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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장
용무를 완성해 감에 따라 머리카락 같은 숨결이 그림에서 본 자금성 대전의 기둥만큼 굵고 길어짐을 느꼈다.
그 대해 같은 숨결이 천룡후와 함께 사지백해를 맴돌며 손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쿠아아앙-
붕산철장과 천룡후가 마주친 곳에서 그야말로 산이 무너지는 듯한 폭음이 울렸다. 강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숨을 멈추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두개의 장력이 마주친 곳에서 포연 같은 모래먼지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모래먼지는 점차 회오리바람으로 변해 두 사람 주변으로 급격히 반경을 넓혀 나갔다.
휩싸였다간 눈동자로, 고막으로 꽂혀드는 모래가루에 목숨이 위태롭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급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아앗!”
모래먼지 회오리가 더 이상 반경을 넓히지 않을 즈음, 붕산철장 마철웅의 고함이 한 번 더 터졌다.
“후아아앗-”
뒤를 이어 진우청의 고함도 다시 터져 나왔다.
휘이이잉-
이번에는 아까 같은 폭음이 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모래와 작은 자갈들이 포연처럼 터져 올랐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돌풍! 아까는 두 사람 주위를 맴돌며 반경만 넓혀가던 돌풍이 서서히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모래돌풍은 마철웅의 몸 주변에서 옅어지기 시작하여 진우청의 몸 주변으로 두터워졌다. 어느 순간, 그 돌풍은 한 마리 용의 형상이 되어 마철웅을 향해 덮쳐갔다.
퍼어어엉-
뒤늦게 폭음이 터져 나오며 천룡후에 휩싸인 마철웅의 몸이 급격히 뒤로 날려갔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구는 마철웅의 입에서 분수처럼 선혈이 터져 나왔다. 진우청은 우두커니 서서 마철웅과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터뜨린 천룡후! 사부께서 왜 그렇게 신신당부하며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면 터뜨리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호흡의 소모가 심하긴 했지만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사부께서는 왜 그렇게 신신당부했을까?
천룡후를 터뜨리면 많은 사람의 생명을 해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생명을 해치게 되면 그 영혼이 목에 올라타 용무를 추는데 방해가 된다던 사부께서는 그래서 자신에게 신신당부 하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읍-”
길게 들숨을 삼킨 진우청은 용곤과 호곤을 집어 들었다. 곰 보다 더한 상대 하나를 물리쳤지만 적은 아직 그대로 포위망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우청은 용곤과 호곤을 하나로 합쳤다.
쨍-
맑은 쇳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새로운 청년고수 한 사람의 탄생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쥐죽은 듯한 강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진우청은 천천히 마철웅에게로 다가갔다. 연신 피를 토해내고 있었지만 생명은 붙어 있었다. 진우청은 마철웅의 가슴을 손가락 끝으로 빠르게 두드렸다.
적이긴 하지만 대결은 펼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의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울컥!
연체동물처럼 움직이는 진우청의 손가락에 한 모금의 핏덩이를 더 토해낸 마철웅은 입술을 움직였다.
“깨끗이 졌으니 죽이든 살리던 마음대로 하게나.”
마철웅의 눈가에 체념의 빛이 어렸다.
“개떼처럼 덤비지 않고 정정당당히 싸웠는데 왜 죽인단 말이오?”
진우청은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돌아섰다. 진우청이 유가검보 사람들 쪽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서왕문 무사 몇 명이 빠르게 달려가 마철웅의 신형을 옮겨갔다.
잠시 더 정적이 이어지다가 서서히 긴장이 고조되어 갔다.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진우청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고수라는 사실과, 그에 의해 붕산철장 마철웅이 쓰러졌지만
유가검보 사람들에게는 그의 패배로 인해 더 불리해질 상황만 겨우 면했지 유리해질 상황으로 바뀔 소지는 전혀 없었다.
“병신 같은 놈, 이 꼴을 보여주려고 싸움까지 중단하며 나섰더냐?”
들려오는 마철웅을 보며 꼽추 노인이 당장이라도 일장을 날릴 듯 분기를 터뜨렸다.
패자는 유구무언!
마철웅은 눈을 질끈 감은 채 꼽추 노인의 온갖 욕설을 묵묵히 감수했다.
“있던 곳에 던져놓고 물 한 모금 주지 말아라.”
