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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비울 때 이웃에 키 맡기고 아이들 돌봐줘… 안전 걱정 ‘NO’ <신동리지 ⑫ 고색동 연안아파트> “CCTV가 왜 필요해요” | ||||||||||||||||||
옆집 밥 숟가락 숫자까지 훤해… 진짜 가족같은 ‘이웃사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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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TV 속 한 광고에서는 밤길에 혼자 걷는 여자의 뒤를 쫓는 수상한 남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남자의 추격을 눈치 챈 여자의 발걸음은 점차 빨라졌고 아파트 복도까지 따라 들어온 남자에 놀라 급하게 초인종을 누르던 여자. 여자는 다급한 마음에 현관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 재촉했고 여자를 따라온 남자는 점차 여자에게 다가오더니 여자 옆집의 초인종을 누르며 웃으며 말했다. “아빠야~!” 수상한 남자는 옆집 사는 남자였고 아파트 이웃간의 극심한 단절을 보여준 웃지 못할 공익 캠페인이었다. 요즘 같이 각종 범죄와 불특정 다수를 표적으로 한 묻지마 살인까지 기승을 부르는 때 위 광고 내용은 지금도 충분히 공포다. 수원역 새평지하차도에서 평동 방향으로 약 2㎞을 지나 고색동에 이르면 오른편에 있는 5층짜리 작은 아파트 단지 연안아파트. 이 아파트 주민들은 이웃 얼굴을 모르는 일은 절대로 상상할 수도 없다고 한다. 연안 아파트는 1986년 전 부지 1만1천699㎡ 땅에 5층짜리 3개 동, 전 세대가 72.6㎡로 190세대가 입주를 시작했다. 1980년대 서수원 일대에 처음 생긴 아파트인 만큼 건축 당시 부유층을 대상으로 분양했기 때문에 내실 있고 튼튼하게 지었다고 한다.
깨끗하고 편익 시설 잘 갖추고, 각종 친목 모임과 취미 동호회까지 있다는 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부럽지 않다는 연안 아파트 주민들은 작은 아파트는 더 큰 매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거주민 주 연령층은 결혼한 지 10년 내외 젊은 부부들과 그들의 자녀들 그리고 장성한 자녀들을 모두 결혼시킨 노부부들이다. 50년이 가까운 세대 간 차이지만 핵가족화 된 젊은 엄마들은 작은 아파트의 첫 번째 매력으로 친정어머니 같은 동네 할머니들을 꼽는다. 4살 난 딸을 놀이터에 데리고 나온 만삭의 김수정(34) 씨는 “애 낳고 친정 엄마가 산후 조리랑 애기 때문에 3개월 정도 계셨는데 친정 엄마와 친해진 옆 동 할머니가 친정 엄마가 가신 후에도 할머니가 계속 큰 애를 봐주셨어요 반찬도 해주시고요”라고 말한다. 주민자치위원회 서혜영 씨는 “집값이 저렴해서 부모들이 결혼하는 자녀들에게 사준다. 그래서 신혼부부들도 많다. 거주민 80%가 자기 집이라 전세 2, 3년 단위로 사는 것보다 5년 이상 살면서 기반을 닦아가는 편”이라고 전했다. ● “아이들이 안전해요” 연안 아파트는 세 개의 동이 가운데 주차장과 놀이터를 감싸고 있다. 입구에는 관리소사무실이 있다. 서씨는 낯선 사람이 단지 내에 들어오면 바로 알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요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잖아요. CCTV가 아무리 많으면 뭐해요. 사람만 하겠어요?” 4살 6살 난 두 아이를 키우는 임씨(34)는 놀이터 한 쪽에 있는 평상에 매일 같이 앉아 계신 동네 할머니들 덕에 마음이 놓인다고 전했다. 박 할머니는 “쟤들이 다 내 손주 같죠. 유괴요? 그런 걸 내 눈 앞에서 어떻게 해요? 쟤가 몇 동 몇 호 사는지, 쟤들 부모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다 아는데”라며 웃는다. 놀이터에 나와 있는 젊은 엄마들이 하나같이 외치는 말도 아이를 키우기 정말 좋다는 것이다. “놀이터가 가까이 있잖아요. 집에서 창문만 열면 놀이터에 있는 애가 보여요.” 또한 연안 아파트는 인근 1㎞ 안에 고색초등학교, 고현초등학교, 고색중학교가 있어 아이들이 모두 걸어서 10분 이내에 학교에 다니고 있어 정말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이었다.
연안 아파트는 다른 아파트들과 달리 아파트 부녀회, 관리소장, 노인회가 없다. 하지만 관리소 사무실을 지키는 주민 자치회 서씨는 “부녀회도 노인회도 관리소장도 원래는 있었지만 모두 없어졌다. 공식적인 모임이 없어도 우리는 사는데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우리가 분리수거를 안하고 노인공경을 안하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 살림을 안하는 것도 아니다”고 전했다. 연안 아파트의 관리소사무실은 다른 아파트와 달리 특정 볼일이 있는 사람만 찾는 곳이 아니다. 동네 주민들은 빈집 키를 맡기기도 하고 가끔은 볼일 보러 나간다고 아기를 맡기러 오기도 한다. 하다못해 놀이터에서 뛰어 놀던 5~6살 짜리 꼬마는 물 한 잔만 달라고 관리소사무실 문을 열었다. 서수원 일대가 아직은 큰 주택단지가 아니지만 대형 마트도 제법 있다. 아이 학원버스를 기다리던 박씨(37)는 “고색초등학교 육교 앞에 큰 마트가 생겼다. 차로 10분 거리에 농협 하나로 마트도 있고 이마트도 있어서 장보기에도 좋다”고 전했다. 교통도 좋은 편이다. 77번, 700번, 400번, 51번, 32번, 33번 등 수원역과 남문등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다양하게 있고 3000번 등 강남가는 버스도 이쪽에서 출발한다. 정주 엄마는 “공부방이니, 동호회니 이런 거 없어도 애어른 할 거 없이 단지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고, 더우면 평상에 나와 앉아 수다 떨고, 아이들 안전하고 교통도 나쁘지 않고 이만하면 살기 좋은 아파트 아닌가요?”라며 웃었다. 연안 아파트는 서수원 일대에 개발 열풍으로 작년 재건축을 추진했다가 건설사 선정, 고도 제한 등의 문제로 현재 잠시 보류 중이다. 서씨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아파트 살림을 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예요.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이 당사자가 내 마을 일을 돌보고 있기 때문에 지원금 유치나 행정기관에 요구사항 건의가 더 적극적이죠. 덕분에 건축당시 비행장 때문에 고도 제한으로 5층으로 제한했던 건축허가를 높이 40m로 완화돼 재건축시 15층까지 올릴 수 있게 됐어요. 점차 이 부근이 개발되면 더 살기 좋아지겠죠?”라고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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