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반도 횡단 308km 울트라마라톤대회 참가기
인간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도전하는 울트라맨들!
마음을 가다듬고 아예 횡단과 종단에 도전해보고자 KUMF(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에 정식 가입을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남들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쳐 오른 것이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횡단 첫 도전을 위하여 8월 9일 금천구 혹서기 100km울트라 마라톤대회 신청을 하고
연습에 집중한다.
매일 15km를 런닝하고 주말에 20km이상의 장거리훈련에 돌입한지 3개월이 지나간다.
7, 8월의 날씨는 무척 무더운 날씨인지라 연습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운동하고자 하는 의욕마저 사라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과 똑같이 생각해서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는가?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땀이 주르룩 흐르는 상황인데 어떻게 운동 하겠다는 의지가 생기겠는가?
그래서 운동의 최적 코스를 찾다가 충주에서 가까운 문경새재코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문경새재는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쌓여 있고 새재길 옆으로는 시원하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며 중간 중간에는 약수터까지 산재해 있어 그야말로 그늘 속에서 운동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적의 코스라고 자부해도 지나침이 없는 환상의 코스이다.
더구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는 흙길은 충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천혜의 코스이다.
이 새재 코스에서 주말이면 20km이상을 3개월 이상 연습을 하니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다. 다행히 함께 운동할 수 있는 지인이 나타나 더욱 의지가 되었다.
또한 울트라 참가를 위하여 배낭을 새로 구입해야 되는데 어떠한 제품이 가장 적절한 지 유 경험자들의 얘기와 인터넷을 통하여 15L용 팀버라인 배낭을 구입하였다.
배낭을 메고 무엇이 불편한 지 또 걸림돌은 없는 지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은 없는 지를 꼼꼼히 따져 보니 핸드폰 주머니가 없어 손수 세탁소에 의뢰하여 제작을 하였다.
필요한 비상약품과 물품, 여벌옷, 신발 등을 점검하고 대회 요강을 여러번 걸쳐
숙지 하였으며 어려운 코스는 어디인지, 달릴 때 필요한 사항은 무엇이 필요한가를 점검하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서울역에서 셔틀버스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나라 육지의 최서측인 강화도 하점면 창후리 선착장에 도착하자 대회부스와
각종 물품 등이 즐비하게 설치되어 있다.
가을 햇살과 시원스런 서해바다에서 고기잡는 배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오는
한가로운 선착장이다. 시간이 좀 지나자 전국에 모여든 울트라맨들이 각자 색다른 복장을 하고 모여든다. 횡단 첫 도전자로서 지인들도 별로 없고해서 우리 충북지맹 회원 몇 명과 함께 조우하여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눠본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기념사진 촬영이 시작된다. 각 지맹별, 지역별, 크럽별로
사진을 수차례에 걸쳐 카메라에 담아본다. 그중 한반도횡단울트라마라톤 출발점
표지석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후 식사를 마치고 출발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금년부터 대회요강이 바뀌어 밤 21:00에 출발하는 제도로 변경되었다 한다.
오늘 런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부상이 없는 무사완주를 위해 눈을 감고 기도해
본다.
1. 출발지점 ∼ 1CP(50km:김포물류단지)지점
드디어 9월 25일 목요일 밤 21:00!
열, 아홉․․․․․․․․ 셋, 둘, 하나를 외치자 힘찬 함성과 함께 달려 나간다.
모두들 끝까지 완주 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머나먼 여정 길이 시작된다.
길가의 가로등 불빛 사이로 코스모스가 한가롭게 피어 우리를 반기는 듯 하다.
출발은 항상 울렁거리는 마음을 안고 무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우리 충북지맹
회원과 함께 서서히 달린다.
밤이 깊어가는 시골의 한적한 주로는 개 짖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 적막감만이 엄습해 온다. 저마다 배낭에 부착된 깜박이등에서 깜박깜박 불빛만을 쫓아서 뒤따라
간다.
몇 번씩 완주한 고수들은 즐겁게 얘기를 하면서 달리는데 난 힘이 부친다.
후반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전반에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
강화대교를 건너 김포반도로 들어서자 45km지점에 설렁탕집이 나탄난다.
일찍 도착한 주자들이 약 30여명은 되는 것 같다. 앞선 주자들은 벌써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일어서기 시작하는데 난 이제야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얼렁뚱땅
식사를 마치고나니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주자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여
자리를 양보할 수 밖에 없다. 서울 외관순환고속도로 밑을 통과하여 김포 아라뱃길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는 자전거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속도가 맞는 주자와 얘기를 나누며 달리는데 다행히 횡단을 5회 완주한 경험자이다.
