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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3일차,...
TV에서는 서울시내가 어느정도 수습이 되었는지 이틀연속 눈이 얼마가 왔으며 피해가 얼마라는 등의 보도가 슬며시 바뀌며 내집 앞 눈쓸기와 빙판길 운전요령을 방송하고 있다.
“침착해야 한다. 침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송강호의 대사 “침착하고 얼마나 빨리 판단하느냐가 중요하다”라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침착해야만 판단력이 생긴다.
이틀을 연속 나무꾼 아닌 나무꾼이 되어 톱질과 도끼질을 하였더니 근육통이 장난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숟가락 드는 것도 버겁다.
천근 만근 몸뚱이를 움직여 난로 아궁이에 나무를 쑤셔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런데 눈에 젖은 생나무(물푸레나무)라 그런지 잘 안탄다.
그게 아니라면 난로에 재가 많아서 그런가?
나무토막만 넣으면 활활 타오르던 난로가 어딘가 동맥경화에 걸린 듯 연기가 빠져나가질 못한다.
이곳에 오기전 신년 휴가를 맞아 마누라는 부산 처갓집으로 나는 이곳으로 캠핑을 왔다.
몇 년전에 합의 본 사항인데, 구정에는 서울 본가로 신정에는 처가로 가기로 약속 했었다.
마누라에게 부산 안가도 된다는 허락받고 신나하던 출발 때의 모습은 간 곳 없고 지금은 마누라 따라 갈걸 하는 후회가 머릿속을 맴돈다.
“부산에 갔었으면 매일 회로 배를 채우고 있었을 텐데,...”
한겨울에도 내복을 안입던 내가 장모가 해주신 황토내복을 찾아 입고 이너텐트 안에서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난로 뚜껑을 열고 쓰레받기를 부채삼아 힘껏 부치니 회색빛 재가 텐트 안에 부옇게 흩뿌려진다.
“푸하~ 이거 곰 잡겠구만”
불씨는 분명 있는데 불이 도통 살아나지 않는다.
다시 웃옷을 걸치고 잠바를 입고 텐트밖으로 나섰다.
영하 28도의 매서운 추위가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살아야겠는데 어쩌랴,...
연통을 고정하는 3가닥의 로프를 제거하고 연통을 분리하였다.
연통 안에는 까맣게 그을린 목초액이 일센치 두께로 떡이 져있었는데 이놈을 털어내야 동맥경화가 해소될 듯하다.
연통과 연통을 부딛혀 어느정도의 목초액 찌꺼기를 털어낸 후 엘자로 꺽어진 연통을 보니 원인이 바로 이놈이지 싶을 정도로 꺽어지는 코너에 이물질이 잔뜩 끼어있다.
톱날을 집어넣어 이리저리 휘저으며 몇 번 왕복 시키니 다행히 찌꺼기들이 털어진다.
이 작업을 하다보니 제대로 된 장갑을 준비 안 했다는게 생각이 났다.
지금 끼고 있는 장갑은 우리 아이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요술장갑이다.
크기는 애기 주먹만한데 어른이 끼어도 쫙쫙 늘어나는 그런 장갑이다.
젖은 장갑을 벗고 연통을 만지니 손바닥이 그냥 쩍쩍 달라붙는다.
“오메” “오메” “오메” 이걸 어쩐다냐.
가까스로 텐트 안에 들어와 미니스토브를 틀어 손에 달라붙은 연통을 떼냈다.
손을 보니 가관이다.
우선 손가락 마디가 무슨 거북이 등짝 마냥 쩍쩍 갈라지고 갈라진 틈사이로 목초액이 스며들어 꺼멓게 물들어있다. 그렇게 보드랍던(?) 고운손이 곰발바닥 마냥 딱딱하다.
혹시 이게 동상의 시작이 아닐까?
텐트안을 둘러보니 문명의 이기가 눈에 띄었다.
바로 에어매트에 공기를 주입하는 공기 주입기,
이놈을 난로의 공기구멍에 대고 동작시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자 즉시 실천에 옮겼다.
“부아아앙~”
경퀘한 소리와 함께 공기가 주입되니 불이 금방 일어난다.
문명의 이기가 이래서 좋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텐트 안에 훈훈한 온기가 감돈다.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서버에 문제가 있으니 빨리 접속 좀 해달란다.
빨리 이곳을 탈출하긴 해야겠다. 탈출을 못하면 도보로라도 관공서나 우체국(시골에서는 읍사무소 같은 곳에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되는 컴퓨터가 구비되어 있음)에 가서 볼일을 본 후 들어오던지 해야 할 것 같다.
난로가 살아났으니 뭔가 요기를 해야겠다.
요기를 해야 기운이 생기고 기운이 생겨야 이곳을 빠져나갈 아이디어가 생길것 같다.
차안에서 화강암 돌판을 가져왔다.
집근처 빌라 공사장에서 주워온 것인데 돌판이 두꺼워 열받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올려놓아 본다.
아주 딱이다.
난로 윗면적과 맞춘듯 딱 들어 맞는다.
요구르트로 해장을 한 후 삽겹살 몇점과 마트에서 산 떡갈비 몇점을 굽는다.
찌개가 난로위에 항상 끓고 있어 햇반과 함께 제법 갖춰진 식사를 마쳤다.
뉴스를 들어보려고 dmb를 켜니 앵커와 무슨 빙판길 전문가인 듯한 사람이 나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뭐 빙판에서 전륜구동이 좋냐 후륜구동이 좋냐 라는 말을 하면서 빙판 언덕을 오르는 요령을 말해주는데 아주 그럴듯하다.
