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에 과연 철학이 있었을까? No. 그것은 철학 이전의 철학인 자연철학론
철학의 전제조건은? 개인주의
아시아의 정신적 DNA에는 개인주의가 전혀 없다.
있다면 '사익적 이기주의'일 뿐이다.
(동아시아의 철학적 사상은 선진자학(先秦子學)에서 이미 다 컸다. 한(漢)의 동중서(董仲舒)에 의하여 성장판은 수명을 다 했다.)
'철학'이라는 '구슬'은 신학과 함께 유럽에서 건너 온 것이다. 마치 서양의 의술처럼.
물론 아시아에도 철학적 요소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철학적이었지 철학 자체는 아니었다.
오늘날은 제법 모양을 갖추어 철학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도 서양의 철학모습을 본닫 것에 불과하다.
여전히 겉은 철학적일지는 몰라도 속은 철학이 아니다.
산술학이 수학처럼보여도 수학이 아니었듯이, 서구의 철학과 비교해보니 그냥 철학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이다.
아시아의 사상가 철인적 고수들은 서양의 철학을 보고는 당황하였다.
우리도 있었다고 아직도 변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종류가 다르다. 아니, 차원이 다르다. !!??
폭죽 앞의 다이너마이트이다.
간혹 TV 등에서 중국철학을 파는 약장사 고수들이 설친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누추하고 빈곤한 거지들이 나도 너희들처럼 돈이 많은 부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우기 일부는 말솜씨가 너무나 훌륭할 정도로 정교하여 천국을 봤다는 목사들마냥 진위구별이 어렵다.
당연히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들을 철학자로 착각한다. 물론 한국에도 철학자들이 제법 많아 보인다.
대학에 철학이 이미 들어와 있으니 말이다. TV에도 가끔 나온다. 책도 편다. 서점에 가면 많다.
그 분들 덕분에 나도 이 글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 진짜 철학자는 없다. 모조리 모조품이다.
철학도 신학이나 의술마냥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정의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그냥 서 있어도 마치 칸트와 같다.
아시아의 자연요법(전통 중국 및 한의학 등)으론 수술이 불과하듯이 그냥 참조 사항에 불과.
철학의 3속성 : 자아오성 & 인간자유 & 존재탐구
(존재에 대한 탐구에 불과하다. 그냥 탐구일 뿐이다.)
철학이란 음악이나 수학처럼 하나의 바이러스적인 장이 있다.
어느 산술의 달인이 지구의 둘레를 정확히 측정하여도 수학적 증명을 하지 못하면 수학이 아닌 것이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음악이 아닌 것과 같다.
나 역시 아시아에도 철학이 있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철학이란 바이러스는 창출은 되었으나 별도로 생산되지 않았다.
전염은 가능하지만 말이다. 20세기 전후에 서구로부터 유입된 것이다.
마치 물속에서도 터지는 암석폭발의 (+ -) 다이너마이트 폭약처럼. 불꽃놀이용 화약이 아니다.
주산을 예로 들어보자.
주산으로 사칙은 물론 원가계산 및 맷가는 물론 이자의 단리 및 복리 계산도 가능하다.
불십진제등수가 있어서 공부를 해 보면 신기하고도 재밌다.
기술적 훈련측면에서 2~3단 등의 다단 암산, 귀제법 등이 있어서 2~3년 노력으로 숙달이 되면 정확한 속산도 가능하다.
하나 결론은 꽝이다. 그냥 계산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그냥 계산하는 것이다.
마치 치타가 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체육이 아니다.
유학이나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철학이 아니다.
그냥 가르침일 뿐이다.
**카페지기 曰**
「아시아엔 철학적 전통이 없었다.
철학의 바탕은 자유인데 그냥 본능적 자유(Freedom)가 아니고 자유개인주의의 Liberty이다.
Liberty는 정치적 자유라고 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경제적 자유로서 정부로부터의 사적 재산권 확보이다.
이런 자유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가 시발점이다.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한 장사꾼이자 수학자인 탈레스가 공식적 원조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뿌리는 있었겠지만 기록적 원조로서는 그이다.
