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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교회/낮-20200209
인생 그릿 시냇가
왕상17.1-7
고린도전서14장15절에 보게 되면 사도 바울이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송한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찬송하고, 기도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 꼭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우한폐렴. 국제적 비상상태를 선포한. 이러한 가운데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으로 인해서 온 세계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정확한 원인도 모르고, 치료하는 치료제도 계발이 빨리 안 되고. 과학이 이렇게 발달한 그러한 세상인데. 폐렴. 바이러스로 인해서 세계가 긴장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이런 사건을 통해서 우리 인간이 정말 겸손해야 됩니다. 뭐 우쭐하고, 모든 거 다 알고, 모든 거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한 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중국의 시진핑은 이것을 ‘악마와의 전쟁.’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악마와의 전쟁이다.’ 어떤 국가도, 개인도 하나님의 악마가 되어서 안 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 국가가 악마다.’ ‘이 사람이 악마다.’ 그러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악마가 되지 않도록 늘 겸손하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33장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그랬습니다. 또 예레미야33장6절에 보게 되면 ‘내가 이 성을 고치리라. 이 도시를 고치리라. 치료하리라. 낫게 하리라. 평안하게 하리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한 이때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더 겸손하고. 지금도 겸손하지만. 더 겸손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더 기도하고. 그래서 이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가는. 승리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 꼭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북이스라엘. 남쪽은 유다고. 북이스라엘이 하나님 없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없는. 어떤 왕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러한 시대. 아합 왕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부르셔서 아합 왕에게 보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하나님 말씀이 없이는 몇 년 동안.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는다.’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는다.’ 그런 대 선언을 하고는 손살같이 도망을 가버립니다.
근데 아합 왕, 입장에서 보면 참 황당한 일이지요. ‘저 시골뜨기. 촌뜨기가 와 가지고. 그냥 돈키호테처럼. 그냥 앞 뒤 설명도 없이 그냥 한마디 툭 던지고 가는구나. 참 이상한 사람을 다 본다.’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저 촌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이 왕궁에 저런 촌놈이 들어오다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러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어려운 시대에 엘리야를 들어서 사용하여 주셨고, 또 그릿 시냇가에서 엘리야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인생 그릿 시냇가.’ 그릿 시냇가. 인생 그릿 시냇가.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을 때 저 주암산을 생각하시고, 냉천을 한 번 생각하면서 말씀을 듣고, 은혜받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 그릿 시냇가. 첫 번째 사명의 그릿 시냇가
본문 1~2절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그런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만 하나님이시다. 그런 얘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왕기상18장에 보게 되면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과 갈멜산에서 대결을 하잖아요? 36절에서39절에 엘리야의 기도를 보게 되면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 자체가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해달라’고. 근데 엘리야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 왕 시대와 아하시아 왕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 중의 선지자. 대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마리아에 있는 아합 왕이 있는 왕궁에 가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아니 하리라.’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라 아니하리라’. 그랬습니다. 사실 이 말은 ‘아니면 말고,’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아니면 말고. 그런 뜻이 아니고.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렇게 얘기했는데 몇 일 후에 비나, 이슬이 내리면 이 말은 이루어지지 않는 거예요. 신뢰가 없어지는 겁니다. 수 년 동안 비나 이슬이 내리지 않아야 하는 동시에. 또 한 가지는 아합 왕이 이 말을 한 엘리야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엘리야를 잡아서 죽여버릴 겁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입장에서는 정말 사명도 중요하지만 담력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자기 생명을 바쳐서 사명을 감당했어요. 생명보다 더 귀한 사명.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어요.
사도 바울 같은 경우에도 사도행전 20장24절에 보게 되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복음 전하는 사명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하나님 앞에 드린다. 그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에게 한 집사님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교회를 좀 옮기려고 그럽니다.’ ‘왜요?’
‘제가 완전한 교회를 찾아서 옮기려고 그럽니다. 완전한 교회가 없습니다. 이 교회는 사람 때문에 그렇고. 이 교회는 뭐 때문에 그렇고. 이 교회는 조직 때문에 그렇고. 누구 때문에 그렇고. 이런 저런 것을 볼 때 어느 교회를 봐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완벽한 교회가 없습니다. 목사님. 그래도 목사님은 교회를 잘 아니까 완벽한 교회를 좀 추천해 주십시오.’ 그랬어요.