꼽추 노인은 고함을 지른 후 검을 들어 올렸다.
“모두 벌집을 만들어 버려라!”
꼽추 노인은 고함과 함께 뽑아든 검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발자국 소리가 울리며 사방을 둘러싼 포위망이 뒤로 물러났다.
“개새끼들!”
유화결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온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물러난 포위망 뒤에서 단궁을 들고 서 있는 적들의 기세는 아까보다 훨씬 살벌했다.
이번에야 말로 죽을 때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진우청의 존재였다. 진우청에게 부탁한다며 동생 화경은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죽음으로 돕고, 진우청이 퇴로를 빠져 나간다면 가망이 있을 것 같았다. 첫인상과는 달리 뭔가 있는 것 같았지만 이런 괴물일 줄은 몰랐다.
붕산철장의 손바닥을 맨몸으로 막아내고 그의 붕산장을 똑같은 장력으로 상대해 날려버리다니? 그런 인간이라면 자신의 몸에 더해, 혹 하나 정도는 힘들지 않게 달고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형은 어떻게 되었을까? 짧은 순간, 유화결의 뇌리 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본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으리라
‘형! 형은 꼭 살아남아서 오늘의 복수를 해 줘야해.’
입술을 깨문 유화결은 진우청의 옆에 섰다.
“내가 퇴로를 열 테니 넌 내 동생을 데리고 빠져 나가라.”
유화결은 빠르게 말했다. 그 순간 단궁으로 무장한 포위망이 좁혀오고 있었다.
“부탁이다.”
유화결이 훨씬 더 다급하게 말했다.
“부탁한번 상냥하게 하는군!”
진우청은 돌아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너 같은 물렁탱이 말을 믿고 움직이느니 그냥 여기서 버티겠다.”
“이 곰 같은 새끼야, 제발 부탁이니 내 동생 좀 살려다오, 제발!.”
점점 더 조여 오는 포위망을 보며 유화결은 발악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그때, 조여 오던 포위망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궁수들이 전통에서 화살들을 뽑았다.
“나 살기도 힘든데 누굴 책임지라는 거야? 악 그만 쓰고 윗옷에 돌멩이나 잔뜩 담아!”
진우청은 뚫어져라 궁수들을 쳐다보며 마주 악을 썼다. 죽음의 문턱을 몇 번씩 넘나들자 다들 악 밖에 남지 않는 느낌이었다.
“돌멩이는 왜……?”
유화결 옆에서 굳은 표정을 짓던 유화경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해!”
진우청은 다시 고함을 질렀다. 어제 처음 본, 그것도 여자인 유화경에게 행할 언행이 아니었지만 상황이 너무 급했다. 진우청의 목소리에 유화경이 메추리 알만한 자갈을 주워들었다.
“그것 말고 계란만한 것으로…….”
진우청이 더 크게 고함을 지르자 유화경과 백봉령주가 움찔하며 자갈돌을 주워 모았다. 진우청은 급하게 손을 내밀었다. 유화경이 얼른 계란만한 돌 하나를 건네주었다.
쌔액-
돌을 받아든 진우청이 득달같이 던졌다.
“크윽!”
비명이 울리며 화살을 시위에 재우고 유화결을 겨냥하던 흑의인 한 명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그 바람에 강전은 옆에 있던 동료 한 명의 복부에 박혔다.
“네놈 생명을 또 한 번 구했다.”
진우청은 유화결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면서 무슨 퇴로를 뚫겠다고…….”
혀를 찬 진우청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한 발 늦었다. 진우청은 용호곤을 쾌속하게 휘둘러 유상기의 허리를 쓸었다. 유상기의 허리가 휘청 꺾이며 그 위로 강전이 지나갔다.
“빌어먹을!”
짤막한 불평을 토한 진우청은 용호곤을 휘둘렀다. 진우청을 향해서는 두발의 강전이 한꺼번에 날아오고 있었다.
혼전을 펼치던 적들이 뒤로 물러갔다고 좋아할 일만이 아니었다. 포위망 속에 갇히면 이런 식으로도 사냥감이 되었다. 두 개의 화살을 쳐낸 진우청은 땅바닥을 찼다.
발끝에 채인 계란만한 돌멩이 하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진우청은 쾌속하게 용호곤을 휘둘렀다.
까앙-
쇳소리와 함께 용호곤에 가격당한 돌멩이가 진우청을 향해 활을 겨누는 궁수 한 명에게로 날아갔다.
