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초백이 밥
이영백
밥을 담아 먹는 그릇은 밥그릇(食器)이지만 밥(그외 반찬ㆍ수저 포함)을 담아 이동하여야할 때 그릇은 “도시락 통”이라 한다. 도시락 옛말은 “도슭”이었다. 그러나 내가 어린 날 살던 시대 고향에서는 양은 도시락 통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서부터 다른 이름인 “초백이”를 사용하였다.
최초로 도시락을 싸야하는 중학년 4학년이 되었다. 수․토요일을 제외하고 주당 나흘은 도시락을 싸 가야하였다. 생애최초로 엄마가 들려준 도시락을 들고 학교로 갔다. 네 시간이 끝나고 저마다 가져온 도시락을 펼쳤다.
엄마는 첫 도시락을 나에게 유별나게 크게 묶어 싸 주었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매우 큼지막하였다. 묶인 보자기 풀고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는 장군이 먹을 만큼 많은 밥이 담기어있다. 반찬은 딱 한 가지, 누런 생된장이 종지기 채로 밥에다 꾹 눌러 들어앉아 있다. 또 수저 한 벌이 고스란히 밥을 짓누르고 얹혀있다. 왠지 다른 아이들하고 도시락 통이 달랐다.
예순 여명 남ㆍ여학생 친구들이 도시락 통 뚜껑을 모두 열었다. 나만이 이상하여 살짝 열어 들여다보고는 그만 놀라 뚜껑 닫은 후에 보자기를 다시 묶어 버렸다.
다른 아이들 도시락을 곁눈질하여 구경하였다. 남학생 도시락은 백색 양은도시락이다. 반찬도 멸치, 오이지 등이 보이었다. 여학생은 노란 양은도시락 밥 위에는 달걀 프라이가 얹히어 있다. 여러 가지 반찬이 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우리 집에도 양은 도시락이 분명 있었다. 아버지, 셋째 형, 넷째 형, 큰 머슴, 중 머슴 등 다섯 사람 도시락을 싸는데 머슴들에게는 초백이에 밥을 많이 들어가도록 싸주었다. 아버지나 형에게는 양은 도시락을 쌌기에 도시락 통이 어머니에게는 더 이상 없었다.
우리 집 형편에 맞춘 초백이 밥은 원망스러울 뿐이다. 초백이의 밥을 안 먹고 집에다 갖다놓고 이튿날 오후수업이 있어도 그냥 나가려 하였다.
“오늘 오후수업 있제. 네 초백이 안 가져 가노?” “엄마는…?” “그래, 알았다. 낼부터는 새 백색 양은도시락에 담아 줄게. 오늘만 초백이 들고 *-가거라.” 그렇게 초백이 밥을 다시 들고 나갔다. 그 날 혼자 먹었다.
생애 최초 초백이 밥 사건은 평생 잊지 못하는 나만이 가진 해프닝이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