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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글,좋은음악 스크랩 스크랩 스티브 잡스 ( Stev Jobs) 생전기사
아카바 추천 0 조회 54 12.04.21 23: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죽음은 최고의 발명품" 잡스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세계를 변화시킨 창의성의 핵심은..
《다르게 생각하라》...스티브 잡스..



오랜 기간 병마(病魔)와 싸워 왔던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그는 2005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강연에서 죽음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결론을 말했다.

이 강연은 프레젠테이션의 귀재(鬼才)인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로 손꼽힌다.

【죽음은 선택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도구"】

창의적인 천재 스티브 잡스는 암(癌)에 시달려왔다. 완치율이 낮다는 췌장암이었다.

수술을 받은 이듬해 그는 스탠퍼드 강연에서 "곧 죽을 거란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면서 "죽음 앞에서 외부의 기대나 자부심, 좌절과 실패 등은 덧없이 사라지고 정말로 중요한 것만 남는다"고 말했다.

"제가 아는 한, 여러분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뭔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도 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

죽음에 대한 잡스의 초연한 태도는 선(禪)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 시절 잡스는 동양종교에 심취, 인도로 가기 위해 다니던 학교를 중퇴했다.

특히 일본 선(禪)불교에 빠져 한때 일본에서 승려로 살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지만, 일본 스승의 만류로 진로를 바꿨다.

그 일본 스승은 후에 잡스의 결혼식을 집례했다. 잡스가 경영철학으로 종종 언급하는 '직관의 힘'과 '초심(初心)'은 이때의 영향이다.

발명을 거듭해 온 잡스는 죽음조차 '발명품'이라고 했다. 그는 이 강연에서 자신이 암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죽음은 우리가 모두 공유하는 운명이고, 누구도 이를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 죽음은 삶이 만든 유일한 최고의 발명품이다. 죽음은 삶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다. 죽음은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에 길을 내어준다"고도 했다.

6년 뒤인 2011년 10월 5일, 그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잡스의 유족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잡스는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전세계 애도 속에 그는 갔지만

그의 메시지는 사람들 가슴에 6일 아침, 독자들은 좀 이상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난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인의 부음을 듣는 것 같다.'

2004년부터 췌장암을 앓아온 스티브 잡스가 56세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6일 오전.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문자메시지로, 트위터로, 인터넷 댓글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같은 시각 미국·유럽·남미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문장은 짧았다.

'아이 새드(iSad·슬퍼)'. 당연히 그의 히트작 아이패드(iPad)에서 온 말이다.

하버드대를 다닌 천재이자 기부·선행의 대명사인 빌 게이츠가 '모범답안' 천재라면,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망나니짓을 하고 대학을 중퇴한 스티브 잡스의 시작은 삼류였다.

자기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대드는 직원은 가차없이 잘랐다. 그런데도 세계는 이 괴팍한 창조자에게 열광했다.

스티브 잡스는 소문자 'i'면 충분하다는 걸 증명했다.

애플의 아이맥(iMac), 아이폰(iPhone), 아이팟(iPod), 아이패드(iPad)엔 모두 'i'가 붙는다. 대문자가 아니라 소문자다. 죽은 그가 'iHeaven(천국)'에 있을 것이란 농담도 그래서 나온다.

"나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본 적이 없다. 나는 룰을 만드는 사람이다." 당돌한 비주류 선언이고 젊은이들은 이렇게 받아들였다.

그래, 나(i) 별거 없는 인간이다. 그런데 나는 나다.

그가 40대였을 때 이렇게 말했다. "외부 세계는 당신을 특정한 이미지로 규정하고 그걸 더 공고히 만들려 할 것이다. 예술가로 살아가기란 점점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잘 있어, 나는 벗어나고 싶어'라 말하고 박차고 일어나야 해.

" 잡스 제품은 오만하고 낯설었다. 아이폰·아이패드는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다. 매끄러운 디자인을 위해서다. 소비자가 싫어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국 성공했다. 이런 뜻이다. 좀 깨지면 어때, 네가 하고싶은 대로 해

그런 잡스에게 '대세'란 의미 없고 따분한 것이었다. "나는 세계 최대가 아니라 최고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이다.

" 잡스는 애플2로 PC(개인용컴퓨터)시장을, 다시 아이패드· 아이폰으로 '포스트PC'시장을 만들었다".

경쟁자와 아등바등하는 대신 쿨(cool)하게 시장을 새로 창조했다.

청바지와 검은색 티셔츠로도 충분히 멋지다는 것,

커다란 회사명 대신 '애플' 마크 하나로도 디자인이 멋질 수 있다는 것, 전화기로 전화만 거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것도 스티브 잡스였다.

6일 지구인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것은 그가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라는 새로운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걸 잡스 스타일이라 부른다.

스티브는 최고의 어메리칸 혁신가들 중 하나였다. 다른 생각을 하는 용감함을 지녔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대담한 믿음을 가졌으며, 그것을 해 낼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차고에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을 만들어 내면서, 그는 미국의 독창성, 창조성이라는 정신의 전형이 되었다.

컴퓨터를 개인화 시키고, 인터넷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보혁명을 단순히 접근성의 증대가 아닌 직관적이고 재밌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스토리텔링의 재능을 통해, 그는 수백만의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스티브는 매일을 그의 죽음 전 마지막 날처럼 산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전산업을 재정의 했으며, 전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었다.

우리는 선지자를 잃었다. 전세계가 그의 부고를 그가 발명한 기기를 통해 전해들었다는 사실만큼 그의 성공을 대변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스티브의 아내 로렌, 그의 가족,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모두에게 나의 마음과 기도를 전한다.

