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아스테어, 오드리 헵번 주연 1957년작 '화니 페이스')
어릴적에 파리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두 편 있었는데 모두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였다.
예술적이면서도 남성미가 넘치는 춤을 선보이던 '진 켈리'가 주연한 1951년작 '파리의 미국인' 과
날씬한 몸매에 사교댄스의 달인이라 할만한 프레드 아스테어,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1957년작 '화니 페이스'가 바로 그 작품들이다.
1930~1950년대에 걸쳐 뮤지컬 장르는 브로드웨이 못지 않게 할리우드에서 영화로도 인기를 끌었는데 그 중심에 바로 앞서 말한 두 남자...
양대거목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차후에 다시 한 번 다루기로 하고 오늘의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오늘의 포스팅 대상은 파리 하면 생각나는 두 작품 중 오늘 소개할 이 영화는 오드리 헵번의 매력이 만발하는 '화니 페이스' 이다.
당시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예술과 패션의 선두주자 프랑스의 이미지가 그대로 담겨있는 화보집같은 내용이랄까, 시종일관 화려한 색감의의상과 아름다운 파리를 배경으로 잡고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데다 연기자들의 연기는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뱉는 대사...
키스신마저도 진하고 애절한 느낌이라기보다 소녀의 꿈과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 1899년생이었던 프레드 아스테어의 나이는 이미 58세... 상대역인 오드리 헵번의 나이는 28세였으니
말그대로 부녀지간이 더 어울렸을 영화속 커플이다. 하지만, 역시나 프레드 아스테어는 진저 로저스와 함께 했던
전성기처럼은 아니지만 노익장을 과시하며 특유의 경쾌한 춤을 보여줬고 오드리 헵번을 빛내주는 역할을 잘 소화한 느낌이 들었다.
("잡지란 인간과 같아야 해. 쓸모가 있어야지.")
화면을 총천연색 컬러로 채우고서 오프닝이 끝난 후 등장하는 중년여인... 도도하고 당당한 그녀는 '퀄리티' 의 편집장이었다.
이 장면은 작년인가에 개봉했던 영화속 메릴스트립이나 또 그 이전 자신만만한 캐리어 우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게다가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런 자신감 넘치는 캐리어우먼은 담배를 피운다(남성의 전유물이자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던 당시 담배의 이미지에선 이런 모습들이 여성해방을 상징하는듯 보인다).
무언가 획기적인 기사와 모델이 필요했던 그녀는 직원들에게 말한다.
"잡지란 인간과 같아야 해. 쓸모가 있어야지."
패션은 세월이 흐르면 돌고 도는 유행이라고 했던가? 작품 속 편집장의 대사가 인상깊다.
저 잡지란 말을 정보라는 말로 바꾸면 우리의 현실 속에서 또 그렇게 절실하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정보의 홍수속에 빠져살지만 정작 쓸모있는 정보란 극히 드문 오늘의 현실 말이다.
(핑크... 한 번의 키스가 이런 느낌이라니...)
결국 핑크를 유행할 컬러로 보고 모델과 상품을 맞춰가던 편집장은 모델 문제에서 벽에 부딪히고 의도하는 틀에 박힌 아름다움이 아닌 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여성을 찾다가 사진촬영기사인 프레드 아스테어(딕 에이버리役)의 추천으로 서점에서 근무하는
오드리 헵번(존 스탁턴役 - 80~90년대 NBA 유타재즈의 전설적인 포인트가드와 이름이 같다^^;;; )을 만나게 된다.
조금은 새침떼기인 그녀.
그와 인식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기습적인 첫키스를 나누는 두 주인공...
이건 뭐 운명의 사랑이니 그런 느낌이 아니라 마치 부녀지간에 나누는 키스의 느낌이었는데 또 오드리 헵번은 키스가 끝나고
(우스꽝스러운 얼굴? 밝고 재미있는 얼굴...오드리 헵번)
지금은 아름다운 여배우의 대명사로 꼽히는 전설적인 세기의 스타 오드리 헵번이지만
그녀 자신이 "나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영화배우로 성공할 줄 몰랐어요." 라고 직접 말했을 정도로
당시의 미의 기준에서 봤을때 그녀는 고전적인 미인이 아니었다. 너무 마른 체형과 고양이같은 외모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이 작품속에서 프레드 아스테어가 부르는 'Funny Face' 노랫말처럼 밝고 재미있으며 피터팬같은 그녀의 얼굴은 매력 그 자체.
그녀는 '로마의 휴일'로 패션아이콘으로 우뚝 선 이후 그 명성을 잃지 않았다.
또 이 작품이 재미있는 요소는 프레드 아스테어 역시 데뷔 당시 그렇게 주목받는 외모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가 무명시절 스크린 테스트를 받았을때 들었던 평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연기도 자신 없고 노래도 자신 없습니다. 춤은 조금 합니다'"
당시 뮤지컬 전성시대의 배우지망생이었던 대머리에 마른 자신의 외모로 스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한 그였지만,
타고난 외모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를 장점으로 살리고 최고의 재능과 노력으로 살을 보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두 명의 대스타가
이 작품에서 만난 것이다.
(완벽한 프랑스 파리 관광 홍보대사들~)
영화를 보다가 특히 이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드는 생각이 있다.
아마 프랑스가 영국처럼 입헌군주제였다면 국왕이나 여왕이 이 배우들을 베르사이유궁으로 불러
"그대들을 파리 홍보대사로 임명하노라~"
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완벽한 프랑스 파리 관광홍보가 또 있겠는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예술과 쇼핑의 상징인 파리를 단 몇 장면으로 축약한 연출에 찬사를~
(언제나 그렇듯 사랑에 빠지면 모든게 아름답다)
이 작품을 보면 애시당초 나이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이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은 없다.
첫사랑에 빠진듯이 그렇게 프레드 아스테어에게 빠져가는 오드리 헵번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반대로 캐서린 헵번과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이렇게 엮는다면 과연 이런 자연스런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러나 저러나 연상연하커플이 자연스러워진건 불과 몇년되지 않은 현실에서 또 그렇게 지극히 남자중심의 연애관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걸 생각해본다.
(순탄치만은 않은 전개...)
그렇다고 명색이 로맨스물이라 할 만한 이 영화가 사랑의 삼각관계 하나쯤 없다면 이상했던지 이 두 사람 사이에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하는데 바로 지적인 매력이 넘치는 교수... 지식의 허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 영화에선 지식인의 이미지는 오드리 헵번의
순수함을 빛내는 도구 그 자체로 소모될 뿐인지라 이 사랑의 훼방꾼 역시 어떤 운명에 놓일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만 하다.
오드리 헵번을 찾아다니며 몰고 다니는 저 소형차가 정말 기가 막히던데... 운전석이 보이는 정면 도어가 열리고 닫힌다.
언젠가 한 번 실물을 보기도 했었는데...
오드리 헵번의 매력이 절정이던 시절에 찍은 화보집을 보는 듯한 추억의 작품
이렇듯 이 작품은 로맨스와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 그리고 총천연색의 화려한 컬러와 당시로선 최첨단이었을 패션이 어우러진 잘 만들어진 화보집이자 아름다운 음악과 춤이 함께 한 저물어가던 뮤지컬 영화시대의 수작이자 오드리 헵번의 매력이 절정이던 시절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