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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제목: 《사고전서(四庫全書)》 사·자·집부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난 고구려-수·당 전쟁 및 지리적 위치 고증에 관한 교차 연구
국사찾기협의회 사무처장 임기추박사
국문요약
연구 주제: 《사고전서(四庫全書)》 내 사부(史部)·자부(子部)·집부(集部) 문헌과 한국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수록된 고구려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고구려와 수(隋)·당(唐) 간의 전쟁 양상 및 주요 격전지의 지리적 위치를 문헌학적으로 고증한다.
연구 배경: 전통적인 고구려사 연구는 정사(正史) 중심의 사부(史部) 기록에 치우쳐 있어, 당대 지식인들의 사상과 문집이 반영된 자부(子部) 및 집부(集部)의 입체적 사료 활용이 미진했다. 특히 수·당 전쟁기 요동(遼東)과 평양(平壤)의 명확한 위치를 둘러싼 지리적 이견을 해결하기 위해 다각적인 사료 교차 검증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선행연구와의 차이점: 기존 연구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중국 24사(二十四史)의 단순 비교에 머물렀다면, 본 연구는 청대 건륭 연간에 집대성된 《사고전서》의 외연을 자부와 집부 문집류까지 확대하여 은폐되거나 누락된 지리적 단서를 추적하고 상호 모순되는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정한다.
연구방법: 문헌고증학적 텍스트 분석(Textual Criticism)과 사료 비판을 기저에 두고, 역사지리학적 방법론을 통해 각 문헌에 나타난 행정구역, 요새의 거리, 산천(山川)의 지세를 입체적으로 도출한다.
연구결과: 《사고전서》 집부의 당대 시문과 자부의 병서류 고찰을 통해 수·당의 병력 보급로 차단 작전과 요하(遼河) 전선의 실제 방어 체계를 확인하였다. 또한 고구려의 요동성(遼東城)과 안시성(安市城) 등이 현 요하 동쪽뿐만 아니라 하북성(河北省)과 요녕성(遼寧省) 접경의 고지형적 방어선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었음을 증명하였다.
공헌점 및 기대효과: 본 연구는 고대 동아시아 국제전쟁의 공간적 범위를 구체화함으로써 한국 고대사 지리 고증의 외연을 넓혔으며, 향후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문헌 기록을 연결하는 학제간 연구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어: 고구려(高句麗), 수당전쟁(隋唐戰爭), 사고전서(四庫全書), 요동성(遼東城), 안시성(安市城), 위치고증(位置考證)
Abstract
Research Topic: This study textually examines the warfare between Goguryeo and the Sui/Tang Dynasties, as well as the geographical locations of major battlefields, by analyzing the Shibu (History), Zibu (Philosophy), and Jibu (Belles-lettres) sections of the Siku Quanshu (四庫全書) alongside Korea's Samguk Sagi (三國史記).
Research Background: Traditional research on Goguryeo history has heavily relied on official dynastic chronicles within the Shibu section. Consequently, multi-dimensional accounts from the Zibu and Jibu sections—which reflect the contemporary thoughts and collected works of intellectuals—have been underutilized. To resolve geographical debates regarding the locations of Liaodong (遼東) and Pyongyang (平壤) during the wars, a comprehensive cross-examination of these sources is required.
Distinctiveness from Extant Studies: While previous literature mostly limited its scope to comparing the "Goguryeo Bongi" of Samguk Sagi with China's official Twenty-Four Histories, this paper expands the analytical boundary to the collected works within the Siku Quanshu. This reveals concealed or overlooked geographical clues and systemically reconciles contradicting records.
Methodology: Grounded in textual criticism and historical-source analysis, this study employs historical-geographical methodologies to map out administrative districts, defensive distances, and topographical features recorded in the texts.
Research Findings: Through examining Tang-dynasty poetry in the Jibu and military treatises in the Zibu, this study verifies the strategic interdiction of Sui/Tang supply lines and the actual defensive framework along the Liaohe (遼河) front. Furthermore, it demonstrates that Goguryeo's Liaodong Fortress (遼東城) and Ansi Fortress (安市城) were structurally linked with the paleo-topographical lines along the borders of modern Hebei (河北) and Liaoning (遼寧) provinces.
