는 호남정맥과 헤어져 북쪽으로 달리는 모악지맥의 뿌리이다. 모악지맥은 동진강과 만경강을 가르며 엄재, 국사봉, 화율봉, 장군재, 모악산, 유각치, 묘고산에 닿는다. 묘고산에서 서쪽으로 구성산 줄기를 갈라놓고 북쪽으로 매봉산, 천잠산에 이르면 방향을 서쪽으로 꺽는다. 그리고 승반산, 두악산을 지나 망해사가 있는 진봉산을 일구고 국사봉을 지나 봉화산(烽火山)에서 맥을 다한다. 진봉산 물줄기는 서해의 새만금 지역으로 들어간다. 진봉산의 망해대에 오르면 서쪽과 서남쪽은 망망대해요, 동쪽은 우리나라 제일의 곡창 금만경평야가 아스라이 다가온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올망졸망한 낮은 산들이 눈을 가득 채운다. 건너편 심포산 정상에는 고려시대에 축조하여 연기와 횃불로 적의 침입을 알렸던 봉수대가 있다. 심포산 북쪽 바닷가에 심포항이 위치하고 있다. 북쪽은 마녀봉(美女峰), 그 건너편에 국사봉이 있고 그 아래에는 옛날 전선이 주둔하던 수군(水軍)기지인 전선포(戰船浦)가 있다.
- 2등삼각점(군산 23/ 1987 재설)이 있다. 잡목에 가려 조망은 없으나 잡목사이로 만경강이 보인다.
♤ 심포 제방과 심포항(深浦港)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자리하고 있다. 심포리의 위치가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바닷가였기 때문에 예부터 포구로 이용되었으므로 깊은개 또는 짚은개라 하였다. 심포(深浦)는 깊은개의 한자 표기이다. 전북 내륙을 흘러내리는 만경강과 동진강이 서해 바다와 마주치는 진봉반도 끝 쪽으로 봉화산이 뾰쪽하게 나와 있다. 이곳의 동진강 하류에 있는 어항이 거전항(巨田港), 만경강 하류에 위치한 어항이 심포항(深浦港)이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100여 척이 넘는 어선이 드나들던 큰 어항이었으나, 연안 어업의 쇠퇴와 새만금방조제 공사로 인해 지금은 몇 십 척의 어선만 드나들고 있다. 심포항은 수천만 평에 이르는 심포 갯벌의 배후 항구로 드넓은 갯벌에서 채취하는 조개 집산지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심포백합[생합]은 지역 특산물로 인기가 높은 고급 조개이다. 몇 년 전까지 심포 갯벌은 체험 학습 장소로 많이 활용되었다. 예전에는 어업권으로 인해 외부인들의 조개 채취가 엄격하게 제한되었지만,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보상이 마무리되어 누구든지 조개를 잡을 수 있다. 우리나라 백합 생산량의 60% 이상이 동진강과 만경강이 흘러드는 김제시와 부안군 일대 갯벌에서 채취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새만금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바닷물 반입이 줄어들어 갯벌이 많이 쌓이고 수면에 얇은 기름막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만경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생활하수로 인해 방조제가 막히면서 심포항에 축적되고 있어 고깃배들은 포구 인근 바다에 들어오면 바다와 통하는 입구를 막고 산소를 공급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싱싱한 활어를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근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자 일부 횟집에서는 양식 활어를 내놓기도 하면서 횟집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야외에서 생합을 구워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66.1m봉
횟집 뒤쪽 66.1m봉은 제방도로 끝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도로따라 조금 가다 오른쪽 암벽절개지로 올라야 한다. 정상에 서서 심포항과 만경강 하구를 감상하고 약 10m 내려서다 좋은 길을 버리고 잡목과 가시덤불이 우거진 오른쪽으로 희미한 길이 보인다. 현재는 공사중으로 통제를 받아 오르지 못하여 동쪽으로 우회하기도 한다.
- 정상에는 증 통정대부 승정원좌부승지 경연감독관 이천서공 경달과 숙부인 익산임씨 부부 묘지가 있었으나 포항-새만금고속도로 건설로 봉우리가 없어졌다.