참 행운이다. 이럴 때 울트라에 대한 경험담을 최대한 들어보자고 자꾸 질문을
해댄다.
친절하게도 준비부터 런닝, 휴식, 식사, 수면 등 울트라대회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알려 주는데 그 중 배낭의 무게를 줄일 수 방법이 놀랄 만하다.
물티슈도 무겁기 때문에 말려서 휴대하고 사용시에는 물에 적셔 사용하면 제격이란다.
시간은 벌써 9월 26일 새벽 03:00가 다가온다. 누적시간을 보니 5:56분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달려왔다.
2. 1CP(51km) ∼ 2CP(97km : 하남시청광장)
이제부터는 한강의 19개 대교들을 지나 천호대교까지 달려야 자전거길이 끝난다.
이 새벽녘에도 자전거 라이더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띤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언제 잠을 자야 이 시간에 일어나 운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잠이 많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날이 밝아올수록 시간이 지나갈수록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은 점점 많아진다. 너무도 쌩쌩 달리는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을까 조심조심 해진다. 달리는 중에 전화와 문자들이 너무 많이 오게 되어 지장이 있다.
마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와서 지금부터는 06:00, 12:00, 18:00, 24:00 6시간 단위로만 핸드폰을 개통하니까 전화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결혼한 딸과 아들(사위)이 응원을 나온다고 하여 천호대교에 아침 07:00 정도 도착할 거라고 알려주었는데 식사시간, 중간중간 화장실 사용 시간, 간식 타임 등의
시간을 망각한 채 달리는 시간만을 계산하여 알려 준 것이 판단 착오다.
가양대교, 서강대교, 동작대교, 한남대교, 영동대교를 통과하니 어느새 날이 환하게 밝아온다. 그런데 조금씩 아파오던 발목이 점점 더 아파오면서 부어오르는 느낌이다.
이따금씩 한강변에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뛰는 우리들을 보면서 어디서부터 오느냐? 어디까지 가느냐?를 물어온다. 친절하게 대답해 주고 계속 발걸음을 재촉한다.
함께 뛰는 고수의 주자들에게 붙어서 울트라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얻어가기 위하여
이것 저것 물어가면서 함께 달리니 그런대로 달릴 만하다.
화장실과 물이 있는 곳이면 수시로 들러서 허벅지와 항문 주위를 씻어내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천호대교가 가까워지자 저멀서 딸과 아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간 마라톤은 나 혼자만의 운동이었다. 어느 누구도 응원을 한 적도 없었는데 가족중의 딸과 아들이 응원을 나오는 것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애써 눈물을 감추고 만나는 순간 반가움과 감동에 겨워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만다.
이른 새벽 날씨도 차가운데 이 멀리까지 아빠를 위해 응원을 나오다니……
감격스러울 뿐이다. 사진을 몇 카트 촬영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주는 간식을 취식하고나서 아빠! 무사완주를 기원하는 딸과 아들의 응원을 뒤로한 채 하남시청을 향하여 43번 도로로 올라서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천호동, 길동, 상일동을 통과하는 지점들은 신호등이 많아서 한참을 신호대기
하면서 앞선 주자들을 따라간다. 수많은 인파들이 이상한 듯 힐끔힐끔 쳐다본다.
마치 창경원의 원숭이라도 구경한 듯 싶다.
2CP인 하남시청 광장에 도착하니 누적시간 12:33분이다.
3. 2CP ∼ 4CP(152.6km : 용머리휴게소)
간단한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화장실에 들러 양치질을 하고 허벅지 부위를 물로 씻어낸다. 앞서간 주자들이 시내 매점에 들러 컵라면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들러서 컵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팔당대교를 지나면 남한강 자전거길이 연속된다. 옛 철길을 걷어내고 아름다운
자전거 길로 대변신한 아이디어가 놀랍다. 북한강 주변에는 자전거 라이더들을 위한 매점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또한 연인끼리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아름다움이 많은 코스로도 유명하다. 함께 동반주를 한 주자들이 식사를 하고 가자고 하여 식당에
들렀으나 땀을 많이 흘려서 도무지 음식이 입에 들어가지 않는다.
한동안 몸을 재정비하여 자전거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북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곳의 전망대, 터널, 수십 개의 휴게소와 카페 등이 주말을 즐기는 관광객들을 유혹할 만하다. 발목의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 함께 고통도 뒤따른다.
