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tter from Waris ]
여느 아이들처럼 제게도 많은 꿈이 있었지만, 제 삶을 언젠가 스크린 위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사막으로 돌아오니, 저를 사로잡았던 강렬한 기억들이 모두 다시 떠올랐습니다. 특히 영화 속 소말리아 아이들, 제 어린 시절을 연기한 소라야와 연기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한 작은 천사 사파, 남동생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이드리스에게서 말입니다.
몇 년 전 영화화를 위해 제작자인 피터 허만을 처음 만났고, 지금은 이 영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라고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피터는 정말 아름답게 영화를 만들어냈으며, 특히 아프리카의 풍광을 담은 장면들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감독인 셰리 호만은 힘든 여정을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추진한 사람입니다. 촬영을 하면서 저는 셰리를 믿고 그녀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돕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역시 셰리는 최고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제 역할을 했으며 마치 여동생과도 같은 리야, 우리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말해야겠습니다. “너는 나의 일부이고.. 참으로 큰 일을 해냈다”라고요.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보던 날, 커다란 스크린 위에 제 모든 삶이 펼쳐지는 것을 보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고, 극장을 나오면서도 마음 속이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경”이라는 메시지가요.
-와리스 디리
[ About Movie ]
아프리카 사막의 유목민 소녀, 런웨이의 여왕으로 다시 태어나다!
세계적인 슈퍼모델 와리스 디리의 자전적 감동 실화!
와리스 디리, 아프리카 사막의 가난한 유목민 소녀가 패션계의 신데렐라로 다시 태어났다! 사막에서 도시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영화 <데저트 플라워>는 그 기적 같은 여정, 우연한 행운과 화려한 성공 뒤에 감춰진 ‘와리스 디리’의 아름다운 용기와 꿈에 대한 의지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1990년대 세계적인 톱모델로 활동했던 실제 인물 와리스 디리의 이야기는 이미 자서전 <사막의 꽃>을 통해 수백만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스크린으로 옮겨진 화제의 영화 <데저트 플라워>가 2010년 봄 우리 곁을 찾는다.
13살에 강제 결혼을 피해 고향 소말리아에서 도망친 와리스 디리는 우여곡절 끝에 런던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사춘기를 보낸다. 18살, 영어도 할 줄 모른 채 맥도날드에서 일하던 그녀는 유명 사진작가 테렌스 도노반의 눈에 띄어 모델 일을 시작하고 점차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주, 초대 슈퍼모델 중 한 사람으로 각광 받았으며 화장품 회사 Revlon과 계약한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모델이 되었다. 유명 패션잡지의 표지를 장식했으며 배우로서 영화 <007 리빙 데이라이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마치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그녀의 이야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변신한다. 화려한 성공 스토리 속에 숨겨져 왔던 어린 시절의 아픈 비밀은 그녀를 UN의 특별사절이 되어 전세계를 누비며 손을 내밀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데저트 플라워>가 갖는 영화적 힘과 감동은 바로 이렇게 놀랍고도 특별한 그녀의 삶 속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다.
와리스와 리야 그리고 셰리 호만 감독과 샐리 호킨스!
그녀들의 특별한 앙상블, 마음 속 상처까지 어루만지는 진심 어린 드라마!
영화화를 위해 제작자인 피터 허만과 와리스 디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2003년이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09년, 드디어 영화 <데저트 플라워>는 베니스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었으며 뒤이어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와리스는 직접 공동제작자로 참여하여 힘을 실어주었고, 감독인 셰리 호만과의 강한 유대 속에서 작품이 완성됐다. 극중 와리스 디리로 완벽하게 변신해 빛나는 아름다움과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 주인공 리야 케베데 역시 아프리카 출신의 세계적인 슈퍼모델로 이미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의 모습을 선보인 바 있다. 그리고 영화 속 와리스의 곁에서 용기를 주고 위안을 건네던 사랑스런 친구 마릴린 역을 맡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과 골든글로브 수상자인 샐리 호킨스까지! 그녀들의 특별한 앙상블로 <데저트 플라워>는 동화 같은 성공 스토리인 동시에 마음 속 깊은 상처까지도 어루만지는 진심 어린 드라마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출신의 슈퍼모델로 광고계의 관행을 깬 와리스와 리야!
<데저트 플라워>로 조우한 그녀들이 꿈꾸는 미래와 희망도 닮은 꼴!
