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기업나라>연재 칼럼.(1)
산을 만나기 위한 준비.
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이용대
몇 년 전 가을 대기업 임원 한 분이 등산학교에 입교한 적이 있다.
그는 등산학교에 들어오기 전 유명 골프장이라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안가본데가 없는 골프광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생전에 보지도 못했던 등산장비를 배낭 가득히 채워 넣고 등산학교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2주차 교육현장인 백운대 암벽 밑에서 잠시 휴식을 하는 시간에 “무엇 때문에 험한 바위를 오르는 ‘쓸모없는 짓거리’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고생을 하십니까?” 라고 물어 봤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돌아온 대답은 등산 초짜의 말치고는 의외였다. “선생님. 혹시 헤르만 불(Hermann Buhl)이라는 사람 알고 계십니까?” 나는 순간 전류에 감전된 사람처럼 놀랐다.
세상에 휴일마다 틈만 나면 골프장을 주름잡던 이 사람의 입에서 헤르만 불의 이름이 튀어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의 입에서 박세리나 타이거 우즈의 이름이 거론되었다면 놀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연을 들어 본즉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회사에서 임원교육의 일환으로 8000미터 봉 최초의 단독 초등자인 오스트리아출신 등산가 헬르만 불의 자서전 <8000m의 위와 아래>를 읽고 독후감을 쓴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독후감을 쓰기위해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과연 그는 헤르만 불의 책에서 자기의 비즈니스와 관련하여 무엇을 얻고 배웠을까? 나는 그 점이 궁금했다. 등산세계의 무뢰한인 그가 요약한 말은 목표에 대한 철저한 준비. 용감한 결단력. 그리고 최선을 다 한 뒤의 기다림 등이 골자였다. 특히 그가 강조한 말은 ‘철저한 준비만이 그 무엇을 해치울 수 있다’였다.
전문산악인들이 읽어도 조금은 지루해질 수 있는 이 책을 그는 두 번이나 읽었고 정확하게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헤르만 불의<8000m의 위와 아래>를 숙독 (熟讀)한 것은 산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 그는 이 책을 읽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쳐 보고 싶어 등산학교 입교를 결심했다고 한다.
나는 등산학교가 끝나도록 이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그는 기대이상으로 잘해주었다. 손가락 끝이 벗겨지고 무릎에 피멍이 들면서도 열심히 바위를 올랐고 무거운 등짐도 잘 메었다. 다른 수강생들이 기피하는 조장의 직책까지 자청하여 궂은일을 도맡아하며 조원들 간의 팀워크도 잘 다졌다. 그의 준비된 노력은 졸업식에서 빛을 발했다. 최우수학생의 영예가 그에게 주어졌다.
등산학교의 마지막 주 교육은 한뎃잠을 자는 비박(Bivouac)과 인수봉등반이다. 이 두 가지 교육은 학생들에게 큰 감동과 성취감을 선물한다. 어떤 학생은 사력을 다해 오른 인수봉정상에서 감동어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비박하는 날 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뜬눈으로 밤을 보낸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바람이 불때마다 상수리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의 둔탁한 소리. 밤의 정적을 깨며 우수수 쏟아지는 낙엽소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 전망 이 일품인 족 도리 봉 비박 사이트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시내의 야경은 갖가지 보석을 박아 놓은 것처럼 휘황찬란하다. 그들은 솔잎을 스쳐가는 바람소리. 도심의 야경에 밤잠을 설치기도하며, 동이 터오는 새벽 산을 바라보는 하루의 시작은 그들에게 상쾌한 기분과 함께 자연과 하나가 되게 한다.
그는 비박이 주는 고통과 감동이 어떤 것인지 헤르만 불이 경험한 혹독한 상황에 자신을 내던져 담금질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비박훈련에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800m대의 북한산에서는 산소결핍증이나 영하20도를 밑도는 추위가 없으니 헬만 불과 같은 체험은 당연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평생에 처음해보는 비박이 주는 감동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는 잠을 못 이룬 채 뒤척이다가 침낭에서 빠져나오며 “선생님! 50평생에 처음 체험해보는 죽여주는 밤입니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일찍이 알지 못한 채 골프장이나 누비고 다녔으니 그동안 인생을 헛산 것 같습니다.”라고 감동 어린 말을 건네 왔다.
히말라야 등반사상 가장 극적인 비박을 감행한 사람은 헤르만 불이다. 1953년 낭가파르바트 단독초등을 이룩하고 하산하는 과정에서 날이 어두워지자 헤르만 불은 하산을 멈추고 비박을 한다. 험준한 벼랑 가운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쉴만한 공간이 없는 곳에서 동이 트기만을 기다리며 한손은 바위 한손은 스틱을 잡고 꼿꼿이 선 자세로 비박에 들어간다. 추락을 막을 확보용 줄도 추위를 막을 비박색도 없었다. 영하 20도의 추위와 산소결핍증에 시달리며 졸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자신이 서있는 곳을 확인하고 스스로 놀란다. 그는 지옥 같은 비박을 끝내고 기적같이 살아서 돌아왔다. 살아 돌아온 직후 찍은 그의 사진은 29살 청년이 아니라 70세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하루 밤 동안에 평생을 모두 살아 버린 채 살아서 내려온 것이다. 고통스런 비박이 그를 70세 노인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가 헤르만 불의<8000m의 위와 아래>를 2번이나 숙독한 것은 산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
필자가 아는 기업인 가운데 K라는 분이 있다. 그는 학원가에서 성공한 CEO다. 등산을 무척 즐기는 그는 암벽과 빙벽등반에도 상당한 기량을 지닌 도전의지가 강한 악바리 근성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등반뿐만 아니라 풀코스 마라톤에도 여러 차례 출전하여 완주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수직 고 370m의 국내 최고의 어렵기를 지닌 토왕성 빙벽을 오른 사람이다. 그는 기업인답게 안목도 남달랐다. 등반과정에서 느끼고 배운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정신을 경영과 조직관리에 접목시켜 큰 효과를 보았다 한다. 등산은 개인 의 건강뿐만 아니라 회사나 조직을 살리는데 등산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등산경영을 내세우는 그의 지론이다.
우리들 모두는 나름대로의 정상이 있다. 그것이 어떤 분야이든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정상에 도달하려는 사람들은 도전정신이 강해야한다. 등산을 좋아하는 CEO를 만나보면 산악인과 기업인 사이에는 서로 닮은 면이 많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다.
험난하고 거친 등반환경과 치열한 시장 환경이라는 두 활동무대는 서로가 다르지만 추구하는 목표는 같기 때문이다. 높고 험난한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산악인과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일류 기업을 만들려는 기업인은 서로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어떤 CEO는 유명 산악인과 함께 ‘불가능한 꿈은 없다’라고 외치면서 7대륙 최고봉 모두를 등정하면서 산에서 모험심과 도전정신을 배운다. 그 주인공은 미국의 세계적인 영화사 워너 브러더스 사장 프랭크 웰스와 텍사스에서 석유회사와 대규모 스키 리조트 사업을 하는 딕 배스다. 그들이 오른 산은 매킨리. 아콩카과. 빈슨 매시프. 에베레스트. 엘브루스. 킬리만자로. 코지어스코이다.
기업인들의 체력과 정신력은 국력이다. 국력배양은 불확실성과 곤란성에 도전하여 새로운 길을 여는 등산 활동에서 배워야 한다.
첫댓글 우리들 모두는 나름대로의 정상이 있다~교장선생님 한번 뵙고 싶네요~~^^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교장선생님의 글을 볼 때마다 가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