아시아엔 없었다. 한 명도 없었다.
한국의 경우엔 해방 이후에 겨우 들어왔다.
그것도 공산권과의 대결 구조에서 민족이란 가명을 써서 말이다.
유학과 불교는 철학처럼 보여도 철학이 아니다.
그냥 가르침일뿐이다.
나도 아시아의 일원으로 이를 찾기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해 왔지만 아닌 것 아닌 것이다.
대학이나 논어, 맹자, 중용 등에서 천리를 찾는다면 이미 철학이 아니다.
자비도 철학은 아니다. 그냥 자비일 뿐이다. 자연론이다.
지리학에서 풍수를 논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다음 내용을 참조
도덕다르고 찰학다르고 윤리다르다.
같은 대상을 다루지만.
마치 형제처럼 보인다.
아니, 사견상으론 진짜로 형제이다.
넓은 의미로는 철학에 포함되지만 점점 범위를 좁히면 속성이 달라 금방 차이가 난다.
이는 바로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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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에 과연 철학이 있을까? - No.
어! 있던데~~~.
잘 봐, 한국과 중국엔 자연만 있지. 자연이야. 일본도 그래.
로고스가 아니야.
도가 있잖아?
그 도가 바로 자연이야. 자연스런 사람들의 꼬라지들이야.
도덕이나 윤리정도지. 정신적 수준도 아니야.
일본은 그래도 나야.
철학을 빨리 채용했으니까.
아시아는 철학적 미신을 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학문적 DNA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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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서울 소재의 어느 대학에서의 일이다.
교수실에서 제자가 물었다.
교수님, 우리 아시아에 철학이 있나요?
교수는 말을 못했다.
그리곤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없다. 하고는 있지만 철학이 아니다.
그는 학자로서 솔직했다.
물론 그 교실안에서 그때만의 일이었다.
반만년 역사라고 하지만 개인적 자유가 괴뢰적인 삶이었다.
바로 marionette적인 삶이었다.
물론 freedom은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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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해가 안 간다면 보충설명.
수업시간에 보충설명을 하도 많이 해 봐서 간단히 할께.
철학의 뼈대는 수학이야.
아시아도 수학이 있다고?
수학의 생명은 증명이야.
그림은 아니지. 약분을 하든 미분을 하든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는 자연수로 증명을 해야 되지.
아시아는 유사이래 단 한 번의 증명도 없었다. 아직도 말이다.
증명의 원초적 DNA가 없는거야.
그래서 철학이 없는거지.
그 노교수는 철학을 그 자신의 경험으로 직시한 거야.
직시하여도 없는 것은 없는 것이야.
그것으로 끝이지.
불행하지만 그냥 살고 있었던 거야.
철학이 수입되기 전엔 말이다.
주희 曰 : 전족(纏足)이라말로 우리 중국의 자랑스런 작품이다. - 이게 중국인들의 속실력 수준이다. 공자와 당시대의 철인(‡철학)들은 이미 썩어 사라지고, 철인도사들의 창시적 원초적 기술재현내공의 테크닉 형식을 전수받지 못한 동중서 이후의 궁중 문사철 내용암송의 학사후예들은 이미 싸가지 조차도 없다.
So, 누가 뭐래도 철학은 탈레스에서 출발하여 한국엔 해방 후에 이승만과 함께 도착했다.
이승만이 가져온게 아니라 묻어 들어 왔다.
그리곤 it goes well viruses into 대한민국.
물론 철학이란 명칭은 먼저 들어 와 있었다. 철학의 정신이 이승만과 함께 왔다는 말이다.
마치 개인주의처럼 말이다. 아직 아시아엔 개인주의 정신이 상륙하지 않았다.
수 없이 지나 갔을 뿐이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떨어지는 유성처럼.
한의사가 수 없이 많아도 모조리 보약을 파는 자연요법사에 불과.
그들은 예방주사 못 놓고, 맹장염 수술도 못 한다.
이것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