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 업둥이 진도개 -설기-이다.
소운의 일요 放談(업둥이) 대한문학세계 기자 소운/박목철
우리가 사는 한반도를 금수강산이라 아름답게 표현하지만 사실 그리 풍요로운 땅이 아니다.
지금이야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 선조들은 척박한 땅에서 어렵게 삶을 이어왔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고, 가뭄과 홍수가 늘 삶을 위협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나마 생존이 가능했던
데에는 사회 저변에 깔린 약자를 돕자는 인정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헤아려야 한다.
상대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인정이 말라가고 있는 현실은 실로 걱정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옛날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하물며 가족을 일컬어 食口(식구)라고 했겠는가?
한 입이라도 덜 수만 있으면 할 만큼 먹고 사는 문제는 생존이 걸린 심각한 문제였던 우리의 옛 삶이다.
보쌈,
며느리를 들이고 남편이 죽기라도 하면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를 평생 먹여 살리는 일은 버거웠다.
유교적 윤리 의식이 지배하던 사회이니 대놓고 개가(改嫁)할 수 있던 사회도 아니었고,
이럴 때 암묵적으로 하는 해결 방안이 소위 보쌈이라는 여자 약취 행위이다. 어느 집에 며느리가 청상
과부가 되었는데 먹여 살리기가 어렵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보쌈을 유도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먹고살 만한 집에서 손을 잇기 위해 여자가 필요하든지 하면, 뒤로 양측이 암묵적으로
합의를 해 날짜를 정하고, 미리 설득한 며느리에게 방문을 잠그지 말고 자다가 보쌈을 하려 들면
형식적으로 저항하고 가서 잘 살라고,
보쌈할 때 저항이 없으면 유교적 수치인 탓에 보쌈당하는 동네에서는 장정들이 몽둥이를 들고 뒤
쫓는 시늉으로 보쌈을 막는 척한다. 떠나 보내는 노인들은 뒤에서 입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소박(疏薄)
보쌈과는 다른 형태의 개가 방법이 있다. 며느리가 시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생기면, 며느리는 친정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게 우리의 풍습이었다. -너는 아무게 집의 귀신이 돼야 한다거나 출가외인- 이라 하여
쫓겨난 딸을 받아들이는 것을 집안의 수치로 생각하던 것이 우리의 풍습이다.
쫓겨난 여자는 동이 트기 전에 이불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동네로 들어오는 고갯마루에 올라 자신을
거둬 줄 남자를 기다려야 했다. 이때 소박맞은 여자요 하는 표시로 -저고리의 앞깃을 조금 잘라냈다-
길을 떠나던 남자가 소박맞은 여자를 만나면, 웬만한 형편이면 데려다 거둬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이렇게 억압된 유교의 틀에서도 사람이 살아갈 틈은 열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제한 것이 우리의 옛
인정이요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마당 쓸기,
누구나 다 가난하고 식량이 없어 허기에 떨던 세상이었지만, 꼭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의 룰이 있었다.
병중의 노모가 당장 위급한데 미움이라도, 라거나 출산한 산모가 굶어 아기 젖은커녕 생명이 위태로울 때,
이럴 때는 아칠 일찍 일어나 비를 들고 동네에서 형편이 가장 나은 집에 가서 마당을 비질하고 온다.
(일본을 다녀 보면 알지만, 마당에 빗자루로 비질 흔적을 깨끗이 남겨 청결함을 돋보이게 하는데 우리도
예전에는 마당에 비질을 했다) 주인은 아침에 일어나 종을 불러 누가 비질을 하고 갔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시킨 후, 쌀을 몇 되 퍼다 주라고 시킨다. 이런 따뜻한 풍습이 있었기에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업둥이,
사실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업둥이가 주제이다.
자식은 낳았는데 도저히 키울 능력이 되지 않으면, 잘 사는 집 대문 앞에 아기를 보에 싸서 가져다 둔다.
이런 경우 업둥이는 내치지 않는다는 강력한 사회적 룰이 존재했다. 업둥이를 내치거나 구박하면 벌 받는다.
는 정신적 구속까지 있어서 불쌍한 아이들을 사회가 돌보도록 유도한 셈이다.
만약 이런 제도가 없었더라면 버려진 아이들은 다 죽거나 구박 덩이로 커서 반사회적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을 버리는 경우는 드물지만, 동물들이 업둥이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막내딸이 살던 동네에 진돗개를 키우던 사람이 있었는데 강아지를 7마리 인가를 낳았다고 한다.