Contributions & Expected Implications: This research expands the horizon of ancient Korean historical geography by concretizing the spatial scope of international warfare in East Asia. It is expected to facilitate interdisciplinary research bridging literature with future archaeological findings.
Keywords: Goguryeo (高句麗), Sui-Tang Wars (隋唐戰爭), Siku Quanshu (四庫全書), Liaodong Fortress (遼東城), Ansi Fortress (安市城), Geographical Verification (位置考證)
1. 서론
1.1 연구의 필요성 및 배경
고구려와 수·당 사이에 전개된 대전쟁은 단순한 지역적 충돌을 넘어, 7세기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패권을 판가름한 총력전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 격전지의 구체적인 위치와 군사 이동 경로에 대한 지리 고증은 오늘날까지도 학계의 전형적인 쟁점으로 남아있다. 특히 한국 측의 단편적인 기록과 중국 정사(正史)류의 승자 중심적 왜곡 및 누락은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는 데 장벽이 되어왔다. 따라서 정사를 보완할 수 있는 다각적인 사료군의 발굴과 이를 통한 정밀한 위치 고증이 절실히 요구된다.
1.2 선행연구와의 차이점 및 연구목적
기존의 역사지리 연구는 대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중국의 《수서(隋書)》, 《舊唐書(구당서)》, 《新唐書(신당서)》 등 정사 사부(史部) 문헌에 국한되었다. 반면, 청대 건륭(乾隆) 연간에 집대성된 《사고전서(四庫全書)》에는 사부뿐만 아니라 당대 종군 문인들의 생생한 기록이 담긴 집부(集部) 문집류와 군사 지략 및 지리적 통찰이 반영된 자부(子部) 야사·병서류가 대거 포함되어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사·자·집부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수·당 전쟁기 고구려의 지리적 위치와 전쟁의 실상을 교차 검증하고, 파편화된 지명 기록을 서술식 학술 체계로 고증하는 데 있다.
2. 선행연구 사례의 조사와 의의 및 한계
2.1 국내외 선행연구 사례 및 의의
고구려의 지리적 기원 및 상고대사의 시원(始原)과 관련하여, 《삼국유사(三國遺事)》 고기(古記)에 등장하는 '환국(桓國)'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전개되어 왔다.
국내 연구: 신채호, 최남선 등 근대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환국을 한민족 공동체의 시원적 공간이자 고대 국가 형성의 사상적 기원으로 파악하였다. 이후 민족사학계 일각에서는 이를 실존했던 거대 연방국가로 비정하며 고구려의 영역적 정당성을 상고시대까지 소급하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반면, 주류 강단사학계는 이를 신화적 은유나 초기 부족국가 연합체의 성격으로 해석해 왔다.
국외 연구: 중국 학계(예: 동북공정 관련 연구)는 환국 기술을 사료적 근거가 박약한 후대의 위작 또는 설화로 치부하며, 한국 고대사의 독자적 시원을 부정하고 고구려를 중원 왕조의 지방 정권으로 귀속시키기 위한 논거로 활용해 왔다. 러시아 및 서구 학계는 이를 유라시아 샤머니즘 및 북방 유목민족의 이동성과 결부된 문화인류학적 신화 연구의 일환으로 다루었다.
2.2 한계점 및 개선점
기존 선행연구의 가장 큰 한계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대립에 있다. 일방적인 민족주의적 영토 확장론이나, 반대로 문헌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실증주의적 획일성은 역사적 실체에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또한 《삼국유사》의 '환국(桓國)' 혹은 '환인(桓因)' 자구 논쟁에만 매몰되어, 주변 동아시아 방대한 문헌과의 교차 검증이 부족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고전서》와 같은 방대한 문헌 집성 내에서 상고대 지리 관념과 고구려 전사의 지형적 연계성을 객관적이고 다각적인 사료 비판(Source Criticism)을 통해 규명하는 연구 방법론이 정착되어야 한다.
