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읽는 기쁨] <28> 제2편 제4장 심인공부 ④
만다라회 기획, 박희택 집필
제2절 ‘심인공부의 뜻’은 다항에서 절결(節結)을 맺고 있다. “나[我]를 버릴 것이다. 나는 죄의 근본이며 인연의 근본이다. 참된 나[眞我]를 찾기 위하여 헛된 나[假我]를 버려야 한다. 맹장염에 걸려 수술해야 할 때 내 몸의 것을 떼내고 수술을 해야 건강한 몸이 된다. 헛된 나를 버리는 것은 이 수술과 같다. 참된 나를 찾아야 한다(실행론 2-4-2-다).”
심인공부는 ‘나를 버리는 공부’이며, ‘참된 나를 찾는 공부’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제1절에서 말씀한 ‘심인을 깨치는 공부’, ‘심인을 밝히는 공부’, ‘본심을 찾는 공부’와 그대로 상합(相合, congruence)한다. 나를 버려야 인과를 제대로 내증하는 심인공부를 할 수 있다.
현상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양철학은 자아를 실현하라는 정향(定向)을 띠는데, 이 ‘자아(自我)’라는 것이 ‘진아(眞我)’인지가 문제이다. 존재자의 자아는 ‘생래적인 기질’에 바탕한 것이기에, ‘다듬어진 체질’에 바탕한 것이 아니기에 지정의(知情意)의 불균형체이며, 진선미(眞善美)의 부조화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보리심론」에서는 “몸과 지혜가 함께 적정하여 무아의 법 가운데 진아가 있다(身及智慧俱寂靜 無我法中有眞我)”고 설한 것이다. ‘무아의 법 가운데 진아가 있다’는 이 법구 하나만 하여도, 회당대종사께서 종단의 소의경전에 보리심론을 포함하신 바가 해명된다고 하겠다. 나를 버리는 심인공부에 보리심론이 꼭이나 필요한 것이다. 백양사 서옹선사께서 화두로 내세운 ‘참사람’에 대하여, 무아론에 벗어난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보리심론의 이 법구를 상기하여야 할 것이다.
진아는 무아를 일컫는 것이다. 보리심론에서도 거듭 강조하는 무자성(無自性)이 무아이며, 무아가 진아인 것이다. 존재자의 아는 가아(假我)일 따름이다. 가아를 진아로 보는 즉시 망상이며, 망상에서 온갖 번뇌가 일어나게 된다. 가아에는 소아와 대아가 있음이니, 대종사께서는 “아(我)에게 집착함이 중생이요, 아를 오직 멸하기만 하는 것이 소승이요, 소아에서 대아에로 세워감이 대승이라(실행론 3-11-1-가)”고 설하셨다. 대승이란 소아에서 대아에로 세워감을 말한다. 초대승(超大乘, 밀교, 심인불교)은 대아에서 진아에로 세워감을 주로 설하는 가르침이라 하여도 심인공부의 차원에서는 가능한 정의가 될 것이다.
언제나 ‘아’가 문제이다. 대승의 「금강경」은 사상(四相)을 여의라는 가르침이다. 아상(我相)만이 아니라 인상(人相)과 중생상(衆生相)과 수자상(壽者相)도 공히 존재자의 아의 병폐를 측면을 달리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아공(我空, 나의 자성을 여읨)과 법공(法空, 만물의 자성을 여읨)과 구공(俱空, 아공과 법공까지 여읨)의 삼공은 사상의 여읨을 달리 표현한 교설이다. 대종사께서는 제3편 수행편 제13장 사상장(四相章)에서 5개 절에 걸쳐 심인공부의 관점으로 교설하신 바 있다.
동양철학 가운데 아를 버리는 문제를 가장 직절(直截)하게 설한 가르침은 장자철학이다. 장자는 망아(忘我), 상아(喪我), 무명(無名), 무공(無功), 무기(無己) 등으로 용어를 다양하게 하여 이 문제를 일깨워 주고 있다. 임제선사의 진인(眞人)이 장자에서 격의(格義)된 까닭을 알 만하다. 회당대종사의 심인공부의 진아(眞我)와도 좋이 회통된다고 하겠다. 장자의 아를 버리는 대표적인 두 구절만 여기서 경청해 보기로 한다. 지인은 자기가 없고, 성인은 죽어서는 시호가 없는 것이다. 장자는 자연에서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라고 하였다.
“지인은 자기를 의식함이 없고, 신인은 공로를 의식함이 없고, 성인은 이름을 의식함이 없다(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장자 내편 소요유편 제6장).”
“성인은 천지를 모두 포용하여, 은택이 만민에게 미치지만, 그렇게 한 것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살아서는 벼슬이 없고, 죽어서는 시호가 없으며, 재물이 모이지 않고, 명예가 세워지지 않으니, 이런 사람을 대인이라 부른다(聖人并包天地, 澤及天下, 而不知其誰氏. 是故生無爵, 死無諡, 實不聚, 名不立, 此之謂大人. 장자 잡편 서무귀편 제1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