돌멩이에 가슴 한복판을 맞은 흑의 사내가 뒤로 넘어지며 화살 한 개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여기!”
진우청의 행동에서 단초를 얻은 유화경이 고함과 함께 돌멩이를 던져 올렸다. 진우청은 득달같이 용호곤을 휘둘렀다.
“크윽!”
다시 궁수 한 명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계속 던져!”
아래를 쳐다 볼 새도 없이 진우청은 고함을 질렀다. 유화경과 백봉령주가 한꺼번에 돌멩이를 띄워 올렸다.
깡!
까앙-
돌멩이 두개가 거의 동시에 날아가며 두 명의 궁수를 쓰러뜨렸다. 급한 불을 끈 진우청은 용호곤을 두 개로 분리했다.
한 개보다는 두 개가 나았다. 유화경이 얼른 돌멩이 두개를 동시에 던져 올렸다. 오빠보다 훨씬 영리한 소녀란 생각이 들었다.
진우청은 용곤과 호곤을 제각각의 방향으로 휘둘렀다. 두 개의 돌멩이가 정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어김없이 꺼꾸러졌다.
유화결은 멍하니 진우청을 쳐다보았다.
날아오는 돌을 쳐내 저렇게 정확히 목표물을 맞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양손으로 돌을 쳐서 제각각의 방향에 있는 목표물을 맞히는 것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때 진우청의 고함소리가 유화결의 귓전을 때렸다.
“멍청아! 너도 어서!”
진우청의 목소리에 유화결이 급히 허리를 숙였다. 날아오는 화살 한두 개 정도는 충분히 쳐낼 수 있었다. 숙부 유상기와 백운노인 등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궁수가 건재하는 한, 화살은 더 많이 날아오고 급기야는 고슴도치가 될 것이다. 지금은 조개 줍는 소녀 꼴이 되더라도 돌멩이를 던져 올리는 게 나았다.
“돌!”
진우청은 지금 당장 활시위를 당기는 놈이 누군지 빠르게 훑으며 고함을 질렀다. 유화결이 가세했건만 돌이 떠오르는 속도는 더 느려졌다.
“돌!”
진우청은 다시 한 번 고함을 질렀다.
“돌이 떨어졌다.”
채 몇 개의 돌도 던져 올리지 못한 유화결이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마침 이곳은 자갈보다 모래가 더 많은 지역이었다.
“망할 놈!”
진우청은 괜한 유화결에게 역정을 토하며 용호곤을 휘둘렀다. 세 개의 화살이 거의 동시에 튕겨 올랐다.
던져 올릴 돌이 없자 유화결 남매와 백봉령주는 검으로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냈다. 포탄같이 날아오는 돌멩이 때문에 주춤하던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몸에 감추기 쉽게 만들어진 작은 활과 짧은 화살! 그러나 그 화살에 실린 힘은 강전에 못지않았다.
“크윽!”
“윽!”
본격적으로 화살이 날아들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일검대 무사들이 지르는 소리였다.
쨍-
진우청은 유화경에게로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고, 다시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빌어먹을…….”
진우청은 어느새 자신에게로 집중되는 화살들을 느끼며 욕지거리를 터뜨렸다. 그러나 붕산철장을 무너뜨린 진우청에게 화살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진우청은 뿌드득 이를 갈았다. 신이 아닌 이상 이렇게 계속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다가는 한 개쯤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럼 그 실수는 구멍 난 봇물처럼 허점을 넓혀 갈 것이고 결국은 고슴도치가 될 것이다. 그렇게 이들은 죽어갈 것 같았다.
“크윽!”
다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면 유화결도, 유화경도 저런 비명을 토할 것이다. 거리를 벌여야겠다고 생각한 진우청은 화살들을 막고 피하면서 유화결 남매에게서 떨어졌다.
화살들을 더 확실히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함이었다.
“곰탱아 안돼!”
유화결이 악을 쓰며 고함을 질렀지만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화살도 막아내기 힘들었다.
“그러지 마세요, 제발!”
진우청의 의도를 알아챈 유화경도 울음 섞인 목소리로 토했지만 유화결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핑핑핑!
진우청이 유가검보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홀로 되자 화살들은 기다렸다는 듯 진우청에게 집중적으로 날아들었다.