그래도 아들 딸이 응원까지 나왔는데 포기할 수도 없다. 또한 우리 중앙탑크럽
회원들이 용머리휴게소에 응원 및 격려까지 오겠다는데 어떻게 하든 휴게소까지는 도달해야 한다.
이 구간은 총 55km로써 10시간의 시간이 부여되는 코스다.
출발 첫날 잠을 자지 못한 관계로 피로가 더욱 가중되는데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주간이라 아름다운 전경들을 눈으로 감상하기는 좋으나 수십 명의 자전거 라이더들이 스피드로 앞을 추월해 갈 때마다 아찔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3CP인 오빈삼거리를 통과하자 남한강의 자전거길이 끝나고 6번국도가 연속 이어진다.
4차선 도로이다 보니 때로는 큰 덤프트럭들이 경적을 울리며 고속으로 질주할 때면 소름이 끼질 정도다.
정말 위험한 요소들이 곳곳에 드리워져 있지만 우리 주자들은 최대한 갓길로 발걸음을 재촉해 간다.
마라톤은 한 발자국만 앞서가도 추월하기가 어려우나 울트라는 마음먹기에는 수십
명의 앞선 주자들도 따라 잡을 수 있다.
앞선 주자들도 때로는 없어졌다가 뒤에 처지기 십상이고 뒤에 처져 있던 주자가
어느새 앞에서 달리고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쉬지 않고 꾸준히만 달릴 수 있다면 아마도 그가 울트라의 최강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구간에서 제한시간은 10시간인데 앞서 벌어놓은 것이 있어 다행히 컷오프에는 걸리지 않고 용머리휴게소에 도착하니 19:50분이다. 누적시간 22:50분이다.
우리 클럽 회원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정말 눈물이 날것만 같았지만 꾹 참고서 고마움을 표시한다.
화장실에 가서 간단한 샤워를 초스피드로 마치고 나오자 추위가 엄습해온다.
야간 런닝에 대비하여 긴팔과 롱타이즈, 바람막이를 착용하였지만 추위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곳 멀리까지 찾아와 주는 것만도 너무너무 감사한데 맛있는 삼계탕까지 준비해 온 것이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요 내 생애 영원히 잊지못할 음식으로 기록될 것이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입맛이 떨어져 깨끗이 다 먹지 못한 것이 미안스럽다.
몰골이 말이 아닌데 회원은 연속 사진을 찍어댄다.
식사를 마치고 발목 통증에 맛사지를 받고서 휴게소에 들어가 바닥에 박스를 깔고 누웠는데 몸이 덜덜 떨려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30여분을 추위와 시름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의자를 정렬하여 의자 위에서 잠을 청했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할 수 없이 자리에 일어나 출발하기로 한다.
4. 4CP ∼ 6CP(205.8km : 둔내휴게소)
가방의 물품들을 점검하고 다시 출발한다. 4차선의 6번 국도는 밤에도 차량들이
많이 통행을 한다. 컴컴한 길을 가도가도 끝이없는 도둑머리고개는 왜 이리 오르막이 계속되는지 모르겠다. 정말 지루하고 끝이 없는 고개길이다.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술 취한 사람마냥 갈지자로 비틀거린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버스 승강장에서 누워 쪽잠을 자는 주자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골의 원두막 방갈로에서는 여러 명이 뭉쳐서 잠을 청하고 있다.
나도 그들 사이에 들어가 잠을 청해 보지만 도저히 추위 때문에 잠이 오질 않는다.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10도 이상씩 벌어지다보니 추위에 대한 대비가 절실하다.
안면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고개 길을 오른다.
추위와 졸음과의 싸움이 처절하게 시작되는 구간이다. 그리고 앞서가는 주자와
뒤따르는 주자가 수시로 뒤바뀌는 상황이 연속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5CP인 신촌 IC삼거리를 우회전한 후 추동교차로에 통과하자 도로폭이 2차선으로
감소한다. 횡성터널을 지나자 황재 언덕이 시작된다. 그야말로 지루함과 졸음,
적막감, 피로도가 엄습하는 처절한 오르막이다.
이 황재는 태기산의 절반 밖에 안된다고 하니 아찔할 뿐이다.
이 구간이 나에게는 가장 심하게 피로도 증가하고 시간이 지체되는 구간인줄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둔내휴게소에 도착한다. 약 52.4km를 13:21분 만에 통과 했으니
엄청난 피로와 졸음으로 사투를 벌였던 구간인 듯 싶다. 누적시간 36:11분이다.
