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산에서>
아침 7시 차를 운전해 창동역으로 향한다.
역 앞에 차를 세워놓고 포장마차로 가서 따끈한 오뎅국물에 오뎅 한 개 그리고 토스트를 주문해서 먹는다.
추위가 조금 가신다.
7시 30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몇 번 신호음이 가지 않았는데 뒤에서 “형”하며 하나엄마(김점숙)이 나타난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나타난 셈이다.
함께 하기로 한 경자누나는 몸이 안좋아서 산행에 참가할 수 없다고 아침에 문자가 왔고, 또 다른 멤버인 오덕이는 잠시 뒤 나타난다.
오덕이는 나와 등산학교 동기이고 동갑내기여서 졸업이 후 친구로 지내고 있다.
어찌나 성격이 유순한지 게다가 트리플A 를 능가하는 초극단적인 A형이라 그런 순둥이도 없다.
7시 40분 경 출발을 하여 의정부IC를 통해서 외곽순환도로를 통해 중부고속도로에 올라 탄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오덕이는 우동을 먹고, 난 달달한 자판기 커피를 하나엄마는 원두커피를 마신다.
서대산은 사실 처음 가보는 산이기도 하고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산이다.
산행코스도 짧고 많은 시간 걸릴 산행이 아니어서 준비한 장비나 식량도 없으니 차리고 말 것도 없이 워킹 스틱 길이 조정하고 등산화 끈을 조여 맨다.
주차장 한 켠에 휴게실 및 매점이 있고 거기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귀에 익은 음악이라 가까이 가서 들어보게 된다. 안치환 노래다.
안치환은 군 제대하고 복학해서 대학시절을 보내던 때 몇 년을 함께 한 잊을 수 없는 가수다.
물론 김광석도 그런 존재이긴 하지만, 난 감성적으로 안치환을 더 좋아한다.
안치환은 특히 노찾사의 보컬을 하면서 불후의 명곡들을 꽤 남겼다.
‘광야에서’를 제외하면 대중적으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날이 오면’ ‘이 산하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마른잎 다시 살아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타는 목마름으로’ ‘저 창살에 햇살이’ ‘자유’ ‘부용산’ 등 좋은 노래가 많았다.
그리고 운동권 가요가 아닌 서정적인 가요로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귀뚜라미’ ‘내가 만일’ ‘사랑하게 되면(훨훨)’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소금인형’ ‘영산강’ ‘나무의 서’ ‘고향집에서’ ‘그 사랑 잊을순 없겠죠’ ‘당당하게’ ‘너를 사랑한 이유’ 등 주옥 같은 노래가 참 많다.
대학시절 같은 방을 쓰며 자취를 했던 친구는 노찾사를 떠나 솔로가수로서 독립한 안치환이 운동가요를 버리고 그런 서정적인 가요를 발표할 때 약간의 배신감, 실망스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난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안치환 뿐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이며, 젊은 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다고 해서 평생 그런 노래를 불러야 할 필요, 의무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안치환은 솔로로 독립해서 일반가요들을 부르면서도 항상 의로운 자리, 서야 할 자리에는 빠지지 않고 무대에 서왔기 때문에 초심을 잃지 않는 가수로 기억하고 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안치환의 콘써트가 열릴 때면 난 자주 찾곤 했었다.
‘부용산’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면 이 노래를 아는 분이라면 운동권에 깊숙히 발을 담그셨던 분이거나, 아니면 가요에 굉장히 조예가 깊은 분일 거라는 소개를 했었다.
난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고, 함께 간 친구들은 그런 나를 놀라워했다.
무대가 끝나고 엔딩곡으로 혹은 앵콜송으로 안치환은 ‘당당하게’ 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었다.
가슴이 뛰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곡이다.
그리고 ‘소금인형’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팔뚝에 소름이 돋기도 했고,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들을 때면 옛사랑이 생각나 따라 부르며 마음 아파 했었다.
‘내가 만일’ 이라는 곡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사랑하게 되면’은 오랜 시간 동안 내 노래방 18번 이기도 했다.
출발 전 셋이 함께 사진 한 장 찍고 산행에 나선다.
등산로 입구 들어서기 전 비탈길에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얼어있어서 비탈길에서 4륜 SUV 차량이 헛바퀴를 돌며 계속 고생을 하고 있다.
조수석 창가로 가서 다시 뒤로 내려가서 탄력을 받아 한 번에 오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차가 뒤로 내려가는데 눈이 얼어 미끄러워 똑바로 못가고 자꾸 옆으로 미끄러진다.