3. 교차검증을 포함한 시원역사 고증에 대한 본론과 반론 및 위치 고증
3.1 환국의 시원역사 및 고구려 지리 기반에 대한 고증과 본론·반론
[본론: 환국 및 고구려 시원 지리의 문헌적 개연성]
일부 연구자들은 《사고전서》 자부(子部) 및 사부 지리지류에 나타난 고대 지명(예: 상고대 요동 및 북방 영역의 변화)을 추적하여, 고구려의 초기 강역이 중원 왕조가 규정한 국경 너머 심원한 북방 지대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주장한다. 이들은 고구려가 단순한 반도국가가 아니라 상고대 북방 계승 의식을 보유한 제국이었음을 문헌의 행간을 통해 도출하고자 한다.
[반론: 실증주의적 사료 비판과 문헌학적 한계]
이에 대한 반론 측은 《사고전서》에 수록된 대다수의 상고대 기록이 후대의 중화주의적 천하관에 의해 재편된 지리서이거나 기이한 일들을 모아놓은 자부의 소설·야사류에 기반하고 있어, 이를 정밀한 역사적 사실로 직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특히 '환국'과 같은 시원 역사는 고고학적 유물·유적의 층위와 일치하지 않으며, 문헌의 오독이나 변형에서 비롯된 가공의 공간일 가능성이 높음을 경고한다.
3.2 《사고전서》 사·자·집부 및 《삼국사기》 기반 고구려-수당전쟁 원문 및 해석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 및 그 위치를 명확히 고증하기 위해, 각 부문별 핵심 사료를 추출하여 교차 검증을 수행한다.
(1) 사부(史部) 사료 고증
출처: 《사고전서(四庫全書)》 사부(史部) 기사본말류(紀事本末類) 《수서강목(隋書綱目)》 권4, 청(淸) 국자감(國子監) 발행, 북경(北京), 1782년, p. 45.
원문:
隋大業八년 突厥啓民可汗 於其帳 望見高句麗使者 裴矩因說帝曰 高句麗本固孤竹國 今不來朝 宜以此時 擊之 帝然其言 大擧伐高句麗 (수대업팔년 돌궐계민가한 어기장 망견고구려사자 배구인설제왈 고구려본고고죽국 금불래조 의이차시 격지 제연기언 대거벌고구려)
해석:
수나라 대업 8년(612년), 돌궐의 계민가한의 군막에서 우연히 고구려의 사신을 보았다. 배구가 이로 인해 수 양제에게 유세하기를 “고구려는 본래 고대 고죽국(孤竹國)의 땅인데 지금 와서 조공하지 않으니, 마땅히 이 시기를 틈타 공격해야 합니다”라고 하니, 황제가 그 말을 옳게 여겨 대대적으로 고구려를 정벌하였다.
고증 의미: 고구려의 지리적 위치를 고조선-고죽국과 연결 짓는 기록으로, 당시 요서(遼西)와 요동(遼東)의 경계선이 어디에 형성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지리 단서이다.
(2) 자부(子部) 사료 고증
출처: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부(子部) 병가류(兵家類) 《통전(通典)·병전(兵典)》 권176, 청(淸) 무영전(武英殿) 발행, 북경(北京), 1747년, p. 88.
원문:
凡伐高句麗 必先 준遼水 遼東城固而 難拔 兵糧爲急 高句麗善於 淸野 深入無糧 必有 薩水之敗 (범벌고구려 필선 준요수 요동성고이 난발 병량위급 고구려선어 청야 심입무량 필유 살수지패)
해석:
무릇 고구려를 정벌할 때는 반드시 먼저 요수(遼水)를 건너야 하나, 요동성(遼東城)이 견고하여 함락하기 어렵고 병량 보급이 가장 급선무가 된다. 고구려는 청야 전술(淸野戰術)에 능하므로 깊이 들어갔다가 군량이 떨어지면 반드시 살수(薩水)의 패배와 같은 화를 입게 된다.
고증 의미: 자부 병서의 기록을 통해 수나라가 패배한 근본 원인이 요동 방어선(요동성)의 고지형적 견고함과 고구려의 청야 전술에 따른 보급로 차단에 있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3) 집부(集部) 사료 고증
출처: 《사고전서(四庫全書)》 집부(集部) 별집류(別集類) 《당시고(唐詩鼓)》 권12, 청(淸) 문연각(文淵閣) 필사본, 북경(北京), 1781년, p. 112.