66.1m봉에서 내려서는 안부이다.
♤ 당산나무 쉼터/ 안하고개
54.4m봉 마루금 단축로는 가시잡목이 많다. 당산나무쉼터에서 마루금 오른쪽 사면으로 새로 생긴 새만금바람길 등로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 밭이 있는 안부로 왼쪽에 폐가가 있다.
♤ 안부사거리/ 거전(巨田)마을 고개
전에 거전고개 이정표가 새만금바람길 안내도로 바뀌어져 있다. 구병영시설이 있는 곳엔 현대까지 군부대가 있었다는데....
♤ 봉화산(烽火山, 84.9m)/ 삼각점봉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산으로 서해를 바라보는 봉화산 정상에 봉화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주춧돌과 자연석으로 쌓았던 담장의 흔적이 뚜렷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돌들을 흙으로 묻고 헬리포트를 만드려 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봉수대의 상단좌대는 가로 6m, 세로 10m의 직사각형이며, 서북쪽과 동북쪽은 능선이 있고 좌우는 절벽이다. 정상의 넓이는 330㎡ 정도 된다. 봉수대는 고려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봉화산의 봉수대가 조선시대에 이르자 일반 백성에게 피해를 입힌다 하여 계화도로 옮겼다는 설이 있다. 봉화산은 높이 85m로, 남서쪽에 거전마을이 위치하고, 북동쪽에 심포항이 위치한다. 동쪽으로 지방도 702호선이 지나고 있다. 진봉반도 서남쪽 육지의 끝자락에 위치하며, 서남쪽은 서해바다인 새만금이고, 서북쪽은 만경강 하구, 동남쪽은 동진강 하구이다. 동북쪽은 만경강 연안에 봉화산처럼 50~60m의 올망졸망한 산들이 줄지어 있고, 동쪽은 진봉의 넓은 들녁과 광활면 지평선 호남평야가 펼쳐진다. 정상에는 봉수대 설명판과 장의자가 있고 조망이 두루 좋다. 서북쪽은 새만금이고 오른쪽은 군산국가산업단지 왼쪽은 신시도 방향이다. 동진강 하구 뒤쪽으로 변산반도에 계화산(245m)이 보인다.
-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고 삼각점은 식별이 되지 않는다. 봉수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 서해안 거전(巨田)리 종점/ 만경강 우/ 국립새만금수목원예정지/ 시내버스 0.7km
왼쪽으로 거전마을이 보인다. 빙 돌아서 마지막 봉우리인 40.5m봉에서 거전마을 남쪽끝 방면으로 내려간다. 모악지맥의 평야 말단부인 진봉반도(進鳳半島)·만경강·동진강하구·계화도 일대는 간척사업에 의한 개발로 첨단 지역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거전교가 있는 마을버스 종점에서 모악지맥을 끝낸다.
♤ 동진강
전북 정읍시 산외면의 상두산(象頭山, 575m)에서 발원하여 김제평야를 지나 황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유역면적 1,034㎢, 유로연장 44.7㎞이다. 도원천(桃源川)을 이룬 뒤, 정읍시 칠보면에서부터 하폭(河幅)이 50m 이상으로 넓어지면서 동진강이 된다. 동진강 유역의 북측과 동측은 성덕산(24.2m), 모악산(793.5m), 국사봉(543m), 흑방산(538m)을 분수령으로 만경강 유역에 접하고, 남측으로는 성옥산(388.5m), 내세산(763.2m)을 분수령으로 하여 섬진강 및 영산강 유역과 접하고 있으며, 서측으로는 변산반도 국립공원과 접하여 있다. 정읍시 신태인읍 서쪽 1.5㎞에서 내장산에서 발원하는 정읍천과 합류, 이평(梨坪, 배들)의 넓은 충적평야를 흐른 뒤, 호남평야 남부에서 김제시와 부안군의 경계를 이룬다. 부안군 동진면의 하구에서 김제시 모악산(母岳山, 793m)에서 흘러나오는 원평천(院坪川)과 정읍시 고부면에서 흘러나오는 고부천과 합류, 황해의 넓은 간석지로 흘러든다. 동학운동 봉기의 발단이 된 고부민란의 주무대가 동진강 유역으로 현재 고부는 정읍시의 한 면이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 이전까지는 고부군으로 호남평야 남부의 쌀 집산지였다. 