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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3년 3월과 4월의 자필 일기는 누락이 되어 있는데, 아마도 찰스의 건강이 안 좋았던 듯 하다. 1743년 4월 27일에 그림스비(Grimsby)에 있는 신도회에 서신을 보내려고 또 다시 필사자(transcriber)에게 의존했을 정도였다.
5월 17일, 화
거니(Gurney) 씨와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저녁에는 우리 윈(Wynn) 형제 집에서 페인스윅(Painswick)으로 걸어갔다. 거리에 서서 죄인들을 복음 잔치로 초대했다.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오라. (눅 14:17)" 이 죽은 영혼들 가운데서도 몇 사람이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
5월 18일, 수
여남은(dozen)의 새 회원들을 신도회에 허입시켰다. 자신들과 함께 축복을 가져온 사람들이다. 스트라우드(Stroud)로 걸어가서 시장터에 서서 조용한 청중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서로 다른 두 형제회를 좀 정리하고(made up), 그들을 데리고 이브샴(Evesham)으로 갔다.
여기에서 핍박의 풍랑이 좀 있었다. 거기 못 있게 막은 이는 어떤 퀘이커 교도였다. 시장도 그 난폭한 소란에서 멀찌감치 거리를 두었다.
5월 19일, 목
퀸튼(Quinton) 교회에서 기도문들을 읽고, 거칠고 노려보는 여러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전하였다. 그들이 또 설교하러 와 달라고 강권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엄청 간결하게 말할 수 있게 하셨다. 몇 몇 가장 극심했던 반대자들이 바뀌었다. 테일러 부인은 자신의 믿음 없음을 완전히 시인했다.
이브샴으로 서둘러 돌아와 모두를 위한 약속을 힘 주어 전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요 14:13)" 우리 주님이 직접 자신의 말씀을 주셨다.
신도회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있다. 딱 한사람, 어느 여신도가 좀더 묵묵히 참지 못하고, 자신의 뛰어난 은사가 있지만, 교회에서 말하고 남자를 주관하는 것(딤전 2:12 참조)에 대해 경책했다.
5월 20일, 금
웬즈부리(Wednesbury)에서 우리 사랑하는 광부들을 다시 만났다. 이 곳에서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교회에 많은 수가 늘어났다. 300명을 윗도는 한 신도회는 모두를 깨끗게 하시는 피(all-cleansing blood) 안에서 완전한 구원(full redemption)을 얻기를 구하고 있었다. 대적들은 극렬히 노하고, 설교들로 그에 맞섰다. 몇몇은 욕을 욕으로 갚았지만(벧전 3:9 참조), 대부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자들처럼 행동했다.
어느 정원에서 내가 처음 전한 말씀은 고린도전서 2장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등이었다. 내가 그분(주님)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는 동안, 주님은 우리를 바라보셨고,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슬퍼하게 하셨다. 많은 사람이 울었다. 장자를 위하여(잃은 듯이) 애통하는 사람처럼.(슥 12:10 참조) 신도회를 힘있게 권면하고 가르쳤다. 분명 이들 선지자들 중에서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한 것이다. (빌 2:16)
5월 21일, 토
5시에 가나안 여인(마 15:22-28)을 가장 끈질긴 간구의 모본으로 칭찬했다. 평소 귀신에게 고통을 당하던 한 젊은가 이제는 자유함을 얻었다. 오전에는 형님(존 웨슬리)을 통해 대속함을 받게 된 여러 명과 대화하면서 보냈고, 비국교도(Dissenter)가 우리에게 준 부지를 설교장소(preaching-house)로 사용하려고 가 보고 그 곳을 찬송으로 성별했다(consecrated).
형제 여러 명과 월솔(Walsall)로 걸어갔는데, 오래된 불만의 소리를 들었다. "보라,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다.(행 17:6)" 대적들의 소란스러운 인사로 가득한 읍내를 걸어서 통과하여 시장건물(market-house) 계단에 올라섰다. 남자들 중 우두머리가 우리 앞에 버티고 섰다.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시 93:3), 무섭게 성을 냈다. 나는 성경을 펴서 처음 주신 말씀을 전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
거리는 사나운 에베소의 맹수들로 가득했고(고전 15:32 참조), (대장의 지휘 아래) 울부짖고 소리지르고 계속 돌을 던져댔다. 나에게도 많이 날아왔지만 다치지는 않았다. 나는 조용한 사랑으로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부탁했다. 내가 떠날 때, 악한의 무리들이 나를 계단에서 밀쳐버렸다. 나는 일어나서, 축복을 비는데 또 다시 끌어내렸다. 그래 세 번째로, 우리가 돌아왔을 때, 우리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나는, 그 계단에서, 그들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하고, 폭도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쪽으로 통과하여 조용히 걸어서 돌아왔다. 그들은 욕설을 퍼 부었지만,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손대도록 허락되지는 않았다.