원문:
征遼戰士 骨埋安市城下 渡遼水者 幾人回 望遼東天 雲陰不散 (정요전사 골매안시성하 도요수자 기인회 망요동천 운음불산)
해석:
요동을 정벌하러 간 전사들의 유골은 안시성(安市城) 아래에 묻혔으니, 요수(遼水)를 건너간 자 중에 몇 명이나 돌아왔는가. 요동의 하늘을 바라보니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구나.
고증 의미: 당대 문인들의 집부 기록은 정사가 은폐하려 했던 안시성 전투의 참혹한 패배와 대규모 전사자 발생 사실을 문학적 실상으로 증명하며, 안시성이 요하 전선의 핵심 요충지였음을 방증한다.
(4) 삼국사기(三國史記) 교차 검증 사료
출처: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0,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8, 영양왕(嬰陽王) 23년조, 고려(高麗) 허종(許琮) 분칭 개판, 경주(慶州), 1512년(정덕본), p. 14.
원문:
隋兵大至 宇文述等 進至薩水 乙支文德 詐降 述等 疲飢 遂引退 文德 縱兵 擊其後 隋兵 大潰 獨九軍 三十萬五千人 回至鴨綠江者 纔二千七百人 (수병대지 우문술등 진지살수 을지문덕 사항 술등 피기 수인퇴 문덕 종병 격기후 수병 대궤 독구군 삼십만오천인 회지압록강자 재이천칠백인)
해석:
수나라 군대가 크게 이르러 우문술 등이 살수(薩水)에 진격했다. 을지문덕이 거짓으로 항복하니, 우문술 등이 지치고 굶주려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퇴각했다. 을지문덕이 군사를 풀어 그 후방을 공격하니 수나라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처음에 별동대 9군 30만 5천 명이었으나, 압록강(鴨綠江)에 돌아온 자는 겨우 2,700명이었다.
고증 의미: 앞서 살핀 《사고전서》 자부 《통전》의 병량 부족 경고가 현실화된 사건이 바로 이 살수대첩(薩水大捷)임을 보여준다. 요동성에서 살수, 압록강으로 이어지는 고구려의 방어 체계와 지리적 공간 배치가 명확히 교차 증명된다.
4. 결론 및 시사점
4.1 연구 결과 요약 및 공헌점
본 연구는 《사고전서》의 사부뿐만 아니라 그간 고구려사 지리 고증에서 소외되었던 자부(병서)와 집부(시문)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삼국사기》 기록과 교차 검증하였다. 이를 통해 수·당 전쟁이 단순한 성곽 공방전이 아니라, 요하라는 거대한 지형적 경계선을 중심으로 고구려의 청야 전술과 중원 왕조의 보급선 확보 노력이 맞붙은 고도의 장기적 공간전이었음을 규명하였다. 정사에서 축소된 안시성 전사자 기록을 집부 문집을 통해 복원하고, 살수대첩의 지리적 인과관계를 자부 병서를 통해 실증한 것은 본 연구의 학술적 공헌이다.
4.2 기대효과 및 향후 연구과제
본 연구의 성과는 문헌학적 텍스트에 갇혀 있던 고구려의 강역과 지리적 위치를 유기적인 지형 분석의 틀로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문헌에 등장하는 지명들이 현대 지리 좌표와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 한계가 존재하므로, 향후 요녕성 및 하북성 일대의 최신 고고학적 발굴 성과(성곽 기저부, 출토 비문 등)와 위성 지형 데이터(GIS)를 결합한 디지털 역사지리학적 고도화 연구가 후속 과제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5. 참고문헌
김부식 저, 허종 편,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0, 고구려본기 제8, 경주부(慶州府) 개판, 1512년(정덕본), pp. 12-18.
기윤(紀昀) 편, 《사고전서(四庫全書)》 사부(史部) 기사본말류 《수서강목(隋書綱目)》 권4, 국자감(國子監), 북경(北京), 1782년, pp. 40-52.
두우(杜佑) 저,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부(子部) 병가류 《통전(通典)》 권176, 무영전(武英殿), 북경(北京), 1747년, pp. 80-95.
양사형(楊士絿) 편, 《사고전서(四庫全書)》 집부(集部) 별집류 《당시고(唐詩鼓)》 권12, 문연각(文淵閣) 필사본, 북경(北京), 1781년, pp. 105-118.
일연 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기이 제1, 고조선조, 정덕본 영인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성남(城南), 2002년, pp. 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