수운(水運)에 이용되기에는 작은 하천이나, 1928년 동진농업개량조합에서 임실군 강진면 섬진강 유역의 높이 200m 지점에 운암제(雲巖堤)를 쌓고 그 물을 높이 50여m인 정읍시 칠보면으로 내려보내 동진강 유역의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1965년 섬진강 다목적댐을 운암제 밑에 길이 344m, 높이 64m로 신축하고 저수지의 풍부한 물을 칠보발전소에서 이용한 뒤 동진강으로 유입시켜 그 일부를 계화도(界火島) 간척지의 농업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 진봉반도(進鳳半島)
진봉반도는 김제평야와 호남정맥에서 갈려 나온 모악지맥이 끝나는 서해의 끝자락에 위치한 진봉면과 광활면에 걸쳐있는 반도이다. 진봉반도는 위로는 만경강(萬頃江), 아래로는 동진강(東津江)에 둘러싸여 마치 날카로운 부리를 내민 새의 형상이다. 북부 진봉면은 올망졸망한 야산이 솟아 있고 남부 광활면은 지평선만 보이는 드넓은 평야이다. 광활면의 농경지는 일제강점기 때 바다를 막아서 만든 간척지이다. 이곳 간척지에서는 물이 부족하여 섬진강 유역의 옥정댐 물로 칠보발전소에서 발전하고 그 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진봉면 심포리 전선포(戰船浦)는 진봉산과 진봉면 고사리 국사봉 사이에 위치한 포구인데 일부는 제방을 쌓아 농경지로 변모하였으나, 일부는 해안으로 남아 있다. 이곳은 만경강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고군산열도와 계화도가 가까이 있어 어선의 닻을 내리던 항구였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해군 기지와 같은 군항(軍港)으로서 적선(敵船)과 대치하기 위해 전선을 매어 두던 곳이라고 한다. 전선포는 진봉반도 중 서쪽으로 제일 튀어 나와 있고, 전북 내륙으로 들어오는 입구이자 금강과 동진강과도 연결되어 충청도와 전라도로 침입하는 적군을 쉽게 막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장점을 이용하여 전선포 옆의 봉화산 봉수대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아 적군을 섬멸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진봉반도의 전선포라 했다고 한다.
첫댓글 축하 드립니다. 그런데...
미치셨나벼..그 먼 거리를 한번에..
그리 하셨으면 소 두마리는 처분 했어야 기력이 회복되는거 아녀요..??
위원장님!
모악지맥 넘 재미있게 잘 했구요.^^
내용은 조금 더 보충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악지맥 한다고 오랜만에 형하고 동생에게 연락했습니다. ㅋ
서울 올라와서 술없이 뒤풀이로 냉면 두그륵 처분했어요~^^
와 모악지맥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옥정호 아름다운 들머리 분기점 모악산의 위상도 대단하고요 김제평야 넓은 지평선이 있고 만경강의 풍요로운 수량과 넓은평야 정말 아름다운 모악지맥 완성을 진심으로 다시 한번 거듭 축하드립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세르파대장님!
모악지맥을 하며 모악산을 젤 길게 타보게 되는군요. 그게 지맥꾼의 잇점인것 같습니다.
지평선마을도 있고, 지평선중학교도 있고, 지평선 축제도 있구요.
보리밭을 날으는 꿩도 보았습니다.^^
징게맹게 광활한 뜰을 원없이 보고 왔더니 가슴 속이 시원하게 트이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참 대단합니다.
90km 넘는 거리를 비박하며 단번에 끝내다니...
전날인 5/6(금) 오후에 호남정맥 불재~운암삼거리를 끝내고 버스정류장과 어부집을 사진 찍었는데 퐁라라님이 다음 날 그 자리에 섰네요. 새삼스럽게 전국 각지의 산줄기를 끊이지 않고 누비고 있을 홀대모 회원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봉화동천선배님!
그럼 다음 구간은 호남정맥 어디인지요.