그 중 한 마리가 종종 딸아이를 찾아와 놀다 가기도 했다. 녀석이 빵을 좋아해 동물 애호가인 딸이 일부러
빵을 사다 주면 좋아서 아주 잘 받아먹고는 했는데 이 녀석이 제 주인이 이사하는 것도 모르고 딸아이
집에 있다가 홀로 버려져 말 그대로 업둥이가 되어 한 식구가 되어야 했다.
아주 잘 생긴 백구 암놈인데, 머리가 아주 영리해 말귀도 잘 알아듣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녀석이 풀어주면 달아나서 실컷 놀다가 온다는 점이다. 아무리 불러도 나타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묶어서 길러야 하는데, 강아지 때 훈련을 시키지 못한 탓에 개를 나루랄 수도 없다.
좁은 개집에 가둬 기르는 것이 안 돼서 마당에 로프를 매 놓고 도르래를 달아 제한 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자유롭게 오가도록 울타리도 치고 개집도 보수하고, 햇빛 가리게도 만드느라 땀깨나 흘렸다.
업둥이가 잘못되면 벌 받는다는 딸아이의 잔소리에 무슨? 했지만, 그래도 업둥이를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삼복더위에 땀을 흘리면 작업을 했다. 녀석 이쁜 새끼나 몇 마리 낳았으면 좋겠다.
* 자유롭게 다니라고 도르래를 달았다. 그늘 막을 하려니 줄에 걸려서 높게 설치,더위에 땀 깨나 흘렸다.
방담은 말 그대로 심각하지 않게, 편하게, 나오는 대로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삭막하고 정서가 말라가는 현실이 심히 걱정되기도 하니 가벼운 글일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은 것은 사회 저변에 촘촘히 깔린 인정이었다는 사실을 돌아봐야 한다.
한국 업둥이를 데려간 미국에서 쫓겨오는 업둥이 얘기를 신문에서 보았다. 한국말도 못 하는 업둥이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투신자살했다는 가슴 아픈 얘기도 있었다. 업둥이를 내치면 벌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미국 사회이니,
미국을 탓할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업둥이를 돌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상대적으로 잘 사는 분들이 업둥이를 미국으로 보내지 않도록 배려했으면 좋겠다.
-업둥이를 잘 돌보면 복 받는다지 않던가!-
첫댓글 아주 잘 생겼네요.
저는 세상의 모든 짐승 중에서 개를 제일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토종인 진도개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런데도 여건이 되지 않아 기르지 못합니다.
제가 어떤 것에든지 마음이 가면
빠져 드는 성격이어서
너무 뻐져 들가봐서 아내가 반대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요.
이 녀석의 모습을 보니
기르면 폭 빠져 들 것처럼 생겼네요.
잘 기르세요.
우리집 텃밭 가에는
기르던 개가 죽어서 묻어 준 곳이 있답니다.
사실 그것이 아내가 개를 기르지 못하게 하는 이유지만요.
읽어는 보지만 댓글도 달아 드리지 못하는데
늘 왕성히 활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댓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도 진돗개를 아주 좋아 합니다.
개한테 물려 일주일 입원 한적도있답니다.
진돗개끼리 싸우는데 말린다고 다리 밀어넣었다가 흥분한 개에게 뼈가 드러날 만큼 물렸지요, 길러보니 우리개가 영리하고 깔끔합니다.
일주일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기는 갔다와서 올리겠습니다.
더운 날씨에 평안 하시기 바랍니다.
작가님의 금번 글 중 보쌈과 소박에 관한미있게 보았습니다.
에피소드 및 설명을
오래 전 제 가정도 어느 집을 구매하면서
전 주인이 놓고 간 큰 진돗개를 한동안
기른 적이 있는데 용변을 하루 한 번만 보고
산책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코스를 하던
매우 영리한 개였기에 내심 두려웠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가면서
진돗개를 다른 이에게 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만일 단독으로 다시 이사가게 된다면
실내에서 키우는 작은 애완견 외에
진돗개처럼 크고 잘생긴 혹은 용맹한 개를
마당에 두어 집을 지키게 하고 싶습니다.
늘 세련된 필치로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개는 대형견이 멋있고 듬직 합니다.
