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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小亭문학창작실 원문보기 글쓴이: 제비꽃(원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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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가 된 린이
원 숙 희
깡통은 꽃노을 속으로 새처럼 날아 찔레꽃이 피어 있는 대문 안으로 떨어졌어요.
집으로 들어온 린이가 찔레나무를 발길로 걷어찼어요. 어이없게 당한 나무가 꽃잎을 눈처럼 날렸어요.
“얘, 꽃잎이 떨어지게 나무를 발로 차면 어떡하니? 깡통도 네가 찼지?”
집주인 할머니가 린이를 노려보며 말했어요.
“도대체 셋방에 살면서 조심성도 없고, 얼른 엄마 나오라고 해!”
할머니의 호통에 린이 엄마가 허둥지둥 나왔어요. 화난 할머니 앞에서 엄마는 자초지종을 묻지 않고 고개를 조아렸어요.
엄마와 할머니를 번갈아 째려보던 린이가 문을 부서져라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한참 만에 풀이 죽어 들어오는 엄마를 보고 린이가 오히려 투덜거렸어요.
“엄마, 장사 관두면 안 돼요? 창피해서 학교도 가기 싫어요.”
린이는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팔고 있는 엄마 아빠를 피해 뒷문으로 등하교를 했어요. 그래도 친구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고추장’이라고 린이를 놀렸어요.
사춘기가 시작된 린이는 요즘 부쩍 멋을 냈어요. 성격도 급해지고, 되지도 않는 일에 떼를 썼어요.
“창피하다고? 그래서 장사하는 곳에 한 번도 오지를 않았구나. 엄마 아빠가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잖니. 널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걸 몰라주다니, 엄마 가슴이 아프구나.”
“저도 좋은 집에 살고 싶어요. 생일날 친구들도 초대하고, 예쁜 옷을 입고 뽐내고 싶단 말이에요. 그렇게 해주지 못할 거면 학교 앞이 아닌 먼 곳에서 장사를 하든가.”
“네가 요즘 예민해서 걱정이구나. 엄마가 멀리 있으면 수시로 널 돌보지 못하잖니.”
엄마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어요.
“린이 엄마! 나 좀 봐. 매일같이 시끄러워 살 수가 없네.”
할머니가 방 문을 벌컥 열고 깨진 목소리로 야단쳤어요. 엄마는 얼음처럼 굳으며 몸을 움츠렸어요.
“집세도 밀리고, 더 이상 참지 못하겠어. 당장 이사를 해요!”
“할머니, 죄송해요. 열심히 장사해서 집세를 곧 마련해 드릴게요.”
“어제와 똑같은 소리를 하네. 무려 석 달이나 밀렸어. 염치가 있어야지, 쯧쯧.”
린이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듣기 싫었어요. 이어폰 볼륨을 최대한 올리고, 이불 속으로 쏘옥 들어갔어요.
달님은, 눈꽃처럼 소복하게 핀 찔레꽃을 보러 린이네 마당을 밤마다 서성거렸어요.
집안을 엿보던 달님에게 린이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어요.
“달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슬픈 린이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내 마음도 모르고, 학교 앞에서 엄마 아빠가 떡볶이를 팔고 있어요. 정말 창피해요. 그리고 달님, 작은 달팽이들도 집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집이 없어요. 눈치를 보며 셋집에 살고 있어요. 큰소리로 떠들지도 못해요.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 집에서 뽐내며 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달님이 소원을 말하는 린이를 삐딱하게 쳐다봤어요. 그리고 뭔가를 꾸미는 듯 빙긋거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바람이 싸늘하게 불었어요. 가끔은 '휘리릭- 휘릭' 휘파람 소리를 냈어요.
린이의 몸이 옴찔옴찔 조여들더니 작아졌어요. 등에 나선형의 껍데기가 생기고, 다리와 팔이 없어졌어요. 몸도 끈적끈적하게 변했어요.
린이는 놀랐어요. 거울에 몸을 비춰 봤어요. 도깨비뿔처럼 더듬이를 길게 뺀 달팽이가 거울 속에 있는 거예요. 린이가 퉁방울눈으로 안절부절못하고 떨었어요. 급하게 장롱 밑으로 몸을 숨겼어요. 린이의 마음과 몸은 마른 땅처럼 갈라져 따갑고 아팠어요.
‘어떡하지! 달님이 소원을 잘못 알아듣고 달팽이로 만든 것 같아. 난 정말 불행한 아이야. 이 몸으로 어떻게 살지? 나쁜 달님 같으니라고. 달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져야겠어.’