제일 먼저 진우청부터 잡겠다는 심산이었다. 진우청은 용호곤을 떨어뜨렸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화살을 쳐내는 데는 손이 나았다.
휘리리릭-
진우청의 손이 춤을 추었다. 그 손을 따라 어깨와 상체, 하체가 따라 춤을 추었다. 황산 동굴 속에서 십년동안 쉴 새 없이 추었던 천룡의 춤사위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느린 듯하면서도 한 치 흐트러짐 없는 면면부절의 춤이 진우청의 몸을 통해 서서히 생명을 띠며 숨결을 토해냈다.
때로는 물이 흐르듯 유려했고!
때로는 구름이 떠가듯 가벼웠다!
그러나 그 가벼움과 유려함 속에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힘이 서려 있었다. 인간의 춤이, 그것도 깍지동이 같은 사내의 춤이 저렇게 유려할 수 있는가?
환상무!
아니, 신선들의 춤이었다. 흡사 조화옹이 구름을 빚어내듯 움직이는 손! 그리고 그 손을 따라 움직이는 온 몸의 근육들!
각각의 근육 한 개 한 개는 제각각 생명을 띤 듯 움직이며 화살들을 쳐내고 비껴 흘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용의 비늘이 일어서는 듯 흔들리는 잔영은 화살들을 한꺼번에 튕겨냈다.
처음에는 제각각 살아있는 듯한 진우청의 몸에 맞고 튕겨나던 화살들이 점점 밀려나며 진우청의 몸 일정거리 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튕겨났다. 천룡의 춤이 일으키는 기세였다.
너울너울 흘러넘치는 기세!
터져 나오듯 갑작스럽지 않고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지만 그 기세는 해일을 가둘 듯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춤사위가 계속 될수록 춤사위 속에서 퍼져 나오는 기세도 점점 강해졌다.
유상기에게로 날아들던 화살들조차 이젠 모조리 진우청에게로 빨려들듯 쏘아지고 있었지만 천룡의 춤이 만들어내는 궤적 안으로는 단 한개도 스며들지 못했다.
비 오듯 퍼붓는 화살이 이젠 거의 진우청의 몸 반장 앞에서 튕겨나가거나 폭풍우에 휩쓸리듯 다른 곳으로 날려갔다.
천룡신무가 일으키는 기세가 거대한 강기막이 되어 모든 화살을 튕겨내고 있었다.
“저, 저게”
서왕문 문도들을 지휘하던 꼽추 노인의 입이 벌어졌다. 생전 처음 보는 춤이고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공포스런 기운이었다.
저 춤 속에서 어느 순간 한곳으로 모여 터져 나오는 힘은 누구를 막론하고 튕겨버릴 것 같았다. 그 힘에 붕산철장 마철웅이 튕겨 나갔으리라.
“계속, 계속 쏴라! 오늘 저 놈을 죽이지 못하면 천추의 한을 남기리라!”
꼽추 노인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악을 섰다. 붕산철장 마철웅이 장력을 맞고 나가 떨어졌을 때는 놀라긴 했지만 온몸 가득 이런 공포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공포감이 느껴졌다.
화살 때문에 아직은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저놈이 화살을 다 쳐내고 이쪽으로 쏘아져 온다면 호수 한가운데서 불쑥 솟아오른 철갑교룡을 상대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맞을 것 같았다.
“어서, 어서 쏴라! 뭣들 하느냐!”
꼽추 노인 곁에 있던 뚱뚱한 체격의 노인도 악을 썼다. 하지만 궁수를 늘이지 않는 한 화살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었다.
“활을 이리 다오!”
꼽추 노인이 젊은 무사 한 명의 손에서 활을 빼앗았다. 강궁으로도 어찌될지 몰랐지만 지금은 단궁밖에 없었다. 그것으로라도 최대한의 내력으로 쏠 생각이었다.
꼽추 노인은 화살을 시위에 걸고 시위를 잡아 당겼다.
“젠장!”
내력을 이기지 못한 단궁이 뚝 분질러졌다.
“그걸 이리 내라.”
꼽추 노인은 그중 튼튼해 보이는 단궁을 뺏어 들었다.
쾅!
꼽추 노인이 다시 화살 하나를 시위에 걸때 뒤쪽에서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가 울렸다.
노인은 활을 쏘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때 다시 한 번 폭음이 울리며 부하 몇 명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두두두!