스펄전 목사님이 그 집사님에게 ‘나도 잘 모르겠다’고. ‘그러나 집사님이 찾으면 나 한테도 얘기해달라’고. ‘집사님이 완벽한 교회를 찾으면 나 한테도 얘기해달라’고.
‘그리고 완벽한 교회를 찾는 순간에 집사님은 그 교회를 나오라’고. ‘집사님이 그 교회를 들어가는 순간에 그 완벽한 교회가 집사님으로 인해서 깨지니까.’
‘집사님 때문에 그 완벽한 교회가 깨지니까. 완벽한 교회를 찾았으면, 그 교회에 있지말고 얼른 나오라’고. 얘기했던.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일화가 주는 이야기는 하나는 우리 자신이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는 남이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하는 겁니다. 누구누구가 좀 회개해야 되는데. 이 나라가 회개하고,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되는데. 그렇게 말하는 내가 먼저 회개해야 됩니다.
마태복음7장 3절, 4절에 보게 되면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라’ 그랬어요. 다른 사람 눈 속에 있는 티를 보지 말고, 네 눈 속에 있는 대들보. 이건 과장된 말이지요. 우리 눈 속에 대들보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 정도로 우리에게 큰 흠과 실수와 죄를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의미는 겸손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뭘 좀 하면 교만해져요. 뭐만 좀 하면. 뭘 좀 알거나, 기도하거나, 좀 성공하거나, 뭘 좀 자 되면. 그것 때문에. 사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인데.
하나님이 주신 축복인데. 그 축복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이고, 축복 때문에 교만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가운데서도 겸손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사명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사명은 지금 여기서 해야 돼요. 지금 여기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사명 잘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시고,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사명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은 나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때때로 어떤 일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잘 하나 보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방관자. 비판자. 심판자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우리가 다 사명자가 되어야 되는데 어떤 일이 있으면 함께 달라붙어서 감당해야 되는데 사명자 몇 명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방관하고 비판하고 비난하고, 그 다음에 심판하고 정죄하는. 이런 경우들이 너무 많이 있어요.
우리를 이 평리동에. 또 대구에. 우리 교회에 여러 가지 직분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귀한 사명 잘 감당하라고 주신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사명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 기도하면서 기쁨으로 잘 감당하는 거. 이게 사명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일은 내가 감당한다. 어떤 오해가 있어도, 박해가 있어도. 때로는 바울처럼, 때로는 엘리야처럼 내 생명에 위험이 있다할지라도 사명은 생명보다 더 귀하다. 생명을 바쳐서. 엘리야처럼 사명 잘 감당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피난의 그릿 시냇가
본문 3절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사마리아에 있는 왕궁에 들어가서, 서슬이 시퍼런 아합과 그의 부인 이세벨 앞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아니하리라.’ 그런 말을 했습니다.
목숨 걸고. 생명을 바쳐서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여기서 떠나’ 계속 있지 말고, 사마리아 왕궁에 계속 있으면 너 죽는다.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고 너 죽는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동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요단이 나오는데.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한 시간과 방법과 장소를 명확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릿’이라고 하는 말은 ‘분리됐다. 단절됐다.’ 그런 뜻입니다. ‘거룩’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분리됐다. 단절됐다. 죄와 단절되고, 또 세상과 분리된. 그러니까 너는 더 이상 사마리아 땅. 아합 근처에 있지 말고, 거기서부터 단절되고, 분리되어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어라’ 그랬습니다.
그릿 시냇가. 여기에는 동굴이 많이 있습니다. 수백 수천 개의 동굴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동굴 속에 들어가 숨어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너의 피난처다. 그것이 안전한 곳이다. 그것이 네가 있을 곳이다. 그것이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준비하신 그 장소다.’ 그래서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 한 동굴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릿 시냇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마련해 주신 최고의 피난처입니다. 그리고 쉼터입니다. 재충전할 수 있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쉼도 하나님의 교육과정이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쉬는 것도.
쉬는 것도 하나님의 교육과정에 속해 있고, 이 모든 것들도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릿 시냇가 동굴.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쉼의 장소입니다. 여러분 가정. 그릿 시냇가입니다.
우리들의 풍성한 교회. 그릿 시냇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그릿 시냇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서 안전하게 거룩하게, 그리고 재충전하면서 살 수 있도록 이곳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줄 믿습니다.
