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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모든 불의가 죄라 하였다.(요일 5:17) 불의는 생각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짓기 쉬운 죄가 미워하는 죄와 외식하는 죄, 그리고 거짓말 하는 죄인 것 같다. 마음속으로 형제, 자매들을 미워하면서 입술로는 사랑을 말하고 속에는 전쟁터인테 겉은 화평을 말한다. 요한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드러나게 행하는 악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생각가운데서 하는 모든 불의가 진리를 막아서는 것이요, 그 안에 진리가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결국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심판이 시행된다.
19~20.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최점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과 존재하는 생명체로부터 다른 생명을 복제하는데까지는 인간도 할 수 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으로 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아버지의 창조사역이다. 그러나 천사의 반역에 땅에 있던 존재들이 가담하므로 같이 저주를 받아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상태가 된 것이다. 성령은 수면위를 운행하시면서 장차 있을 제 2의 창조를 예비하고 계시다.
창세기 1장 3절의 창조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창조사역으로 말씀으로 물질 세계를 재 창조하고 계신다. 빛과 어둠을 가르고, 하늘과 땅과 물을 가르고, 그 가운데 모든 생명체들을 채워 넣고 여섯째 날, 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관리할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셨다. 무에서 유의 창조가 아니라 저주받고 쓸모없이 되어 버린 것들을 놀라우리만큼 질서정연하게 그 지혜로 다시 회복시키시고, 보시기에 좋은 최상의 상태로 재 창조하신 것이다. 여기서도 장차 소망이 없고 전적으로 타락하고 썩어버린 온 인류와, 인간의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벗어나 버려 탄식하고 있는 만물을 영의 새창조를 통하여 다시 회복시키시고 최상의 상태로 재 창조하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이 복선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충분한 증거들을 분명히 그들 앞에 두셨기에 핑계할 수 없는 것이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그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욥 38:2~7
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의 결국을 볼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을 그 양심에 알도록 하셨지만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그 양심이 죄가운데서 완전히 썩어져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고 인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게 된다. 이는 불신자에게 뿐만 아니라 믿음안에 있다 하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교훈을 주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을 수록, 영적인 갈망이 없을 수록 온 땅과 만물의 주인이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감사를 잃어버린 파렴치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쾌적하게 살수 있는 모든 환경을 주시고 거기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아들까지 내 놓으신 아버지 앞에 우리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함으로 끊임없이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을 요구하며 원망하며 불평하는 싦을 살기 싶상인 것 같다.
생각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무장된 강한 진이 되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짐으로(고후 10:4~5)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은 어두워져 갈바를 알지 못하고 생명의 길을 알지 못하게 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 하였다.(렘 17:9) 이렇게 허탄한 생각과 미련하고 부패한 마음을 믿고 따라가면 스스로가 지혜있는 줄 착각하지만 실은 어리석게 되어 그 결국은 우상숭배로 귀착되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의 우상으로 바꾸어 섬기게 된다. 마찬가지로 믿음안에 있다 하나 어두워진 마음으로 스스로 지혜있는 자가 되면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4)'고 하였다. 세상의 헛된 철학과 지식을 따르며 또 한편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며 진리를 떠나게 된다. 하나님의 진리와 썩어질 세상의 것과 바꾸는 것이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우리는 이 말씀에 나오는 온갖 불의한 사람을 불신자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분명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한 것을 볼때, 이는 불신자들에게 향한 말씀이 아니라 믿는다 하나, 하나님보다 세상과 죄악을 더 사랑하는 간음하는 여인과 같은 신자들을 향한 말씀인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주실뿐 아니라 아버지를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신 거룩하신 언약을 썩어질 세상의 것들과 바꾼 것은 그 결국이 멸망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24~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영적인 간음은 곧 육체적인 간음으로 흐른다.
그것은 세상의 많은 이방종교안에서 극명하게 볼수 있다. 그리스나 가나안에 있던 신전에서 봉사하던 여사제들은 실은 창녀들이이었다. 제사의식 이후에 신전에서 혼음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유다서 4절에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라고 한 것처럼 진리를 색욕거리로 만든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썩어질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룩함에 이르기 전까지 어느 정도의 우상 숭배적 요소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진리보다 더 앞서는 생각이 곧 우상숭배이기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는 영원히 찬송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아멘.
26~27.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성적 타락의 극치는 동성애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실 때 남자나 여자나 성적으로 타락하는데 그 끝이 바로 동성애이다.
현대 사회에서 동성애는 다른 취향일 뿐이며, 혹은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지만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결코 관용하지 않는다.
유다서 6절로 7절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원래 동성애는 타락한 천사들에게 있던 것들인데 인간들도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동성애를 행하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에 멸망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기이한 광경이 나온다.
롯에게로 간 두 천사를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모여 롯의 집을 에워싸고 그 두 천사를 이끌어 내라고 아우성친다. 우리말 성경에는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적 관계를 맺겠다는 말이다. 노소를 막론하고 소돔성의 백성들은 지나가던 나그네를 끌어내 성적으로 욕보일 수 있었던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 가치와 진리가 부정되고 상대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세상의 철학들이 판을 치고 있는 현 시대에 믿는자들도 그들의 가치에 박수치며 그것이 휴머니즘인양 착각하고 있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Furthermore, since they did not think it worthwhile to retain the knowledge of God, he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 to do what ought not to be done.
