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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다는 것은 / 박은희
딸에게 새로운 부모님이 생겼다. 내 아이를 어여삐 보신다는 그 분들은 훗날 사돈이라 부르게 될 인연이니 자식을 나눠 갖게 될 사이이다. “엄마! 어머니께서 옷 사 주셨어.” “그래! 고마운 일이구나.”
아이가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려 줄 때면 수다스러워지는 것이 예전과 달라졌다. 상기된 목소리로 어머님과의 하루를 말한다. 그 분의 자상함이 엄마와 비교되었고, 함께 하는 공감대가 있어 즐거웠단다. 뵙게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무뚝뚝한 아이가 그 사이 상냥하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런 딸을 바라보면서 몇 십 년을 함께 산 어미와는 좋은 기억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괜한 자격지심인가. 문득 이 상황이 당황스럽다.
아이가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움보다는 서운함이 앞섰던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모 마음이었다.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가 결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면, 세월은 나를 어김없는 친정어머니의 나이로 올려놓았다.
아이는 대학시절 미팅 한번 제대로 하지 않더니 졸업 후 만난 남자 친구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거 같았다. 객지에 나가 있는 관계로 손님처럼 집에 다니러 오는데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면 그 친구 얘기가 잦아졌다. 처음엔 장난처럼 듣던 것이 시간이 흐르고 차차 아이의 말이 흥미로워지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친구를 데려왔을 때, 내 맘에 썩 흡족치 않았다. 순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지만 처음 인사 온 자리가 어려워서인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의젓함은 없었다. 착하기만 하다고 다 좋을 수 없는 세상에 험한 세파를 어찌 헤쳐 나갈까 염려도 되었다. 그러나 남의 귀한 자식을 함부로 평가해서 내칠 수 없는 일이고, 부모라고 해서 성인이 다 된 자식에게 내 생각만을 강요할 수 없으니 나는 그들의 관계를 말릴 수 없었다.
지인의 자제가 결혼하는 날 예식장 입구에 대형 스크린에 주인공의 사진이 걸려 있다. 영화배우를 무색케 할 만큼 곱고 화려한 모습이다. 식이 시작되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신부는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화사하다.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새색시의 부끄러운 얼굴을 상상했던가. 나는 당당하고 씩씩해 보이는 신부의 모습이 옛날과 달라진 것에 놀라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결혼식에 직접 참석하는 일에 인색했다. 결혼이란 의식이 매번 휴일에 치러지는 것이라서 나만의 일상이 흐트러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부쩍 그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기심을 들켜버린 이 자리가 미안하고 부자연스럽다. 뒤통수가 부끄럽지만 내친김에 주례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인다.
오늘의 주례사는 며칠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느 유명인의 혼수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들이 파국에 이르는 상대성 입장을 설명하면서, 사돈 간 서로의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나의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듯 참으로 시의 적절한 비유이다.
남의 결혼식에 와서 내 아이를 생각한다. 딸을 낳았을 때, 기쁨보다는 서글펐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털어내지 못하는 내 성격 탓이다.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이 당연시 되던 시절, 아이가 자라면서 겪어야 할 마음고생을 내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것이기에 미안했다. 아들로 태어나지 못해서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아이. 그 마음속 깊이 자리한 상처는 내가 짐작한 것보다 더해서 안타까웠다. 결혼하면 꼭 아들만 낳겠다는 웃지 못 할 다짐으로 종종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도 이제 다 지난 일이다.
우리 때는 아들가진 부모의 위세가 대단했다. 내가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딸을 낳아 서러운 세월을 살았다면 딸 가진 어머니 또한 죄인이었던 시절이었다. 내 어머니는 자식이 딸을 낳았을 때 자신의 입장이 대물림될 것을 미리 짐작하여 슬퍼 하셨다니 그 또한 죄송한 일이었다.
사돈댁은 아들만 둘을 두었다니 참 복도 많으신 분들이다.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부분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내 아이를 어여삐 보시고 딸을 얻어 기쁘다 하시니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이제는 딸 가진 부모가 당당하게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다며 한껏 우리부부를 추켜세워 주지 않았던가. 내 지나온 날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자리였다.
예비사위와 딸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사람이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가 보다. 자주 만나보니 그의 마른 체구도 시대에 딱 맞는 것이라 생각되어 좋다. 말 수 없이 차분한 성격도 되바라진 자신감으로 나대는 것보다 진중해 보여 믿음직스럽다. 우리 아이의 모든 점을 사랑 한다는 그 마음도 고맙지 않은가. 그의 조용하고 자상한 성격이 내 아이의 급하고 무심한 성격을 감싸 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그동안의 불만은 치유될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과 지혜를 동반하는 것인가 보다. 자식이 내 곁을 떠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그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며칠째 마음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을 바꿔 돌아보니 고개가 끄떡여지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었다. 모든 걸 비우라신다. 욕심을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랬다. 내 마음이 문제였다. 급히 전화기를 들고 그 동안 마음고생 했을 아이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보낸다. 건강하게 잘 자라 주어 고맙고, 나는 부모로서 이 결혼의 성스러운 절차에 모든 수고를 기쁘게 감수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충남금산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 국문학과졸업 대전대학교 평생교육원수필창작반 수료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계룡수필문학회회원 現.신일류공인중개사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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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큰 딸을 결혼시키며 이런저런 마음에 오갔던 생각들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잘 살아주면 그리 가벼운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찬찬한 글에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딸을 보내는 어미의 마음이 다 비슷한가 봅니다. 막상 떠나보내자니 아쉬웠던 일만 생각나더군요.
딸도 이젠 알 겁니다. 샘의 간곡히 빌어주는 마음을.
담담한 소회의 글, 어미로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출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수필집 출간 축하해요. 깨끗한 표지가 비운 마음 같아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넘을 무엇이 이세상에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이젠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일이 남아 있는 듯 합니다. 할 일이 있어 좋은 거지요?
노혜숙 선생님 책 소개 해주신거 감사드리고 이번 수비 행사에는 참석못하고 다음에 뵐께요. 관심갖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은희 선생님 큰 결실을 맺으셨군요, 발간 축하드립니다.
딸의 혼사를 앞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비운다는 것은>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