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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0.09.29.PM2시)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2
화엄회상 대중들의 득법(得法)과 게송
화엄경 공부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연습을 이 삼 일 한 것은 제쳐두고 정식으로 염화실 TV를 개국한 것이 9월 6일이었다. 오늘이 9월 29일이니까 기껏해야 24일이 경과한 정도인데 우리 방송국이 장족의 발전을 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우리 화엄행자님들이 배경에 계셔서 많은 가족들이 함께 출발한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아주 잘 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
화엄경 지난 시간에 시기대범왕(尸棄大梵王)의 게송 한 개를 말씀드리고 끝냈었다.
불신청정상적멸(佛身淸淨常寂滅)하사 광명조요변세간(光明照耀徧世間)하사대
무상무행무영상(無相無行無影像)이여 비여공운여시견(譬如空雲如是見)이로다
부처님의 몸은 청정하고 항상 적멸하시나
세간에 두루 하게 광명을 비추시도다.
부처님의 몸은 텅 비고 적멸하다. 그런데 세간에 두루하게 광명을 비추신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화엄경 공부를 하고 있는 이 사실이 부처님의 광명이 세상에 펼쳐지는 도리다.
형상도 없고 행위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것이
마치 하늘의 구름처럼 그렇게 나타나도다.
부처님의 모습을 제대로 화엄경답게 표현했다고 볼 수가 있다.
물론 부처님을 표현할 때 여러 방면으로 표현을 한다.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 이렇게 여래십호(如來十號) 열 가지 이름으로써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화엄경의 입장에서는 그런 형상을 말씀하기는 하지만 극히 소수만 이야기 하고, 부처님의 몸을 말할 때는 항상 법신(法身)을 이야기 한다.
‘불신(佛身)은 곧 법신(法身)이다’ 진리의 몸이다 하는 차원에서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송이 표현이 잘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살펴보았다.
다음 게송도 역시 불신(佛身)이 나온다.
불신여시정경계(佛身如是定境界)여 일체중생막능측(一切衆生莫能測)이어늘
시피난사방편문(示彼難思方便門)하시니 차혜광왕지소오(此慧光王之所悟)로다
부처님 몸의 이와 같은 선정경계는
일체중생이 측량할 수 없거늘
생각하기 어려운 저 방편문을 보이시니
이것은 혜광(慧光) 범왕의 깨달은 바로다.
부처님 몸의 이와 같은 선정경계는
일체중생이 측량할 수 없거늘
부처님의 몸은 선정에 들어서 중생들은 어떻게 가늠할 수가 없다.
생각하기 어려운 저 방편문을 보이시니
부처님은 중생들이 측량할 수 없는 깊고 깊은 선정의 경계로써 보였다.
이것은 혜광(慧光) 범왕의 깨달은 바로다.
혜광범왕이라고 하는 분이 이렇게 깨달았다.
우리도 그동안 50년 60년 불교 공부를 했다 하더라도 각자 부처님을 보는 견해가 다르고 안목이 다르고 그 면면이 다르다. 또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되는 것이 정상이다.
여기 화엄경에서 수많은 보살들과 수많은 신들과 또 범왕들 세주들 세상 주인들이 등장을 하면서 각자 자신이 아는 부처님의 면면들을 이렇게 시형식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 참 멋진 경전이다.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경전이고 그 외 깊은 이치는 말할 나위가 없다.
불찰미진법문해(佛刹微塵法門海)를 일언연설진무여(一言演說盡無餘)호대
여시겁해연불궁(如是劫海演不窮)이여 선사혜광지해탈(善思慧光之解脫)이로다
세계의 미진수와 같은 법문바다를
한마디 말로 남김없이 다 연설하기를
이와 같이 억겁동안 끝없이 연설함이여
선사혜광명(善思慧光明) 범왕의 해탈이로다.
세계의 미진수와 같은 법문바다를
한마디 말로 남김없이 다 연설하기를
어떤 이는 ‘할(喝)’ 이 한마디로써 불교의 그 모든 깊은 도리를 다 표현한다. 어떤 이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서 불법의 깊은 도리를 다 표현한다. 또 어떤 이들을 주장자를 척 들어보이는 것으로써 불법의 진수를 다 표현한다.
여기는 한마디 말로 남김없이 다 연설한다고 하였다.
