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나무는 남해안과 제주도에 걸쳐 따뜻한 지방에 흔히 숲을 이루어 자란다.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이 땅에 우리와 함께 살아왔겠으나 실제유물로는 1983년 완도 어두리에서 인양된 고려 초기의 화물운반선 선체의 밑바닥 일부와 완도 장좌리 청해진 유적지의 나무 울타리, 4~6세기 무덤으로 알려진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나온 관재가 비자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무가 부드럽고 연하면서도 습기에 잘 견디므로 예부터 최고급 쓰임에 비자나무가 빠지지 않았다. 명품 바둑판은 비자나무가 아니면 명품반열에 오를 수도 없으며 건축재, 관재를 비롯하여 배를 만드는 재료까지 널리 이용된 좋은 나무다. 일본에서는 옛 불상(佛像)의 상당수가 비자나무다.
새천년 비자나무의 위용
기록으로도 고려 초까지는 비교적 흔한 나무이었으나 몽골의 침입 후 공물로 보내느라 차츰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고려사>에 보면 원종 12년(1271)에는 원나라의 궁궐을 짓는데 필요한 비자나무 판자를 보냈다고 하며 이외에도 여러 번 바친 기록이 있다. 조선조에 들면서 자원은 더욱 줄어들었어도 고급나무로 쓰임은 오히려 더 늘어난다. 조정에 세공(歲貢)으로 바쳐야 했으며 조선중기이후 관리들의 수탈도 심해졌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공전(工典)에 실린 ‘승발송행(僧拔松行)’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오늘 아침 관의 공문으로/ 비자나무를 바치라 하니/ 이 나무까지도 뽑아 버리고/절문을 닫아야지요.’ 절간의 스님들까지 비자나무 공물에 시달린 흔적이다. 그래서 우리와 가까이서 삶을 함께 해온 비자나무 숲은 안타깝게도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몇 곳만이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현실이다.
가장 규모가 큰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374호 제주 평대리에 터를 잡고 있다. 현재 지름이 6cm이상인 비자나무만 2,878그루이고 어린 나무를 합치면 1만 그루에 가까운 비자나무들이 조용히 모여 살아가고 있다. 숲에서 가장 오래된 터줏대감 비자나무는 고려 16대 임금 예종11년(1117)에 태어났으니 지금나이는 거의 9백년에 이른다. 두 번째가 명종 20년(1189)생 나무이며, 이렇게 고려 때 태어난 나무만도 13그루나 된다. 가슴높이 둘레는 최고령나무와 두 번째 나무가 570cm정도이고, 나머지는 지름 40~70cm사이가 가장 많다. 두 나무 중 자라는 곳이 산책로 가까이 있고 모양새가 좋은 1189년생 823살짜리 비자나무를 2000년 1월 1일 새로운 천년의 열림을 기념하여 ‘새천년 비자나무’로 지정했다. ‘New Millenium'의 상징 나무로 제주도가 선정한 것이다. 이 일대가 비자나무 숲이 된 것은 옛날 구좌읍 사람들이 제사 지낼 때 쓰던 비자씨앗이 흩어져 오늘의 비자나무 숲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생긴 천연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다.
천연기념물 39호 강진 병영 삼인리 비자나무
천연기념물 39호 강진 병영 삼인리 비자나무는 오랜 역사가 전해지는 나무다. 조선 태종 17년(1417) 심복이었던 병마절도사 마천목 장군을 시켜 백제 때부터 있던 성을 고치고 필요한 곳은 새로 쌓아 병영(兵營)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할 때 돌로 바깥 외성을 쌓고 성채안의 나무들은 거의 베어버렸다. 이때 비자 열매로 병사들을 괴롭히는 기생충을 없애주기 위하여 이 비자나무만 남겨 두었다고 한다. 키 11.5m, 가슴높이 둘레 5.2m, 나이 약 7~8백년 정도다.
천연기념물 111호 진도 임회 상만리 비자나무
천연기념물 111호 진도 임회면 상만리 비자나무는 구암사란 옛 절터 앞에 자란다. 키 12.0m, 가슴높이 둘레 6.4m, 나이 6백년정도이다. 굵기로는 우리나라 제일이다. 이 나무에 올라가 놀던 아이들이 떨어져도 아직까지 크게 다친 일이 없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이런 전설을 가진 노거수들이 여럿 있으나 이 나무는 전설 그대로 믿어도 좋을 것 같다. 나뭇가지가 낮고 넓게 퍼지며 나무 밑은 부드러운 풀 밭이어서다. 마을의 신목(神木)으로서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제주는 정월 초나흗날부터 몸을 깨끗이 씻고 바깥출입을 삼가며 금줄을 나무 둘레에 치고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았으며, 제수를 장만할 때에도 절대로 맛을 보지 않았다. 또 제를 올린 뒤에는 동네 남녀가 편을 가르되 머리 땋은 총각은 여자 편에 가담시켜 보름달 아래에서 줄다리기를 즐겼다고 한다. 물론 다른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최근에는 이런 행사가 없어지고 말았다.
천연기념물 153호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 숲
이외에 천연기념물 287호 사천 곤양면 성내리 비자나무를 비롯하여 숲으로는 천연기념물 153호 장성 백양사, 239호 고흥 금탑사, 241호 해남 녹우단, 483호 화순 개천사 비자나무 숲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 비자나무는 대부분 절 주위 및 옛 관공서나 병영(兵營) 터에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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