마차 한 대가 화약 연기를 헤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평지도 아닌 자갈밭이었지만 마차는 거침없이 달려왔다.
“저건, 저건 또 웬 잡것들이냐?”
꼽추 노인은 고개를 돌린 채 고함을 질렀다. 네 필의 말이 끄는 한 대의 마차! 그 마차는 언뜻 보기에도 범상한 마차가 아니었다.
우선은 마차를 끄는 말들 네 마리가 모두 전장에서나 볼 수 있듯이 갑주를 덮어쓰고 있었다.
눈만 내어놓고 온 몸을 덮은 갑주는 어떤 창칼의 공격에도 말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은 색 갑주를 덮어 쓴 말과 마찬가지로 마차 역시 온 차체가 검은 색으로 보통의 재질이 아닌 게 확실했다.
쾅!
그 마차에서 튀어나온 벽력구가 다시 폭발했다. 사내들 여러 명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전열이 흐트러졌다.
“저, 저런 쳐 죽일 놈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마차를 보고 꼽추 노인은 목이 찢어져라 악을 썼다. 그러는 사이, 거칠 것 없이 치달은 마차는 포위망 한 가운데로 돌진했다.
“오 노야!”
백봉령주는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몽매에도 기다리던 동료들이 지금에서야 도착한 것이다.
이곳에서 대란이, 그곳도 이렇게 신속하게 일어날 줄 예상 못하고 유가검보 근처에 숨겨 놓았기에 무장을 시키고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러나 최악의 순간까지 간 것은 아니었다.
“내가 너무 늦었구먼.”
절명자 오무평은 강변에 즐비한 시신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것보다…… 진 공자님!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백봉령주는 진우청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전열이 흐트러지며 화살수가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그 화살들은 여전히 진우청에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기절초풍할 일이구만!”
춤이 일으키는 기세로 수많은 화살들을 휘날려 버리거나 튕겨내는 진우청을 보며 오무평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했다.
“한 개 더!”
오무평의 고함과 함께 마차 안에 있던 사내 하나가 빠르게 손을 움직이자 뒤쪽의 궁수들을 향해 벽력구 한 개가 쾌속하게 튀어나갔다.
콰앙-
궁수들 앞에 떨어진 벽력구로 인해 화살수가 더 줄어들었다.
타닥-
훨씬 더 줄어든 화살을 쳐낸 진우청은 급히 용호곤을 주워들고 훌쩍 몸을 날려 마차 옆으로 왔다.
“고맙소, 노인장!”
진우청은 오무평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사이에도 화살은 날아왔지만 마차에 막혀 튕겨 나갔다.
“이왕 오실 것이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왔으면 좋지 않았소?”
진우청은 오무평을 보며 불평하듯 말했다. 오무평은 날아오는 화살 하나를 절명자로 쳐내며 진우청을 쳐다보았다. 처음부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 신경을 건드린 천둥벌거숭이!
그러나 마차를 몰고 오며 목격한 그 천둥벌거숭이의 몸놀림도 상상을 초월했다. 또한, 이제 같은 배를 탄 운명인것 같았다.
잠시 복잡한 생각을 하던 오무평은 부하들을 시켜 다시 벽력구를 터뜨리게 했다. 한 개에 천금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우선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급했다.
“어서 이쪽으로…….”
백봉령주는 유가검보 사람들에게도 고함을 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엄폐물을 찾아 본능적으로 마차 주변으로 모이던 사람들은 급급히 마차와 갑주를 씌운 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완벽한 방어막은 아니겠지만 이곳에 있으면 화살이 날아온다고 해도 뒤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더더구나 벽력구 때문에 적들이 함부로 접근 할 수도 없었다.
“이 쳐 죽일 놈들! 다시 화살을 날려라!”
꼽추 노인은 벽력구로 인해 흐트러졌던 전열을 정비시키며 고함을 질렀다.
핑핑-
잠시 주춤했던 화살들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하나 주시오!”
진우청은 오무평을 향해 손을 뻗었다. 움찔하던 오무평은 몇 개 남지 않은 벽력구 중, 하나를 진우청에게 주었다. 벽력구를 받아든 진우청은 한손으로 화살을 쳐내며 쾌속하게 던졌다.
“어헉! 저, 저놈이.”
자신 앞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벽력구를 보며 꼽추 노인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급히 몸을 날렸다.
