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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이파 항을 떠나 터키로
4월10일
바닥에 깔린 된장찌개에 물을 조금 더 붓고 누룽지와 함께 넣고 끓였다.
그 동안 배를 출입국 도크로 옮겼다. 7시에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오기로
하였다. 냄비뚜껑을 열어 아침거리를 식이는 동안 배 갑판에 떨어질 만한
물건들을 정리해서 보관함에 넣었다. 그리고 먹기좋게 식은 생존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시간을 지켜 출입국 여직원 2명이 와서 여권에 출국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인트레피드가 줄을 풀고 출발하여 멀어질 때까지 차에서 보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들 친절하고 좋지만 공무원이나 보안요원들은 좀 무서웠다. 일단 웃음이
없고 모든 외국인을 혹시 테러리스트일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내국인에 대해서도 비슷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숨이 막혀서 어떻게 사나 싶었다.
목적지를 터키 페니케로 정했다. 하룻동안 서풍이 불고 내일은 잠시 바람이 가라
앉았다가 그 다음날은 동풍으로 바뀐다고 하였다. 만약에 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나빠지면 사이프루스섬 남단의 그리스 구역의 항구한곳과 서쪽 터키구역의 항구한쪽을
비상시에 들어갈수 있는 곳으로 생각해두었다.
항을 빠져나갔더니 너울파도가 앞쪽에서 다가오고 예보와는 달리 동풍이 불고 있었다.
상선들이 닻을 내리고 있는 묘박지를 벗어나 주 돛을 올렸다. 그리고 북쪽으로 코스를
맞추었더니 주돛이 펄럭이며 성가셨다. 뒤 바람이 너무 약한 탓이었다. 다시 돛을
내리고 1시간쯤 갔더니 육지의 영향에서 벗어나 서풍이 불어왔다. 다시 주돛과
보조돛을 펼쳤다. 속도는 5노트정도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가는데 이스라엘 해군
함정한척이 배 주변으로 빙빙 돌아다녔다. 성가셨다. 레이더 알람을 켜놓고 선실에서
짐정리를 하고 있는데 알람구역내에서 저러구 다니니 일을 할 수가 없다. 30분쯤
그러구 다니더니 하이파항쪽으로 돌아갔다. 이젠 갔나 싶어 알람을 작동시켰는데
다시 군함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포를 쏘고 이어서
기관총을 쏘아대었다. 혹시 내 무전이 고장이 났나 싶어 이스라엘 불렀다. 요트에 대고
그럴리는 없지만 위협사격인가 싶어 계속 이스라엘 해군을 불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레이더에 나타난 함정과에 거리는 불과 400미터였다. 넓고 넓은게 바다인데 하필이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사격연습을 하다니 참 이해못할 일이었다. 함정은 약 30분
가까이 포와 기관총을 쏘는데 포소리가 들리고 나면 바다에 포가 떨어져 물이 튀겨지는
모습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괴로웠지만 속도가 느리니 거의 30분가량 사격연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불어오는쪽으로 최대한 크로스홀드(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약 45도정도
거슬러 올라감)타고 올라가는데도 목적지방향보다 30도 정도 동쪽으로 쳐졌다. 잠시 후
이스라엘 해군에서 무전이 왔다. 코스를 왼쪽으로 30도정도 꺽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바로 위쪽의 레바논 정관수역인 12마일안쪽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종하는 것
같았다. 이스라엘 참 어려운 나라였다. 이스라엘 해역을 벗어나자 기분이 좋았다.
4월10일
밤새 바람은 서풍이어서 정상항로 보다 20도쯤 밀려내려가다 새벽부터 무풍이
되었다. 보조 돛을 걷어 들이고 메인세일만 남겨둔 체 기관을 가동시켜 항해하기
시작했다. 기상예보가 잘 맞아 들어가고 있다. 사이프루스섬 중앙쪽으로 치우친
항로를 변경하여 섬 왼쪽 끝단을 항해 선수를 조정해두었다. 그곳까지는
약 70마일이었고 항해해온 거리는 120마일 정도였다. 앞으로 피네체까지 가야할
거리는 약 210마일이다. 어제께 새 2두마리가 배에 내려와 잠시 쉬고 갔다. 한 마리는
잘 모르겠고 한 마리는 제비였는데 선실입구에 앉아있는 나를 사람이 아닌줄 잘못
알아보고 어께에 한 번 앉았다고 내가 놀라자 녀석이 더욱더 놀라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크기가 20센티쯤 되는 새 한 마리가 배 뒤쪽 난간대에 앉아서
자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카메라를 아주 가까이 갖다 대도 몰랐다. 아주 깊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생각만 있다면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아침을 해 먹어면서 녀석을 위해
참치 통조림 조금과 빵 한 조각을 던져두고 모른척했다. 선실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보니
녀석은 가버리고 없고 먹이는 그대로 있었다. 녀석 대신에 고기들에게 밥을 주었다.