장소도 중요합니다. 장소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그릿 시냇가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아무리 좋은 땅에 있다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떠나시면 그곳은 황무지가 됩니다.
그래서 어디든지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고, 하나님이 우리 가정과 동행하시고, 하나님이 우리교회와 동행하시는. 이러한 최고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못하게 되면 하나님이 떠나십니다. 이가봇.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것은 아주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가봇. 우리 개인에게서, 우리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그것은 황무지가 되는 거. 그것은 불행한 것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릿 시냇가.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가정,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심리학자인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이라고 하는 사람은 ‘현대인은 일곱 가지 불안이 있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현대인의 일곱 가지 불안.
첫째는 가난해질까 봐 불안해하는 경제적 불안이고
둘째는 명예에 대한 불안이고
셋째는 질병과 건강에 대한 불안이 있고
넷째는 사랑이 깨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이 있고
다섯째는 노쇠에 대한 불안이 있고
여섯째는 자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이고
일곱 번째는 죽을까 하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있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누구나 다 이러한 불안은 다 있습니다. 어떤 분은 노후를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죽었어요. 노후를 완벽하게. 집도, 돈도, 보험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일찍 죽었어요.
사람이 아무리 해도 이 세상에 완전하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곱 가지 가운데 한 두 가지만 잃어버려도 우리 모든 인간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일곱 가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안정된 것. 완전한 피난처는 없습니다.
마태복음11장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린도전서10장13절에 보게 되면 ‘감당할 시험을 주신다’ 그랬어요.
우리에게 시험이 있지만 다 감당할 수 있고, 또 피할 길을 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신다. 그랬습니다.
예레미야29장11절에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이라 그랬어요. 재앙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평안함을 주시고, 미래를 주시고, 희망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근심 걱정 염려. 주님 앞에 다 내려놓으시고,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의지하면서. 그 하나님을 잘 섬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 째 공급의 그릿 시냇가
본문 4~7절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어느날 갑자기 엘리야가 아합 왕궁에 찾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있기 전 수 년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훌쩍 가버렸어요.
근데 진짜로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아요. 큰 일 났습니다. 이제 아합이 그의 부인 이세벨과 모든 군사들. 온 국민을 다 풀어서 엘리야를 잡으라 그랬습니다. 엘리야를 잡는데 혈안이 되었어요.
엘리야를 어떻게 잡을 것이냐? 엘리야의 가족들. 친척들. 가까운 친구들. 같이 교회 다녔던 사람들. 삿삿이 조사를 다 했습니다. 그들이 움직이는 동향을 조사하고, 동선을 파악하면서 엘리야를 잡아서 국민들 앞에서 죽이리라.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근데 아무리 찾아도. 하나님께서는 그릿 시냇가 동굴에 숨어 있는 엘리야를 사람을 통해서 그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통해서 공급하면 몇 일을 못가서 발각이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 보게 되면 까마귀를 통해서. 독수리가 아니고. 까마귀를 통해서 아합의 군사들이 사람은 쳐다봤지만 어느 누구도 까마귀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떡과 고기를 그릿 시냇가 동굴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게 공급하고 있는 거예요. 사람의 손에 무엇이 쥐어져 있는가. 나르는가는 봤지만 어느 한 사람도 까마귀에게 무엇이 있는가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서 정확한 것은 나오지 않지만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집에 3년 6개월 동안에 한 2년 정도 있었고, 나머지 1년 반 정도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었다고 보면 돼요.
한 일년 반 정도 그릿 시냇가 동굴에서 숨어 있는데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면 금방 붙들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번씩 떡과 고기를 완전하게. 신선한 것으로 완벽하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땅의 방법, 사람의 방법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수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사야55장8,9절에 보게 되면 ‘사람의 길과 하나님의 길과 다르고,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 하나님의 길은 사람의 길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다’ 그랬습니다.
아무리 아합이 머리를 쓴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높은 생각을 따라갈 수 없어요. 하나님의 방법은 까마귀를 통해서 매일매일 두 번씩 공급하는 거였습니다.
그런 얘기들어보셨습니까? ‘아. 우리 자식이 까마귀야. 우리 자식이 나를 잘 먹여살리고 있어.’ 그런 얘기요. 까마귀는 효조라고 합니다. 효조. 효를 다하는 새. 그런 얘깁니다.