하나의 동작, 한 가지 말, 할(喝)이든지 주장자를 드는 것이든지 그 속에 얼마든지 불법이 다 있다고 설명할 수가 있다.
그러한 형식을 빌려서 불법을 설명하는데
이와 같이 억겁동안 끝없이 연설함이여
손가락 하나 드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억겁 동안 한다는 것이다.
선사혜광명(善思慧光明) 범왕의 해탈이로다.
선사혜광명범왕이라는 분이 그 부분에 눈을 떴고, 그 부분을 부각시켜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설명하고 설명한다 한들 손가락 하나 들어보인 그 도리를 어찌 다 끝까지 드러낼 수가 있겠는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제불원음등세간(諸佛圓音等世間)이여 중생수류각득해(衆生隨類各得解)호대
이어음성불분별(而於音聲不分別)시니 보음범천여시오(普音梵天如是悟)로다
모든 부처님의 원만한 음성은 세간과 같으시니
중생들은 부류를 따라 각각 이해하되
그 음성에는 분별이 없으시니
보운음(普雲音) 범왕이 이와 같이 깨달았네.
모든 부처님의 원만한 음성은 세간과 같으시니
부처님의 원만한 음성은 세간과 같으시다.
이 세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많고 많은가?
중생들은 부류를 따라 각각 이해한다
부처님의 법은 뭐라고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할 수가 없다. 각자 안목대로 능력대로 자기소견 대로, 자기 공부한 대로 이해하는데 그것이 차츰차츰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결국은 자기 소견을 더 높이기 위한 것이고 인격 향상을 위한 것이고 견해를 조금 더 넓혀가기 위한 방편이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그동안 내가 인생에 대해서 또는 불법에 대해서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에서 한 단계 성장하는 기회가 된다.
삼세소유제여래(三世所有諸如來)의 취입보리방편행(趣入菩提方便行)이여
일체개어불신현(一切皆於佛身現)하시니 자재음천지해탈(自在音天之解脫)이로다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여래께서
보리에 나아가는 방편의 행을
일체를 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타내시니
관세언음자재(觀世言音自在) 범왕의 해탈이로다.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여래께서
깨달음에 나아가는 방편의 행을
일체를 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타내시니
부처님의 몸, 불신(佛身) 하면 뭔가?
늘 화엄경에서 우리가 보아왔듯이 진리의 몸, 한마디로 말하면 이 우주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대로 진리의 몸이고 진리의 현현이고 부처님의 몸이다.
화엄경에서는 이렇게 보아왔다.
그런 뜻에서 일체를 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타내시니 두두물물에서 나타낸다.
그래서 화엄경은 늘 설하고 있고 곳곳에서 설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사물에서든지 화엄경을 설하지 아니한 곳이 없다.
화엄경을 이야기 할 때 늘 우리가 인용하는 오도시가 있다.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
송나라 때 소동파 거사의 오도송을 잘 인용을 해서 우리가 그 이해의 도움을 받는다.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광장설법이다.
저 개울에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광장설법이다. 그러니 저 산천초목인들 어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아닌가?
밤이 되니 굳이 말을 하자면 팔만사천 게송이나 되는 것을, 이러한 도리를 다른 날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그런 표현을 소동파 거사가 했는데 절창이다.
부처님의 뜻을 잘 표현했고, 화엄경의 도리를 잘 표현했다. 화엄경은 상설(常說) 변설(徧說)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일체중생업차별(一切衆生業差別)이라 수기인감종종수(隨其因感種種殊)어든
세간여시불개현(世間如是佛皆現)하시니 적정광천능오입(寂靜光天能悟入)이로다
일체중생의 업은 각각 차별함이라
그 원인을 따라 나타난 모습이 가지가지 다르도다.
이와 같은 세간에 부처님이 다 나타나셨으니
적정광명안(寂靜光明眼) 범왕이 능히 깨달았도다.
일체중생의 업은 각각 차별함이라
일체중생의 업은 각각 차별한다. 얼굴이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쌍둥이로 태어나도 자세히 뜯어보면 다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다. 왜냐?
그 원인을 따라 나타난 모습이 각기 다르다
일체 중생의 업이 차별하기 때문에 나타난 모습이 각각 다르다.
이와 같은 세간에 부처님이 다 나타나셨으니
그렇게 다종다양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부처님은 다 나타나셨다.
업력난사의(業力難思議)라고 한다.사람마다 다 업이 달라서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관점이 다르고, 여러 가지 상황이 다른다.