5월 22일, 주일
버밍엄에서 일, 이천 명 사이의 평온한 사람들에게 설교하였다. 아버지의 약속을 사도들에게만 국한함으로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형편없는 설교를 들었다. 성만찬 후에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키라 . . . 이 약속은 너희에게 하신 것이라.(행 3:19, 2:39 참조)"라고 호소했다. 회중 속에 있던 신자 여러 명이 깊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웬즈부리에서 같은 말씀으로 설교했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직접 풀어서 보여주셨다.
5월 23일, 월
사도행전 14장 22절,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 말씀을 전하고 길을 나섰다. 많은 눈물과 축복으로 사람들이 나를 전송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탁했다.
멜번에서 여러 명에게 설교했는데 그들은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했다.
5월 24일, 화
또다시 콜레오르톤(Coleorton)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다.
도닝튼(Donington)으로 말을 달려 가서 물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2)
두 시에는 노팅엄 십자로(Nottingham Cross)에서 모든 사람들의 구주(딤전 4:9-10)를 전하고, 저녁에는 (존) 하우(John How) 씨의 신도회의 요청으로 말씀을 전했다.
5월 25일, 수
다시금 십자로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 믿음의 말을 받아들이라고 강권했다. 반대의 조짐은 없었지만 이 고요 후에는 분명 폭풍우가 오리라. 한 사람이 내게 친절하게 당부를 했고,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했다. "로저스(Rogers) 씨는 잘 해 왔습니다. 당신이 여기서 한 것처럼 진리를 설교했구요. 그러나 그가 빚어낸 결말은 얼마나 슬픕니까! 그이처럼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오후에는 셰필드(Sheffield)에 있는 성도들한테 갔다. 저들은 이리 가운데 있는 양들과 같았고, 목회자들이 몹시 동요를 일으켜 조각조각 찢어지기 직전이었다. 저들 대부분은 주님의 은혜를 맛보자마자 저들을 찾아와 시험하는 정적주의(stillness)의 불구덩이를 통과한 사람들이었다.
여섯 시에 우리 형제 (에드워드) 베넷(Edward Bennet) 집 옆에 있는 신도회 모임장소에 갔다. 아래의 지옥이 우리를 대적하려고 옮겨 왔다. 내가 데이비드 테일러와 단에 서자마자 높은 물들이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엔진 가든(Engine Garden)의 관리 하나가 이의를 걸고 악담을 퍼부었다. 나는 그를 외면하고 계속 찬송을 불렀다. 돌들이 쉴새없이 강대상과 사람들에게 날아들었다. 사람들과 집을 구하기 위해, 내가 나가서 설교해야겠다고 알렸다. 그리고 적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상대편의 전군이 나를 따라왔다. 장교는 나에게 붙어서 욕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절기에 따른 말씀, 혹은 병사에게 주는 조언(A Word in Season, or Advice to a Soldier) * 1743년 존 웨슬리가 막 출판한 글>을 들려주고나서, 기도, 특히 조지 국왕 폐하를 위해서 했고, 심한 언쟁 속에서 복음을 설교했다. 가끔 돌들이 얼굴에 날아왔다. 설교 후에 죄인들, 곧 저들의 주인(master), 마귀의 종들을 위해 기도했다. 장교는 화가 끝까지 나서 나에게 달려들었고 그가 '자기 주인은 왕'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모독한 것을 보복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형제들 사이로 가서는 칼을 가지고 와서 내 가슴에 대고 겨누었다. 나의 가슴은 이내 강철같아졌다. 나는 가슴을 열어 내밀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공경한다." 순간 그의 안색이 힘을 잃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칼을 거두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거기 있던 한 사람이 나중에 와서 알려주기로는, 그 장군이 자기한테 "두고 봐라, 내가 저 자 가슴에 칼을 대면, 그는 기절할테니."했다는 것이다. 만일 내가 그랬다면, 나는 다만 그의 믿는 원칙대로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내가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타고난 용기 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형제 베넷의 집으로 돌아와서 기도를 드렸다. 폭도들이 따라와서는 내가 전에 본 것 이상으로 점점 광포해졌다. 이들에 비하면 무어필즈, 카디프, 월솔 사람들은 새끼 양이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 (나는 셰필드에 치안판사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행하는 것 같다.(왕하 10:5) 사단은 이제 저들의 마음에 신도회 처소를 무너뜨리게 하려는 마음을 집어 넣었고, 저들은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안 자기들의 일을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모든 설교 말씀은 깊이 잠기고, 모든 기도가 봉인되고, 많은 사람들이 영광의 영이 그들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이 경관을 부르러 갔는데, 그가 와서는 나에게 마을을 떠나달라고 요청했다. '이 모든 소란의 근원이 나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조언해 줘서 고맙고, 지금 당장은 이 소요 때문에 떠나지는 않은 것리고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저들에게 법도 정의도 없는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전했다. 나에 대해서는, 나는 나의 보호자가 있으며, 그 가 그의 일을 하듯 나도 나의 할 일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누구 편인가 보여주듯 그는 우리를 떠나서 그 폭도들을 격려했다.
