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버스는 서황사 방향으로 향했는데, 서황사에는 공양을 준비하는 보살님이 계시지 않아 중간에 선산의 일월전주돌솥밥집에 들러 점심 요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가는 길에 햇살에 비친 빛깔 고운 곶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풍경도 보였고, 그리 넓지 않은 찻길이 시골길을 연상케했습니다.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자리에 앉으니 차려진 음식들이 깔끔하고 신토불이 같아 모두들 시장기가 발동해서 그런지 맛 있게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꺼번에 준비를 하는데 레인지가 16개라서 두 번 아니 세 번을 돌아서야 겨우 우리 인원에 맞출 수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도 마지막 세 번 째에 인원을 잘못 세어서 한 개의 돌솥밥이 늦게 준비되는 바람에 총무님이 허겁지겁 드신 모양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많이 풀려서 두텁게 입고 온 옷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버스에 올라 10여분만에 서황사 어귀에 도착했습니다. 자그마한 마을 뒷편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서황사는 올라가는 길이 마을 입구쪽이 좁았기 때문에 일행은 중간에 내려서 한참을 걸어올라 갔습니다. 나즈막한 비봉산 아래에 위치한 서황사는 늦가을 햇살을 한 몸에 받고 있어 어머니 품에 안긴 듯 따스하게 느껴졌습니다. 입구에서 봤을 때는 전혀 큰 사찰이 들어설 자리가 아닌 듯 했지만, 올라가서 보니 어디나 마찬 가지로 아늑하고 기운이 모이는 명당(?)이었습니다.
<서황사 입구의 주차장에서 본 전경>
<서황사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서황사는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때 창건되었으나 이후의 연혁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따서 죽장사(竹長寺)라 불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9조 불우(佛宇) 조에 죽장사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1530년(조선 중종 25)까지는 절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몽고병란 때 소실되었다가 1954년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법련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 후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명효(明曉)가 대웅전과 삼성각 및 요사채 등을 짓고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합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 3동이 있고, 유물로는 선산죽장동오층석탑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탑은 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국보 제13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탑에는 신라 때 한 남매가 서로 재주를 겨루다가 각각 다른 자리에 오층석탑을 쌓기로 했는데, 누이가 먼저 이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대웅전 법당에는 삼존불(석가모니불, 보현보살, 문수보살)을 모시고 외 5포, 내 7호의 팔작집을 하고 있으며, 사찰 가운데에 있는 오층석탑(높이 10m의 국보 제130호) 감실 안에는 약사여래불의 조그맣고 당당한 모습이 기품이 있어 보였습니다.
<대웅전과 오층석탑>
<비봉산과 대웅전 그리고 오층석탑>
<오층석탑 안에 모신 약사여래불상>
넉넉하게 보이는 주지스님(경봉 스님)의 구수한 말투의 정감이 가는 설명을 들으면서 그간의 세파를 이겨온 눈물겨운 이야기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경봉 스님은 비구니로 1990년 초에 이곳으로 오셨는데, 그 당시에는 오층석탑과 그 옆에 다 쓰러져가는 조그만 법당 한 채만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층석탑 앞에서 하루에 10시간씩 목탁을 두드리면서 기도를 하셨고, 지금까지 7개의 목탁이 부서질 정도로 열심히 부처님께 원을 빌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시면서, 다음에 갈 도리사와 창건 연대가 비슷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3,000평 정도의 부지도 마련하렸고,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가 있는데, 몽고병란으로 소실되기 전에는 60여 채의 건물이 있었던 대사찰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어떤 계파에서는 이런 모진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룬 사찰을 뺏으려고 했고, 용케 신도들이 힘을 모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세월의 무상함과 인생사의 한많은 굴곡이 낙동강을 따라 구비구비 흐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정면에서 본 대웅전>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
<요사채 쪽에서 본 오층석탑>
<요사채 뒷편에 말리고 있는 무시래기>
지금의 서황사는 처음에는 죽장사라고 했는데 우리 말로 죽장사(대나무(竹)를 파는 장사꾼이 아니라 먹는 죽을 파는 장사꾼)와 같은 발음이어서 뒤에 서황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사찰의 스님들이 하도 별나서(?) 선산읍에 들어서는 곳에 하마비(下馬碑)가 있다고 합니다. 옛날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거나 이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서 가라고 해서 세운 비석이라고 하였습니다. 서황사 뒷편은 나즈막한 비봉산이 좌우로 감싸고 앉은 형태이고 앞쪽에는 금오산이 얼굴을 하늘로 하고 반듯하게 누워 있는 형상으로 마을 입구에서 올려다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명을 끝내신 경봉스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서황사 사계절이 담긴 멋진 내년 달력도 한 부씩 나눠주셨습니다. 그리고 오층석탑의 탑돌이를 하는데 탑돌이는 부처님을 오른쪽에 두고 도는 것이라 하시어 모두들 약사여래불상 앞에서 합장을 하고 예를 올린 뒤에 시계 방향으로 탑돌이를 했습니다. 첫 바퀴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둘째 바퀴는 나라의 평안과 발전을 위해, 마지막 바퀴는 어머니와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두 손을 모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속이 꽉 찬 배추가 밭에서 김장을 기다리고 있었고, 조롱박이 잎이 진 나무에 마른 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주 아늑하고 고요한 분위기의 서황사,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당당하게 서 있는 오층석탑, 그 앞에 병풍처럼 서 있는 금오산, 봄에 다시 한 번 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황사 입구 언덕에서 바라본 전경>
<자꾸 돌아봐 지는 서황사>
<김장을 기다리고 선 배추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