와리스 디리와 리야 케베데, 모두 아프리카 출신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톱모델이다. 초대 슈퍼모델 중 한 사람으로 Revlon과 계약한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모델인 와리스 디리. 영화 <007 리빙 데이라이트>에 출연하여 배우로서도 이름을 알린 그녀는 이제 UN의 특별사절이 되어 전세계를 누비고 재단을 설립하여 아프리카 여성들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 리야 케베데 또한 에스티 로더 최초의 유색 여성모델로, 이미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며 현재 고향인 에티오피아를 위한 재단과 회사를 운영하고 WHO의 명예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듯 그녀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한 꿈까지 닮은꼴인 두 사람은 <데저트 플라워>를 통해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전세계 수백만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리얼 스토리!
베스트셀러 원작 <사막의 꽃>의 감동이 스크린으로 찾아온다!
와리스 디리의 자서전 <사막의 꽃>은 1997년 뉴욕에서 출판되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독일에서는 무려 120주 동안이나 Top Ten 순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으며, 50개 이상의 라이센스를 통해 전세계에 출판되었고 현재까지 천백만부 이상 판매된 히트작이다. 이후 <사막의 새벽> <와리스 디리: 엄마에게 쓰는 편지> 등이 연이어 출판되면서 계속해서 화제를 이어갔다. 국내에서도 2005년 <사막의 꽃>이 출간되면서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고, 3만 명 이상의 독자와 만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실화이기에 더욱 마음을 울리는 한 여성의 놀라운 삶과 아름다운 용기의 이야기는 영화 속 아프리카의 장엄한 풍광과 함께 가슴 따뜻한 치유가 되어 스크린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 운명처럼 짊어지고 있는 아픈 비밀…
올 봄 최고의 감동과 가슴 따뜻한 치유가 되어 우리 곁에 다가온다!
좀 과장하여 얘기하자면 영화 <데저트 플라워>가 완성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와리스 디리의 인생이 화려한 성공을 이룬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세 가지의 전혀 다른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 펼쳐진다. 가난한 유목민의 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모델이 되는 신데렐라 스토리인 동시에, 한 용기 있는 아프리카 소녀가 유럽에서 겪는 모험담이기도 하고, 여성할례라는 잔인한 관습에 대해 최초로 공식적으로 밝히고 이슈화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뉴욕, 패션의 중심지 그 한가운데 최고의 자리에 오른 톱모델이 스스로 여성 할례의 희생자라고 밝힌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큰 동정과 논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마음 속 운명처럼 짊어지고 있는 아픈 비밀은 바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전통에 있었던 것이다. 영화 속 와리스가 마릴린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장면에서 우리 모두는 그녀들과 자매가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그녀는 UN에서의 연설을 통해 자신 뿐 아니라 매일 전세계 6,000여 명의 소녀들에게 행해지고 있는 끔찍한 의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암암리에 숨겨져 있던 한 가지 터부가 공공연한 사회적 이슈가 되는 순간이다. 와리스의 용기는 그녀 자신에게는 치유를 그리고 세상에는 깊은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것이다.
[ Production Note ]
엘튼 존도 자신의 영화사를 통해 영화화하려 했던 화제의 베스트셀러!
영화 <데저트 플라워>의 제작자인 피터 허만이 원작인 <사막의 꽃>을 읽은 것은, 1999년 독일에서 나온 뒤 베스트셀러가 되고 6개월쯤 지난 뒤였다. 그는 판권에 대해 궁금했지만, 미국에서 1997년 출판된 책이었고 이미 팔렸을 가능성이 컸기에 희망을 가지진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판권은 엘튼 존이 갖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영화사 Rocket Pictures를 통해 영화화하려고 계획 중이었다. 하지만 Rocket Pictures와 와리스 디리는 영화화에 대한 이견이 많았고, 결국 2002년이 되자 판권은 다시 풀리게 되었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된 피터는 1년 후쯤 런던에 머물고 있는 와리스를 만났다. 그녀는 영화 판권에 대해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였고, 그들은 그 후 9개월 동안 여러 번 만나 토론하고 계획하고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그리고는 2004년 2월 마침내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두번째 DVD에 나오는 네번째 배우를 보세요!”
