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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6월 14일 금요일
[(녹)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하자엘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으로 세우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뒤를 이를 예언자로 세우라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9,9ㄱ.11-16
그 무렵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9 있는 동굴에 이르러
그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주님께서 11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12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그러자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저는 주 만군의 하느님을 위하여 열정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돌려 다마스쿠스 광야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거든 하자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임금으로 세우고,
16 님시의 손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 므홀라 출신 사팟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예언자의 사명에 충실하였지만,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서슬이 퍼런 권력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당당하게 옳은 소리를 외쳤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은 도망자가 되어 무기력하게 호렙산 동굴에 홀로 서 있을 뿐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주님께서는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 속에도, ‘온 땅을 뒤흔드는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않으시며,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나타나십니다. 세상을 뒤흔드는 바람, 지진, 불은 엘리야 예언자의 역동적인 활동을 상징하는 듯 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역동적인 상황에서 엘리야에게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으셨고, 그 모든 것이 지난 뒤 조용히 침묵 가운데 오셨습니다.
교회가 정의와 평화, 인권, 공동선, 환경, 생명 등의 문제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일 때, 엘리야와 같이 무기력한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목소리를 내어도 세상은 바뀌기는커녕 듣지도 않습니다. 주님의 소리를 외친 대가는 거센 비난과 싸늘한 비웃음, 대중이나 권력의 압박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묻게 됩니다. 교회가 행한 일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가? 그 일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셨는가?
그러한 실망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는 침묵 안에서 조용히 당신 계획을 준비하십니다. 당신의 뜻을 이룰 새로운 임금과 새로운 예언자를 세우시며 구원사를 끌고 가십니다. 이 세상의 정의와 평화가 반드시 내 손으로, 그리고 지금 내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계획을 거두지 않으시고, 그 계획은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하느님의 일을 이어 가는 사람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고, 그들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는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성인(聖人)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돈보스코의 제자 가운데 도미니코 사비오란 성덕이 출중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에 들어와서 그가 제시한 성덕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고 있던 중 안타깝게도 중병을 얻어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오래가지 않아 교회는 도미니코 사비오를 성인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그가 짧은 생애 동안이지만 생명처럼 지켜왔던 모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죄보다는 죽음을!”이었습니다.
아마도 소년 사비오는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마태오 복음을 눈여겨봤을 것입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 5,29)
1855년 6월 24일 돈보스코가 마흔살 되던 해 영명축일 때의 입니다. 오라토리오 아이들은 성극이나 성가, 합창이나 시 낭송 등, 정성껏 축제를 준비하여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자신을 향한 아이들의 지극한 사랑에 크게 감동을 받은 돈보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자 받고 싶은 선물을 쪽지에 적어 내게 주세요. 뭐가 됐든 여러분의 기대에 실망을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수많은 종이 쪽지들을 들고 당신 사무실로 돌아온 돈보스코는 하나 하나 쪽지를 열어봤습니다. 어떤 아이는 작은 성모상을 신청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운동화를 적었습니다. 짓꿋은 한 아이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초콜릿 100킬로 그램’
수많은 쪽지들 가운데 유난히 돈보스코의 눈길을 끄는 쪽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도미니코 사비오가 쓴 것이었습니다.
“성인(聖人)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깜짝 놀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크게 감동받은 돈보스코는 도미니코 사비오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비오! 성인이 되는 비결을 네게 선물하고 싶구나. 자, 여기 있다. 첫째 명랑하게 지내는 것이다. 둘째, 네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 공부와 기도의 의무에 충실한 것이다. 셋째, 친구들에게 선을 베풀거라. 설령 네게 희생이 따르더라도 항상 네 친구들을 도우렴. 이 세 가지만 잘 지켜도 충분히 성인이 될 수 있단다.”
천사표였던 도미니코 사비오는 돈보스코가 선물로 주신 세가지 성화의 비결을 마음 속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오라토리오 안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일 매일 충실히, 지속적으로, 일상적으로...
그 결과 도미니코 사비오는 오래 지나지 않아 꿈에 그리던 성인의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15세였던 1857년 3월 9일 병사(病死)한 그는, 1954년 6월 12일 비오 12세 교황님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한번은 세상을 떠난 도미니코 사비오가 돈보스코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보스코, 보시는 것처럼 저는 지금 행복이 가득한 곳에 서 있습니다.”