진돗개가 기르기가 아주 편합니다.
이틀에 한 번만 산책 시키면, 절대로 대소변을
참더군요, 대단한 참을성에 감탄 했답니다.
며칠 키폐 출석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여행 다녀오면 여행기 올리겠습니다
더운 날씨 행복한 시간 가득 하세요 리피터님,
선조들께서 호구지책으로 만들어진 풍습엔 그런사연들이............
댓글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황구가 한마리 있었는데 지금 모습을 생각해 보니
진돗개 였던 거 같아요 훈련을 시키지 않았음에도
쥐를 잡아서 거름자리에 물어다 놓곤 햇어요
어느 날 황구가 죽자
우리 언니가 며칠째 밥도 안먹고 슬퍼햇다고 하네요.
눈오는 날을 특히 좋아햇던 기억이 납니다
진도개는 쥐를 잘 잡습니다.
기를 때 잔손이 가지않는 깔끔한 개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쫑이라는 강아지를 열심히
돌봤는데 개장수에게 팔려가는 모습을 보고
며칠을 울었습니다. 살기 어렵던 시절였지요,
멋진견이네요
제가 봐도 개중에 미견 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 애교를 부리는 듯한 모습인가보네요.
묶여 있어야 하는 강아지를 위하여
나름 최대한 많이 움직일 수 있도록 옆으로 줄을 매 놓고
그늘과 빗줄기를 막을 수 있는 배려가 담겨 있는
강쥐펜트하우스네요.
강아지..... 사랑만 할 수 없는 속성....
이별의 문제 때문에 섣불리 집에서 함께 살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렇게 흙위를 딛게 되는 경우는 모르겠지만
실내에서 살게 된다면
갇혀 있어야 하는 것도 그렇고
바닥이 미끄러운지 걸을 때마다
발에 온갖 힘을 다 주고
닥닥거리는 모습도 안타까워 보이더라구요.
--실제로 강아지는 괜찮은데 보는 제 생각일 지도 모르겠지만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기에
대부분 집집마다 강아지가 있게 마련인데
유독 우리집에는 없었던 적이 많았었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 "어찌 이별하려구"라는 말씀으로
이유를 알게도 되었는데
언니 오빠들에겐 안통했던
막내들(막내동생과 저)의 무조건 선택으로 우리 집에도
드디어 강아지와 함께 살게되었는데
개를 키워 본 적이 없었기에 특성을 몰라서였을지
어렸던 막내와 난 이뻐하기만 했지 사실 물 한 번 줘본 적이 없었던 터라
개가 뭘 먹고 있는 지는 솔직히 기억이 안나는데요.
사고가 생겨서 개의 특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계기도
겨울방학이 되어 형제들이 집에 와 있을 때 던져 준
갓 삶은 아주 뜨거운 고구마 덥석 먹고
우리가 자고 있던 밤사이 문제가 생겨
뒷산 골짜기에 묻어 주었다고.......
그 때 그 분이 돼지 앞니빼려면 뜨겁게 삶은 물렁한 무를 주면
뜨거운 것 아랑곳 없이 덥석 무는 돼지의 습성상 앞니를 뺄 수 있노라고
그렇지만 소는 아무리 뜨거운 여물을 주어도
절대로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하셨던 ,,,
그리고 한 동안 또 강아지가 집에 없었다가
막내가 대소가의 새끼강아지를 또 넘 많이 이뻐라 하니까
다시 함께 살게 되었는데
이번엔 세퍼트랑 잡종된 강아지였었는데
투시투실 사랑스럽던 강아지로
생장은 또 얼마나 빠르던지 얼마 지나자 커다란 세퍼트만큼이나 쑥쑥자라고
송아지만큼이나 크게 성장했는데
잡종이라도 세퍼트처럼 성품도 아주 순하고
영리함도 세퍼트만큼이었던지
그 친구는 우리 가족들이 드나들때 동구밖 찻길 앞까지 따라와서는
절대로 찻길인 곳에는 발을 딛지 않고
거기서 인사하고 되돌아 가더라구요.
한밤 중에도 마중 나와 있는데
그 자리까지만 나와서 기다리고 절대 찻길로 내려서지 않는 다는 것이고
반갑다고 두 발 번쩍 들어 우리 키보다 크게 하며 반겨도
절대로 우리 옷이나 가방에 스스로는 발이 닿게 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손 내밀어야 발로 살짝 터치하고 맴돌며 따라 오는 정도 ..