혹시 모임 전후로 하시게 되면 "어디로 갈까" 란에 올려주세요.
이빨 빠진 구간이 있어서요. ㅋㅋ
김제에서도 모악산은 제일 뽀족하게 잘 보이더군요.
모악산 남봉 헬기장과 구덕 마을 내려서기 전 매봉에서의 조망이 제일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경각산-치마산 구간과 연석산에서 경각산으로 흐르는 금호남정맥이 바라보였는데 자세히 구분하질 못했습니다.
5.13(금) 운암3거리~구절재 구간 가보려고 합니다.
5/14(토) 산행 후 홀대모 모임 참석할 계획 세웠었는데, 시간도 늦을 것 같고 체력도 방전되어 모임에 민폐될 것 같아 전날 가려고 합니다. 당일 비소식(현재 강수 확률 25%) 있으면 산행 취소입니다. ㅋ
퐁라라운영자님의 모악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거의 100km에 가까운 거리를 연 삼일 나누어 진행하셨네요.
수년전 모악산 모임에서 배재, 밤티재로 지나 모악산을 내려서던 기억이 납니다.
100km급 큰 산줄기를 20여개 섭렵하였으니 비교적 가벼운 산줄기만 남겨두신 셈입니다.
마루금상에 멋진 발자취를 남기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화이팅!입니다.
방장님!
신선대선배님이 퉁치셨다는 그 전주 모임 말씀이시죠~^^
모악산에 올라가 밤티재로 내려서면 계속 내리막이라 코스가 힘들지 않아 보입니다.
전주 형집에서 자고, 김제 막내집에서 자고, 군산 여동생 집에 가서 뒤풀이를 해도 되었습니다만...^^
버스표가 매진되어 무궁화열차로 넘 늦게 도착해 역전 옆에서 비박했습니다.
천잠산에서 새터육교로 가며 동생에게 전활 해서 오늘 일정이 두악산에서 비박이라고 했더니
자기 집으로 오라고 가깝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망해사에서 여동생에게 카톡을 날리니 자기도 청암산에 자주 간다고 하네요.
그리저리 오랜만에 형제들과 통화 한번 하게 만든 모악지맥이었습니다.
모악지맥 전체 93.8km 중에 35.23568km는 도로를 걷는 지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악지맥 한번에 장거리 산행 하셨네요
길은 좋지만 그래도 힘든 구간 입니다
후반부에 도로를 걷는 구간도 있지만 예전 나즈막한 구릉지를
생각하며 이어지는 산줄기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 입니다
드넓은 만경평야 만경강이 펼쳐지고 망해사 언제 일몰을 보고 싶내요
수고 많았습니다
늘 홧~팅 입니다^)^
와룡산선배님!
모악지맥 선배님 산행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주에서 순창가는 버스로 지금 출발합니다,^^
어제 임실호국원 아버님께 다녀오고 전주 형네집에서 잤네요.
조카들 거구(신장180, 체중100이상) 둘 데리고 형하고 저녁 먹고, 형하고 삼구도 한판 때리고(형20개, 저10개), 세프인 조카가 해준 요리로 형하고 1시까지 또 마셨습니다.^^
자주 봐야되는데 5년만에 봤네요. ㅋ~
천천히 내려오십시요, 순창에서 뵙겠습니다.^^
모악지맥을 한방에 조져버렸네요.
우리가 매주마다 전라도 쪽을 가다보니 올라올 때는 27.2ㅣ.1번국도를 타는데 그때마다 모악산을 바라보고 쑥고개를 넘습니다.
모악지맥이 도로가 많다고해서 여름에가면 쪄죽을거 같아서 내년 겨울에 가볼려구 하는 모악입니다.
1박 2일로 두번가면 될련가 모르겠네요.
이렇게 해서 긴 산줄기 하나 졸업하심을 축하드림니다.
네 부뜰이운영자님!
2박3일로 다녀왔습니다.
1박2일로 두번이면 충분합니다.
모악산 칼날능선만 조심하시면 한겨울에도 무난하리라 보이구요.
다음 번엔 천황지맥을 할려는데,,
성수와 천황 중에 어느걸 먼저해야 하는지 순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