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계속, 주룩주룩 내리는데, 모두들 건강하시지요?
윤영민(오솔길)입니다.
멘토링 준비하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공부를 시킨 이유를 알게되었고, 한성 백제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공부한 내용 올려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고구려와 한성 백제의 항쟁 살펴보기-
제가 공부한 부분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한성 백제와 고구려의 항쟁’ 부분입니다. 잘 아시는 부분을 설명드리려니 좀 지루하실 수도 있을 텐데, 정리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구려는 BC 37년에 세워져 668년에 멸망했고, 백제는 BC 18년에 세워져 AD 660년에 멸망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성 백제는 493년 동안 유지됨 BC18-475)
이 두 나라의 설립과 멸망이 비슷한 시기였으므로, 한반도에서 특히 한강을 차지하려는 두 나라는, 많은 전쟁을 치룹니다. 원래 같은 민족이었던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는 낙랑군과 대방군이 있었으나, 고구려 15대 미천왕이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하였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의 사이가 나빠졌던 것은 백제 9대 책계왕 때, 대방군의 사위였던 책계왕이 고구려 군을 물리치자, 고구려와 적대관계가 되었고, 고구려 군의 침입에 대비하여 아단성(지금의 아차산성)을 수리하고 정비하였던 것입니다.
고구려와 백제 전쟁의 첫 번째 승리자는 백제였습니다. 백제 13대 근초고왕은 마한을 병합시키고 북진 정책을 실시합니다. 치양을 공격하여 항복을 시키고, 마침내 371년 평양성에서, 고구려 16대 고국원왕은 화살을 맞고 전사합니다. 백제가 승리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백제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백제는 요서 지방과 산동 지방과 일본의 규슈 지방까지 지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근초고왕부터 깃발을 황색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불과 25년뒤인 396년,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백제를 침공하여, 한강 이북을 점령하고 백제의 아신왕에게 항복을 받습니다. 이제부터 고구려의 승리가 시작됩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보신 분은 기억이 잘 나실 것입니다. 아신왕에게 항복을 받은 광개토왕은 태자를 데리고 고구려로 돌아갑니다.
세월이 흘러 고구려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은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천도하면서 남하 정책을 시작합니다. 그렇다 해서 쉽게 백제를 칠 여건은 아니었기에, 기회를 보고 있던 중, 백제 개로왕이 중국 북위에 국서를 보내 고구려 공격을 요청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북위는 고구려를 적대시할 수 없어, 고구려와의 관계를 더 강화시키고, 고구려는 장수왕이 승려 ‘도림’을 통한 첩보 작전을 펼칩니다. 고구려로 망명한 듯 가장해 백제 개로왕에게 접근한 승려 도림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권유하여, 실시시켜서 국가 재정은 고갈되고 민심이 이반되는 등 국력이 약화되자 장수왕에게 침략할 시기임을 알립니다. 이에 장수왕은 친히 병사 3만여 명을 이끌고 군사 공격을 실시합니다.
475년, 장수왕은 친히 3만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군사 공격을 실시합니다. 평양에서 개성을 거쳐, 임진강을 건너 서울로 들어와 아차산성에 진을 칩니다. 고구려군이 백제 북성을 7일간의 공격으로 함락시키고, 남성으로 이동해 공격하자 개로왕이 성을 나와 도망치려 합니다. 이때 원래 백제의 신하였다가 고구려로 망명하여 왕의 얼굴을 알고 있는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이 개로왕을 잡아 아차산성으로 끌려가 죽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와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풍납토성이 북성이고 몽촌토성이 남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백제 첫 왕도였던 한성은 무너지고 고구려군은 인질 8000명을 끌고 평양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신라로 구원 요청을 하러 갔던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은 잿더미가 된 위례성에서 부랴부랴 즉위식을 한 후 웅진으로 천도하여 이제 찬란했던 한성 백제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웅진 백제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후 한강 유역은 신라와 백제가 나제 동맹을 맺어 다시 찾게 되었지만, 신라의 배신으로 신라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자 했던 고구려, 백제, 신라를 훑어보면서, 그들의 전투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찬란했던 한성 백제도 그리워집니다. 알려지기를 고대하며 땅 속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렸던 그들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참고로 고구려와 백제왕 연표를 첨부합니다. 고구려와 한성 백제의 항쟁을 이해하기 위해서 연표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구려 왕(열제)계표(BC37∼서기668)-