이어 도미니코 사비오는 돈보스코에게 장미, 바이올렛, 백합, 용담꽃, 밀이삭이 어우러진 풍성한 꽃다발을 한 아름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꽃다발을 신부님의 아들들에게 보여주세요. 장미는 사랑을, 바이올렛은 겸손을, 용담꽃은 회개를, 백합은 순결을, 밀이삭은 성체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답니다. 돈보스코, 그럼 안녕히!”
어떻게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는 세례를 통해 성화의 길로 초대받았습니다. 우리도 ‘죄 보다는 죽음을!’이란 굳은 각오를 세우면 좋겠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도 성인이 되고야 말겠다는 강한 결심을 세우면 좋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미국과 한국은 사목회의 임기와 학제가 다릅니다. 한국은 12월 말에 사목회의의 임기를 끝내고 새해가 시작되면 새롭게 시작합니다. 학년도 12월에 방학을 하고, 새해가 시작되면 새 학년이 시작됩니다. 미국은 6월에 사목회의 임기를 마치고 7월부터 새롭게 임기를 시작합니다. 여름 방학을 마치고 가을에 새로운 학년을 시작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듯이, 미국에 있으면 미국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임기를 마치는 사목회가 7월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사목회에 넘겨줄 ‘예산’을 책정하였습니다. 본당 예산의 30% 이상은 건물 유지와 보수를 위해서 책정되었습니다. 각 분과의 예산은 조금씩 늘기도 하고, 줄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 분과의 예산이 전년에 비해서 많이 늘었습니다. 전년에 비해서 70% 이상이 늘었습니다. 이유는 부주임 신부님이 한국에서 오면서 청소년 분과의 행사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팬데믹으로 멈추었던 청소년들의 ‘피정과 캠핑’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주임 신부님이 영어미사를 전담하면서 주일학교 학생들이 많이 늘었고, 청년들의 모임도 늘었습니다. 청년들이 성서공부를 하고, 성가대도 만들고, 성지순례를 가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청소년 분과를 위해서 신부님을 초대했으면서 청소년을 위한 예산을 줄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성전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가능하면 긴축 예산을 책정했다고 합니다. 교우들이 봉헌한 헌금과 교무금이니 당연히 아껴서 써야 합니다. 그런데 재정평의회를 담당하는 형제님이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매월 재정보고를 주보에 공지하는데 수입과 지출에서 지출이 많으면 걱정하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본당에 자산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지 문의한다고 합니다. 사목회에서 예산을 책정해서 올바르게 집행한다면, 각 분과는 충분한 예산을 책정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이 캠핑도 가고, 피정도 가면서 행사를 많이 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오히려 일을 하지 않으니까 매년 예산이 남는다고 합니다. 사목회에서 충분히 예산을 책정하면 재정평의회에서 검토하고 최종 예산을 본당 신부님께 보고 한다고 합니다. 국가의 예산도 비슷합니다. 경제가 어렵고, 자영업자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면 개인이 대출을 받는 것보다는 국가에서 추가 경정예산을 책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 대부분의 나라는 재정을 확대해서 서민들의 어려움을 도와주었습니다. 저도 뉴욕에 있을 때, 정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본당의 유지와 보수를 위한 예산은 점차 늘어날 것입니다. 본당 신축 후 10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본당 설립 50주년을 위한 준비에도 예산이 필요할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사목회에서 공동체를 위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책정하고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컵에 남은 물이 반이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반밖에 남지 않았구나!’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직도 반이나 남았구나!’ 신앙인은 어쩌면 발상의 전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살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소유와 풍요가 넘쳐나는 세상에 나눔과 희생의 가치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늘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도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늘 감사와 기쁨을 표현하면서도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주님께로 가야 할 운명입니다. 어떤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늘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시인은 봄이 되면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봄처럼 부지런 하라는 말, 봄처럼 꿈을 가지라는 말, 봄처럼 새로워지라는 말입니다. 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봄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봄처럼 부지런하다면, 우리가 봄처럼 꿈을 간직한다면, 우리가 봄처럼 늘 새로워진다면 거친 들판에서도, 고독과 절망 중에서도, 시련과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마음 가꿈>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7)
나날이
더 맑게 더 이상
맑을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곱게 더 이상
고울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넓게 더 이상
넓을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깊게 더 이상
깊을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높게 더 이상
높을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착하게 더 이상
착할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하얗게 더 이상
하얄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빛나게 더 이상
빛날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깨끗하게 더 이상
깨끗할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따뜻하게 더 이상
따뜻할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부드럽게 더 이상
부드러울 수 없을 때까지
나날이
더 아름답게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때까지
오늘의 성인
성 메토디오 (Methodius)
활동년도 : +847년
신분 : 주교
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같은 이름 : 메토디우스
시칠리아(Sicilia) 섬의 시라쿠사(Siracusa) 출신인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는 고향에서 공부한 뒤에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궁중 관리가 되었다. 이것은 그의 재능을 인정한 황제 미카엘 2세가 강력히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7년을 봉직한 그는 수도자가 되었고, 키오스(Chios) 섬에 수도원을 세웠으나 총대주교 니케포루스(Nicephorus)의 요청에 따라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와서 성상 파괴주의자들을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 그가 성상과 성물 공경의 합법성을 더욱 강력히 주장하자 그의 선임자인 니케포루스(Nicephorus)와 테오필루스 황제는 그를 고문하고 감옥으로 보냈다.