무전기를 통해 사이프러스포터컨터롤에서 밀라노호를 찾는다. 배이름에서 처음으로
지중해에 들어 온 것이 실감났다. 해변에 가늘게 비늘처럼 잔파도가 일었다. 바람이
오고 있다는 증거다. 오전에는 바닷물을 퍼올려 갑판을 좀 씻었다.
정오가 지나면서 사아프루스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섬 앞으로 ‘EUKOR'이라는
이름을 크게 적어놓은 자동차 운반선이 거의 500미터 가까이 지나갔다. 사진도 찍고
반가워서 무전도 시도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혹시 당직자가 외국 사람일지도 몰라
영어로도 불러 보았지만 허사였다.
‘한국말로 욕을 끓어 부어면 대답하려나!’
한 낮에는 바람이 없었다. 가끔 비가 헛뿌렸는데 비구름이 레이더에 잡혀 알람이
울어대었다. 오후 늦게부터 뒤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기상예보가 잘 맞는 편이다.
19시경 사이프루스 섬 3마일 해상을 통과하여 선수를 약간 우측으로 돌려 터키
피니케 방향으로 향하게 했다. 멀리서 나마 사이프루스 서부해안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관찰했다. 해변을 따라 항구가 몇군데 불빛을 서서히 밝히고 있고 산언덕에는 집들이
많이 있었다. 전망이 좋을 것 같았다. 차를 타고 한번 지나가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20시경, 사이프루스섬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해변을 따라 항구조명과 네온들이
켜져있고 산위에는 주택불빛으로 산전체가 마을이었다.
4월10일
새벽녘에 바람이 강해져서 보조 돛을 거두어 들였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 메인세일을
2단축범하였다. 백파가 일고 허연 거품이 파도 산꼭대기에서 끓고 있었다. 2단축범되어있는
메인세일의 리치(돛대쪽과 반대쪽 비슷듯한 면)가 심하게 떨렸다. 그대로 계속두면 돛이
상할 것이 틀림없었지만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어서 철수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속도는 6노트이상 나와서 좋았지만 돛에서 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가슴팍을 파고
들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하려 했지만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요트복(방수복)으로
무장하고 돛대로 기어갔다. 돛대와 내몸을 하네스(몸과 요트를 연결하는 일종의 안전벨트)로
연결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바람이 돛을 압박하고 있어서 돛을 내리기가 쉽지않았다. 배를
풍상으로 향하게 하고 작업을 해야하지만 높은 파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배를
바람따라 흘러가게 하고는 천천히 조금씩 돛을 끌어내려 부근에 밧줄로 챙챙 동여메었다.
기본같은 것은 없다. 어쨌던 튼튼하게 묶어 돛이 펄럭이지 못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겨우
작업을 마치고 콕핏으로 기어왔다. 돛대만에 받는 바람만으로 속도가 3-4노트에 달했다.
물론 파도도 배를 밀고 있었다. 돛의 아우성이 없어지고 속도가 줄어드니 더할수 없이
편한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뒤따라오던 파도가 한 순간 ‘철퍽’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바닷물이 한 양동이쯤 콕핏 위를 날라 선실안으로 들어갔다. 천만다행인것은 배가
좌현으로 기울어져 파도가 우현쪽에서 날라들어왔기 때문에 항해장비쪽이 아닌
주방쪽으로 물이 들어간 것이다. 바람이 더세게 불고 파도가 높아서 오토파이롯과
윈드베인의 작동만으로 배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했다. 파도를 뒤집어써며 몇시간쯤
조타기를 잡고 있었더니 한기가 몰려왔다. 배의 방향을 대강 맞추어놓고 선실로 들어가서
몸을 녹였다. 이곳은 위도상으로 위치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밤바람이 무척 차가웠다.
이럴때는 배가 제 방향을 좀 벗어나더라도 일단 휴식이 필요하다. 잠시 눈을 붙였다.
1시간쯤 잤을까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지피에스 코스와 레이더 알람상태를 확인하였다.
그런데 레이더가 꺼져 있는게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구명자켓을 벗어두면서
스위치판넬을 건드렸는 모양이었다. 얼른 나가서 밖을 확인하였다. 그때 앞쪽 우측
2마일 쯤 떨어진곳에서 좌측으로 우리배를 가로질러 가는 상선한척이 보였다.
또 한 번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언제든 항해가 끝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밝고 몇시간동안 험악한 바다를 흘러다녔다. 그러는 중에서 거리는 줄어들어
60마일을 남겨두고 있다. 파도는 물마루위에 여전히 거품을 물고 인트레피드의
꽁무니를 따라잡아 배를 번쩍들어 올린다음 물골아래로 밀어댄다. 박자가 어긋나서
배가 속력을 제대로내지못할 땐 따라오던 파도가 여지없이 콕핏위로 올라탄다. 선실
문을 닫아 걸어놓았기 때문에 파도는 콕핏에서 흩어져 다시 바다로 내려갔다. 시간이
잘 안가고 거리도 좀체로 줄어들지 않은 느낌이었다.
15시경 레이더에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비구름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비는 한시간
가량 따루더니 멈추었고 바람이 서서히 앞으로 돌기 시작하더니 북서풍으로 바뀌었다.
