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에 나를 밀어 넣었다. 마을 어디에도 양반탈이 넘쳐났다. 구경 다니는 많은 사람들도 더위에 지치지 않은, 양반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하회마을의 맑은 빛에 눈이 멀었다.
하회마을에 있으면 누구든지 양반탈을 닮아갔다. 언청이거나, 한쪽 눈이 치켜 올라갔거나, 코가 비뚜름하여도 얼굴이 양반탈인양 탈에 섞여 아무도 몰랐다. 양반탈의 소탈한 웃음은 꾸밈없이 속엣 것을 다 드러냈다. 복잡한 것은 감출 수 있지만, 탈의 웃음으로 주름진 표정은 단순하여 그 부드러움은 감출수가 없었다.
나는 양반탈을 닮아가려고 내게 맞지 않은 팔자걸음을 걸어보았다.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며 윗니를 다 드러내고 허풍스럽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춤추듯 마을을 울려 퍼졌지만 딱딱한 나의 얼굴은 변화하고 살아 움직이는 탈의 표정을 짓지 못했다.
턱이 얼굴과 분리되어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고개를 숙일 때는 저절로 화난 얼굴이 되고, 고개를 쳐들 때는 박장대소 하는 양반탈. 그 옆에서 말뚝이탈 쓰고 양반탈보고 신랄하게 풍자해도 괜찮았다.
대여한 전동차를 타고 물돌이 강둑을 한 바퀴 돌때는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탈의 여유스러운 표정을 짓고, 크게 한바탕 웃어도 좋았다. 잠시 솔밭에 전동차를 세워두고 앞에 부용대를 바라보다 지난날 첫사랑과 배를 타고 물돌이 강을 건너던 생각이 불현 듯 났다.
하회탈을 만드는 허도령을 찾아 헤매던 낭자같이 나 또한 그 옛날 첫사랑을 찾아 뜨거운 햇볕아래 양산을 들고 골목길을 걷고 또 걸어 들어갔다. 나는 사랑하는 마음에 애절한 표정이 지어졌지만,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은 양반탈의 눈웃음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옛날 생각이 나서 흰 종이 위에 연필로 양반탈을 하루 종일 그려도 괜찮은 일. 하회마을에서는 탈의 얼굴을 무지개 색으로 색칠을 해도 아이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회탈 중 가장 뛰어난 양반탈의 허풍스럽고 여유스러운 포정을 그렸지만 다 그리고 난 후에는 늘 나의 딱딱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6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서 아무것도 적지 않은 소지를 묶어두고 양반탈의 넉넉한 얼굴이 되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어도 좋은 것. 푸르른 하늘, 뜨거운 태양, 솜털 같은 공기. 하회마을은 내가 안동에 살 때 보다 더 맑게 빛나 보였다.
오후 두시에 하는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더운 날씨 탓에 실내공연을 했다. 양반걸음 팔자걸음으로 양반탈을 쓴 공연자는 부네와 소불알을 두고 선비와 지체다툼을 벌이다가 망신을 당하고 있었다. 한 줄 한 줄 방바닥에 앉아 보는 탈춤놀이는 앞사람도 뒷사람도 한결 같은 얼굴로 함께 옮아오는 흥에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흥겨움에는 말을 못 알아듣는 외국인도 함께했다.
공연이 끝나고 탈춤 공연자들이 탈을 벗고 인사를 하는 중, 파계승의 탈을 벗은 그 사람은 내가 그렇게도 그리려고 했던 양반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마음에서 우러나와 굳어진 그런 표정을 했다. 그는 하회마을 입구에 있는 장승공원의 장승명인 김종흥 선생이었다.
선생의 양반탈 표정은 부드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힘이 느껴졌다. 지난 30년 동안 장승조각을 하였고 하회별신굿탈춤을 추면서 매일 신나게 놀아온 김선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양반탈의 얼굴이 되어 버렸다.
정월대보름 밤에는 장승공원에서 김선생이 양반탈장승 만드는 과정을 포퍼먼스 했다. 공연을 할 때는 옆에 피워놓은 모닥불 같이 선생의 얼굴도 열정적으로 활활 불타는 것 같았다. 그때 공연을 보러온 많은 사람들은 선생을 닮은 힘 있는 양반탈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안동을 떠났고, 양반탈장승 포퍼먼스 기억도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거기에 감돌았던 열정적이면서도 양반탈을 느낄 수 있었던 그 표정만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내가 느꼈던 몇 안 되는, 그러나 매우 소중한 얼굴이었다.
결혼하고 한 십년이 지날 즈음에 답답한 일상으로 아무것도 잡히지 않을 때가 있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미소 지울 줄 모르는, 소리 내어 웃을 줄을 모르는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때는 매일같이 표정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대개는 맑고 잔잔한 얼굴을 하고 싶었지만, 힘든 현실에 늘 물기를 머금은 눈과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마음에서 거센 바람이 불 때는 양반탈장승을 만드는 장승명인의 표정이 불현 듯 떠오르곤 했다.
나의 답답한 얼굴이 싫다고 늘 생각하던 때에, 안동장터로 내려가는 큰길 옆에 하회탈을 만드는 조그마한 탈방을 발견했다. 몇날 며칠을 주인 몰래 탈방을 기웃 거렸다. 어느 날, 보다 못한 주인이 나를 탈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표정을 바꾸고 싶어서 양반탈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양반탈 같이 웃음 진 얼굴은 아니지만, 순한 표정을 한 주인은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
양반탈 스케치부터 시작했다. 에이포용지에 4비연필로 십자를 그어놓고, 웃음진눈을 좌우가 맞게 스케치했다. 마음속으로는 춤추는 눈을 생각했다. 하회마을의 아름다움과 꽃이 피고 지는 자연풍경,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여유와 풍자를, 탈춤을 추는 마음을 함께 그려나갔다. 그때 양반탈 스케치만 여섯 달 이상 했던 기억이 났다.
양반의 고장 안동에서 아직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현실이 너무 어렵고 힘들었지만, 양반탈을 배우는 과정에서 탈의 단순함을 가지고 싶어 오직 탈 그리는 데만 열중했다. 기쁜 마음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그때 양반탈의 웃음을, 춤추는 눈을 그리지를 못 했다. 탈 조각하는 것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스케치로 끝이 났다. 내 얼굴은 턱이 분리된 양반탈 같이 이중적인 표정이 되었다. 가끔은 웃을 수도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의 우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하회탈 공연이 끝나고, 만들지 못했던 탈이 못내 아쉬워서 안동장터에 가는 길에 있었던 그 탈방을 찾아가 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탈방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 옛날 탈을 조각하던 나무 냄새가 내 마음속에 스며있었다.
내 얼굴모양은 딱딱한 탈을 조각한 나무 같았으나, 마음은 양반탈을 그리고 싶었던 그때를 뒤 돌아 보고 있었다. 아직도 해가 넘어가지 않은 뙤약볕 아래에서 양반탈 쓰지 않은 양반탈 얼굴을 하고 고개를 뒤로 젖혀 춤추는 눈을 생각하며 크게 한바탕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