콰앙-
폭발음이 울리며 두 노인이 섰던 자리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다.
“쇠 그물을 펼치세요.”
안정을 되찾은 백봉령주가 지시하자 마차안의 사내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잠시 후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 지붕에서 총총한 그물코의 쇠 그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물이 다 나오자 마차안의 사내들이 쏟아져 나오며 쇠 그물은 사방으로 당겼다.
“모두 그물 안으로 들어오세요.”
백봉령주가 소리를 지르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쇠 그물 안으로 신형을 옮겼다.
핑핑-
화살들이 쇠 그물을 향해 다시 날아들었지만 화살촉보다 작은 그물코의 쇠 그물에 막혀 튕겨 나갔다.
“우선은 한숨 돌리겠지만 미봉책일 뿐이에요.”
목까지 차오른 숨을 돌린 유가검보 사람들을 보고 백봉령주가 말했다.
“정말 고맙소, 소저. 신분은 모르겠지만 구명의 은혜를 입었소!”
일검대주 유상기가 파리한 안색으로 포권을 쥐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어느 한곳도 죽음을 딛고 살아남은 자의 안도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말씀은 진 공자에게 하세요. 진 공자가 아니었으며 저를 포함한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일찌감치 몰살당했을 테니까요.”
백봉령주는 진우청을 보며 말했다. 아직도 정체는 전혀 예측 불능이었지만 그 사실은 틀림이 없었다.
“고맙네, 공자!”
유상기는 포권과 함께 고개까지 숙였다.
“아직 범 아가리 속인 것 같은데…….”
진우청은 갑자기 쏠리는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얼른 고개를 돌려 그물 밖을 쳐다보았다. 그새 포위망이 좀 더 좁혀져 있었다.
포위망은 좁혀졌지만 마차에서 튀어나오는 벽력구 때문에 더 이상은 접근하지 못하고 탐색만 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네.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 아직 살아난 것이 아닐세.”
온몸 가득 피를 뒤집어쓴 백운 노인도 신중하게 말했다. 백운 노인의 말과 함께 잠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화살 세례에서 벗어나 숨을 돌리고 있지만 상황은 그대로였다.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적들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았고 무공도 우세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으면 해가 질 텐데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와아-”
갑자기 함성과 함께 사방에서 한꺼번에 사내들이 달려들었다. 벽력구가 아무리 위력이 강해도 한꺼번에 수십 개씩을 던질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선 모양이었다.
“백봉침!”
백봉령주가 고함을 질렀다. 고함소리와 함께 마차 안에 있는 사내들의 손이 분주히 움직였다.
피피핑-
쇠줄이 움직이는 미세한 소리가 울린 후, 마차지붕이 한 겹 벗겨지더니 그 곳에서 새하얀 색깔의 강침들이 사방으로 쏘아졌다.
“아악-”
“아아악-”
비명소리가 울리며 온몸 곳곳에 강침 세례를 받고 고슴도치가 된 사내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무, 물러나라!”
숫자만 믿고 육탄돌격으로 달려들다가 뜻밖의 반격을 받은 뚱보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달려들던 사내들은 많은 시체만 남긴 채 신속히 뒤로 물러났다.
“저, 저런 육시랄 놈들! 저 찢어죽일 놈들!”
꼽추 노인은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팔짝 팔짝 뛰었다. 그리고 다시 대치상태가 이어졌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잠시 후, 오무평은 백봉령주에게 물었다. 사실상 자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유가검보와 동방회가 손잡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건 가만히 있어도 아는 것이니 가치도 없었다.
또, 유가검보 소유의 광산에 무언가 무림의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걸 알아내고 먼저 손에 넣든지, 그것이 불가능하면 사전에 폭파 시켜 버리는 것이었는데,
그 어느 것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뜻밖에도 동방회의 계략에 말려든 유가검보가 멸문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뜻밖에도 유가검보를 멸문지경을 몰아가고 있는 주력은 서왕문이었다. 동방회가 서왕문과 손을 잡았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지만 그것 역시 큰 성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일을 벌였다면 자신들과 상관없이 남패천 총단에서도 충분히 알 것이고, 더 큰 전쟁이 남은 것이다.
사태가 그런 식으로 큰 물결이 되어 흘러간다면 자신들은 이곳에서 잊혀져 버릴 수도 있었다. 오무평은 그게 걱정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들은 소모품일수도 있었다. 동방회의 움직임을 읽고 있던 총단에서 서왕문의 움직임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이곳에 보낸 것은 이무기가 사는 연못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는 격이리라…….