폭도들은 문을 부수어 열려고 힘껏 밀어제꼈다. 내가 그들에게 나가려고 했다면, 형제들은 날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온 밤을 저들의 주인을 위해 일하고 아침에 집 한 쪽을 무너뜨렸다. 나는 저들을 소돔사람들(창 13:12-13 참조), 아니면 광분해서 나서 무덤 밖으로 나온 사람들(귀신 들린 자, 마 8:28 참조)로 밖에는 다른 비교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의 고함소리에 밤에 가끔 잠에서 깨기는 했어도, 나는 내 주위 사람들보다는 잠을 더 잤다고 생각한다.
5월 26일, 목
다섯 시에 베데스다 못(요 5:1-15)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8시까지 신도회와 대화를 나누며 머물렀다. 요크셔, 더비셔, 랑카셔에서 온 형제 여러명과 아침식사. 오랜동안 시온에서 슬퍼하는(사 61:3) 고통을 겪는 딸을 만났다. 하나님께서는 즉각 나에게 그녀에 관한 믿음을 주셨고, 나는 기도로써 그것을 보였다. 그 순간 그 여인은 위안을 받았다.
내가 마을 한 복판에서 설교하는 것에 동의가 되어서,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나아갔다. 적들이 멀리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들 가운데 서서 첫 번째 주신 말씀을 읽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 . . . . .(롬 8:31-32)"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보는 눈 앞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고(사52:10), 많은 사람들의 광포함도 잦아들어서 누구도 우리를 향해 손을 들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나는 데이비드 테일러를 데리고 트인 거리를 따라 우리 베넷 형제 집으로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다. 우리는 집이 서 있는 자리를 지나쳤고 그들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기초석은 굳건이 서 있다. 내가 그들 중 하나에게 말했듯, 우리의 집은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것이기에. (고후 5:1)
폭도들은 내 숙소까지 점잖게 따라왔다. 그러나 내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다시 집을 부수려 위협했다. 얼른 창문들을 가리고, 불쌍한 주인은 겁에 질려서 금방이라도 그의 방패를 버릴 태세였다.
그는 로더럼(Rotherham) 지역 치안판사(Justice of peace) 벅(Buck) 씨에게 영장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런 식으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조건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집은 이제 폭풍우에 쓸려갈 지경이 되었다. 나는 그 안에서 글을 쓰고 있었고, 나의 불쌍한 친구와 가족들은 울고 있었다. 나는 저 벨리알(악신)의 아들들(삼상 2:12)에게 나가봐야 할 것 같았다. 오합지졸들의 한 가운데서 에드워드의 동료 하나가 소요단속령(Riot Act)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들의 요구에 나는 그것을 들고 읽고서 적절한 말씀을 전했다. 경관이 폭도 중 가장 강경했던 사람 하나를 체포해서 끌고가 가두었다. 그의 동료들의 침착함에 나는 놀랐지만 주님께서 그들을 눌러주신 것이다. 갇힌 자는 어찌 됐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5분만에 나는 방에서 잠들어 버렸고 그들은 흩어졌다. 나는 추위 걱정 없이 "그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다(시 68:30)"는 말씀을 의지해 잠에 빠졌다. 그 사이 그들은 모두 그 자리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5월 27일, 금
다섯 시에 "마음을 굳게 하고. . . . . ."(행 14:22)라는 위로의 말씀으로 신도회를 떠났다.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특별한 축복이었다. 우리 마음은 하나로 엮어지고 큰 위안을 얻었다. 이제는 우리를 사자들의 입에서 건져내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을 소망하면서 기뻐했다.
