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가슴에 붉게 물든 낙엽이 내리는 가을산
-식어가는 산사 바위틈에 잠시 들어간 순간
가을비
/이병기
가을은 컴머 (,) 였다
말없이 사라져가는
étrangère ..
귀뚜라미가 그랬지
천천히 느슨하게 마주잡은
손가락 마디마디
완행열차처럼
빗속을 천천히 달려가는
완행열차처럼
쉬면서 말이지
풀잎이 시들 거라고
노출되었다는 이유로
추스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을 속을 떠나가는
에뜨랑제
차표를 끊었다
겨울비 맞으러 가는 길목은
춥고 멀다
가슴에 붉게 물든 낙엽이 내리는 가을산
/이병기
낙엽落葉 그것은 우주의 명령이었다
이쁜 새가 아침을 열어
불꽃을 활활 태우네
달 속에서 끄집어낸
그리움의 줄기를 따라
상자에 갇힌 작은 가슴 손짓하며
물결치는 곱고 고운 달꽃
서리 내리는 가을은
쓸쓸히 단풍잎처럼 찾아왔다가
말없이 사라져가는 에뜨랑제
지난날 바닷가 해당화 피는 언덕에 서서
그리움 키우던 사랑 같은 것
시간의 궤적을 따라 떠나가는 사랑 같은 것
새의 논리論理는 대략
가을이 이 지구촌에 낙엽을 만들고
낙엽은 동식물의 행동변화를 시켜
마음을 움직이는
대략 그런 단계의 그리움을
어김없이 가슴에 비가 내리었다
이탈하는 의식의 껍질들
단 몇 초 동안의 공중여행
봄에 시작한 3개월의 날개짓으로
싹 틔운 눈빛 연록색
착색작업은 이제 겨울이
올 것을 예측하여 물드는가
자세를 낮춰 나이테를 제거할 수밖에 없는
착륙지점이 너무 멀다
어느 낙엽이 내년에 다시 올까
이별의 내용을 알고나 있을까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는데
식어가는 산사 바위틈에 잠시 들어간 순간
/이병기
그대 외침은 이탈하는 바위 속으로 녹아들까
아스라이,
비켜 수 없는 빗살무늬
풀벌레 소리 뒤 쫒는 상념에
집중하여 더욱 세밀히 접속되는 깍지에서
그 깊이를 잠이 들어라
찬 바위 틈에 파란 잠자는 이끼
깊은 산 팔다리를 걷어붙이고
등허리를 밀어낸다
하나를 밀어내더니 옆에 있는 또 하나를
밀어낸다
산사에 우둔의 숲은 우거지고
몇 그루 남지 않은 현자의 나무 타들어간다
어둠까지 타들어간다
수레바퀴 속으로 들어가 좌정하고
몸을 비틀어 밀어낸다
아우라지 머리를 싸매고 속틈을 밀어낸다
벽을 바짝 밀치며 마디마디
깊이를 더해 간다
모닥불 지펴 파란 종이접기 빈틈을 채움은
캄캄한 공간을 지나가는
곧 다른 곳으로의 약속인 것을
계단 위를 사뿐히 올라가 바위에 앉음은
정반합의 확장이다
출입구가 단순한 모놀로그 창고
하루 두 번씩 올라갔다
퇴근하는 도토리나무 숲 속
언제나 지느러미 번뜩이는 사바의 창가엔
결코 측정할 수 없는 단절된 통화음의 함축성까지
바위 물살 깎여 젖은 물푸레나무 뼈 하얗게
작은 단추 하나 풀지 못하여
작은 속틀이 겉틀이
방석에 깔고 앉은 아집의 빨간 손톱
가늘고 좁은 늪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솟구친다
아스라이, 산맥을 유려함으로도
비켜 갈 수 없는 빗살무늬
잠시
그 순간
사진
약력
전년과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