그들이 하나님 아는 지식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므로 그들을 부패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어 행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를 아는 지식에서 떠날 때 생긴다. 자신의 부패한 마음에서는 멸망밖에 나올 것이 없는데 그 마음대로 살다 사망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고 있슴에도 지팡이와 막대기가 없다는 것이다.
목자들이 가지고 다녔던 지팡이는 끝이 굽어져 있어 양들이 벼랑같은 곳에 걸려 있을때 그 굽어져 있는 끝으로 목덜미를 잡아 끌어 구해내는 도구였다. 막대기는 양들이 잘못 길을 들었을때 치면서 바른 길 가도록 하던 도구였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12:5~6
목을 잡아 끌때 자존심 상한다고 버팅기는 양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막대기로 칠때 왜치냐고 들이받는 양이 구원 받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믿는자에게 가장 큰 심판은 잘못 가고 있는데도 징계가 오지 않는 것일 것이다.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도모가 악뿐인 것은 우리의 본성속에 사탄으로부터 온 죄의 몸, 사탄의 유전인자가 있기 때문에 그 죄성이 끊임없이 우리의 영혼과 육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다 하나 죄의 몸이 완전히 죽기 전에는 이런 죄성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자신의 죄악과 싸우는 전쟁터이다.
우리 자신이 현재 불의하고, 추악하고, 탐욕스럽고, 다른 이에 대해 악의가 가득하고, 끊임없이 시기하고, 미워하고, 남을 속이고, 악독함이 가득하며, 떠들고 패역한 말을 쏟아내는 자들임을 철저히 깨달아 죄를 죽이는 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30~31.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마태복음 7장 1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하였다. 비판을 하는 자는 자신의 그 잣대로 비판을 받을 것을 알아야 한다. 3절에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한다'고 책망하고 있다. 형제가 겉으로 아무리 극악한 죄를 지어도 내 속에 있는 죄성에 비하면 그것은 티같다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미워한다. 세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미워하며 진리의 길을 가려는 참 신자를 미워하게 되어 있다. 갈라디아 4장 29절에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하였다.
오만하여 자신 위에 그 누구도 두지 않는 자이다. 시편 1편에는 복있는 자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였다. 거만하여 남을 무시하기 잘하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자이다.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없이, 그리스도 생명없이 자신의 하나님의 자리에 오른것이 바로 루시퍼이며, 에덴 동산의 사건인 것이다. 사탄의 꾐에 빠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아는 지식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다 범죄하고 말았다.
잠언 27장 1절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하였다. 한치 앞을 내다 볼수 없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자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일인지 깨달아 알기를 원한다. 더군다나, 이생의 자랑이 아버지께로서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므로(요일 2:16) 그 자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도 지나고 정욕도 지나가기 때문이다.(요일 2:17) 오직 우리의 자랑은 그리스도 뿐이며 주안에서만 자랑하기 원한다.(고후 10:17)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시 37:12)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다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도록 주신 말씀으로 개인적으로 받을 필요가 있다. 교회안에서도 진리가 우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은혜가 우리를 이끌지 않으면 얼마든지 우리의 악은 악행을 도모하며 의인을 핍박하는 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골로새서 3장 20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십계명에도 인간을 향하여 하신 말씀중에 부모를 순종해야 할 것을 제일 먼저 이르고 있다. 우리는 육신의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해야 한다.
또한 영적으로 우리를 낳은 부모를 순종해야 한다. 순종과 복종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어른이건, 아이이건 신앙의 길을 갈 수 없다. 권위 아래서 철저히 순종하고 복종해 나가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권위를 훼방하다 사망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다서 8절에 보면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고 하였다. 신앙의 탈선을 한 자들은 영적으로 간음할 뿐더러 육체를 더럽히기 쉽고, 영적 권위를 무시하고 도전하며 영광을 훼방하는 일을 저지르기 쉽다.
또한, 어리석고, 신의가 없고, 무정하고, 무자비한자로 그 결국은 심판뿐인 인생의 비참함이 우리에게 먼일이 아니었음에 다시금 감사 드릴 수밖에 없는 것같다.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사야 5장 20절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5장 14절에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셨다.
나의 생명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므로 참 스승과 참 선지자를 만나 참된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이생과 내세에 가장 복된 일일것이다. 우리에게 그러한 스승과 진리의 말씀, 참된 교회생활을 주셔서 오늘도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사랑에 무한 감사드린다. 할렐루야!
첫댓글 아멘!
저에게 로마서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두렵고 떨림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것들을 온전히 버림으로 더 이상 우상숭배 죄를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의 모든 죄를 철저히 깨달아 죽이는데까지 나가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감으로 핍박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감사함으로 가길 소망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의 자랑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말씀이 두렵고 떨림으로 다가올때 우리의 영혼이 각성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말씀앞에서 항상 떨리는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의 구원도
좀더 쉬워질 것 같습니다.