우리가 이렇게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화엄경을 공부하는데 이것이 업이 된다. 길이 된다.
이러한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공업중생(共業衆生)이고 동업(同業) 업을 같이 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이 동시에 어떤 장소에서 전개되었을 때는 모두 거기에 계합을 한다. 계합해서 마음이 잘 통한다.
그러나 이런 길을 닦지 아니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가?’ 전혀 통하지가 않는다. 알아듣지도 못한다.
업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늘 좋은 업을 잘 지어야 되고, 좋지 아니한 업은 잘 짓지 아니해야 된다.
길을 잘 내야 된다.
부정적인 길은 돌아보지도 말아야 된다.
이 게송을 다시 읽어보겠다.
일체중생의 업은 각각 차별함이라
그 원인을 따라 나타난 모습이 가지가지 다르도다.
이와 같은 세간에 부처님이 다 나타나셨으니
적정광명안(寂靜光明眼) 범왕이 능히 깨달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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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새로 들어오신 분들 많다. 반갑다.
추석을 앞두고 국가에서는 어떻게 하더라도, 다른 곳에 가고 오지 말고 집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코로나 사태를 이번에 종식시키자는 뜻에서 강력하게 국민들에게 권유를 하고 있다.
우리 불자들은 언제나 국민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였듯이 이번에 어떻게 하더라도, 기왕 참고 살아온 것 좀 더 참고 해서 분명하게 코로나를 종식시키자.
10월은 시월상달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의 가을은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한국가을 같은 계절이 없다고 할 정도로 좋은 계절이다. 부디 좋은 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생활해야 할 줄 믿는다.
무량법문개자재(無量法門皆自在)하야 조복중생변시방(調伏衆生徧十方)호대
역불어중기분별(亦不於中起分別)하시니 차시보광지경계(此是普光之境界)로다
한량없는 법문에 다 자재하시고
온 시방 중생들을 모두 조복하시되
그 가운데서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시니
이것은 보광명(普光明) 범왕의 경계로다.
한량없는 법문에 다 자재하시고
온 시방 중생들을 모두 조복하시되
한량없는 법문, 팔만사천 법문, 부처님은 그야말로 법문이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법문을, 중생들의 근기와 상황에 따라 적재적소에서 하셨을까?
온 시방 중생들을 그 법문으로 다 조복하셨다.
그 가운데서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시니
낱낱이 다른 중생을 다른 법문으로 교화하고 조복시키면서도 또한 분별이 없다. 차별이 없다.
이것은 보광명(普光明) 범왕의 경계로다.
불신여공불가진(佛身如空不可盡)이라 무상무애변시방(無相無礙徧十方)하사대
소유응현개여화(所有應現皆如化)하시니 변화음왕오사도(變化音王悟斯道)로다
부처님의 몸은 허공과 같아서 다함이 없고
형상 없고 걸림 없어 시방에 두루 하여
응하여 나타남이 모두 환화(幻化)와 같으시니
변화음(變化音) 범왕이 이 도를 깨달았네.
세주묘엄품에서는 주로 불신(佛身)에 대한 말씀, 설법에 대한 말씀 이러한 것이 반복해서 밝히고 있다.
이것은 여러 세주들, 세상 주인들이 당신들이 이해하고 깨닫고 본 바 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남이 백 번 천 번 표현했다 해도 자신은 또 자신대로 표현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설사 뜻이 같게 반복이 된다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이 본 바고, 나는 내가 본 바다.
똑같은 말을 해도 그 사람이 느끼고 표현한 것이 다르고, 내가 느끼고 느낀 대로 표현한 것이 또 다르다.
나는 나의 세계가 있고 그는 그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소리를 왜 그리 진부하게 여러 번 하는가’ 하지만 속속들이 들어가서 그분들의 사연을 우리가 잘 이해하기로 하면, 그것이 곧 우리들 자신을 이해하는 길이 되고 내 자신을 이해하는 길이 되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다시 읽어보면
부처님의 몸은 허공과 같아서 다함이 없고
형상 없고 걸림 없어 시방에 두루 하여
응하여 나타남이 모두 환화(幻化)와 같으시니
변화음(變化音) 범왕이 이 도를 깨달았네.
