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첫눈
정 상 호
날씬한 하이힐과 커피색 스타킹이 하얀 눈과 입맞춤하며 향기를 밟고 걸어간다. 언제 보아도 미니스커트와 스타킹 그리고 하이힐은 궁합이 잘 맞는다. 피자에 콜라 같다. 오늘따라 그들이 한결 눈부시다. 어린 학생들은 눈을 뿌리고 뭉쳐서 던지며 즐거워한다. 나무 가지에 앉았던 눈은 바람을 타고 춤추듯 날아와 목덜미와 얼굴을 어루만진다.
올해 첫눈은 말썽꾸러기 지각생이다. 마지막 달인 12월하고도 8일에 그것도 월요일에 첫눈으로서는 제법 많이 내렸다. 출근길 교통정체와 건설교통부, 서울시 그리고 경기도의 눈치우기 작업 관련 뉴스가 계속된다. 그러나 오늘은 고생하며 출근할 필요가 없다. 교육원의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모처럼 쉬는 날이다. 편한 잠바에 운동화. 그저 발 길 닫는 대로 눈 쌓인 아침거리를 걷기로 하였다.
눈은 대기 속의 수증기가 얼어붙어 미세한 얼음의 결정체로 자라난 것이다. 결정체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기온과 수분의 양에 따라 싸락눈, 진눈깨비, 우박, 함박눈 따위로 모양이 달라진다. 그 중에서 첫눈으로는 하늘에서 내리는 모습이 소담스럽고 한복 치맛자락처럼 우아한 함박눈이 제격이다. 눈의 결정은 매우 섬세하여 무수히 많은 굴절면을 통해 빛이 반사되기 때문에 하얗게 보이고 눈이 부시다. 또 쌓인 눈과 눈 사이의 틈을 통해 일정한 주파수 이상의 소리를 흡수해버리는 고성능의 흡음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똑같은 물의 성분인데도 비와 눈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 비가 대중적이고 잡초를 연상하게 한다면 눈은 고고한 기품이 흐르는 백합과 같아 사색에 잠기게 한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케네스 리브레히트 교수가 눈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성한 문자’이며 ‘우주를 품은 작은 보석’이라고 예찬할 만 하다.
나에게 있어 첫눈의 기억은 어린 시절 마을 논 밭길에서 맞이하던 첫눈에서 시작된다. 함박눈이 하얗게 하늘과 땅을 뒤덮을 때 그것은 그 동안 보아오던 동네가 아니었다. 신비하고 영원할 것 같은 전혀 다른 꿈의 세계였다. 그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서 있는 위치를 잊은 채 그대로 한 점 눈이 되어 파묻혀 있었다. 그때 온 몸을 감싸던 포근함과 조용함 그리고 장엄함이 어머니의 품처럼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정호승 시인이 첫눈 오는 날에 새들을 하객으로 모셔놓고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한 느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천당 위에 있다는 분당의 첫눈 모습은 그렇게 가슴을 뛰게 하는 정취와는 거리가 있다. 네모난 아파트와 사무실 빌딩들은 정겨운 눈이 귀찮기라도 하듯 날쌔게 털어 버리고 건조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갈 길이 바쁜 차들은 시간에 쫓겨 내달리기 바쁘다.
하기야 달라진 것은 중생 세계만이 아니다. 대자연도 인간의 탐욕에 지쳤는지 점점 첫눈을 늦게 내려 준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빠르면 시월에 왔는데 지금은 대부분 십이월이 되어서야 눈다운 눈을 구경할 수 있다. 동장군도 눈에 띄게 약해진 것 같다. 지구 온난화 탓인가 보다. 이러다가 먼 훗날 후손들은 눈을 아예 보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군데군데 하얀 눈이 탐스럽게 쌓여 깊은 발자국을 만든다. 눈이 모든 소음과 더러움을 빨아들여 도시 전체가 고요하고 깨끗하게 정화된 것 같다. 모든 도시가 1년 365일 항상 이렇게 아늑하고 평화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몇 은행과 서점에 들어서니 한가롭기만 하다. 여느 때 같으면 이 사람 저 사람에 부딪힐 시간인 데 편하게 볼일을 보았다. 푸근한 포만감이 전신을 감싸온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난 잠깐의 여유가 꿀처럼 달콤하다.
길가에 붕어빵 장사가 눈에 띈다. 평소에 나는 붕어빵을 무척 좋아한다. 만약 죽을 때 아쉬운 것을 들라 하면 붕어빵을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도 틀림없이 꼽을 것이다. 반갑게 한 봉지를 사서 손에 집히는 녀석부터 입에 물었다. 붕어의 딱딱한 지느러미와 부드러운 살 그리고 뱃속을 꽉 채운 단팟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한 조사에 의하면 20-40대 직장인이 첫눈 오는 날 먹고 싶은 음식으로 남자는 삼겹살에 소주 그리고 호빵을 여자는 스테이크와 생크림케익을 들었다는 데 그들이 오늘 같은 붕어빵 맛을 본다면 아마도 생각이 바뀔 것이다.
어찌 하였든 붕어빵은 값이 싸고 맛도 대중성이 있어 군고구마나 햄버거, 오뎅과 함께 서민들의 친숙한 먹거리다. 세상에 나온 것은 일제 식민지배 시대이지만, 특히 불황 때 인기가 많아 한국전쟁 직후와 외환위기 무렵에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런데 요즈음 붕어빵 기계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전국에 청년실업자가 40만에 이르는 요즈음 특히 젊은 층에서 붕어빵 기계를 사들여 거리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10만원에 팔리던 중고 붕어빵 굽는 기계의 값이 거의 두 배로 뛸 만큼 인기가 빵빵하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붕어빵이 혀의 감각을 만족시키는 데 불과하지만 그들에게는 생존 그 자체인 것이다. 아마도 첫눈이 오면 하나라도 더 팔리리라는 기대를 안고 열심히 붕어 형틀을 뒤집고 있으리라.
20대 초반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할 때였다. 그 무렵 첫눈은 나에게 만만치 않는 고통과 인내를 선물하였다. 도서관 창문 밖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면서 따끈한 데이트나 술 한잔의 유혹을 견뎌내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었다. 그 때 첫눈은 왜 또 그리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춤을 추면서 옷을 벗어대던지. 그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기에 뛰쳐나가려는 마음을 빗장으로 닫아걸곤 하였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자아실현을 위한 도전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오륙도, 사오정,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건달)이 되어 마음이 내려앉은 사람들에게 첫눈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 그들은 무슨 힘으로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