항상 말씀 앞에서 떠는 자 되기 간절히 원합니다.
하은 자매가 청년의 때에 이렇게 말씀 앞에 떠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라고 생각됩니다.
구원의 그 날까지 쉼없이 달려나가는 우리 되기 간절히 원합니다.
할렐루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
시도 때도 없이 거슬리는 것들을 뿔로 박던 자가 나입니다
그 뿔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잘라 주시기 원합니다
세상 관념으로 굳어져 어찌할 수 없는 자가 나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그 한계를 무너뜨리고 내 생각 안에서 기적을 일으켜 주시기 원합니다
이로써 모든 불의 가운데서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내 영을 인도하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기 원합니다
오늘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어 돌이키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할렐루 창조하시는 그리스도!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는 등불이 되어 길을 밝혀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의 어그러짐도 그 등불 앞에서 환하게 드러나고 고쳐지기 원하고
우리가 내 디딜 발걸음들도 환하게 보여 열심히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기 원합니다.
때로는 웅덩이에 빠져 헤멜때도 있지만 그럴때마다 그 등불이 우리를 밝혀주어
그 웅덩이에서 빠져 나오게 하시기 원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진리이셨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진리로 조성되기 원합니다.
할렐루 진리이신 그리스도!
요즘 특히 자매님의 댓글이 감동으로 다가 옵니다
내 영혼을 각성케 하며 소망을 더 붙들게 합니다
내가 가야할 길이 진흙탕 같고 칠흙 같이 어두워 보일 때 주춤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이 약해졌기 때문이지요
그리스도의 진리로 조성되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이 길을 가기 원합니다
교회가 있고 지체들이 있어 힘이 됩니다
기름 등불을 잘 준비하여 어둠 가운데 헤메이지 않기를 원하며
할렐루 등불되신 그리스도!
이 세상의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습니다.
또 위의 모든 말씀이 저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찔림이 됩니다.
여태까지의 모든 죄성을 이기고 깨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어린양이 되어 막대기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붙잡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시온형제가 주님을 붙들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지라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항상 형제를 안위할겁니다 때로는 힘들고 낙심될지라도 주께서 세우신 권위앞에 계속 순종해가는법을 배우다보면 반드시 주께서 형제의 앞길을 인도하실거예요 이렇게 카페에서 자주 보니까 좋네요^^
그들이 하나님 아는 지식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므로 그들을 부패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어 행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게 되었다-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어두움 가운데 들어가면 하나님 아는 지식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게 됩니다. 마음에 찔림이 되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더러움이 발견되어지는 것이 싫어서 빛가운데로 나오기를 거부하게 됩니다. 지난날 이러한 삶을 많이 살았습니다. 아직도 다 끝나다 할 수 없겠지요.말씀을 지식적으로 알아도 그 말씀이 나를 찌르기에, 나의 즐기는 것을 끊으라 하기에, 그러나 나는 그 합당치 않은 것들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
고 나의 상실한 마음대로 살기를 즐기는 삶을 꽤 오래 살아 왔습니다. 이 교회를 만나고도 각성했다가 다시 또 되돌아 갔다가를 얼마를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현재는 이 가운데서는 많이 벗어난 것 같지만 그러나 죄성이 온전히 죽지 않았기에 언제든지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천사의 손에 이끌리어 멸망당하는 소돔 고모라를 등지고 떠나기로 했으면 뒤돌아 보지 말아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즐기던, 가치없고 더러운, 합당치 못한 모든 사망에 속한 것들을 온전히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에 이끌리워 구원되는 교회안으로 확실히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나의 더러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어리석은 반복이 더 이상
계속되어지지 않기를 원하며 더 간절히 더 간절히 원하기 원합니다. 나의 참 스승 되시고, 나의 참 부모 되시는 그리스도 생명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나의 모든 이론과 생각이 사로잡혀 복종되어지기를 온전히 무릎꿇어 지기를 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스도 생명! 사랑합니다. 예수 가족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양심이 아우성치지만 그 소리를 무시하고 바른길을, 의의길을 져버리기를 셀수 없이 하였습니다. 이제는 진리안에서 우리가 왜 구원을 향하여 몸부림쳐야하는지 조금씩 조금씩 알게되면서 이런 삶을 청산하고픈 생각이 있고 더 강하게 저를 인도하고 사로잡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한심한 생각이 들어 낙심이 들려고도 하지만 다시금 하늘을 쳐다보며 꿋꿋이 일어섭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구원의 길로 영광스런 길로 이끄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더 신뢰하기 원하므로 용기를 내고 이 길을 가기 원합니다. 자매님께서도 지금의 아프고 힘든 시기를
힘겹게 걸어가고 계시겠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함께 이 길을 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으로 세워져 주님을 향하여 진정 영광의 찬양을 함께 부르게 될 그날을 그려봅니다. 영광스런 그날을 그려봅니다. 그 소망으로 오늘도 견디고, 오늘도 나의 죄와 싸우기 원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