그 작은 돌멩이에 이무기가 용트림이라도 한다면 더 없는 수확이고, 아니더라도 연못의 깊이 정도는 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아래 자신들을 보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총단에서 계산하는 그런 복잡한 것들까지는 죽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안다고 해도 현재의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백봉령주도 오무평과 똑같은 생각을 하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검보로 가야 하오!”
창백한 표정의 유상기가 말했다. 짤막한 말과 함께 충혈된 그의 눈빛에는 검보 역시 이곳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더할 수 없는 초조감이 어려 있었다.
그건 이제 유화결과 유화경도 느끼고 있었다. 본가가 무사하다면 지금쯤 유화성과 함께 구원군이 달려와야 했다.
“그래요. 우린 본가로 가겠어요!”
유화경도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때 다시 한 개의 백력구가 터지며 포위망을 좁히려던 일단의 무리들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노야. 그곳의 상황은?>
백봉령주는 오무평에게 전음을 날렸다.
<유가검보 소유의 광산과 채석장을 친 무리들이 검보로 모여들고 있었네. 이곳보다 결코 나은 상황이 아닐 것이야.>
오무평은 똑같이 전음으로 답했다. 백봉령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백봉령주의 뇌리에 유화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빼닮은 여인을 잊지 못해 술로 세월을 보내던 애처로운 사내! 그 곳으로 달려간 것이 확실한 그 사람은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안돼!’
백봉령주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유화결을 쳐다보았다.
“무조건 그곳으로 가야 하오.”
백봉령주와 눈이 마주치자 유화결은 처절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뜻은 단호하게 밝혔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검보로 가는 것은 물론. 이곳에서 살아나는 것도 힘들었다. 유화결의 표정이 더욱 처절하게 변했다.
“제발 도와주시오. 우리가 그곳까지 갈수 있게.”
유화결의 입술에서 선혈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검보에 수성전을 펼칠만한 곳이 있나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백봉령주가 물었다.
“철무전이 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면 모두 그곳에 있을 겁니다. 그곳으로 들기만 했다면 어떤 공격에도 당분간은 끄떡없소!”
유화결이 빠르게 답했다.
“말겠어요. 의논해 보겠어요.”
백봉령주는 오무평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노야! 제발 부탁이에요. 그 사람을 구하게 해주세요. 그럼 평생 노야의 종이 되어도 좋아요.>
백봉령주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허허-”
잠시 멀뚱거리는 눈으로 백봉령주를 쳐다보던 오무평은 탄식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토했다. 백봉령주의 두 눈 가득한 감정의 빛깔을 읽지 못할 리 없었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이런 상황에서까지…….’
오무평은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자기 목숨도 챙기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검보로 간다면 그 상황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이 여자는 그곳으로 가자고 이렇게 애원을 한단 말인가?
“노야, 제발…… 이렇게 빕니다.”
백봉령주는 무릎까지 꿇으며 애원했다.
“지금 상황에선 어디로 가나 마찬가지일 것 같네. 우선은 그곳이 나을 수도 있지.”
마침내 오무평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곳까지 와서 싸움에 개입된 이상 남패천으로 곧장 달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디서건 시간을 끌며 총단의 구원병을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었다. 아울러 유가검보에서 그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노야!”
백봉령주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마차에 탈 수 있는 인원이…….”
오무평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난감한 표정도 같이 지었다. 마차 안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최대한으로 탄다고 해도 열 명 남짓! 자신들이 이미 여섯 명이니, 더 태울 수 있는 인원은 너댓 명 정도. 그때 유상기가 나섰다.
“화결과 화경이, 백운 어르신, 그리고 진 공자… 네 사람만 태워주시오.”
유상기는 단호하게 말했다.
“숙부님!”
유화결이 고함을 질렀다. 그 고함소리와 함께 그물 밖에서도 함성이 울리며 포위망이 다시 조여 들었다.
피피핑-
강침이 다시 튀어나갔다. 그러자 놈들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마차안의 강침이나 백력구를 소진하기위한 작전이었다.
“어서, 어서 오르시오. 우린 마차를 따르며 검보로 돌진하겠소!”
물러나는 서왕문 무사들을 보며 고함을 지른 유상기가 유화경과 백운노인을 마차 안으로 떠다밀었다.
