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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스미스 (W. Eugene Smith, 미국, 1918∼1978)
미국 사진가 중 가장 예술적 교양과 개성을 가진 사진가의 한사람 이다.
보도사진의 한길만을 철저하게 헤쳐나간 사진가 이며 휴머니즘에 입각한 인간미 넘치는 르포르타주를 많이 남겼고, 이것은 포토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포토저널리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아담스는 “다큐메터리 사진이 진실로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예술적인 요소와 훌륭한 기술과 정신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유진 스미스는 그의작품에서
에서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유진 스미스는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도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있고, 사진작가들 중에 이 두 분야에서 그와같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작가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와같은 스미스의 경력은 사진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데 크나큰
영향을 준 인물로 기억되고 평가되는 것이다
약력
•
•1924∼35년 카톨릭계 학교에서 수학, 위치토의 뉴스사진기자인 프랭크 노엘Frank Noel의 가르침을 받음
•1936년 인디애나주의 노트르담 대학에 입학하여 한 학기를 다닌후 그만두었다
•1937년 New York Institute of Photography에서 공부
•1937년 「 New Week」지의 기자로 활동
•1939∼41년 「 Life」지의 계약 사진가로 활동
•1942년 「 Life」지를 그만두고 「Parade」라는 주간지의 핵심기자로 각광
•1943년 「Flying」사 소속으로 항공모함 Bunker Hill호에 배속 태평양전쟁[Pacific War-I] 취재
•1944년 다시「Life」지의 종군 사진가로 사이판, 오끼나와 전투[Pacific War-2]를 취재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부상입고 일시 활동 중단
•1948년 「Life」지로 돌아와 활동
•1948년 [Country Doctor]Series를 만듬,
•1951년 [Spanish Village], [Nurse midwife siries]를 만들고 [Spanish Village] 로 U.S 카메라상 수상
•1952년[Charie Chaplin at work]과 [The Reign of Chemistry] 제작
•1953년 [나의딸 Juanita]제작
•1954년 [A man of Mercy series-Dr Albert Schweitzer]제작
•1955년 편집자와 마찰로 「 Life」지를 그만두고 「Magnum」에 가담
•1956∼57년 구겐하인 재단의 기금으로 [Pittsburgh]를 촬영
•1957년 「 Magnum 」 의 full member가 된다
•1957-58년 뉴욕에서 [As from my window I sometimes glance]를 촬영
•1958년 「Popular Photographer」지의 국제 앙케이트에서 `세계의 10대 사진가'로 선정
•1959년 자유롭게 자기의사를 반영시킬수있게 하기 위하여 「 Magnum 」 탈퇴
•1959년 '제3회 사진저널리즘 정기총회'가 수여하는 상 수상, '미국 신문사진 기자협회'상 수상
•1968년 세 번째로 또다시 구겐하임 장려금을 받아 <사진가 W. Eugene Smith>작품집 출판
•1970년 대규모 회고전 「진실로 하여금 편견이도록 하라(Let truth be the prejudice)개최
•1971-73년 Aileen과 결혼후 3년간 일본에 정착 「 Minamata 」촬영
•1975년 뉴욕 국제사진센터에서 『(Minamata)』전 개최
•1977년 에리조나 대학 에서 강의, 그의 사진들을 그가 강의하고 있던대학 사진창조센터에 보관
•
작품으로는
•1943,1944년 Pacific War
•1949년의 <Country Doctor>, <Dr Albert Schweitzer>,
•1951년의 <Spain village>, <Nurse midwife series[조산원]>,
•1952년의 <촬영중인 Charie Chaplin>,
•1953년의 < 나의딸 Juanta>,
•1954년의 <A man of Mercy series[자비의 사람 슈바이처]>,
•1956∼57년 구겐하인 재단의 기금으로 < Pittsburgh>를 촬영
•1972년의 <미나마따병>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Country Doctor>(1948), < Spain village> (1951),
•< Nurse midwife series >(1951), < 아프리카의 슈바이처> (1954), <Minamata> (1972) 등이있다.
