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28장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기록입니다. 27장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으시던 예수님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1 새벽이 되어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함께 모여 예수를 죽일 계획을 짠 후에
2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점령지에 어느 정도 자치권을 인정해주었고 재판도 자치적으로 할 수 있도록 허락했지만 사형에 대한 판결권과 집행권만은 로마의 직접적인 관할 아래 두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사형 판결이 내려지도록 음모를 꾸미고 총독 빌라도에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서는 빌라도를 총독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빌라도는 총독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시 유다지방은 시리아 총독의 관할지였는데, 본디오 빌라도는 유다지방을 다스리도록 시리아 총독이 파견한 그의 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돈을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받았던 돈을 성전에 던져놓고 스스로 목을 매 자결했다는 기록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11~14절을 보겠습니다.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서시니, 총독은 예수께 물어 말하기를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하고 말씀하셨다.
12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고발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3 그 때에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들이 저렇게 여러 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14 예수께서는 그에게 단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총독은 매우 이상히 여겼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다는 것은, 유대지도자들이 고발한 내용의 핵심이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을 자처했다는 것이고, 빌라도는 그것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임을 나타냅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로 인정된다면 예수님은 반란죄의 수장으로 사형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본문의 이 기록은, 유대민족이 그토록 오래 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아, 즉 다윗의 후손이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실 이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핵심 내용만 기록하고 그 외 부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침묵하셨다고 기록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15~26절을 보겠습니다.
15 명절 때마다 총독이 무리가 원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관례가 있었다.
16 그런데 그 때에 바라바라고 하는 소문 난 죄수가 있었다.
17 무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누구를 놓아 주기를 바라오? 바라바 예수요?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요?"
18 빌라도는, 그들이 시기하여 예수를 넘겨 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19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서 전하기를 "당신은 그 옳은 사람에게 아무 관여도 하지 마십시오. 지난 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몹시 괴로움을 받았으니까요" 하였다.
20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무리를 구슬러서,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하고, 예수를 죽이라고 요청하게 하였다.
21 총독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 두 사람 가운데서, 누구를 놓아 주기를 바라오?" 그들은 "바라바요" 하고 말하였다.
22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를,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그들은 모두 말하기를 "그는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하였다.
23 빌라도가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하고 말하니, 사람들은 더욱 큰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그는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하였다.
24 빌라도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과 또 민란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고 말하기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알아서 하시오" 하였다.
25 그러자 온 백성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 사람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아올 것이오."
26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뒤에,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넘겨 주었다.
본문에 예수님 대신 풀려난 죄수의 이름이 ‘바라바 예수’라고 나옵니다.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였기에 그 죄수도 예수님과 같은 이름을 가진 것뿐입니다. 바라바에게서 의미를 찾는다면, 그가 단순한 좀도둑이나 강도가 아니라 유대의 독립투사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십자가는 사형제도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극형이었기에 로마에 저항한 정치범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십자가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중들이 바라바의 석방을 아무 거리낌 없이 요구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사형 판결을 내릴만한 죄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그러나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결국 사형판결을 내립니다. 이렇게 해서 사형 판결을 받은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고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 라고 적은 죄패가 붙여집니다. 이어지는 본문 38~44절을 보겠습니다.
38 그 때에 강도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달렸다.
3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며
40 말하기를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나 구원하여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하였다.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
43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까,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시겠지."
44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욕하였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에 대한 세간의 여러 해석을 압축해서 담아내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 그렇게 나약하게 죽어간 예수가 어떻게 메시아일 수 있는가? 정말로 메시아였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지 않았겠는가?’ 라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이렇게 부활하셨다.’ 라고 글을 이어가면서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달렸다는 두 강도에 대한 기록이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들은 독립투사들이었을 것이라고 현대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을 강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대 독립운동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로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초기 예수공동체의 위기의식이 담겨있는 것일까요? 이어지는 본문 45~50절을 보겠습니다.
45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6 세 시쯤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하셨다.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
47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이 이 말을 듣고서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셔, 갈대에 꿰어서, 그에게 마시게 하였다.
49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하여 주나 두고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50 예수께서는 다시 큰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예수께서 ‘왜 나를 버리셨냐’고 하나님께 호소하십니다. 26장에 기록된 성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따라 주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서 왜 나를 버리셨냐고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으십니다.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서 그러셨을까요?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은, 억울한 누명 쓰지 말고 탈출하시라는 제자들의 말을 물리치고 ‘악법도 법’이라며 스스로 독배를 마셨다는 소크라테스보다 한 수 아래였던 것일까요? 아니면 이런 기록들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복음서 기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이어지는 본문 51~54절을 보겠습니다.
51 그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52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
53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54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는 사람들이, 지진과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였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자 성전 휘장이 찢어졌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율법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해석합니다. 그리고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이 살아났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문맥상으로 보면 예수님보다 성도들이 먼저 부활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게 사실이라고 강조하기 위해, 복음서 기자는 그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활을 주제로 설교하는 목사들 중에 이 본문을 인용하는 설교자를 보셨는지요?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목사들 중에는 성서무오설을 믿는 보수적인 목사가 그렇지 않은 목사들보다 훨씬 많은데, 왜 이 본문은 거의 인용하지 않는 것일까요? 복음서가 기록된 서기 70~80년대에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얘기가 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 본문은 성경이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 그래서 시대의 한계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성서가 스스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날이 저물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달라고 요청해서 허락을 받고, 시신을 가져다가 깨끗한 삼베로 싸고 자기 소유의 무덤에 모신 다음, 무덤 문에 큰 돌을 굴려 놓고 갔다는 기록이 이어집니다. 다음날에는 유대지도자들이 빌라도에게 가서, 세상을 미혹하던 그 사람이 사흘 뒤에 살아난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는 무덤을 단단히 지켜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경비병들이 돌을 봉인하고 무덤을 단단히 지켰다는 기록으로 마태복음 27장은 끝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