뒤에 오던 등산객들이 서둘러 차 옆으로 도망치듯 뜀박질을 한다.
여기 저기 공사를 하고 있고, 공사를 했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사유지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 모양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오름짓을 하고 있는데 경사가 계속 이어지기는 하지만 그다지 힘이 들지는 않았다.
지난 일주일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셨는데, 그 퇴폐적인 일상에 대비해 본다면 그나마 이런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기특할 뿐이다.
1시간쯤 올라가니 등산로가 두갈래로 나누어지고, 계곡길로 계속 올라가는 길 옆쪽으로는 구름다리로 가는 길이다.
밑에서 볼 때는 별 것 아닌 듯하던 구름다리는 좁고 흔들거리는 탓에 공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 흔들다리 10여 미터 옆에 평평한 공간이 있는데 절묘한 소나무 두 그루와 어울린 기가 막힌 전망 포인트였다.
밑에서는 나무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신선대가 한 눈에 조망되고, 멀리 대전시내와 주변 경치까지 잘 보인다.
신선대 바위는 생긴 모양이 흡사 요세미티 엘캡바위와 꼭 닮게 생겼고 옆에서 보이는 날등은 엘캡의 가장 유명한 루트인‘노즈’(Nose)와 꼭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카스’에 올리니 조금 뒤 강한별의 댓글이 달렸다. 정말 엘캡과 똑 닮았다는…
한별이는 씨제이 오쇼핑에서 쇼호스트로 일하고 있는 후배인데, 성격좋고 서글서글하고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는데 내 기억으로는 한별이가 웃지 않는 때를 본 적이 없는 것같다.
그 만큼 좋은 에너지를 가졌다.
경치가 너무 좋다며, 오덕이와 하나엄마가 막걸리 한 잔씩 하자고 한다.
원래 나는 산행 중이나 등반 중에는 술 한 잔도 마시지 않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날에 이런 좋은 경치를 보며 좋은 벗들과 한 잔 하는 것도 좋을 것같아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그래봐야 작은 종이컵으로 한 잔도 안되는 양이다.
저 멀리 능선 바위 위에 설화가 예쁘게 피었다. 눈에 담은 좋은 상고대를 카메라에도 담아 가고 싶었으나 망원렌즈가 없다. 광각렌즈로 찍었으나 잘 나올리가 없다. 그냥 머리 속 기억소자에 넣어둘 뿐이다.
나중에 사진을 꺼내어 보면 다시 기억 속 메모리칩(ROM)에 불이 들어올 것이다.
막걸리 한 잔 씩을 마시고 다시 산을 향해 오른다.
30여 분쯤 오르니 정상능선이고 정상을 향해 10여분 가다보니 너른 공터가 나온다.
양지바른 곳이고 땅이 평평하고 좋아 자리를 잡고 간식을 먹기로 한다.
하나엄마가 커피와 컵라면 몇 개, 젯보일을 준비해왔고, 오덕이는 막걸리 세 통에 김치를 싸왔다.
라면에 여유가 있어 나도 작은 컵 하나를 차지하고 끓는 물을 붓는다.
거기서 막걸리 한 잔을 또 마신다. 오덕이는 한 병을 넘게 마시는 것같다.
커피도 한 잔씩 마시고 30분쯤 걸으니 정상이다.
삭도가 연결되어 있고, 포크레인이 바로 옆에 놓여져 있어 아주 볼쌍 사납다.
삭도가 있다는 것은 개발의 흔적이고, 사람을 실어 나를 케이블카를 설치할 목적이었다고 하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몇 년째 공사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저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이라면 꿈도 못 꿀 일이겠지만 사유지라는 이유로 좋은 명산이 저렇게 황폐화되고 난개발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듯이 하산을 하여 계룡산 수통골에 들러 김종건씨가 개업한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중에 문자가 온다.
볼더링 대회에 참가한 샤모니 암장 녀석들이 단체전에서 우승을 했고, 두 명은 개인전 입상도 했다는 내용이다.
나도 기쁜데 관장이자 코치인 하나엄마는 얼마나 기쁠까.
조만간 암장에서 축하 파티를 하기로 했다.
차가 막히지 않아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려 창동역에 도착을 했고, 함께 뒤풀이를 하기로 한 경자누나가 합류했다.
산낙지에 과메기 안주.
수통골에서 술을 못 마신 오덕이가 소주를 들이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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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환 4집 'Confession' 은 한국대중가요 명반100 중에서 78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