*1943,1944년 Pacific War
•1943년말 U.S.S. Bunker Hill호號에 도착하자마자 공습에 참가하는 해병대의 Avenger폭격기에 탑승하여
다섯달 동안에 걸쳐 16회의 출격을 수행하는 동안 그는 많은 전투장면들을 사진에 담았다.
1944년 전투가 한창 치열하던 당시 그는 사이판, 괌, 레이테, 유황도,오키나와 전투에서의 해병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전쟁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그로 하여금 순진한 이상주의를 버리고 휴머니스트의 입장을 택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만년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그로 하여금 인간은 분명 권리를 갖고 있지만, 또한 책임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믿게끔 되기에 이르렀고, 아울러 전쟁은 그의 예술을 완성시켜 성숙한 표현력이 한껏 발휘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스미드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잘 가다듬어진 스타일을 거의 확립할 수 있었다.
•1943년 이사진들은 태평양현장에서 유일한 사진기자에 의해 포착된 가장충격적인 기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44년. 전투가 한창 치열하던 당시 그는 사이판, 괌, 레이테, 유황도,오키나와 전투에서의 해병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Pacific War1944-사이판 섬에서 미군에 의해발견된 어린아이[유일한 생존자]
•1944년 태평양전쟁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한층 더 치열해져가고 있을때 일본군은 가장 중요한 거점인 사이판의 천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작은 동굴들을 요새지로 무장하여 생활하였는데 이 사이판이
•<유일한 생존자>는 이때 촬영된 것으로서 미군의 화염병사기가 내뿜은 화염으로 인하여 초토화된 사이판의 한 동굴에서 수백명의 일본군 병사들과 민간인들의 시체들 가운데 유일하게 숨결이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가 미군 병사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어 구출된 순간이었다.
•유진스미스의 <유일한 생존자>는 제2차세계대전을 찍은 수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사진이라고 평해졌는데 비록 전쟁이 서로를 살상하는 비인간적인 행위지만 그 속에서도 어린 생명을 소중히하는 군인의 모습은 역설적이면서도 또한 진한 인간애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동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를 따뜻하게 품에 안고 있는 병사의 모습은 천사와도 같이 숭고하며, 병사는 어린 생명을 구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라도 올리는 듯 숙연한 자세로 침묵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는 인간애로 충만된 한 토막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A walk to paradise garden[낙원으로 이르는 길]1946
•유진스미스의 많은 걸작 사진 중에 하 나인 오누이 사진은 자신의 친아들과 딸을 촬영한 사진니다.
•두아이가숲을 빠저나가 미래의 길로 향한다는 느낌을 주는 미래지향적인 사진이다
종군 기자로 2차 대전에 참여 하였다가,
눈과 전신에 많은 부상을 입고 퇴원 후의 사진으로 , 다시는 사진을 못 할지 모른다는 강박 관념을 이겨내고 시작 한 첫 사진입니다.
어려운 사항을 이겨낸 사람의 사진은 남다른 느낌을 전해주는것 같습니다
*1948년부터 5년간 다시 「Life」 지에서 일을하게 되었는으며, 연극, 음악, 혹은 저명인사들과 관련된
약 50편 가량의 보도사진들을 만들어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수의 다큐멘타리를 만들기도 했다.
이것은 주어진 주제로부터 여러가지 차원의 인간적 체험을 표현해내기에 위한 진정한 '포토 에세이'를 구성 하였다.
이 Series사진이 「Life」지에 게재되면서 세계최고의 보도사진가의 지위를 확고히했다.
*1948년의 <Country Doctor>
•1948년 그는 당시 유행하던 주제인 시골의 의료계현황에 관한 르포르타쥬르 제작하는데 몰두했었는데 ,
이것이 [Contury Doctoy]라는 제목으로 「Life」지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것은 콜로라도의 작은 마을인 Kremmling에 Ernest Ceriani란 의사가 매일 하는 일들을 샅샅이 관찰하여 만든것이다.
