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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師館 스크랩 교회사에 나타난 기독교 장례예식
sooaram 추천 0 조회 429 12.02.17 11: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교회사에 나타난 기독교 장례예식

 

한국 호스피스협회(http://j.mp/pH2EaC ) 홈페이지에서 일부를 발췌해서 옮겼습니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한국문화는 죽음에 관한 진지한 신학적 연구와 이를 극복하려는 실천적인 노력이 부족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장례의식을 포함한 장례문화에 단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장례의식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천하여왔는지 고찰해본 뒤, 한국교회가 얻을 수 있는 의의를 살펴본다.

 

1) 초대기독교회

 

ㆍ예수님 당시: 신약성서를 통해서 당시의 매장관습과 장례를 전후한 풍속을 볼 수 있다

(눅 7:11-15; 17:11-19, 마 27:58-61)

 

유대사회의 장례법은 구약의 풍습에 따른 것으로 보여진다.

족 중 누가 사망하면 온 마음을 기울인 애곡이 있었고, 애도와 애곡을 위해 직업적인 울음꾼들을 고용할 수가 있었다.

뜨거운 기후조건으로 인해 24시간 이내로 장사지내야만 했다. 시체는 물로 씻은 다음 천(세마포)으로 쌌다.

부자들은 몰약과 침향을 사용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공동묘지나 동굴에 장사지냈고,

부유한 사람들은 특별히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장사지내고 둥근 돌로 봉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인들의 화장 풍습이나 전문인들을 동원하여 애곡하는 것, 사후 세계에 대한 이교적이며

유물론적인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대교회의 장례식은 당시의 관습을 광범위하게 반영하는 것이었으며

특별히 순교자나 신앙의 영웅들을 위한 연례행사는 더욱 중요한 일로 간주되었다.

 

ㆍ5세기 경에는 야만족의 침입과 도시 밖의 무덤 훼손의 위험 때문에 순교자 혹은 성자들의 유해가 교회 안으로

이장되었고, 이러한 신앙인들과의 연결성을 원하는 일반 신자들도 교회뜰(churchtard)에 묻히기를 원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교회와 묘지 사이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하늘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실제로, 성자들이나 순교자들의 경우 세속적 생일보다는 천상의 생일, 즉 순교일 혹은 사망일을 더 의미 있게 경축했다.

 

2) 중세 기독교

 

초대교회와 매우 다른 변화가 있다. 초대교회외는 달리 두려움과 공포가 그 특징이다.

매장은 지옥과 연옥에서의 형벌과 심판으로 연결되며,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을 경고하기 위한 일종의 위협이었다.

대부분의 주세교회들은 성상 안치소 위에 벌 받는 자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함께 최후의 심판에 관한 벽화가 있다.

그래서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참조:단체의 [신곡]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사후 세계관이 장례식에 적용된 것).

 

이런 이유로 1179년에 열린 제3차 라테란 고의회(Lateran Council)는 그리스도인의 장례를 하나의 성례전(sacrament)으로 선언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장례가 부활과 희망의 분위기라면 중세의 장례식은 암울하고 두려운 공포의 분위기라 할 수 있다.

교회가 이 세상만이 아니라 죽음 저편의 세상에서도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의 존재로 군림했기

때문에 인간의 죽음과 장례식은 이에 이용되었다. 이것은 종교개혁을 재촉한 폐단 중의 하나였다.

 

3) 종교개혁시대

중세의 폐단들은 종교개혁의 공격의 대상이었다.

 

ㆍ마틴 루터: 중세 장례식이 지닌 슬프고 암울한 성격을 벗어나서 소망에 초점을 두어야함을 강조. 죄의 사유와 휴식,

영면, 앞서 간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에 대한 위로의 찬송과 함께 죽은 자의 부활을 강조하는 장례예배를 지지, 장례식 전

철야기도나 죽은 자를 위한 미사, 행렬 성가, 연옥,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한 카톨릭교외의 혐오스로운 행위들을 정죄하고

폐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 매장 의식보다는 찬송과 시편, 그리고 매우 단순한 의식을 사용하도록 함.