외출할 때 찻길 반대쪽으로 갈 때는 어디던 따라오면서도
참으로 인상적인 강아지였는데요
아버지께서 걱정하시던 대로 드디어
많이 컸고 너무나 영민해서 더 이상 정을 줘서는 어찌 할 수 없을 때가 되었다
생각하셨는 지
우리가 학교에 간 사이에 20km도 더 떨어진 아주 멀리에 파셨다는 데
저녁 즈음 제법 단단히 옭아 맸었을 쇠사슬을 몸에 맨채
어찌 끊고 찻길엔 한 발도 내딪지 않았었는데
어찌 그 먼길을 달려 집을 찾아 되돌아 왔는지.
귀가 후 강아지가 안 보여도
가족 중 누군가를 따라 갔었으려니 했었는데 안타까운 사건이었죠.
우리가 안 이상 다시 팔 수는 없어서
개를 사가신 분에게 연락을 해서
개가 되돌아 온 것을 알리고 그 후로도 우리집에서
함께 지냈지만 걱정을 했었다는 요.
하룻 강아지 무서운 범 아랑곳 하지 않는것처럼
독뱀이나 독벌 등도 무서워하지 않고
그대로 공격하는 습성이 있는 지
벌에도 쏘이고 독뱀에 물려서 퉁퉁부어도
이겨내더라구요.
뱀도 벌집도 있을 법한 전원을 강아지와 함께 갈 때는
조심해야 할 부분일 것도 같네요.
그러고 보니 울 동네는 한 집 백구 말고는 강아지를 묶지 않고
키웠는데 같은 동네 사람들에게는 짖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나면 꼬리를 흔들며 다가 오고
어쩌다 묶여 있는 강아지도 사납게 짖다가도
조용히 하라고 하면
뭔가 애닯은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곧바로 꼬리를 내려 버렸던 것도 같구요.
반려동물에 대한 법적보장과 갖가지 제도가 생기는 요즘
실내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구요.
보쌈은 미리 계획하에 그랬다 쳐도
소박은 하릴 없이 동구밖에서 기다려야 했다는 요.
업둥이는 문 앞에 데려다 놓은 것이겠지만
국외 입양은
그 속내를 보면 알선 기관에서 입양이란 이름으로
엄밀히 ..........
그 사건처럼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되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입양해갈때는 절실했기에 데려 갔었을텐데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가족 중 아무도
강아지를 훈련시킨 적이 없었는데도 참으로 영민했던 강아지였었네요.
강아지가 우리 주위에서 맴돌다가도
갑자기 동구밖 쪽으로 뛰어가면
출타 했던 누군가가 귀가 중이라는 신호이기도 했었다는요.
강아지가 전원에서 마음껏 뛰어 놀며 타인에게는 불편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함께 살아도 좋겠지만
묶어 놓으려면 섣불리 함께 살 수 없다는 것.
실내에서 강아지와 함께 살아야 하나에는 회의적이라는 것이고요.
강아지들 모두 행복한 삶이 보장되길 바라면서
긴 글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문장력이 대단 하십니다.
장문의 글을 쓰기가 쉽지 않거든요,
뜻이 있으시면, 수필가로 등단을 하시는 게 어떻실지요?
3 편을 보내 주시면,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현재 대한문인협회 감사입니다. 딴 뜻은 전혀 없습니다.
80년대 중후반 입양기관을 방문한적이 있었는데 한살짜리들 방에 어떤 귀티나고 잘생긴 눈동자가 큰 녀석이 아무 말도 없이 그 큰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던 기억이 아직도 나는군요 참 가슴이 아파 아직도 그녀석이 떠오르곤 하는데 ... 어찌 살고 있는지....보고 싶은데.....
사람 마다 그런 시린 사연이 있나 봅니다.
마음이 여린분들이 특히 그렇지요,
며칠전에 개 한마리를 가져 왔는데
어떻게 키워야할 지 잘 모르겠어요.
단지 지금은 먹이와 물 주는 정도인데...
먹이고 배변 만 치워주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큽니다.
사람 만큼 손 많이 가지 않습니다. ㅎㅎ
예쁘게 키우세요,
악습이라고 생각했던 풍습들에 저런 부분이 있었네요..덕분에 새로운 사실들 많이 알아갑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