•그는 자신의 르포르타쥬들을 전통적인 스타일에 따라 좔영하는것이 아니라 그 '환경속으로 녹아들어'감으로써 자신의 출현이 세리아니 의사에게 일상적 생활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여 촬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Country Doctor1948-<말에 부상당한 어린 소녀를 돌보있는 의사
세리아니>
스미스는 고유한 의미에 있어서의 묘사와 주제 사이에 새로운
균형을 이룩해낸다 .
그 사진들에서 풍겨 나오는 확고한 휴머니즘과 힘있는 스타은
대중의 관심과 전문가들의 즉각적인 찬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그의 사진들은 오늘날 르포르타쥬라는 장르의 고전으로 되었다.
UK1950, Welsh coal mining town-Three generations of minor
*1951년의 <Spain village>
•
알려져있는 스페인을 촬영한 것으로 파시스트 프랑코의 압정 밑에서 찌든 민중들의 진정한 생활과
감정을 잘 표현해준 작품으로서 이 작품으로 인하여 U.S 카메라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스미스는 직업적 환경이 그들에게 부과한 의무와 책임감으로 얽힌 인물을 상세하게 묘사해냈다.
스미스는 고유한 의미에 있어서의 묘사와 주제 사이에 새로운 균형을 이룩해내기에 이르렀다.
•그 균형은 당시에 유행되던, 부자연스럽고 형식적이어서 일부러 꾸민듯한 스타일보다 한결 자연스럽고 정확한 것으로 여겨진다.
Spanish Village1951-<실 잣는 여인>
1950년 그는 스페인에 들러 대상을 결정하기 위해 두달 동안 약 만 킬로미터 정도를 돌아다닌 후에 특별히 델레이토사(Deleitosa)라는 마을에 마음이 끌렸다.
마을 주민들의 인물사진이 풍겨 주는 거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스페인의 마을>은 르포르타쥬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 열어 준다.
*1951년 스미스는 [녹음하는 예술가들]이라는 제목의 녹음 스튜디오 안에서 일하고 있는 음악가들에 대한
내면적이고도 감동적인 일련의 인물사진을 완성하였다.
*1951년의 <Nurse midwife series[조산원]>,
•같은해(1951)에 그는 남 캐롤라이나 주 북부의 농촌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의술뿐만 아니라 정신적 도움까지 베풀고 있던 Maude Callen 이라는 조산원의 사진을 찍었다.
•이 작품에서 스미스는 인종적인 편견들과 싸우며, 겸손하면서도 용기있는 이 여인의 사진들로 매우 호소력이 있는 사진제작을 하였다
•이로인해 사람들이 Maude에게 현대식 무료진료소 건립에 필요한 돈을 보내오게 되자 스미스는 자신의 르포르타쥬르 통해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킨 점에 고무되었다.
•스미스의 포토스토리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주의로 형성되어있어 항상 성직자처럼 인간의 사랑과 행복과 평화를 신뢰하고, 성실한 인간성 그자체를 풍부한 자신의 애정을 통하여 표현하는데에 특징이있다.
•이름도없는 시골의사나 조산원 그리고 스페인 한촌의 농부, 원시민족의 고질병 치료에 생애를 받치는 슈바이쳐박사등등, 그는 이러한 것을 충실히묘사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사진으로 표현해서 그것이 인간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도움이되기를 바랏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스미스는 인종적인 편견들과 싸우며, 겸손하면서도 용기있는 이 여인의 사진들로 매우 호소력이 있는 사진제작을 하였다
•이로인해 사람들이 Maude에게 현대식 무료진료소 건립에 필요한 돈을 보내오게 되자 스미스는 자신의 르포르타쥬르 통해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킨 점에 고무되었다.
•스미스의 포토스토리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주의로 형성되어있어 항상 성직자처럼 인간의 사랑과 행복과 평화를 신뢰하고, 성실한 인간성 그자체를 풍부한 자신의 애정을 통하여 표현하는데에 특징이있다.