 

ㆍ개혁교회와 청교도들: 시신을 무덤으로 운구한 뒤 아무런 의식도 행하지 않고 입관한다.

그런 다음 목회자가 교회로 돌아와서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으로 장례를 마침. 스코틀랜드나 영국의

청교도들은 장례식에서 하는 설교마저도 종종 그것이 죽은 자에 대한 칭송으로 전략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ㆍ칼빈: 장례식에 설교를 인정했으나 매장을 위한 예배의식서는 마련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개혁교회의 전통은 매장 이후의 성경봉독과 설교 중심의 예배를 묵인하여 왔으나 몇몇 자유교회는 매장을

순수한 세속사로 여기고 아무런 예배도 갖지 않았다.

 

ㆍ영국교회(성공회): 개혁교회나 청교도들에 비하여 보수적이며 다소 복잡했다. 1552년 장례식의 성만찬이 사라지고

예배가 묘지에서 이루어지자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도 자취를 감추었다. 단지 시신 위에 흙을 덮는 동안 일정한 선언과

기도문 요한계시록 14장 13절, 고전 15:2-58절 봉독, 위탁의 말씀들로 이루어져 있다.

 

ㆍ존 웨슬리(감리교): 성공회의 1662년 [공동예배서]에 나타난 기본적인 장례의식의 틀을 유지하였으나 시편39편, 기도문 하나, 그리고 위탁의 말씀 등을 제거하여 간소화했다. 대신 장례식에서 소망에 강조점을 둔 열정적인 찬송을 사용한 것은 웨슬리 감리교회의 커다란 변화라 하겠다.

 

4) 근대 기독교회

 

근대 기독교회의 장례식은 소망(초대교회)도 공포(중세교회)도 모두 망각하였으며,

죽음을 기독교 메시지의 일부로 생각하기를 꺼려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묘지는 그리스도인의 의식 밖으로 쫓겨났고, 장례관습은 지나치게 상업화, 형식화되었다.

 

교회는 장례식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대신 꽃으로 장식한 관으로 대체했다.

메세지도 죽음과 사후의 삶에 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죽음을 주제로 하는 교육도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야 부활을 강조하고 있다(가톨릭 19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미국장로교회 1986/연합감리교회)

 

5) 한국 개신교회의 장례예식

교단별로 표준 예식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나 큰 차이가 없다.

 

ㆍ장로교회 표준 예식서(1984년판)에 나타난 장례식 순서:

묵도, 기원, 찬송, 기도, 약력소개, 찬송, 축도, 광고, 발인.

 

ㆍ기독교 대한 감리회(1991년판): '예문'의 '장년 장례식 예문':

예식사, 묵도, 찬송, 교독, 송영, 기도, 성경봉독, 조가 축도 또는 주기도, 출관.

 

ㆍ한국 기독교 장로회 '예식서'(1983년 판): 개식사, 기원, 기도, 성서봉독, 설교(생략할 수도 있음), 기도,

약력보고, 조사(또는 조가), 호상의 인사, 찬송, 신앙고백, 축도.

 

ㆍ침례교회 '목회예식서'(1981년 판): 전주, 입장, 개식사, 묵도, 찬송, 기도, 성경봉독, 설교(권면),

조가, 고인의 약력, 조사, 찬송, 광고, 축도로 구성 전반적으로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교회사에서 볼 수 있는 세 단계, 초대교회가 보여준 소망의 태도, 중세교회의 형벌과 공포, 근대교회의 거부 및 회피적인

태도 등의 단계를 보면서 이러한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서 죽음과 장례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세워야 할 때다.

 

 

[섬기미 전도자] 스크랩 자료-교회사에 나타난 기독교 장례예식

자료출처 : ref.daum.net/item/18146231 | 레포트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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