데이비드 테일러가 나에게 소프(Thorpe Hesley) 사람들에 대해 알려 주었다. 우리는 그 마을을 지나가야 하는데 우리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 마을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을 보았고, 우리는 발리 홀(Barley Hall 인근 농가)로 방향을 틀어 내려갔다. 숨어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돌, 계란, 흙을 던지며 우리를 공격했다. 내가 탄 말이 사람들 사이로 길을 찾을 때까지 이리저리 흔들렸다. 데이비드 테일러는 저들이 던진 것에 이마를 맞아 피를 많이 흘렸다. 그 통에 그는 모자도 잃어버렸다. 나는 돌아가서 성직자가 그런 대우를 받지 않고는 지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폭도들은 처음에는 흩어졌다가, 저들의 수장이 불러모으자 무서운 욕설과 함께 돌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피하게 하지 않았더면 사람, 짐승 둘 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 말이 겁을 먹고 급히 가는 바람에 나와 함께 그대로 가파른 언덕 아래로 굴렀다. 우리가 길로 나가니 사람들이 발견하고 교구로 데려가 우리 존슨 형제 집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적들은 멀리서부터 나를 미행하며 따라와 소리를 질러댔다. 주님께 찬양을. 나는 다치지 않았고 계란과 흙만 뒤집어 썼을 뿐이다. 옷 꼴이 정말이지 끔찍했고, 셰필드에서 맞은 팔이 조금 아팠다. 데이비드 테일러와 자매들은 하나님께서 저들을 그 장중에 감추어주셔서 발리 홀에 나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많은 신실한 영혼들을 만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보다 큰 사랑의 능력을 알았다. 모두가 눈물에 잠겼고, 그러나 아주 행복했다.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은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찾아와) 속량하시며 (눅 1:68)"였다. 우리의 구원되신 하나님 안에서 우린 즐거워했고, 하나님은 구원의 노래로 우리를 둘러주셨다.
4시 경 우리는 휴식의 땅으로 갔다. 버스톨(Birstall)의 형제들이 부정적인 사람들의 입을 막았고, 선으로 악을 잘 이기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모든 지역마다 평화로웠다. 포도원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이나 나무의 뿌리를 헤집어 놓는 들짐승들은 그들 중에는 설 자리가 없었다. 독일 사람들만이 여전히 울타리를 배회하며, 채갈 낙오자들이 없나 살피고 있었다.
나는 입을 열어,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롬 8:32)을 전했다. 수많은 군중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의 힘에 마음을 굽혔다. 은혜의 단비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정말 기억에 남을만한 시간이었다.
5월 28일, 토
오전과 정오에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숫자가 엄청나게 불어난 군중들에게 설교했다. 그리고나서 리즈(Leeds)로 가는 길에 암리(Armley)에서 설교.
5월 29일, 주일
이 거리들을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한 사람이라도 찾으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때(렘 5:1 참조,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가 일 년 채 못 되었으나, 마침내 불꽃이 이 곳에 붙었고, 거대한 불길로 타오를 것이다.
신생 신도회와 만났는데 숫자가 50명 정도 되고, 대부분은 의롭다하심을 입었다(Justified). 그들이 지나치게 첫 번째 증거들에 의존했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화로 그들을 권고했다.
일곱 시에 윌리엄 쉔트(William Shent) 집 문 앞에 서서 수 천의 사람들에게 위쳤다.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사 55:1)" 말씀이 그 곳을 덮었다. 그들은 말씀에 부지런히 유의하였으며 주님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처럼 보였다.
큰 교회로 가니 목회자가 나를 신도석에 세워 보여주었다. 그들의 태도와 말이 "친구여, 윗자리로 올라앉으시게(눅 14:10 참조)"하는 것이었다. 거기 있는 다섯 명의 목회자가 나를 나보다 연장자가 앉아야 할 자리, 그리고 더 좋은 자리로 앉게 하는 바람에 나는 난처할 지경이었다. 성만찬 때 그들은 나에게 분급에 참여하도록 했다. 내가 코너에 슬쩍 서지 못하게 하고 성찬상 집례자 맞은편, 성별된 곳에 서게 했다. 여덟 명의 다른 목회자들과 함께 성찬 분급을 도왔다. 그들로 인해 나의 영혼은 기도에 침잠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호의가 쉐필드에서 돌에 맞았던 것보다 더 두려웠다.
두 시에는 말씀을 기다리는 어마어마한 무리들을 보았다. 나는 회개하고 돌이켜 죄없이 함을 받으라(행 3:19)고 힘있게 전했다.
버스톨에서 가난한 자, 불구자, 저는 자, 맹인들을 청했다.(눅 14:15-24) 나의 주님께서는 많은 자들에게 준비된 마음을 주셨고, 나는 저들이 초청에 응답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주님은 나에게 여러가지 진리의 증거들을 보여주셨으며, 그들은 지금까지도 그 사랑을 영접하고 있다. 신도회와 축복 속에 헤어졌다.
5월 30일, 월
리플리(Ripley) 근처에서 갑자기 말이 솟구치는 바람에 나는 바닥에 떨어졌다. 일행은 내가 목이 부러졌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리가 멍들고, 손이 삐끗하고, 머리가 띵한 정도였고, 그 탓에 나는 그 다음 날, 주님이 우리를 뉴카슬(Newcastle)로 데려다주시기까지 찬송시를 짓는 것도 망치고, 무엇을 생각하는 일도 전혀 할 수 없었다.
일곱 시에 2,000명 이상이 참석한 처소로 갔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 찼다. 나의 주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 . . . .(롬 8:32)"였고 하나님은 은혜의 말씀에 증거를 주셨다. 우리는 서로의 믿음의 유대에 위로를 받으며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