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사를 짓기 위하여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아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달과 태양을 보면서 한 달 ‘달의 운동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시간의 단원이다. 달이 찼다가 기울어지고 다시 차는 기간, 즉, 한달은 정확히 말해서 30일이 아니고 29.5305882일이다.’과 한 해 ‘해의 움직임으로 하루를 결정하는데, 달에 의한 일년은 약 354일(29.5305882 12개월 이다.)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태양의 운동에 따른 1년(365일)과는 약 11일의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매년 11일의 차이가 쌓이다 보면 계절의 변화에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바로 잡기위해 만든 것이 윤달이다.’ 중에서 농사에서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적기가 언제일까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달과 태양의 운동을 서로 연관 시켜 농사에 적용시키기 위해 24절기를 만들었다. 그 중 한날이 오늘 찾아온 ‘처서(處暑)’이다. 여름을 지나 더위도 가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한다하여 처서라 불렀는데, 이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으므로, 조상 산소의 풀을 베는 별초를 하기 시작한다. 24절기의 이름은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 지방의 기상상태에 맞춰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약간의 오차가 있어도 거의가 맞다. 그래서 요사이 밤이나 새벽에는 바람이 불어도 며칠 전에 느꼈던 ‘아! 시원하다’ 가 아니라. '와 이리 춥노'하고 이불을 찾는 이도 늘었을 것 이다. ‘언제 10년만의 더위였지!’할 정도로 계절의 변화가 확실히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실 24절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은하계에 있어서는, 은하계 중심인 축을 중심으로 태양계인 태양도 공전하고 자전도 하지만, 태양계에 있어서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하고 또 자전도 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천체는 공전하고 자전하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음력은 달의 움직임에 근거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달의 변화 (초승 달, 보름달, 그믐달 등)를 잘 나타내 주지만, 태양의 움직임과는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절의 변화는 태양의 운동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알았다.
전문용어로 하늘에서 태양이 1년을 통하여 지나가는 경로를 황도라고 부른다. 이것은 지구의 공전 운동으로 인해 태양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하루에 1도씩 천구 상에서 이동하여 생기는 궤도를 뜻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지구가 공간상에서 움직이는 길이 황도이다. 알다시피 지구의 공전궤도는 타원형이어서 태양을 15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똑같지는 않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1년을 도는 궤도 360을 15씩 나누어서 24절기로 분류하였다. 결국 절기와 절기사이는 대부분 15일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14일이나 16일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24 절기는 음력을 사용하는 농경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태양의 운동을 기준으로 만들어 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양력의 날짜와 일치하게 정리하였다. 그래서 실제로 달력을 놓고 보면, 24절기는 양력으로 전환할 때 매월 상순인 4일~8일 사이에 오거나, 중하순인 19일~23일 사이에 온다. 이때, 양력의 상순에 들어가는 입춘, 경칩, 청명 같은 12절기(節氣)와 양력의 중하순에 들어가는 우수, 춘분, 곡우 같은 12중기(中氣. 구분상 후반부 절기를 중기라 부른다)가 있는데, 양력의 경우에는 한 달 중에 언제나 절기와 중기가 있어 문제가 없으나, 음력의 경우에는 29일인 달이 많으므로 때때로 어떤 해 에는 한 달 중에 절기나 중기가 하나만 들어있는 달이 1년 중에 몇 개씩 생기게 마련인데, 이때 절기가 없는 달은 문제 삼지 않고 중기가 없는 달 중에서 1년 중 처음으로 발생하는 달을 골라 그 전달을 이어받아 윤달로 정한다. 이것을 일컬어 무중치윤법(중기가 없는 달을 윤달로 친다는 말)이라고 하며 또한, 음력윤달은 19년 7윤법(윤달은 19년에 일곱 번 든다는 법칙)이 있는데, 금년은 19년 7윤법에 따라 윤달이 생기는 해인데다가 음력 2월(양력 2월 20일부터 3월 20일까지)에 이어 음력 3월이 시작되어 져야 할 기간(양력 3월 21일부터 4월18일까지)에는 청명(4월 4일)이라는 절기 하나만 있고, 중기가 없는 1년 중 첫 무중기여서 윤 2월이 된 것이다.그래서 올해 음력 윤달 2월이 있었다.
사실 윤달은 지구와 달이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 속도가 더딘 여름에 주로 많이 생긴다. 1770년부터 2052년까지 윤달은 윤 5월이 22회로 가장 많고, 윤 4월이 16회, 윤 6월이 14회이다. 그러나 동지섣달과 정월에는 한번도 없다. 그래서 ‘윤 동지 섣달동짓날에 빚을 갚겠다.‘는 속담이 생긴 것도 그 이유가 재미있다. 그것은 ‘남의 돈을 빌렸는데 윤 동지섣달 동짓날에 빚을 갖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평생 윤 동지섣달이 오지 않기 때문에 빚을 갚고 싶어도 갚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이 24절기이다. 따라서 올해는 지난번 8월 6일이 입추였고, 오늘이 처서(23일)가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24절기(12절기+12중기)는 봄의 절기에 해당하는 것이 6개 즉,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이고, 여름의 절기에 해당하는 것이 6개 즉,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이고, 가을의 절기에 해당하는 것이 6개 즉,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이고, 겨울의 절기에 해당하는 것이 6개 즉,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이다. 여기서 순서는 절기 한번 중기 한번 순서로 짜여져 있다.
결국, 계절의 변화가 달의 움직임과는 무관하지만 태양의 운동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24절기를 만들었던 선조들의 지혜로 오늘날 우리네 달력에 양력으로 표시할 수 있는 결과도 얻었듯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주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잘 정리하고 분석한다면 분명히 어떤 사이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만큼 정직함도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오니, ‘언제 10년만의 더위였나!’ 이듯이, 밤이면 춥지 않는가! 우리 모두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다시 한번 자연을 아끼고 자연을 통해 지혜를 얻어 우리생활에 적용해 봄이 어떨는지……
<경북과학대학장 최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