“서울시내 주요 도로는 어느정도 제설이 된듯 합니다(추노의 대길이 목소리로 : 언니 여기는 아직 눈이 그대로거든). 그런데 빙판길이 아직 많습니다. 빙판길 언덕을 만나면 당황하지 마시고 기아를 2단 정도에 맞춘 후에 바퀴를 천천히 돌게 하면 무난히 오를 수 있습니다.”
빙판길에서 차가 안 나가는 이유는 마찰력이 부족해서 라는데 바퀴가 빨리돌면 마찰력이 줄어들어 헛도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래서 토크를 크게 하여 바퀴를 천천히 돌리면 마찰력이 높아져 언덕도 오를 수 있단다.
“아! 바로 그거구나, 그동안 무식하게 악세레다만 죽어라 밟았는데,...”
해서 텐트 앞 얕으막한 언덕을 시험삼아 4WD low로 맞추고 2단으로 천천히 올라가보았다.
그랬더니 미끄럼 없이 차가 언덕을 오르는 것이었다.
무조건 언덕은 도움닫기로 달려 올라가야 한다는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저속으로 완경사 언덕을 쉽게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경사 40도의 두 번째 언덕이다.
어제, 그제 번번히 이곳에서 막혔는데 도움닫기도 소용없고 엔진출력을 풀파워로 해도 소용없었다. 왜냐하면 언덕 곳곳에 깊게 패어있는 빗물에 의한 골 때문이다.
어느정도 차가 올라가다가도 이 골에만 빠지면 차가 맥을 못추는데 마찰력이 약한 바퀴는 아예 돌지를 않기 때문에 동력 상실이 많다.
그래서 4WD로 험지를 다니는 동호회에서 LSD를 거금들여 다는 모양이다.
몇 번 시도 끝에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삽으로 길을 내기로 맘을 먹고 차에서 내렸다.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는 눈,... 이틀간 다져져서 퍼내기는 그나마 괜찮았다.
골을 메울만한 돌을 찾기에는 눈덮힌 대지가 너무 넓고,...
그냥 빠져나갈 길만 삽으로 파 길을 냈다.
두어시간의 수고가 끝나자 어느 정도 길이 보였다.
눈에 덮혀 대충 감으로 차고 올랐던 언덕빼기의 골이 어디 있는지 한눈에 보인다.
첫 번째 시도.
5미터 정도 후진을 한 후 길을 따라 언덕에 올라섰다.
바퀴 네곳에 골고루 동력이 분산되는 느낌이 전해 온다.
“덜컹”
아 또 골에 빠졌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2미터 가량 더 올라 갔다.
몇 번 시도하면 될것 같다.
붕~ 부우우웅~ 올라간다. 올라간다.
그런데 중간에 멈춘다.
힘이 딸리는 것은 아닌데 멈춰있지만 네바퀴가 모두 돌아가는 느낌이 전해 온다.
바퀴가 헛돌면서 바닥에 다져진 눈이 녹으면서 흙이 튀어 올라온다.
그러면서 서서히 차가 앞으로 나간다.
윙~~~, 윙~~~,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거의 40도 경사에, 누워서 운전하는 느낌의 언덕에서 서서히 차가 앞으로 나간다.
역시 사륜구동이다.
서서히 움직이던 차가 갑자기 튕기듯 나가며 탄력을 받으면서 언덕을 오르고 있다.
마지막 10여미터~~ 소나무 숲 사이로 난 눈 덮힌 길이 보이며 드디어 도로가 나타난다.
드디어 도로 앞, 한번에 도로 턱을 넘어 올라섰다.
“부릉부릉부릉”
도로에 올라선 캘롱이가 스스로도 대견한지 으르렁 댄다.
“그동안 기름 많이 먹는다고 타박했는데 미안하다”
드디어 너의 진가를 발휘하였구나. 주유소를 만나면 불스원샷 한잔 받아주마,....
도로에 올라서니 오지 마을사람들이 차를 끌고 나왔는지 차 다닌 흔적이 보인다.
아직까지 대중교통은 안다니는 듯 작은 바퀴자국만 보인다.
도로에 올라선 기념으로 기념사진 한 장.
“김치 찰칵”
아~ 그런데 텐트와 장비를 하나도 안가지고 올라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마이 갓”,
텐트를 걷기 위해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말인가~~
첫댓글 오~~! 탈출에 성공하셨군요.... 극적입니다...
ㅎㅎㅎ 너무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
암튼 이제 전반의 성공이군요~~~^^
마치 한편의 ??머라카드라?왜오지탐험 (생각이안남)을보는듯 재미나게 보고있습니다 ㅎㅎㅎ
속편이 기대됩니다, 빨리 올려주세요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는 때가 있고
또 그와 다르게 뭔가 굉장히 중요한 말을 쓴것 같은데 읽기가 싫어 지는 때가 있습니다.
조은나라님의 글은 전자에 속하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 하십니까?
저는 진정성이라고 생각 합니다.
글쓴이가 경험한 일을 그대로 썼나?
아니면 없는 것을 썼나? 라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살을 붙이고 말고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있었던 사실을 한꺼번에 전달 할려고 하지 않고
한가지 한가지 순서대로 사실대로 쓰면서 조금의 살을 붙여 쓴
조은나라님은 글쓰기를 선천적으로 타고나신 분인데
후천적인 상당한 노력이 우리를 자지러지게하는가 봅니다.
글도 글지만 사진솜씨도일품입니다 조은나라님 손에 쩌드른때는 다제거하셨는지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