여래신상무유변(如來身相無有邊)하며 지혜음성역여시(智慧音聲亦如是)하사
허세현형무소착(處世現形無所着)하시니 광요천왕입차문(光耀天王入此門)이로다
여래의 신상은 끝이 없으며
지혜와 음성도 그와 같으시어
세상에 형상을 나타내되 집착이 없으시니
광요안(光耀眼) 범왕이 이 문에 들어갔도다.
여래의 신상은 끝이 없으며
지혜와 음성도 그와 같아서
세상에 형상을 나타내되 집착이 없으시니
여래의 몸의 모습은 끝이 없고 다함이 없다. 지혜와 음성도 그렇다. 그러면서 세상에 형상을 나타내되 집착이 없다.
법왕안처묘법궁(法王安處妙法宮)하사 법신광명무부조(法身光明無不照)하사대
법성무비무제상(法性無比無諸相)하시니 차해음왕지해탈(此海音王之解脫)이로다
법왕께서 미묘한 법의 궁전에 편안히 머무시어
법신의 광명이 비치지 않는 데가 없되
법의 성품은 비할 데 없고 형상도 없으시니
이것은 열의해음(悅意海音) 범왕의 해탈이로다.
법왕께서 미묘한 법의 궁전에 편안히 머무시어
부처님을 법왕이라고 한다.
법왕이 계시는 데는 법의 궁전이다.
법신의 광명이 비치지 않는 데가 없되
법왕 법신 법궁
법의 성품은 비할 데 없고 형상도 없으시니
이것은 열의해음(悅意海音) 범왕의 해탈이로다.
법왕 법신 법성 표현이 원만하게 아주 잘 되었다.
6. 자재 천왕과 그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
1) 득법
부차자재천왕(復次自在天王)은 득현전성숙무량중생자재장해탈문(得現前成熟無量衆生自在藏解脫門)하니라
다시 또 자재천왕은 눈앞에서 한량없는 중생들을 성숙시켜서 자재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한량없는 중생들을 성숙시켜서 자재하게 한다.
선목주천왕(善目主天王)은 득관찰일체중생락(得觀察一切衆生樂)하야 영입성경계락해탈문(令入聖境界樂解脫門)하니라
선목주(善目主) 천왕은 일체중생의 즐거움을 관찰해서 성인(聖人)경계의 즐거움에 들어가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일체중생들이 즐겨하는 것은 각양각색이다.
시대가 현대화 되면서 옛날에 없던 것, 못 보던 즐길 거리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이름도 모르고 간판을 봐도 저기에서 뭘 하는가 하는 정도로 기성세대들은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즐길거리들이 많다.
부처님은 그러한 것을 다 관찰해서 그들로 하여금 성인(聖人) 경계의 즐거움에 들어가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전부 그 쓸데 없는 것을 가지고 시간보내지 말고, 성인들의 책 같은 것을 좀 읽고 사람들이 성숙하고 철이 들고 지혜가 나고, 그래서 불필요한 것을 좀 안해야 된다.
보면 크게 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철들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영업하는 사람들은 돈만 대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것인지 덕이 되는 것인지 분별하지도 않고 입에 담기도 곤란한 것들을 만들어서 거기서 아이들 돈 몇 푼을 빼앗아 먹는 일을 한다. 나이든 어른들이 아이들 수준에 맞춰서 그렇게 한다.
제발 좀 성인의 경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래도 좀 성숙한 사람들의 경계에서 즐기는 것 그런 즐거움에 들어가게 하고 그런 데로 눈을 돌리게 한다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제가 옛날에 더러 이야기 했는데, 어릴 때 한 번은 책상을 뒤지니까 딱지가 잔뜩 나오고 구슬도 잔뜩 나왔다.
내가 언제 거기다가 감췄는지 기억도 안났다. 부모님들이 알거나 형이 알거나 아니면 이웃집에서 누가 알거나 하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해서 혼자 그것을 보고는 얼굴이 뜨거워서 그것을 몰래 보자기에 싸서 저기 어디 먼데다 갖다 버린 기억이 있다.
철이 안들 때는 구슬치기 딱지치기가 그렇게 재미있었다.
그런데 조금만 철이 들면, 한 1년만 철이 들면 그것이 참 부끄러운 일이고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날로 철이 들어야 한다.
날로 성숙해야 하고 날로 다른 차원의 교화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끝도 없다.