겁먹은 얼굴로 린이는 장롱 밑에서 달님을 기다렸어요.
잠시 후 린이를 살피러 온 달님이 창문에 걸터앉았어요. 린이는 부리나케 장롱 밑에서 나왔어요.
“어째서 날 달팽이로 만든 거예요?”
“네 소원대로 집을 등에 업혀 줬잖니. 창피하게 여기는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아도 되고, 이젠 불행하지 않잖아?”
“불행하지 않다고요? 어쩜 그렇게 심한 말씀을 하세요.”
“내가 심하다니! 네가 엄마에게 했던 말이 더 심하지.”
“달님은 뭘 몰라요. 엄마랑 아빠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기나 하세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쳇!”
“너희 엄마 아빠를 내가 잘 모른다고? 너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아서 더욱 잘 알아.”
“그럼 딸을 창피 주고 있는 것도 아시겠네요?”
“너를 창피 주려고 학교 앞에서 장사를 하시겠냐? 그리고 장사하는 게 창피한 일도 아니잖니. 네 욕심만 챙기려고 하니까 늘 불행하고 슬픈 거야. 달팽이로 살면서 찬찬히 살펴보렴.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엄마 아빠 모습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을 끝낸 달님은 린이를 피해 높이높이 달음박질쳤어요. 달님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린이의 얼굴은 어두웠어요.
린이는 껍데기에 몸을 집어넣고 훌쩍거렸어요. 한참을 울고 난 린이는 배가 고팠어요.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려고 해도 손이 없어 문을 열지 못했어요. 방바닥에 떨어진 과자부스러기는 수분이 없어 소화를 시킬 수 없었어요.
린이는 마당에 있는 찔레나무가 생각났어요. 집주인 할머니는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해 마당에 찔레나무를 심어놓고 가꾼다고 했어요. 찔레 새순과 꽃잎을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고 할머니가 말했어요.
린이는 마당에 떨어진 찔레꽃잎을 먹기로 했어요. 급한 마음에 빨리 가려고 해도 몸은 움찔움찔 조금씩 움직였어요. 오랜 시간이 걸려 마당으로 나온 린이는 찔레꽃잎을 허겁지겁 먹었어요.
‘퉤퉤, 맛없어. 이걸 어떻게 먹었다는 거야!’
허기진 뱃속은 왜냄비처럼‘꼬르륵, 꼬르륵’소리를 내며 끓었어요. 눈을 질끈 감고 꽃잎을 다시 집어 들었어요. 린이는 얼굴을 찡그리고 근처 꽃잎들도 먹어치웠어요. 그런데 돌멩이가 앞을 가로막았어요.
‘마당에 웬 돌멩이야. 엄마는 마당 좀 쓸어놓지.’
엄마를 원망했어요. 린이는 돌멩이를 피해 몸을 힘들게 움직였어요. 그때 갑자기 눈앞에 별 다섯 개가 뱅글뱅글 돌았어요. 별들이 별똥별처럼 떨어지고, 하늘이 캄캄해졌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깡통에 머리를 부딪쳤던 거예요. 그건 린이가 발길질한 깡통이었어요.
‘하필 여기에 떨어져 있을 게 뭐람. 도대체 달팽이들은 어떻게 살지? 너무 힘들어.’
린이는 깡통을 몸으로 밀며 화풀이를 했어요. 그러나 깡통은 움직이지를 않았어요.
린이를 지켜보고 있던 찔레나무가 오므렸던 가지를 깡통 쪽으로 폈어요. 깡통이 달싹 움직였어요.
“달팽이가 돼도 급한 성격은 그대로구먼.” 찔레나무는 린이를 내려다보며 가지를 흔들었어요.
“나는 달팽이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알지! 달님이 너를 연체동물인 달팽이로 만들어 주었잖니.”
린이는 찔레나무를 노려보기만 할 뿐 말대답을 못했어요.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터질 것 같았어요. 배고픈 것도 잊은 채 린이는 껍데기에 몸을 집어넣고 꼼짝을 안했어요.
찔레나무는 풀죽은 린이가 가여웠어요. 꽃잎을 떨어뜨려 린이의 몸을 덮었어요.
“린이야, 정신 차려! 사람으로 돌아가야지.”
찔레나무 소리에 린이가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어요.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요? 얼른 사람이 되도록 해 주세요.”
“내가 해 줄 수는 없고, 달님만이 할 수 있어.”
“그럼 어떻게 해요?”