•이름도없는 시골의사나 조산원 그리고 스페인 한촌의 농부, 원시민족의 고질병 치료에 생애를 받치는 슈바이쳐박사등등, 그는 이러한 것을 충실히묘사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사진으로 표현해서 그것이 인간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도움이되기를 바랏던 것이다
Charie Chaplin1952[분장실에서의 찰리 채플린]
유진 스미스는 분장실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투시하는 채플린을 감동적으로 포착했습니다.
유진스미스는 급격한 사선구도와 명암대비로 실제의 인물을 어둠에 은폐된 무의식처럼, 그리고 실제를 비추는 영상속의 인물을 마치 실제의 인물처럼 느끼게 했습니다.
*1953년에는 [화학의 위세The Reign of Chemistry] 라는 제목의 작품이 나왔다.
*1953년 [나의딸 Juanita]제작 The Photographer’s doughter
*1954년 <A man of Mercy series[자비의 사람 슈바이처]>
•1954년 그는 람바레네의 나병환자 수용소에 있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알버트 슈바이쳐박사의 사진을 찍기위해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로 가서 <A man of Mercy series[자비의 사람 슈바이처]>만들었다
•1955년 그는 「Life」 지의 편집장과의 알력이 화해되지 않자 「Life」 사를 사직해버리고,
프리랜서로 사진활동을 계속하였는데 스미스의 성격상 본래 개성이 워낙 강하고 주장이 너무도 뚜렷했기 때문에 편집자와의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그가 「Life」지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Albert Schwitzer> 라는 작품 때문이었는데 이유인 즉 슈바이처 박사를 찍을 때의 의도는 성인으로 바라보는 슈바이처 박사라는 입장에서 촬영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도 흔한 보통 사람으로 표현하되 다만 그의 생명경외 정신,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인데 편집자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선별하여 트리밍에서 레이아웃까지 고쳐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1955년 사진원고 은행격인 Magnum에 가담하여 작가의지대로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활동을 벌였다.
*1956∼57년 구겐하인 재단의 기금으로 [Pittsburgh]를 촬영
•그는 산업도시로서 유명한 피츠버그시의 다큐맨터리에 착수하게되는데 1956, 1957년의 구겐하임 기념재단의 장려금으로 이를 완성하였다.
•그의 천성이 어떠한 것에도 구속받고는 못견디는 성격이라 자유롭게 자기의사를 반영시킬수있는 사진가의 입장을 절실히 갈망했던 탓에 1959녀에 Magnum도 탈퇴하게된다.
•그 후로 경제적 불안정기와 자신에게 닥쳐온 건강 악화, 그리고 사생활에 있어 거듭된 혼란으로 말미암아 사진작업 역시 한층 혼란스러워졌다.
*1950년대말, 스미스는 미국의사와 아이티 의사들이 정신병자들을 위한 혁신적인 화학요법의 프로그램을 완성시키기 위해 진료소를 건립하고 있던 아이티에서의 의료구제사업에 대한 촬영에 착수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창문으로 내다보며(As from my window I sometimes glance)]
•1957년 사진계의 명성을 인정받고 있던 스미스는 가족을 떠나 맨하탄의 한구석에 있는 꽃시장에서 멀지않은 음산한 작업실에 자리잡았다.
•몇년동안 자기집에서 꼼짝않고 틀어박혀 창문을 통해 보이는 거리의 풍경을 포착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창문으로 내다보며As from my window I sometimes glance]와 그 집 주변에 사는 재즈음악가, 추상화가, 작가등의 예술가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아뜰리에 내부The loft from inside in] 를 수천장의 네가 필름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주제들을 구성하고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 기간은 표현성의 의미를 한층 더 연마하기 위해 이용한 다작多作의 시기였다.
*1961년[Japan :A Chapter of Image]
•1961년 일본 히다찌사는 회사의 다양한 활동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 일본으로 와 줄것을 요청했다. 애당초 석달정도로 예상했던 체류는 2년으로 연장되었고, 스미스는 페이지단위로 편집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이 방법으로 책한권을 만들었다.
그 결과로 나온 책이 [일본 :A Chapter of Image] 이라는 책이다.
