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혼의 밤은 어느 때와 같이 조용했다. 산새들은 언제부턴가 더 이상 지저귐이 없었고, 날벌레들 또한 샤이혼의 밤만큼은 모닥불 가에 모이지도 않을뿐더러, 그저 아름드리 나무에 가만히 앉아 지난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게 고작이다. 세인들은 그 이유를 '동물들이 샤이혼에서 생을 마감한 영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다.', '샤이혼에는 악마의 저주가 씌어있다.' 하며 저희들끼리 쑥덕거릴 뿐,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맹장 샤이혼'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휘이잉.
그 고요한 밤이 싫었는지 바람이 한바탕 울부짖었다. 하지만 바람은 시넨의 번뜩이는 눈이 두려웠는지 저 멀리, 그가 바라보던 곳으로 울며 되돌아갔다.
"장관이로군."
시넨은 적진에 밝혀진 수백... 아니 수천 개의 화톳불을 보면서 말했다. 물론 제국 출신의 시넨은 저 정도의 인원쯤은 수도 없이 보아왔겠지만, 이 자그마한 왕국 이네아의 병사들로서는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들 정도의 인원이었다.
수천 개에 달하는 화톳불의 뒤에서 당당히 진을 친 제국군은 지옥에서 내려온 악마들과 같았다. 하지만 시넨의 1만의 정예병들의 눈에는 제국군의 그것과는 다른 뭔가가 불타고 있었다. 누구 한 사람도 두렵지 않았다. 누구 한 사람도 이 전투에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자가 없었다.
"시넨 장군님."
"음?"
부관은 별빛을 받아 더욱 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저... 저는 병사들의 이러한 모습을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보았던 수많은 역사서, 병법서에서도 병사들의 이러한 의지와 기개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드래곤이라도 찢어발길 기세... 오늘이 아마도 제 생에 최고의 날이 될 것 같습니다."
"......"
시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관은 시넨의 눈동자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그의 깊은 눈 속에서는 어떠한 생각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둥둥둥둥...
적진에서 북소리에 울려 퍼졌다. 대지를 울리는 그 소리에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다시금 자신의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적진에서 커다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은 이에 질세라 목청껏 함성을 질렀다. 1만의 이네아군은 5만의 제국군의 함성을 압도하였다. 그 함성소리는 대지를 울리고, 또한 병사들의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그 함성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잭슨, 저게 뭐지?"
"음?"
이가 다 빠져 고물상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듯한 장검을 쥔 윌터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이 관문에서 만난 최고의 전우 잭슨에게 물었다. 윌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보름달은 당장이라도 꿇어 엎드리고 싶은 정도로 성스러웠다.
"뭐야. 달도 처음 보나?"
"아니. 그... 오른쪽 아래... 그..."
"아, 저거? 윌터. 자네 왜 이러나? 아무런 무늬 없는 달을 본적이 있나?"
"아니. 그게 아니라... 봐! 움직이잖아!"
"... 날짐승이겠지! 자네, 진짜 왜 그러나? 설마 오늘 이 전투가 두려운 건가? 그러면 시넨장군님이 아까 돌아가라고 물었을 때 돌아갔으면 되지 않나? 이보게 윌터. 이런 일로 다시는 나를 귀찮게 하지 말게나!"
눈을 게슴츠레 뜨고 한참 달을 바라보던 잭슨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적진을 노려보았다. 좀 심한 말이었지만 그 만큼 이 전투는 소중했고, 윌터 또한 그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전우였다.
"... 잭슨."
"또 왜!"
잭슨은 짜증을 내며 윌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윌터는 자신의 장검을 바닥에 떨구더니, 창백한 얼굴로 더듬더듬 말했다.
"샤이혼의 밤에 새가 나는가?"
두 병사의 보고를 받고 황급히 창대를 돌렸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흑색의 거대한, 몸길이가 7m에 달하는 와이번을 타고, 4m에 달하는 흑색의 철창鐵槍을 나뭇가지처럼 휘두르며, 사람을 갑옷과 통째로 하늘 높이 찍어 올리는 비룡기사飛龍騎士의 괴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병사는 없었다. 병사들은 황급히 활을 들었다. 화살은 분명 다 달았지만, 성 밖에 진을 치면서 밖에 버려진 쓸만한 화살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있는 힘껏 날린 화살은 와이번의 질긴 가죽을 뚫기에는 너무도 모자랐다. 일단의 화살을 손쉽게 막아낸 비룡기사는 고삐를 휙 잡아당기며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창대를 든 병사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와이번에게 달려들었지만 와이번의 단단한 날개는 와이번의 주의에 있던 병사들을 모두 동강내었다. 돌아서 옆쪽을 공격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병사들은 창대를 꼬나쥐고 와이번의 정면에서 맞섰지만 비룡기사는 거창을 와이번의 오른쪽 배에 옆에 수직으로 장착시키고, 안장 왼쪽 편에 걸려있는 은색의 휴대용 연노(?)를 들었다.
"이.. 이런 제길!"