“달님이 너에게 시킨 일이 있단다. 네가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뭘 해야 하나요? 시키는 대로 하겠어요.”
“대문까지 갔다 오라고 했어.”
“정말요? 대문까지 갔다 오면 사람이 되는 거지요?”
“달님이 설마 그렇게 쉬운 일을 시켰겠니. 네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보물도 가져와야 한다고 했어.”
“보물요? 나는 돈도 없고, 가지고 있는 보물도 없는데.”
“찾아보렴. 없으면 만들어야지.”
린이는 찔레나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지만, 마음이 급했어요.
대문까지는 작은 몸으로 다녀오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먼 거리였어요. 린이는 마당에 뒹구는 돌멩이를 젖히며 대문을 향해 갔어요. 급한 마음은 ‘빨리!’달리라고 응원했지만 속도를 낼 수 없었어요. 긁히고 찢긴 상처가 쓸려 몸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웠어요.
상처를 닦으려고 멈춰 선 린이의 머릿속에 엄마 아빠의 모습이 보였어요.
린이가 다니는 학교 앞으로 아빠는 리어카를 끌고, 엄마는 뒤를 밀며 가고 있었어요.
비처럼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리어카로 몰려왔어요.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아이들은 행복하게 보였어요.
엄마가 배고파 보이는 한 아이에게 떡볶이를 담뿍 퍼주고 머리를 쓸어주었어요. 그 아이는 떡볶이를 다 먹고는 돈을 내지 않고 인사만 하고 갔어요.
린이가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 애는 엄마 아빠 없이 할아버지와 살고 있단다. 그래서 떡볶이를 먹여 집으로 보낸 거란다.”
말없이 린이를 지켜보던 찔레나무가 속삭였어요.
가끔 허리를 피고 안마하는 엄마 아빠의 얼굴에 주름이 너울댔어요. 그런 엄마 아빠가 보석처럼 눈부시게 반짝였어요. 린이는 눈이 부셔 현기증이 났어요. 가슴은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팠어요.
긴 시간이 흐르고, 린이가 찔레나무 옆으로 왔어요. 달님이 린이의 머리 위로 두둥실 떠올랐어요.
“힘들었지? 보물은 가져왔니?”
“대문까지 갔다 오느라, 아직 보물을 못 찾았어요.”
“보물을 못 찾았다고?”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린이의 눈동자가 몰라보게 맑고 순해졌어요.
“참, 이상한 일을 보았어요. 엄마 아빠가 보석처럼 눈이 부셨어요.”
“보석처럼?”
찔레나무가 가지를 쫑긋이 뻗으며 린이의 대답을 기다렸어요. 달님도 궁금한지, 린이에게 달빛을 들이댔어요.
“난 좋은 집에 사는 친구들의 부모님이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나 때문에 생긴 엄마 아빠의 주름살은 보지도 않고, 창피하다고 떼를 썼어요. 이제 어떡하면 좋죠?”
린이가 엄마를 부르며 울었어요. 덩달아 딸꾹질도 박자를 맞추었어요.
“린이야! 린이야! 왜, 우는 거야?”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어유, 사람으로 돌아왔네! 엄마, 내가 달팽이로 보이지 않아요?”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사람이 어떻게 달팽이가 될 수 있니? 우리 집 귀한 보물이 달팽이가 되면 안 되지.”
린이는 엄마 품을 파고들었어요. 엄마도 린이를 꼬옥 품었어요.
“엄마, 떼쓰고 못되게 굴어 죄송해요. 저도 떡볶이 먹으러 가도 되지요?”
“그럼 대환영이지. 단골손님이 돼주면 더욱 좋고.”
엄마 얼굴에 잡힌 주름이 한 줄 펴졌어요.
엄마에게 안겨 있던 린이가 마당으로 나왔어요. 찔레나무 밑에 있는 돌멩이와 깡통을 주웠어요.
린이를 따라 나온 엄마가 찔레꽃처럼 환하게 웃었어요.
달님이 린이와 엄마를 번갈아보며 쌩긋거렸어요.
찔레나무는 흰꽃을 팡팡 터트렸어요.
“내일 아침 해는 서쪽에서 뜨려나? 린이가 마당을 다 치우고. 고맙구나.”
집주인 할머니도 문을 열고 칭찬을 했어요. 그리고 린이 엄마에게 눈을 찡긋 윙크를 했어요.
달빛이 만들어 준 린이의 그림자가 한 뼘 넘게 커 있었어요. 오톨도톨 얽은 마음도 반반해졌어요.
아동문예 2011년 7/8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