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함이 만들어 주는 상
성도가 받을 수 있는 세번재 큰 상은 고난과 비방과 환난 중에도 담대함으로 이겨낸 데 대한 담대함의 상이다.
담대함만의 의미가 아니라 고난과 박해와 역경 가운데서도 반드시 승리해야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담대함이 곧 끝까지 승리할 수있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때문이다.
담대함이 있을때 성도는 어떤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먼저 주님께서 주시는 담대함이 있어야 복음을 자신있게 전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복음의 최일선에 서서 직접 악의 세력과 싸우는 전쟁터인것이다. 그때의 담대함은 기질적인 측면이 아닌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한 담대함이어야한다.
내 경험을 떠 올리자면 예전 전도실습을 나갔을때 기도를 진심으로 얼만큼 어떻게 하고 전도에 임했는냐에 따라 전도의 마음가짐과 행위가 달라지는것을 알수 있었다. 물론 지금 우리교회 오후 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도 역시도 성령님의 도우심이요 그 기도에 대한 마음가짐과 움직임도 성령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담대함의 상황에는 또 한가지로 성도들을 향한 권면의 담대함도 필요하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는 권면 역시 담대함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감동 그리스도의 사랑이 담긴 마음의 진실한 마음의 권면이 되어야한다.(롬15:15) 결론적으로 진리는 지혜롭게 전해야 하지만 그 전함에 담대함이 없으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내가 만약 복음을 전할때 자신감 없고 담대함 없이 전한다면 상대에게 감동이 전해질 수 있겠는가 설득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 주변 하나님의 교회를 비롯 이단교들의 접근 및 전도행위를 보면서 그들의 자신감과 담대함 그리고 열정에 부끄러울 뿐이다. 또 한가지 담대함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도 반드시 필요하다. 믿음 좋은 사람은 자신의 작은 죄도 민감하게 느끼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다. 그로인해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나아가기 어렵지만 그래도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떳떳하게 나아갈 수 있다. 이 산지를 지금 내게주소서! 담대하게 외치는 갈렙이 떠오른다(수14:12)
이유는 우리를 긍휼이 여기실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고 부끄럽지만 책망 받을 것이 적기 때문이다. 담대함은 하늘의 상으로도 이끌려갈 수 있는것이다. (히4:16, 요일2:28)
담대함의 뿌리: 예수님과의 동행
이 담대함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성경에서는 담대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신다 말씀하신다. 그 근거의 첫번째로는 예수님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세사을 이기셨기 때문에 너희는 담대하라고 하셨다면 세상는 싸워 이겨야하는 대상이 되는것이다.(요16:33)
두번째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이 있는 한 담대할 수 있는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이라는 사명이 있는 한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자체가 사명인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모두가 사명자라는 생각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세상에 어떤 위협이 와도 담대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곧 건겅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인 것이다.(행23:11)
담대함은 주와 함께 있는것으로 부터 출발한다.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몸으로 있든지 몸을 떠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곧 주님과 함께하는것이다.(고후5:6-9)
담대함을 만들어 내는 요소는 다양할 수 있다. 하늘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망도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어준다.
이유는 인간은 소망이 강하면 생각이나 행동이 강하게 나타나게된다. (고후3:12)
세번째로는 성령충만 할때 담대함을 주신다. 그럼 이 성령충만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버리면 된다. 자신을 버리면 된다. 자기 생각, 고집, 경험, 지식, 욕심, 세상적 목표 내려놓고 버린다. 이 같이 성령충만의 기본은 자기가 죽어야 하고 버려야 하고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마음대로 나를 지배하게 되실 그 때 가 가장 성령충만한 때인것이다.
이것은 곧 예수님과의 동행을 의미하는 것이다.(행4:31) 결론적으로 담대함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예수님과의 동행이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서며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것이다.(눅7:11) 이처럼 예수님과 동행한다는것은 예수님을 섬긴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 계신곳에 함께 있는것이다. 예수님의 시선이 되고 예수님의 손길이 되고 예수님의 발걸음이 되고 예수님의 마음이 되는것 나는 이것을 예수로 사는 인생이라 표현하고 싶다.(요12:26)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과 방식대로 예수님이 따라오셔야 하는 자기중심적 신앙인으로 살아왔다. 이제부터는 이 그릇됨을 버리고 예수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으로 부터 나오는 충성에 하늘의 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것이다. 단 단순히 상을 얻기 위한 충성해야하는것은 아니지만...