공자 맹자의 경지까지, 석가 달마의 경지까지는 못 이른다 하더라도 공자 맹자의 경지까지 이르려면 얼마나 많고 많은 단계가 있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날로 성숙하는 의미이고 날로 발전하는 데 뜻이 있는 것이다.
여기 일체중생의 즐거움을 관찰해서 성인(聖人)경계의 즐거움에 들어가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 인생사가 그렇다.
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는 올라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1미터쯤 올라갔다가 또 한 1미터쯤 내려오기도 하고 한 2미터 내려올 수도 있고 심지어는 3미터 4미터 내려올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또 쭉 올라갈 때는 10미터 올라가고 20미터 올라가고 30미터 올라가고 그렇게 하면서 또 내려왔다가 멈춰 있다가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한 일년쯤 지내놓고 보면 작년 이맘때보다 금년 이맘때는 그래도 사람이 좀 철이 들었고, 나아졌고, 성숙되었고, 좀 성장을 했구나 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다 알게 될 것이다.
묘보당관천왕(妙寶幢冠天王)은 득수제중생(得隨諸衆生)의 종종욕해(種種欲解)하야 영기행해탈문(令起行解脫門)하니라
묘보당관(妙寶幢冠) 천왕은 모든 중생의 갖가지 욕망과 이해를 따라서 행을 일으키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모든 중생의 갖가지 욕망과 이해를 따라서 행을 일으킨다. 중생을 제도하려면 중생들의 욕망이 뭔지 이해가 뭔지 그것을 따라서 일단 거기에 맞게 교화를 하고 거기서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용맹혜천왕(勇猛慧天王)은 득보섭위일체중생소설의해탈문(得普攝爲一切衆生所說義解脫門)하니라
용맹혜(勇猛慧) 천왕은 일체중생을 위해서 말한 바의 뜻을 널리 거두어들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묘음구천왕(妙音句天王)은 득억념여래광대자(得憶念如來廣大慈)하야 증진자소행해탈문(增進自所行解脫門)하니라
묘음구(妙音句) 천왕은 여래의 넓고 큰 자비를 기억해서 자신의 행할 바를 증장시키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여래의 넓고 큰 자비를 기억해서, 부처님의 넓고 큰 자비를 기억해서 자신의 행할 바를 증장시키는 해탈문을 얻었다.
우리는 늘 목표가 여래 또는 부처님의 경지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경지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다.
우리 불자들은 좋든 싫든 전부 그것이 목표로 설정되어 있다. 불자의 목표는 부처님의 경지다.
불교에 귀의하고 불교가 좋다면 부처님의 경지가 모든 불자들의 목표로 정해져 있다.
얼마나 좋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처님의 경지를 목표로 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는 대열에 우리가 들어섰다.
나도 부처님을 향한 그 대열의 일원이다. 얼마나 근사한가? 그래서 우리가 화엄경을 좋아하고, 화엄경이 좋다고 공부를 하고 인연 닿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되면 서로 권하기도 하고 나누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다.
여래의 넓고 큰 자비를 기억해서 자신의 행할 바를 증장시킨다. 이것이 우리 불자들의 할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묘광당천왕(妙光幢天王)은 득시현대비문(得示現大悲門)하야 최멸일체교만당해탈문(摧滅一切憍慢幢解脫門)하니라
묘광당(妙光幢) 천왕은 큰 자비의 문을 보여서 모든 교만의 깃대를 꺾어 없애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큰 자비의 문을 보여서 모든 교만의 깃대를 꺾어 없애는 해탈문을 얻었다.
사람이 성숙하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철이 든다.
지혜라는 말을 우리 말로 바꾸면 철이 된다.
지혜가 나고 철이 들려면 자비의 문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 그것을 알면 결국은 교만과 아만을 꺾어 없앤다.
내가 이만치 나이를 먹었다, 이만치 배웠다, 이만치 성장했다, 이만치 가졌다, 나는 이렇게 참 힘들게 살아왔다. 그런 것은 다 교만이다. 아만이고 교만인데 그런 교만과 아만의 깃대를 꺾어 없애는 해탈문을 얻었다. 좋은 의미다.
적정경천왕(寂靜境天王)은 득조복일체세간진해심해탈문(得調伏一切世間瞋害心解脫門)하니라
적정경(寂靜境) 천왕은 모든 세간이 성내어 해치는 마음을 조복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모든 세간이 성내어 해치는 마음을 조복한다.