5. 6CP ∼ 8CP(251.7km : 속사삼거리)
달리는 6번 국도는 도로폭이 2차선으로 감소된 채 계속된다.
한적한 시골길, 길가의 코스모스는 우리들의 고통을 모르는지 웃고만 있는 듯 하다.
드디어 태기왕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8km의 태기산 입구에 다다른다.
1259고지 태기산!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한 태기산 말만 들어도 기가 죽는다.
이젠 앞선 주자와 뒤따르는 주자의 거리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혼자 걷다 뛰다, 앞선 주자와 엎치락뒤치락 하기를 수십 번 반복한다.
오르막 커브길을 돌고 돌아도 제자리 같다. 정상인가 싶으면 다시 오르막이 시작
되고 이제는 내리막이겠지 하면 역시나 다시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 급커브 길을 웬 오토바이족들이 굉음을 울리면서 오르락 내리락 한다.
마치 경주라도 하는 것처럼 수십 대가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씩 반복한다.
운동을 해 본 사람들은 파이팅을 외치면서 힘내라고 하는데 운동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뛰는 거냐? 어디까지 가느냐? 몇 킬로를 뛰느냐? 별 것을 다 물어 본다.
기진맥진한 주자들에게 물어대니 짜증을 낼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고 애써 대답해 준다. 308km라고 하면 입을 쩍 벌리고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정말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요 힘이 빠질대로 빠진 우리 주자들을 보고 야 미친놈들아! 하고 소리 지르면서 달리는 트럭운전사도 있다. 정말 얄밉다.
우리 뛰는 주자들은 분명 울트라에 미쳐 있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목표를 달성하려면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 쉽게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있단 말인가?
땀을 흘리지 않고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모래위의 성일 뿐이요 값없이 버려지는
한 낱 휴지조각에 불과할 것이다.
오르막을 오르다 태기산 중턱에서 우리 58개마라톤크럽 회원이 갑자기 응원을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쪽 도로변에 깔판을 깔아놓고 스트레칭을 해주며 호박죽까지
요기하라며 건네준다. 정말 잊을 수가 없고 가슴이 뭉클하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하나? 대접할 줄 모르고 받기만 하는 것은 몰염치한이다. 그러나 현재
상태는 일단 받을 수 밖에 없다. 대회가 종료되고 언젠가 만나면 배로 갚아줘야지 하면서……
간식을 들고 스트레칭을 받고나니 몸이 몰라보게 가벼워짐을 느낀다. 신통하다.
스트레칭 받을 때는 악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받고나니 이렇게 몸이 달라질 수
있다니 주기적으로 스트레칭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계속되는 반복 행동으로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을테니까 그것도 수십시간을
지속해 왔으니 당연하다 할 것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의 교훈을 얻는다.
울트라시에는 주기적으로 쉴 때마다 목, 어깨, 허리, 대둔근, 허벅지, 종아리,
발목 등 신체의 관절 부위들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을.
계속되는 오르막에서 울트라의 지존 광주지맹 회장 고화중 친구를 만나 함께 동반주를 한다. 역시 지존답게 오르막 속도가 무척 빠르다. 사진도 한 컷트 찰칵!
그 지루한 오르막의 정상인 태기산에 도착하여 자원봉사자가 손수 준비한 어묵 한
그릇을 거뜬히 비운다. 정말 고마우신 봉사자들이다. 영원히 복 받을 자들이다.
고수를 따라 태기산 하산길에 접어든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면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몸이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까무라쳐진다. 원인 모를 일인데 고수도 그렇다고 한다.
출발일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잠을 못잤으니 당연하단다.
폐쇄된 모텔 건물 앞쪽에 쓰레기가 즐비하다. 그 중 좀 깨끗한 종이 박스를 주워서
잠자리를 마련하고 잠을 청해 보지만 도저히 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
한 낮이지만 땀을 흘린 탓에 추위는 당연하리라. 둘이서 다시 뛰어본다.
그래도 내리막이니 뛰어서 갈 수 있지만 워낙 갓길이 좁아 위험한 길이다.
다시 4차선의 6번도로가 이어진다.
장평시내의 어느 순대집에 들러 매운 고추다짐을 넣고 한그릇 비우고 주인분께 양해를 구한 후 한쪽 구석에 누워 잠을 청한다. 실로 오랜만에 잠다운 잠에 떨어져
비몽사몽간에 옆에 자고 있던 주자가 큰소리로 나를 깨운다. 약 30분간의 단 잠이었는데 몸이 아주 가볍다. 이제부터 다시 밤이 시작된다.