•여기에서 작가의 시선은 이 작품을 특징있게 해 주는 시와 더불어 우리에게 현대 일본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1965년 이후 그는 무엇보다도 베트남 분쟁에 의해 야기된 시위들에 관한 주제, 그리고 Woodstock축제와 오하이오주 한 마을, 미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찍은 사진들을 제작하여 발표했는데, 그것들은 그가 60년대의 정신상태와 기질까지도 담고 있는 시대의 초상화를 그려내기 위해 찍은 것들이다
Minamata1972-<Chisso chemical complex>
Pouring its wastes into the air as well as the waters, the Chisso chemical complex dominates the city of
Waste chemicals, dumped into the bay, worked their way up the food chain to the people of the city and caused what has come to be known as Minamata Disease
Minamata1972-<Yae Sato carry fresh fish>
Already lame with Minamata disease, Yae Sato carries fresh fish home for her family's evening meal.
Minamata1972-<Tomoko Uemura in Her Bath, Minamata[도모꼬를 목욕시키는 어머니]>
도모꼬는 태어나면서 마나마타병에걸려 소리조차내지못하고 식사도재대로 못하는 식물인간으로 살면서 어머니품에안겨 목욕하는 모습을 완전한 영상으로 보여주고있다.
Minatama1972-<Plaintiffs demonstration>
Plaintiffs demonstrate with photos of their dead on the last day of the trial in October 1972.
The court victory could only offer money in return for life and normalcy.
그의 철학은
•" 사진이란 기껏해야 하나의 나지막한 목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것은 아니더라도 때로는 한장의 사진, 또는 여러장의 사진이 이루는 전체적인 조화가 우리의 감각을 유혹하여 지각으로 매개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 모든것은 바라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어떤 사진들은 그것들이 사색을 불러 일으키기는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하고 그리고 그것은 어느한 개인이나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의 소리를 듣게 만들고, 이성을 올바른길로 이끌며, 때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찾아내도록 인도해갈 수 도 있다.
•다른사람들은 아마도 생활방식이 그들에세 낯설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은 이해와 연민을 느낄 것이다.
•사진은 하나의 작은 목소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진은 잘 구성하기만 하면 그 소리를 들려 줄 수 가 있다. "
*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진을 만들려고 한다.
* 나의 사진에 그들 자신의 의식을 반영시킬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 나는 그것이 좋은 사진이거나, 혹은 좋지 않은 사진이거나,
* 내자신이 감정적인 혼란을 겪지 않고서는 어떤 사진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 W. Eugene Smith ....
그의 작품은 삶의 모습 그대로
•그의 사진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진의 모든 화조가 어둡다는 점이다.
표준의 밝기보다 몇 단계나 화조가 낮아서 그의 사진은 무거운 느낌을 주고, 그것은 현실을 어두운 측면에서 다루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은 하나같이 보는 이로 하여금 몸을 조이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 까닭은 그의 사진이 마음의 문을 열고 대상을 받아들이는 조화적인 일치의 모색이 아니라 부딪치고 뚫고 헤쳐 나가는 생명의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분위기나 묘사가 대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진에는 아픔과 기다림이, 그리고 피맺힘이 있고, 또한 언제나 중심을 이루는 테마는 '사랑'이다.
•본디 원죄를 타고난 인간이기 때문에 생존경쟁의 각축장에서 인간은 인간에 대해 증오하고 종말적인 심판의 불이 쏟아질 것만 같은 절박한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끝내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굳건한 믿음을 그는 사진으로 고백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현실의 해설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것은 사실을 주의 깊게 탐구하는 일이며, 사태를 잘 이해활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는 일이다.
따라서 내가 찍은 사진은 진실을 꿰뚫은 것이라야 하며, 또 정확성을 집약하여 진실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게다가 상징화가 없으면 안 된다.
•유진스미스는 인간의 존엄성을 사진으로 표현해서 그것이 인간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만일 사진 저널리즘의 신화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유진 스미스는 정녕 그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유진 스미스의 유명한 기록사진들은 단순한 증언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준엄한 논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