“숙부님, 숙부님도…….”
유화경이 울부짖으며 소리를 질렀다.
“어서 타거라. 너희들만 살아난다면 난 백 번을 죽어도 한이 없다.”
유상기는 핏발선 눈으로 종용했지만 유화결과 진우청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백봉령주와, 유화경, 백운노인만 억지로 마차에 태운 유상기는 일검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려 쇠 그물을 걷었다.
끼기긱-
천막처럼 넓게 퍼진 쇠 그물들이 마차 지붕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땅에서 끝이 들릴 즈음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것으로 마차는 쇠 그물 주렴에 둘러싸인 모양이었다.
“이랴!”
오무평의 고함소리와 함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래바닥에 바퀴가 푹푹 빠졌지만 네 필의 말들은 아랑곳 않고 마차를 끌며 서서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쳐라!”
유상기는 일 검대 무사들을 독려하며 마차의 진로를 트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앞은 걱정 마세요.”
백봉령주의 목소리가 들리며 백력구 한 개가 쇠 그물 윗부분을 통해 쏘아져 나왔다.
퍼엉-
폭음과 함께 마차 앞을 막던 사내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마차는 더욱 속력을 내며 제방과 강변을 잇는 경사로를 타고 제방 위로 올랐다. 이젠 본격적으로 속력을 낼 수 있었다.
“모두 마차에 매달려라.”
마차가 속력을 낼 수 있게 되자 유상기는 고함을 질렀다. 얼마 남지 않은 일검대원들이 쇠 그물을 잡고 마차에 매달렸다.
“막아라. 저놈들을 막지 못하면 모두 목을 베리라.”
뒤에서 곱추 노인의 고함소리가 들리자 벽력구에 주춤하던 서왕문의 무사들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부웅!
진우청의 용호곤이 허공으로 갈랐다. 용호곤에 휩쓸린 사내들이 한꺼번에 뒤로 날려갔다. 그 사이로 다시 한 개의 벽력구가 더 터지고 마차는 질주하기 시작했다.
“고맙다, 곰탱이!”
쏜살같이 달리는 마차 쇠 그물에 매달린 유화결이 진우청을 보고 말했다. 어제 처음 안면을 턴 사이였지만 억겁같이 길게 느껴지던 싸움판에서 억겁 같은 정이 들었다.
“돌멩이도 제대로 못 던져 올리는 물렁탱이!”
진우청은 ‘돌이 떨어졌다.’ 라는 유화결의 목소리가 들리던 때의 기막힌 심정을 떠올리며 핀잔을 주었다.
유화결은 대체 진우청의 정체가 뭔지 의심스런 눈으로 진우청을 쳐다보다가 이내 눈을 돌렸다. 마차가 달려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한 떼의 무인들이 서 있었다.
혹시라도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유가검보 사람들을 도륙하기 위해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독한 놈들!”
백운 노인이 혀를 찼다.
“치고 지나가겠다.”
오무평이 안에 있는 남패천 무사들을 보고 고함을 지르며 말고삐를 세차게 흔들었다. 마차가 지나가야 할 길을 막고 있는 사내들의 숫자는 열 명도 되지 않았다.
훨씬 더 압도적인 숫자의 적들을 뚫고 나온 마차는 앞을 막은 사내들을 한꺼번에 짓이길 듯 쏘아졌다.
그 순간!
히히히힝!
앞서 달리던 두 마리의 말이 갑자기 길게 울부짖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광분하기 시작했다.
달리던 속도가 있기에 멈춰지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발광을 한다면 앞쪽의 말들로 인해 뒤쪽의 말들까지 위험한 지경에 이를 것 같았다.
절명자 오무평은 급히 고삐를 잡아당기며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온 몸을 갑주로 둘러싼 말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말들을 발광하게 했던 이유가 밝혀졌다.
까가각-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소리!
광음마각 천개일이 펼치는 음공이었다.
“크윽!”
이번에는 말 뿐만 아니라 쇠 그물을 잡고 마차에 매달려 있던 유가검보 무사 한 명도 비명을 질렀다.
까가각-
다시 광음마각이 연주되었다.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던 청년 두 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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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합니다^^
감사ㅎ
잘봅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즐감~~^*^
갈수록 흥~미진진 하네요??
ㄳㄳ
즐독요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