까마귀는 가족들이 무리지어 다닌다고 합니다. 어미 까마귀가 나이가 많아 더 이상 먹이를 구하러 다닐 수 없을정도가 되면 자식 까마귀가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얘기합니다. 그 정도로 가족애가 있는 새라고 합니다.
또 여러분들이 어려울 때 누구를 통해서 물질을 공급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보내주셨어’ 그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그런 까마귀가 많기를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그런 까마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 힘들고 어렵고 상처받고, 가난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을 여러분들이 찾아가서 위로해 주고, 채워주는. 공급해 주는.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얘깁니다. 이 목사님은 미국 유학을 갔다 온 60대 초반의 목사님이십니다. 근데 육십대 초반이 되어서 계속. 김천에서 목회를 하는데 교인이 몇 명이냐 하면 12명이예요. 어린아이 합해서. 그것도 출석교인이 아니고 등록교인이.
그러니 열두 명도 교인이 못 나오는 거예요. 주일 예배에. 그래서 많은 분이 생각할 때 저분이 큰 목회를 할 거다. 큰 목회 할 거다. 미국 유학 갔다 왔지. 30대, 40대, 50대에 큰 목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60대 초반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총교인이 12명. 등록교인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 어떻게 목회하느냐’고. 근데 그 목사님은 ‘나는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뭐가 감사하냐?’ 그랬더니.
첫째는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는 거. 감사하고. 두 번째는 섬길 수 있는 노인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세 번째는 섬길 수 있는 아이가 있는 것이 감사하고. 네 번째는 매 주마다 설교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다섯 번째는 저녁이 되면 마음 편안하게,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집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나는 감사할 것밖에 없다고.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아 저 친구는 공부도 잘 했고, 미국 유학도 다녀왔고, 한 교회에서 수 십년 목회했고. 그래서 큰 목회 할 줄 알았는데 교인들이 열 명도 안 되는. 그래서 저 목사는 작은 목사다. 실패한 목사다. 저분은 불행한 목사다.’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이 목사님의 고백은 ‘나는 감사한 것밖에 없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 하는 얘깁니다.
오늘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근심, 걱정, 염려가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뭘 해서 먹고 살 것인가? 무슨 직업으로 먹고 살 것인가? 내가 어떻게 결혼하고, 어떻게 집을 장만하고, 어떤 직장을 가지고 안전하게 내가 살 것인가? 그것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걱정하고 있어요.
또 수많은 어르신들이 걱정하고 있어요. ‘야. 내 노후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보니까 국가가 책임질 것도 아니고. 자녀가 책임지는 그런 시대도 아니고.’
‘또 내가 재산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닌가. 이러다가 반신불구 되는 거 아닌가. 이러다가 치매 걸리는 거 아닌가.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많은 연세드신 분들이 노후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어요.
또 수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보면서 ‘다른 아이들은 다 똑똑하고 생활력도 강하고, 이 험한 세상 잘 헤쳐 나가고, 잘 살 것 같고, 그런데 내 아이는 순하고, 착하고. 부모가 볼 때 아주 어리숙해 보이고. 내가 있어도 힘든데 내가 없으면 어떻게 내 아이가 세상을 헤쳐나가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모든 부모들이 걱정하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걱정하고, 노인들이 걱정하고,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바라보면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 일년 육개월 동안.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조금도 차질없이,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 공급해 주었습니다.
까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했습니다.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갖다 줘야 할 떡과 고기를 아합에게 갖다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일 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까마귀는 1년 6개월 동안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불순종하지 않고, 100%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좀 까마귀 이상 되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공급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젊은이들의 앞날을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으로 완전하게 공급해 주실 줄 믿습니다. 노인들의 노후문제도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들의 자녀들도 하나님께서 까마귀로 다 공급해 주실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 엘리야처럼, 까마귀처럼 순종하게 된다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기근에 시달리는 것처럼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들고 그렇습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이런 저런 어렵고 위험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귀한 사명을 주셨고. 그리고 그곳이 바로 안전한 피난처가 되게 해 주시고, 그곳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 모두 절대적으로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서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과 우리 교회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고,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사탄이 영적으로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생 그릿 시냇가로 피할 길을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공급하여 주셔서 늘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개인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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