시조 동명성왕(BC 37-BC 19) 해모수와 유화 고주몽, 다물도
-> 2대 유리왕(BC 19-AD 18) 유리의 지혜, 황조가, 태자 해명과 황룡왕
-> 3대 대무신왕 (18-44) 부여 왕 대소의 죽음, 호동 왕자와 낙랑공주
-> 4대 민중왕(44-48)
-> 5대 모본왕(48-53)
-> 6대 태조왕(53-146) 아우 수성과 백고, 수성의 반심
-> 7대 차대왕 (146-165) 재상 명림답부의 모반
-> 8대 신대왕(165-179) 신대왕의 선정, 명립답부의 승리
-> 9대 고국천왕(179-197) 어비류와 좌가려의 반란, 을파소 등용, 진대법 실시
-> 10대 산상왕 (197-227) 형제(발기, 연우, 계수)간의 왕위다툼
-> 11대 동천왕(227-248)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 밀우와 유유의 충성심
-> 12대 중천왕(248-270)
-> 13대 서천왕 (270-292) 동생 안국군 달고의 숙신족 정벌
-> 14대 봉상왕(292-300) 국상 창조리의 충언과 반역
-> 15대 미천왕(300-331) 미천왕 을불의 고행, 낙랑군과 대방군 축출
-> 16대 고국원왕(331-371) 연나라 모용 황의 침략,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
-> 17대 소수림왕(371-384) 불교와 승려 순도, 태학 설립
-> 18대 고국양왕(384-391) 신라와 수교
-> 19대 광개토대왕(391-413) 영토확장
-> 20대 장수왕(413-491) 북연 풍홍 정벌, 백제 개로왕을 죽임
-> 21대 문자명왕 (491-519) 부여합병
-> 22대 안장왕(519-531)
-> 23대 안원왕 (531-545)
-> 24대 양원왕(545-559) 장안성 축조
-> 25대 평원왕(559-590) 장안성 천도,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 26대 영양왕(590-618) 수양제의 침입,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우중문, 우문술의 패퇴)
-> 27대 영류왕(618-642) 천리장성 축조, 연개소문의 반역
-> 28대 보장왕(642-668) 당태종의 침입, 안시성 양만춘의 선전, 연개소문의 죽음과 그의 아들들의 다툼. 고구려 패망
-백제 왕(천황)계표(BC18 ~ AD 660년)-
시조 온조왕(BC 18-AD 28) 고주몽-온조-비류, 마한 정벌
-> 2대 다루왕(28-77) 말갈과의 전투
-> 3대 기루왕(77-128) 봄과 여름에 심한 가뭄
-> 4대 개루왕(128-166) 아찬 길선의 반란
-> 5대 초고왕(166-214) 신라와의 전투
-> 6대 구수왕(214-234) 말갈과 신라와의 전투
-> 7대 사반왕 (234)
-> 8대 고이왕(234-286) 관구검의 고구려 침입시 낙랑과 전투
-> 9대 책계왕(286-298) 대방과 연합으로 고구려에 대항, 낙랑 침입시 전사
-> 10대 분서왕(298-304) 낙랑과 전투 및 낙랑의 자각에 암살당함
-> 11대 비류왕(304-344) 내신좌평 우복 북한성에서 반란
-> 12대 계왕(344-346)
-> 13대 근초고왕(346-375) 고구려왕을 전사시킴, 박사 고흥의 서기 편찬
-> 14대 근구수왕(375-384) 태자의 말발굽 자취
-> 15대 침류왕(384-385) 진나라 호승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전래
-> 16대 진사왕(385-392) 고구려 광개토왕 침입
-> 17대 아신왕(392-405) 왜국과 우호
-> 18대 전지왕(405-420)
-> 19대 구이신왕(420-427)
-> 20대 비유왕(427-455) 신라와 우호적인 관계형성
-> 21대 개로왕(455-475) 고구려 장수왕에게 전사
-> 22대 문주왕(475-477) 웅진 천도,탐라국의 조공, 병관좌평 해구에 의해 시해당함
-> 23대 삼근왕(477-479) 해구, 연신의 반란
-> 24대 동성왕(479-501) 신라와 혼인정책, 백가에게 시해당함
-> 25대 무령왕(501-523) 좌평 백가의 반란
-> 26대 성왕 (523-554) 고구려와 전투, 신라와의 화친과 전투
-> 27대 위덕왕(554-598) 신라, 고구려와 전투
-> 28대 혜왕(598-599)
-> 29대 법왕(599-600) 살생금지등 불교의 교리를 충실히 지킴
-> 30대 무왕(600-641) 신라 장군 무은과 귀산의 패배, 왕흥사 완성
-> 31대 의자왕(641-660) 윤충과 품석, 유신과 의직, 성충의 간언, 멸망의 징조, 방어에 대한 신하들의 의견이 분분, 계백의 황 산벌 전투, 나당연합군에 멸망
첫댓글 저는 워낙 기반이 약해서 좋은 자료가 되겠구요. 선생님 옆에 있으면 자연 공부가 되어지지 싶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침착하고 여유있는 모습과 성실하게 준비하신 과정이 잘 보였습니다. 변함없이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참 좋으셨어요 많은 공부가 되었답니다.감사*^^*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 모습에 저도 고무되요. 계속 함께 하며 많이 이끌어주세요~^^
대부분 알고있는 내용이지만, 첨부한 연표가 고구려와 백제의 편년사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에 스크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