바람방향이 좋지않아 최초에 목적지로 삼았던 피니케에서 코스항으로 바꾸었는데 다시
원래목적지로 방향을 돌려야했다. 그런대도 선수가 목적지에서 조금아래로 밀려 똑 바로
피니케로는 갈수없었다. 일단 육지에 접근하고 나면 바람이 좀 약해질테니 그때 코스를
변경하기로 하고 계속 나아갔다.
19시경 해가 저물었다. 피니케까지 13마일남았는데 육지불빛들이 보였다. 파도도 좀
약해져서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활짝웃으며 셀프카메라를
찍었는데 몇 번을 시도해도 얼굴에 그늘이 없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21시경 피니케에 도착했는데 외항에서 엥커를 내릴까 생각했다. 피곤한 상태에서
수속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면 힘들어 질것 같아서 였다. 그러나 항 밖에 너울이 높아
일단 마리나로 들어갔다. 다행히 직원이 근무하고 있어서 계류장에 편안하게 들어갈수
있었다. 그리고 입항수속은 다음날 하면 된다고 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수속 때문에
힘들어서 터키 입항절차를 염려가 되었지만 편안했다. 지중해의 변득스럽고 거친
날씨를 경험한 항해였다. 내려진 메인세일과 밧줄 등으로 갑판 위는 볼상 사나웠지만
그대로 두었다. 마리나 샤워실로 가서 뜨거운 물을 한동안 뒤집어썼다. 찜질방이나 온천이
있다면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싶었다.
4월12일
해치를 열었더니 아침햇살이 따사롭게 비추고 있다. 동쪽 요트 수리소에 올려져있는
요트 돛대위로 멀리 산이 보이는데 하얀 고깔모자를 써고 있었다. 산이 높아서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것이다. 사방으로 돛대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항구는 언제나 평화롭다. 봄을
느끼게 하였다. 배위의 밧줄을 정리하고 주 돛에 커버를 씌웠다. 콕핏에 어지러이
늘려있는 물건들을 하나 둘 제자리에 갖다두었다. 햇살이 너무 따뜻했다.
10시경 마리나에 정박신청을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에이전트사무실에서 입항수속을
하였다. 마리나 계류비는 하루 4만원정도이고 에이전트입항수수료는 95달러였다.
이곳에서 수에즈운하를 같이 통과했던 스웨덴요트와 노르웨이 요트를 또 만났다.
계류장은 폰툰이 시멘트 구조물로 되어있고 뒤쪽에 내려진 앵커부이와 폰툰쪽을
계류줄을 묶어서 배를 정박하도록 되어있었다. 처음이라 좀 서투렀지만 일단 배가
안정되니까 폰툰에 직접 대놓는 것 보다 편안했다.
새터피니케마리나는 350석 규모인데 계류해놓은 배들이 대부분 인트레피드보다
큰 배들이었다. 물과 전기는 무료였다. 터키사람들은 친절했고 거리는 깨끗했다.
피니케에 5일간 머물면서 배 갑판의 나무부분에 니스를 다시 입혔다. 칠이 벗겨져서
남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칠을 하고 나니 인물이 살아났다. 그리고 도져(파도막이천막)에
쟉크를 달아서 앞쪽의 창문이 열릴 수 있게 하였다. 3일째 저녁에는 영국인 토니부부의 배에
초대받아갔다. 요리도 맛있었지만 위스키부터 고량주까지 다양하게 내어놓은 술이 더 좋았다.
토니의 클레식 기타실력이 아주 좋아서 술맛이 더 좋았다. 나는 기타를 잘 못치지만 기타연주를
듣기 좋아한다. 63살 토니는 얼굴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 열연하였다.
다음날도 페인트칠에 여념이 없었는데 오후5시경 토니가 기타합주하러가자고 하였다.
먼저와있던 또 다른 영국인 아저씨(60넘은 분들도 이제 나와 열 살 남짓 차이가
나지 않으니 형님이라고 해야 하나?) 한 분과 어울려서 1시간가량 기타를 쳤다.
기타음을 모두 같이 맞추고 쳤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
‘take me home contury road' 를 연주하면서 노래 불렀다.
출발 전날 마린숍에 가서 휀더 3개를 구입하였다. 가지고 있는 스티로폴 휀더가
납작해져 제 기능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리나 사무실에서 5일간 계류비로
162불을 계산하였다. 밤 12시까지 나간다는 조건으로 당일까지 지불했으나 옆의
요트맨들이 새벽에 나가도 괜찮다고들하여 공짜로 하룻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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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쉬운 항해가 없네요. 지중해하면 따뜻한 햇살과 하얀집들만 연상 되었는데........
칠을할 니스를 가지고 가셨나 아님 현지에서 구입하셨나요?? 항해중에 페인팅 까지 할일이 생기는군요... 재미있는글 잘읽었읍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내가 세계일주하는 착각에 빠집니다. 나도 노후에 여유가 된다면 세계일주 하고 싶지만 지중해의 요트생활은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해야만 가능한것 같습니다. 여유없는 자금에 힘들겠지만 건강하게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항해의 연속이군요.안전 항해가 될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화이팅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