성을 내면 사람을 해치게 된다. 혼자 성만 내도 상대방은 이미 해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상대를 해치려고 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혼자 성내고 있으면 그만치 상대를 해치는 것이 되는 것이 정한 이치다. 성내어 해치는 마음을 조복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묘륜장엄당천왕(妙輪莊嚴幢天王)은 득시방무변불(得十方無邊佛)이 수억념실래부해탈문(隨憶念悉來赴解脫門)하니라
묘륜장엄당(妙輪莊嚴幢) 천왕은 시방의 가없는 부처님이 기억을 따라서 다 오시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시방의 가없는 부처님이 기억을 따라서 다 오시는 해탈문을 얻었다. 부처님이 당신들의 기억을 따라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다 오시는 해탈문을 얻었다.
그런 데서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열렸다. 그런 의미도 되겠다.
화광혜천왕(華光慧天王)은 득수중생심념(得隨衆生心念)하야 보현성정각해탈문(普現成正覺解脫門)하니라
화광혜(華光慧) 천왕은 중생의 생각을 따라서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을 널리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중생의 생각을 따라서 정각(正覺)을 이룬다.
중생들의 생각이 각양각색이다. 그 각양각색의 생각을 따라서 정각을 이루는 것을 널리 나타낸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는데 중생하고 관계없는 정각이 아니다.
전부 중생을 위한 것이고 중생에 의한 것이고 중생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이룬 정각인 것이다. 중생의 생각을 따라서 정각을 이룬다.
인다라묘광천왕(因陀羅妙光天王)은 득보입일체세간(得普入一切世間)하는 대위력자재법해탈문(大威力自在法解脫門)하니라
인다라묘광(因陀羅妙光) 천왕은 일체세간에 널리 들어가는 큰 위력이 자재한 법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일체 세간에 널리 들어가는 큰 위력이 자재한 법의 해탈문을 얻었다.
일체 세간에 널리 들어가는 큰 위력, 저 드넓은 세상을 널리 다 제도하려면 큰 위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큰 위력을 가지고 저 드넓은 세상에 들어가서 자유자재하게 법을 설하고 중생을 교화한다는 이치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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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시간이 40분 가까이 경과했다.
여기서 이렇게 하다보니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잠깐 잠깐 사이에 30분 40분 시간이 지나간다.
이 시간 69명이 동참하고 계시다.
세상은 코로나로 시끌벅적하고 북한에서는 사람을 쏘아 죽여서 시끄럽고 전세계적으로 코로나가 빨리 줄어들지도 않고 3100만명이 걸렸다니 엄청난 숫자다.
그래서 뒤숭숭하다.
이런 뒤숭숭한 상황에서 우리가 추석을 맞이하게 되고, 어른들에게도 가보지도 못하고 조상들 묘소나 제사같은 것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어쩌겠는가?
살아있는 사람이 일단은 조심하면서 잘 넘기고 상황이 호전되면 그때 또 사람이 할 도리를 해야할 것이다.
내일 휴일이고 추석이고 해도 형편 닿는 분들만 핸드폰으로 유튜브에 들어오시면 되고, 실시간에 들어오시면 더욱 고맙지만 다음에 한가한 시간 내서 저장되어 있는 것을 찾아서 들으셔도 된다.
이것이 사사무애의 도리라 아무 구애 받지 않는다.
늘 들어와서 공부하던 분이라 해서 너무 부담갖지 말고, 마음 턱 놓고 언제든지 들을 수도 있고, 들었던 것 기억을 하면서 다시 생각할 수도 있는 이치가 여기 있다.
모두들 좋은 시간, 마음 놓고 잘 지내시기 바란다.
너무 좋은 계절인데 시절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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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은 더욱 밝아지고
부처님의 진리의 수레바퀴는 쉬지않고 굴러가서
만중생을 하루빨리 눈뜨게 하고
지혜가 크게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 戒香ㆍ定香ㆍ慧香ㆍ解脫香ㆍ解脫知見香!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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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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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王들의 得法의 모습은 제각각 다르지만 부처님 성품의 일부분을 나타내고 있다 생각됩니다.
바쁜 시간을 내어서 이렇게 재빠르게 녹취를 올려주시는 보살님, 고맙습니다. 코로나로 어수선하기는 합니다만 추석명절 잘 지내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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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해주신 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녹취하신 것 보며 큰 스님의 강의를 들으니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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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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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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