깜박이등이 여기저기서 줄을 잇는다.
좁은 2차선 도로를 달리다보니 어느새 속사삼거리에 도착한다.
누적시간 47:26분이다.
6. 8CP ∼ 골인지점 (308.2km : 강릉경포해수욕장)
기나긴 어둠과의 사투가 다시 시작된다.
속사릿재를 갈팡질팡 잠과의 싸움속에서 통과한다.
밤이 깊어 차량 통행이 한가로운 것이 천만다행이다.
피로와 발목의 통증으로 인하여 휴식을 너무 많이 취한 것 같다.
어느새 다른 주자들이 출발하고 몇 명 남지 않아 앞서가던 주자 뒤에 바싹 따라
붙는다.
주로도는 휴대하고 있지만 그래도 초행길이라 행여 길이라도 잃어버릴까 걱정을
하면서 붙어 보지만 앞선 주자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통증이라도 없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겠는데 이 통증 때문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앞선다.
싸릿재 정상을 향하는데 갈지자로 졸다보니 앞서가는 주자와 거리가 자꾸만
벌어진다.
앞선 주자는 큰 소리로 빨리 오라고 외쳐대지만 나에게는 들릴 리가 없다.
비몽사몽간에 겨우 정상에 도달한다.
이제는 앞서가던 주자가 뒤떨어져 자꾸만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데 먼저 가라고
양보한다.
이 때 비호처럼 스피드를 내어 달려오는 거구의 주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 이해영씨다. 역시 나처럼 308 초보인데 잠을 자다 보니 다른 주자들이 보이지 않자 혼자서 속도를 내어 열심히 달려온 것이다.
할 수 없이 같이 달리자고 하여 함께 동반주를 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늦었어도 그렇지 아직도 30여km나 남았는데 그렇게 4분페이스로
달릴수 있단 말인가? 여하튼 어디까지 갈 것인지 뒤따르기로 한다.
앞서 가던 주자들을 한명씩 한명씩 추월해 간다. 대관령 정상을 향한 오르막은
비교적 심하지 않지만 정상부터 시작되는 내리막은 18km나 된다고 한다.
통증은 고통이 되어 이를 악물게 하는데 이 주자는 쉬지 않고 계속 내달린다.
추월하고 추월하기를 수십번 돌고 도는 내리막 길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대관령 박물관을 지나 강릉국도유지사무소에 도달하자 내리막이 끝난다.
이제부터 농로길을 따라 다시 속도를 올려본다. 농로길까지는 잘 찾아서 달려왔는데
강릉시내에 진입한 입구부터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물어 물어서 경포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골목길 입구에서 동기생을
만난다. 참으로 운명은 이러한 것인가 보다. 만나자고 약속도 없고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어찌나 반갑고 기쁜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수퍼에서 사 준 꿀 세병을 나누어 마시고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상황이라 다음을 약속하고 발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다.
강릉시내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겨우 경포 방향을 찾아 해수욕장 방향으로 접어든다.
경포 호수길도 지겨운 것은 마찬가지다. 한 발 한 발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은
발목의 통증이 심해져 오지만 골인지점이 눈앞에 있는데 이쯤이면 어떠한 고통도
참아야 하지 않는가? 저 멀리 소나무 숲속으로 천막이 보이고 양탄자가 눈 앞에
다가온다.
드디어 3박 4일간의 기나긴 여정을 59:37분 만에 힘차게 골인!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전에 찰칵 찰칵 연속 찍어댄다.
이 험난한 고통의 시간을 응원하고 격려해 주신 대회 주최측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이름모를 수많은 길거리의 응원자들, 우리 중앙탑 마라톤 클럽 회원들,
58개띠 마라톤 클럽, 충북지맹 회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14. 10. 8 23:00
대한울트라마라톤 충북지맹, 58개띠마라톤클럽, 충주중앙탑 마라톤클럽
손 영 만(young)
첫댓글 나와의 어려운 싸움을 무사히 마치신 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다시한번 무사완주를 축하드립니다.
그동안의 훈련을 이겨내고 무사히 완주하심과 마라톤에 대한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형님 한마디로 인간승리 라고 표현하고 싶군요 형님의 열정과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형님! 화이팅!
충주시청 동호회원 여러분! 언제나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주로에서 아니면 언제 편안한 시간에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