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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여성들의 노출을 허락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선 수영복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기존 사회에 대한 전면
전쟁 선포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1920년대. 수영복은 드디어 미국에서도 진정한 ‘해방의 날’을 맞이하게 됐다. 미국 니트 제조
업자인 칼 잔첸이 신축성이 좋으며 무게도 가벼워진, 몸에 밀착되는 수영복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의 수영복은 ‘해수욕을 수영으로 바꿔놓은’
수영복 역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됐다.
그럼 1930년대가 되며 수영복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됐을까? 그 시대는 피트니스가 인기를
끌며 스포츠가 대중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 덕분에 수영복엔 실용성과 과학이 덧 입혀졌고, 라텍스 같은 고무를 입힌 실이 발명되며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수영복이 몸을 조여주고 받쳐주는 기능을 갖게 되여 육감적인 할리우드 스타들도 날씬한 몸매를 자랑할 수
있었다.
비키니 섬에 투하된 폭탄, 그리고 비키니의
충격
여름이 가까워지면 여성들은 ‘비키니 신드롬’으로 열병을 앓곤 한다. 피트니스 클럽과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며
온갖 다이어트 처방전을 펼쳐놓고 씨름하는 여성들의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해변과 수영장에서 자신 있게 비키니를 입기 위해서다. 이렇게 모든
여성들의 열망의 대상인 비키니는 1946년에 탄생했다. 첫 원자폭탄이 남태평양 비키니 산호섬에 떨어진 지 일 후, 프랑스 디자이너 자크 하임이
파리의 몰리토 수영장에서 위 아래가 분리된 수영복을 처음 선보인 것. 이 획기적인 수영복이 원자폭탄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고 해서 ‘비키니’라
불리게 됐다. 비록 참혹한 역사의 비극과 맞물려 세상에 공개되긴 했지만. 비키니의 인기는 롤러코스터의 속도로
치솟았다.
1960년대, 비키니는 드디어 전성기를 맞이했다. 제목이 지나치게 길어 유명하기도 한 ‘ltsy, Bitsy,
Tweeny, Weeny Yellow Polka-Dot Bikini’라는 노래가 팝 차트의 톱을 차지했고, 마릴린 먼로가 스크린 속에서 배꼽을
드러냈다. 게다가 비키니의 대담함은 곧 토플리스(Topless:브라를 하지 않고 상체를 드러낸 수영복 차림)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졌다. 해변에서
양말을 벗을 수 없었던 1910년대의 여성들이 이런 시대가 올 줄 상상이나 했을까. 그리고 1970년대 말이 되며 비키니는 더욱 대담한 노출을
시도했다. 흔히 줄 팬티라고 부르는 ‘스트링 비키니(Sring Bikini)’가 전 세계 유명 해변을 휩쓸었고, 1980년대에 들어섬 몸 전체를
브론즈 빛ㅇ로 물들이고 싶어하는 선탠 마니아들의 필수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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