7년 동안 옥살이 하는 동안 황제가 죽고 그의 아내인 성녀 테오도라(Theodora, 2월 11일)가 섭정에 오르자 이번에는 정세가 일변하였다. 성녀 테오도라는 성상 공경을 반대한 모든 칙령을 폐기하고, 성 메토디우스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즉시 콘스탄티노플 시노드를 소집하고 성상에 관한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칙령을 재확인함으로써, 이번에는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11월 11일)와의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종증으로 운명하였다.
성 엘리사(Elisha)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연도 : +9세기경BC
같은이름 : 엘리세오, 엘리세우스
성 엘리사(Eliseus)는 엘리야(Elias)의 계승자로 이름의 뜻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셨다’라는 뜻이다. 엘리사는 대략 기원전 850-800년경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지야, 요람, 그리고 여호아스 재위 기간에 활동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수많은 기적을 행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구약성서에는 그에 관한 대목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신명기계 역사서인 열왕기 상하권에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가 큰 단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엘리야 이야기는 열왕기 상권 17-19장과 21장, 열왕기 하권 1-2장에, 엘리사 이야기는 열왕기 하권 2-9장에 나타나며 그의 죽음 이야기가 13장 14-21절에 수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엘리사 개인에 관한 설화적인 이야기들과 사마리아의 역사적인 격동과 연관되어 있는 사건들이다.
아벨 므홀라 출신으로 사밧의 아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1열왕 19,16-21). 열왕기에 등장하는 그에 관한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적에 대한 것이다. 또 각 이야기들은 서로 연관성을 갖지 않는 독립된 이야기로 나타나며, 엘리사의 생애에서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일어났는지 등의 시간적인 연계성도 표현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다만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나타나며 이 기적들은 특별하게 종교적이거나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또한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엘리사는 ‘예언자’라는 명칭과 함께 자주 ‘하느님의 사람’으로 지칭되었다. 그 시대의 역사적인 사실들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이야기들은 엘리사가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예언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엘리야와 함께 예언자로서의 한 모델을 제시한다. 엘리사는 야훼 신앙을 저버린 오므리 왕조를 거슬러 계속해서 투쟁을 하며 오므리 왕조의 멸망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예후를 세우고, 다마스쿠스의 하자엘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예후가 왕위에 오른 이후에는 엘리사의 사회적 역할의 장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바뀌어 나타나며, 그는 왕궁과 밀접히 연결되어 특별히 국방 부분에 많이 연계된다.
엘리사는 그 시대에 온전한 성실로 야훼 신앙을 지킨 하느님의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가 행한 것으로 나타나는 놀라운 일들은 그의 확신 있는 행동의 능력을 보여 준다. 거칠고 단호한 몇 개의 설화는 야훼 신앙이 위기에 처해 있고 이스라엘 역시 대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아주 힘든 시기에 그를 휩싸고 있던 신념과 확신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신명기계 역사 속에서 민간설화에서 기억하는 대로 크나큰 능력을 가지고 초기 이스라엘에서 혼합주의 경신례의 위협을 거슬러 야훼 신앙을 고수하며 오로지 야훼만을 신봉하던 사람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엘리사는 죽었을 때도 살아 있을 때처럼 야훼의 생명을 전하는 도구로 묘사되었다.
신약에서도 구약의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던 엘리사가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은 나자렛의 회당에서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낳게 한 이야기를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를 도운 이야기와 함께 인용하면서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의 정당성을 설명하였다(루가 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