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는 새길
딴 뜻은 없고요, 대출기간을 삼 주로 늘려주셨으면 하는 것과, 대출 연장을 하게 되면 혹시 다른 이용객이 대출예약을 하는 수가 있으니, 대출 다음 날 바로 연장을 신청해야 한다고 사전에 안내를 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이야깁니다. 네, 책을 바로 갖다 드릴 게요.
내가 읽는 책 중에 누가 대출예약을 한 권 걸어두어 반납하라는 메시지가 왔던 것이다. 그럴 줄 알고 반납 하루 전에 인터넷 상에서 한 주 연장을 모두 신청해서 안심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니까 다른 이용객이 내가 빌려간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어떤 책에 대해 대출예약을 했던 모양이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반납 하루 전에야 연장 신청을 인터넷으로 한 것이다.
얼른 편안한 외출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아내에게는 도서관에 급하게 반납할 책이 생겼다고 말하고 나온다.
그러니까 지난 달 중순쯤이었다. 그 날 난 기차역으로 가서 전철을 이용해 타 도시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갔다 오는 길에 혹시나 해서 도서관 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도서관 공사가 길어지고 있었던 탓이다. 내부 리모델링이라고 했는데 제 날짜를 지키지 못하고 올 유월까지 반년이나 연장해서 공사를 진행하여 도서관 이용을 못하게 하고 있었다.
좁고 오래 된 길을 벗어나 도서관 앞의 대로에 막 접어들었는데 처음에는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전면이 완전히 바뀐 모습에 새롭게 조성된 주차장이 원형으로 차를 받아들이고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7월 초에 책을 빌릴 겸 도서관 구경도 할 겸 가면서 새롭게 발굴한 길이 있었는데 마침 그 사이 아파트 재개발 공사가 끝나면서 깨끗하고 조용한 길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 책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갖다 줘야 하는구나. 다음에 다시 빌려보지 뭐.
그러나 책이 그렇게 손을 떠나가면 대개 다시 집어 드는 일은 드물었다. 강렬한 인상을 준 책이라면 벌써 읽었을 테고, 빌려온 많은 책 중에서 지금껏 남아서 여전히 읽어야 할 것 같으면 안 읽어도 그만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생각하는 시대적 추세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꿀 정도로 대규모 도심개발을 하여 주변에 많은 이용객을 불러 모으고, 자연 친화적인 그린환경으로 변모시키며, 인근 주민과 함께 번영하고 변화하는 친근한 도시 등 미래형 도시 개발조성의 모델이라고 소개하는 책이었다. 그런데 난 빌려 온 책 중에서 지구의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를 다룬 이야기를 이미 읽은 터라, 모든 일에는 급하고 중요한대로 선후가 있듯 이 시대 이 시기에는 급해도 아주 급한 불인, 지구의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 대응방안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구체적 실행에 관한 책자들이 더욱 이슈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개발이 급한 게 아닌 것이 앞서 언급한 책에서 이야기하듯, 이런 지경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어른들은 하나같이 돈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무지막지한 전 지구적 개발이 지금의 기후변화를 초래하며 위기를 불러들인 주된 원인 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사람들은 돈에만 관심을 보이는 거예요.
도서관으로 가는 별로 사람도 없는 조용한 길에서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짝 들은 이야기도 하필이면 돈 얘기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주택가를 오 분 정도 걸어서 지나면 이어서 나타나는 큰 차로를 건너야 하고 그때부터 도서관에 이르는, 최근에 발굴한 길은 모두 새 도로로 지나다니는 통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적하고 조용한 길이다.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 주변에 나는 길은 파란 잔디와 나무를 잘 조성해서 깔끔하고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며놓은 게 지나다가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갈하고 조용하다. 마침 어느 아주머니는 집에서 같이 사는 반려견을 데리고 나와 한가롭게 산책을 하고 있고, 주변에 나무가 성글한 파고라 밑에서는 어느 노인이 조용히 혼자 주변을 돌아보며 쉬고 있다.
지금까지 오는 길에 마주친 사람이라곤 서넛 정도가 될까 싶다. 책 대출관련이기는 하지만 이제 오전 열 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책을 넣은 하얗고 조그만 베로 만든 장바구니를 들고 한적한 시골 길을 걷듯 걸어왔으니 마음이 푸근하다 못해 날아갈 듯하다. 도심지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기란 얼마만인가.
농고 뒷마당에 지어진 아무도 없는, 온갖 채소와 푸른 식물이 사는 투명한 자재로 지어진 사각형 온실과 그 옆 초록색 아스팔트 공터에 만들어진 농기계 훈련장과 대기 중인 깨끗한 중장비들을 구경하는 재미란. 나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방해할 그 아무 것도, 그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제는 종일 소나기까지 내려 도로에 일부러 물을 뿌려놓은 듯 시원한 청량감까지 느껴지니.
로비에 새롭게 설치 된 대출과 반납전용 기기가 보인다. 전날 방문했던 때처럼 도서관 꼭대기 층인 사 층부터 중정에 꾸며진 아름다운 나무들에게로 쏟아져 내리는 빛으로 로비는 벌써 환한 동화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화려하다.
책 가져왔어요? 반납했어요?
네, 이제 반납해야죠.
오픈형으로 꾸며진 열람실 내부는 여기저기 책 읽는 이용객들로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좋다. 오늘 난 책을 읽으러 온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기기가 반납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옆에 역시 책을 반납하러온 얘기 엄마가 서 있어서 얼른 한 번 더 기기를 작동시키지만 역시 선선히 반납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도서관 사서와 마주치기가 싫어서 혼자 처리하고 조용히 나가려고 했는데 이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두 명의 사서가 머리만 빼꼼 내다보이는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가서 처리한다.
미안해요. 다른 뜻은 없었고 대출 기한을 한 번에 삼 주 정도로 늘리는 방안에 대해 한 번쯤 검토해달라는 의미 외에 다른 뜻은 정말 없었어요. 열 권을 대출하는데 이 주는 시간적으로 좀 그렇잖아요. 정 안 되면 대출 때 연장하고 싶으면 바로 다음 날 인터넷 상으로 연기하라고 안내라도 좀 해주시든가. 그 정도……. 그 말이었어요. 아까 전화로 길게 실례했다면 정말 미안합니다.
도서관을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린다. 이런.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오래 전에 부러져 수술한 발목이 잘 견뎌주기를 바라며 이를 악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