병사들을 욕을 내뱉으며 방패를 들어 몸을 보호하려 했지만, 정면에서, 이 근접한 거리에서, 강철로 화살촉부터 몸통까지 통째로 제작한 강철 쿼렐(?)들을 발사하는 연노連弩를 막아내기에는 너무도 부족했다.
퍽!
연노의 한방에 수십 명의 병사들이 처참히 터져 버렸다. 그 용기 백배하던 병사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쳐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은 제각기 바쁘게 흩어졌다. 그렇게 붕괴된 이네아군의 진으로 제국 기마병들이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그렇다. 이것은 더 이상 전투가 아니었다.
사신의 학살 극이라 하는 것이 옳으리라.
"4개월간의 끈질긴 저항도 오늘이 끝이다!"
"그 동안 우리에게 했던 걸 천 배로 갚아주마!"
제국이 자랑하는 기병들은 이네아 병사들을 마음껏 짓밟으며 이네아군을 유린하였다. 아무도 저항하는 병사들이 없었다. 수많은 전쟁들을 치러온 제국군들 조차 이보다 손쉬운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피의 살육전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전장에는 이네아의 군복을 입은 자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때 그때 살육의 틈바구니 속에서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여기 적 지휘관이 있다!"
한 병사의 그 외침, 그들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외침이 전장 이곳저곳에 메아리쳤다.
"시넨인가?"
"저 놈이 우리를 그렇게 괴롭혔던 그 녀석이란 말이지?"
은색의 갑주를 입은 중년의 기사 앞으로 순식간에 수백의 기병들이 모여들었다.
스릉.
"죽이자. 죽여서 우리 전우들의 영혼을 달래자!"
"그냥 죽여서는 안된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을 가르쳐주자!"
누군가가 검을 빼들고 소리쳤다. 그 외침에 답하여 시넨의 주위에서 수많은 칼 마찰음이 들려왔다.
"잠깐! 러쉬(Rush)께서 직접 말씀하셨지 않은가! 시넨을 보면 도망치라는 명을 못 들었는가?"
그들의 상관으로 보이는 장수가 병사들을 제지했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과 전우들을 4개월간 괴롭혀온 시넨을 온전히 놔둘 생각은 없었는지, 검을 쥔 그의 주먹 또한 매섭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장수의 말은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헤헹.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겁니까?"
"그럼 잠깐 손만 보지 뭐~"
"일반 병사인줄 알고 목을 베어버렸다고 하면 어떨까?"
"러쉬가 보통사람이야? 그랬다간 살아남지 못할걸?"
"자, 그럼 분이 풀릴 때까지 두들겨줘야겠군!"
병사들은 광기가 서린 눈으로 시넨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을 제지해야할 장수조차 병사들과 함께 시넨에게 달려들었다. 그저 묵묵히 눈을 감고 서 있는 시넨의 모습은 모든 것을 달관한 패장의 모습과 같았다.
그때였다.
"와이번 마스터 시넨의 앞을 가로막는 자가 누구더냐!"
시넨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 눈빛을 마주친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하지만 곧 그들은 놀란 말들을 진정시키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시넨에게 다가왔다.
당당히 그들을 노려보면 시넨에 오른 팔을 번쩍 들며 일갈을 터뜨렸다.
"간덩이가 부은 게로구나!"
순간 하늘이 번쩍하더니 수십의 병사들이 말과 함께 숯덩이가 되었다. 놀란 병사들이 하늘을 보니... 자신의 상관. 자신이 보았던 비룡기사 러쉬의 그것보다 세 배는 큼지막한 은색의 와이번이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이마에 달린 은색 뿔에서 나는 스파크가 지상의 이들도 선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 라이트닝 와이번 '메사타'?"
병사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이미 다리가 굳어버린 말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공포에 미쳐버린 병사들은 말에서 뛰어내려 뿔뿔이 흩어졌다.
"어딜 도망가느냐!"
11m에 달하는 거대한 와이번에 가볍게 올라탄 시넨은 또다시 일갈을 터뜨렸다. 병사들의 비친 그의 모습은 악마, 혹은 전신戰神이었다. 병사들은 이제 도망가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네아군이 흘린 피와 그들의 눈물과, 그들의 대소변이 뒤엉켜 땅은 이미 축축 젖어있었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시넨의 눈에는 광기만이 서려있었다.
"와이번 마스터의 공포를 네놈들의 세포 하나하나에 똑똑히 각인시켜주마!"
"그만하시오."
그 말이 들리는 동시에 10대의 쿼렐이 날아왔다. 시넨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거창을 한 번 휘둘러 기습을 막아내었다.
"러쉬인가?"
시넨의 물음에 10대의 강철 쿼렐을 날린 장본인인 그는 4m의 거창을 크게 휘두르더니 말했다.
"와이번 마스터 시넨의 목을 가져오라는 황제 폐하의 명을 가져왔소."
"듣기 싫구나!"
시넨은 자신의 5m의 거대한 거창을 쥐고는 러쉬라 불리는 자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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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 꼭!
첫댓글 흠. 댓글 꼭!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