잡스는 말했다.

"우리는 앞을 바라보면서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다. 오로지 뒤를 바라볼 때만 우리가 찍어온 점들을 연결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찍는)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고 믿어야만 한다."

지금까지 당신이 살아온 인생이 비록 볼품 없을지라도 하나하나 인생에서 찍어온 점들이 미래에 연결될 때 당신의 인생도 잡스의 인생처럼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잡스가 우리에게 남긴 희망의 메시지다.

인생의 점들을 멋지게 이어나갈 당신을 위해 잡스는 지금 당신에게 속삭인다.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십시오. 항상 갈망하고 끝없이 (배울 것이 남아 있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아 가십시오.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인용)

인생의 절정기를 달리던 잡스에게 찾아든 건, 병마였다.

2004년 어느 봄날 잡스는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아침 7시30분에 시작해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된 검사에서 그는 암 진단을 받는다. 췌장암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다.

의사들은 “앞으로 살 날이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 날 저녁 잡스는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다시 받았다. 잡스가 마취상태에서 깰 때쯤 그의 아내 로렌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해준다.

“여보, 당신은 살 수 있어요. 수술이 가능하대요!”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잡스의 췌장암은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형태의 종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들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병마를 이기고 애플에 다시 복귀한 잡스가 선보인 것이 바로 아이폰(iPhone)이다.

2007년 1월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여느 때 처럼 청바지와 검정색 긴팔 셔츠를 입은 잡스가 등장했다.

잡스의 등 뒤 스크린에는 아이팟과 닮은 제품 하나가 떴다. 잡스는 “혁신적인 제품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며 아이폰을 선보였다.

이날 애플은 회사이름을 ‘애플컴퓨터’에서 ‘애플INC'로 바꾼다. 더 이상 컴퓨터로 자신의 정체성을 한정시키지 않고 영역을 넓혀가겠다는 의미였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기 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아이폰의 성공가능성을 낮게 봤다. 애플은 이동통신에 전혀 경험이 없었다. 기술도, 기술자도, 생산시설도, 판매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애플이 아이팟을 히트시키며 컴퓨터 이외 분야에서도 성공했지만, 휴대폰은 다른 제품이었다. 좋은 품질과 잘 갖춘 유통망이 있으면 팔리는 컴퓨터나 아이팟과는 달리,

휴대폰은 이동통신회사라는 파트너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파트너는 제조업체에 있어 ‘울트라 갑’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와 협상을 벌여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개발의 모든 권한은 애플이 갖고, 통신료 매출액도 애플과 나누어 가지며, 로고나 디자인도 애플이 맡는다는 조건이었다.

심지어 아이폰의 시장 가격부터 A/S 방식, 광고까지 애플이 결정하도록 했다.

AT&T는 애플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주는 굴욕에 가까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AT&T는 미국 최대 통신회사였지만 1위 이미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로 업계를 이끌어 온 회사는 2위인 버라이존이었다. AT&T는 아이폰으로 혁신이라는 이미를 높여 젊은이들에게 다가서고 싶었다.

아이폰은 PC와 인터넷 중심의 세상을 모바일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애플은 거대한 자본과 오랜 노하우가 필요한 통신시장에 혈혈단신으로 들어가 무혈입성 하듯 간단히 휴대폰 회사들을 제압했다.

“혁신은 앞서가는 자와 뒤따르는 자를 구별시킨다”는 그의 말처럼, 전 세계 IT업체들은 애플을 뒤쫓아 가기 바빴다.

휴대폰 개발 경험도 없고 생산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잡스가 아이폰을 성공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창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기존 휴대폰 회사들은 휴대폰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휴대폰 통화품질을 경쟁했고, 화상통화 같은 각종 기능에 집착했다.

하지만 잡스는 달랐다.

휴대전화가 아닌 PC를 휴대폰처럼 들고 다닌다는 역발상을 했다. 자신의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깔 듯 휴대폰에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까는 재미를 넣어 준 것이 히트의 원동력이었다.

또 다른 성공요인은 고객이 참여할 수 있는 장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바로 아이폰의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App Store)다.

애플 앱스토어는 고객 참여를 유도하고 응용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풍부해 아이폰의 인기를 높이고 있다. 잡스가 창조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앱스토어엔 컴퓨터를 만들었던 애플의 DNA도 녹아 들어가 있다.

전통적으로 컴퓨터 회사들은 제품만을 내놓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업그레이드를 한다. 앱스토어 역시 팔고 나면 그만이라는 보통의 제조업과는 다른 접근방식이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병마는 다시 그를 찾아왔다. 2009년 잡스는 병이 재발하면서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는 생사를 오고가는 상황에서도 병실에서 아이패드 개발을 점검했다. 그가 병가로 자리를 비운 2009년 1월 애플 주가는 주당 78.2달러로 저점을 찍었다.

2010년은 잡스의 해가 됐다.

잡스는 아이폰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아이패드를 선보여 태블릿PC 시대를 열었다. 휴대폰 업체들이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애플을 따라 붙자 아이패드로 전선을 넓혀나간 것이다.

잡스는 가정(애플 TV)이든 사무실(아이패드)이든 이동할 때(아이폰, 아이팟)든 모든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쓸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허브 전략인 셈이다.

애플은 2010년 5월26일 뉴욕 증시 종가 기준으로 2221억달러 (278조원)를 기록해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쳤다.

그 뒤 애플은 3분기에 203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마이크로소프트(162억달러)를 다시 한 번 추월했다. 그해 12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올해의 인물’로 잡스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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