실제 삶을 다룬 전기영화의 성패는 다른 어떤 장르의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주인공의 연기에 좌우되곤 한다. 영화 속에서 와리스는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기 때문에 더더욱 극 전체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다. 제작진은 서부 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면서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배우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고, 좀더 넓은 범위에서 국제적으로 배우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런던, 파리,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욕, LA 등지에서 온 수백 명의 젊은 배우들이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 이렇게 6개월이 흐르고, 결국 주연 여배우가 없는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늦은 저녁 셰리가 전화를 해왔다. “두번째 DVD에 나오는 네번째 배우를 보세요. 바로 그녀가 우리가 찾던 그 사람이에요.” 사실 피터 또한 그 전화를 받기 전에 이미 캐스팅 DVD를 보면서 리야 케베데가 그들이 찾고 있던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셰리와 피터는 당장 테스트 촬영을 위해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테스트 촬영한 화면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녀가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결정한 상태였다. 카메라 앞에서 선 리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빛나는 광채와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 개의 대륙, 네 개의 나라, 여섯 개의 도시를 거쳐 완성되다!
<데저트 플라워>의 촬영은 지부티에서 시작되었다. 지부티는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사이에 위치한 조그만 국가로, 과거에 소말리아의 일부였던 만큼 촬영지로서는 최적의 장소였다. 수도인 지부티시티는 내전이 일어나기 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와 비슷했고 마을로부터 몇 시간만 차를 타고 가면 다양한 형태의 사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촬영은 2008년 3월 시작되어 4월까지 이어졌다. 이후 5월 런던에서의 촬영을 시작했고, 6월 초에는 독일에서 그리고 7월 말 뉴욕을 마지막으로 5개월에 걸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야외 장면은 모두 원래의 장소에서 찍었고, 런던과 뉴욕으로 설정된 실내 장면은 독일 내의 스튜디오와 쾰른, 베를린, 뮌헨에 마련된 촬영장에서 찍었다. 1년 전에 수립한 계획과 정확하게 일치된 스케줄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데저트 플라워>는 세 개의 대륙, 네 개의 나라, 여섯 개의 도시에서 촬영한 거대한 퍼즐 맞추기 같은 작업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는 ‘역사’영화가 아니었다!
셰리 호만은 의상감독인 가브리엘 빈더와 이미 여러 차례 작업한 바 있었다. <데저트 플라워>가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스토리의 대부분이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제작진은 현재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불법이민이나 여성할례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 ‘역사’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현재에 초점을 맞추어 의상을 디자인하기로 하였다. 시간의 흐름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의상을 현재 시점으로 맟추기로 한 결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훌륭한 의상이 반드시 과거를 정확하게 재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객은 의상을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Real Story ]
희망의 꽃으로 피어난 그녀, 와리스 디리의 진짜 이야기!
1965년 에티오피아 접경 소말리아 사막의 갈라카이오 지역에서 유목민 부족의 딸로 태어난 와리스는 다섯살이 되던 해 여성할례를 받았다. 여성할례라는 비인간적인 범죄 행위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인 사이에서 전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UN의 추정에 따르면, 매일 6,000명의 어린 소녀들이 이 잔인한 의식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고 한다.
와리스가 이 끔찍하고 잔인한 여성할례에 대해 처음 이야기한 것은 NBC의 바바라 월터스 그리고 마리 끌레르의 로라 지브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그녀의 이야기는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UN은 그녀를 특별대사로 임명하였다. 여성할례는 주로 아프리카, 아랍 및 아시아에서 행해지고 있지만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일부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후 와리스는 여성할례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UN을 대표하여 전세계를 여행하고 각종 회의에 참석하며, 각국의 정상과 사회 유력인사들을 만나고 있다. 그녀의 이런 활동은 1997년 자서전 <사막의 꽃>이 출간된 이후 <사막의 새벽> <와리스 디리: 엄마에게 쓰는 편지> 등이 연달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더욱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2002년 ‘와리스 디리’ 재단이 설립되었고, 이곳을 통해 여성할례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수행하고 여성할례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05년 와리스는 여성할례(FGM: Female Genital Mutilation)를 반대하는 전세계적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결과 2006년 유럽의회는 여성할례 근절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7년에는 런던 경찰청 및 BBC와 합동으로 캠페인을 벌였다. 와리스의 활동과 책들은 전세계적으로 여성할례를 이슈화시켰다. 국제 사회의 거센 압력으로 인해 이후 실제로 몇몇 국가에서는 관련 법규정이 강화되었고 구체적인 조치들이 시행되었다. 2007년부터 케냐, 가나, 부르키나, 파소, 코트디브와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베닌, 토고 등 14개 아프리카 국가가 여성할례를 법으로 금지하였다. UNICEF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1억 5천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여성할례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여성할례를 묵인하고 이는 상황에서 와리스는 이제 수백만 여성과 어린 소녀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