주님과 동행해도 오는 고난
주님과의 동행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주님과 동행해도 우리에게는 문제나 고난이 닥칠 수있다는 점이다.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그 육신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문제는 항상 따라 붙기 마련이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늘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의 눈에는 좋은것도 부정적 시각으로 보게되고 늘 비판과 부정적인 입슬을 가지고 대항한다. 근본적으로 마음이 삐뚤어져있는 사람들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박해를 받을 수도 있고 어려움을 닥칠 수도 있다. 그래도 담대하게 주님과 동행해야한다. 그리고 담대함으로 이겨내야한다.
주님과의 동행 자체가 큰 상
성도들이 아무 것도 상 받을것이 없다고 느낄때 조차도 우리는 큰 상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주님과 동행함으로써 담다함을 얻고 그 담대함으로 세상과 싸워 이길때 하늘에서는 큰 상이 주어진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는 내가 주님을 따라다니며 동행한다는 개념으로 주님과 함께 함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는것 자체가 큰 상이라는 개념이다.
에녹의 경우 에녹의 일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자체만으로 산 채로 천국에 들려올라간 사람이다. 에녹은 삶 자체가 하나님과의 동행이였던 것이다. (창5:24) 그냥 생활인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다. 또 한 인물로는 엘리야를 들 수 있다.위기의 상황에서 천사를 통해 함께 하시는 하나님, 세상과 자신의 싸움에서 담대함으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은 하나님의 동행이 있기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과의 동행이 어떤것인지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셨다. 자기를 부정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엘리야의 경우 엘리야의 성령님이라는 말에 엘리야도 늘 자신을 부정하고 성령님의 지배에 따랐던 자임을 알 수 있다.
자기부인이란 목숨까지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마음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예수님을 믿는것은 목숨을 내놓는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어야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다. (눅9:24)
모든것을 내려놓고 예수님과 동행하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리고 저절로 담대함이 생겨난다.
이 땅에서의 삶은 저 하늘에서 주님과 영원한 동행을 누릴 수 있게하는 사전 훈련장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동행해야하는것이다.
그리스도인의정체성은 하늘의 상에 대한 소망으로 지켜질 수 있는 동시에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과정 중에도 그대로 드러나야한다. 담대함을 만들어 주는것이 하나님과의 동행이라면 하나님과의 동행 자체가 하늘의 상이며 이 땅에서 부어주시는 또 다른 의미의 상 일것이다. 거듭난 백성의 특징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곧 하나님의 임재이며 하나님과의 동행의 의미이다.
우리안에 있는 성령님께 늘 간구하여 우리를 버리고 성령충만, 예수로 충만한 삶으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하자.
나를 버리면 모든 것이 다 버려지는것이다. 흔히 내가 죽어야한다는 말을 많아 사용한다. 그렇다 내가 죽었는데 무엇이 남아있을까. 걱정, 근심, 쓸데 없는 오지랖, 욕심, 두려움등등 나를 버리면서 대신 말씀으로 채우고 복음으로 채우며 성장해 나아가야하거늘 참 어렵다. 과거 무지했던 그런한때 이런 생각도한적이 있었다. 아니 이렇게 머리 복잡하고 이것도 하면 안돼고 저것도 하면 안돼고 반면에 어려운것은 해야되고 내가 왜 이 길을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스트레스받으며 교회를 다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어서 그만두려 한적이 몇번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럴때 마다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가려고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나갈 수가 없었다. 후에 조금씩 알기 시작하면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는분 그 누군가가 나를 따라다니다니고 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세상은 너를 포기하고 내버려둬도 주님은 버리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않고 귀히 여겨주시는 분임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주님은 참 끈질기진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