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경(山海經)과 조선천독(朝鮮天毒)
산해경(山海經)은 사실상 황제(黃帝) 때 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당시는 정확한 기록(記錄)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원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문(素問)과 기백(岐伯)의 문답형식(問答形式)으로 되어있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은 한의계(韓醫系)에서 원서(原書)로 통하고 있다.
산해경(山海經)이 최초(最初)로 쓰여진 동기(動機)는 대륙(大陸)의 산야(山野)와 각지(各地)에 있는 산물(産物)과 動物 등을 두루 알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부족국가(部族國家)와 百姓들의 삶에 대한 조사(調査)가 진행(進行)되었던 것은 황제(黃帝) 때 부터 라고 볼 수 있다.
산해경(山海經)은 비유적인 사서(史書)이다. 복희씨(伏羲氏)를 白蛇(흰 뱀)에 비유했고 最初의 正統國을 세운 桓仁天帝는 백견(白犬: 흰 개)에 비유했다.
황제(黃帝)의 아들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BC. 2578년)는 신라(新羅)의 최초시조(最初始祖)로서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상징했다. 신농씨(神農氏)의 부족(部族)이 호랑이라면 황제(黃帝)는 곰을 상징한 국가(國家)이다.
사마천 사기(司馬遷 史記)의 제왕편(帝王篇)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음을 본다.
곰이나 호랑이를 상징한 것은 적(敵)에게 위엄 있게 보이기 위함이라고 쓰여 있다. 古代國家는 모두가 짐승을 國家의 징표로 使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전쟁(戰爭)터에 나가게 되면 곰이나 호랑이를 상징한 깃대를 앞세우곤 했다.
以上과 같이 古代國家에서는 신성한 짐승을 내세워 國家의 표상(表象)으로 삼았음을 볼 수 있다. 요즘처럼 라이온스니, 청룡(靑龍)이니, 백호부대(白虎部隊)니 하는 것도 모두 같은 의미(意味)이다. 곰과 호랑이가 굴속에 들어가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고 百日동안 기도(祈禱)하는 것은, 곰 部族의 처녀와 호랑이 部族의 총각이 각각 다른 동굴이나 山속에 들어가 선(禪)을 通하지 못하면 君臣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史書에 기술(記述)된 글자 그대로 보고 해설(解說) 했기 때문에 三國遺事와 같은 史書를 신화설(神話說)로 매도하는 경향이 생겼던 것이다.
山海經에는 유독 짐승의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시대적으로 보아 上古代 社會에서는 우리가 보지도 알지도 못한 짐승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각 곳에 있는 짐승들을 짐승으로 記錄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짐승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 時代에 있었던 부족(部族)을 대표한 짐승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東洋 三國인 한국과 大陸 그리고 일본의 學者들은 山海經을 해설(解說)하는 과정에서 모두 짐승으로 풀이했기 때문에, 古代史書인 山海經은 動物의 책이 되어버렸다.
山海經은 上古時代 國家들이 各 地域의 産物과 動物은 물론 어떤 부족이 어떻게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部族國家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國家가 이어 내려올 때마다 記錄하였던 史書이다.
그러나 時代가 변하고 國家가 바뀜에 따라 春秋時代를 거치고 다시 戰國時代를 거치면서 저마다 山海經을 다시 정리(整理)하고 교정(校正)을 보고 註를 달았다. 漢나라 이후 즉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를 거쳐 당(唐)나라 宋나라를 거치고 다시 고려(高麗)를 거치면서 明나라 청(淸)나라 때까지 山海經에 註를 달고 교정(校正)을 보아왔다. 漢나라때 유수(劉秀)가 총32편 이었던 山海經을 18편으로 줄였고 진(晉)나라 때의 곽박(郭璞)이 다시 18편으로 엮어 淸나라에 이르렀다. 그후 원가(袁珂)가 주(註)를 대폭늘이고 다시 정리하여 산해경교주(山海經校註)를 내놓았다.
혹자는 산해경을 대할 때 마다 주(註)를 단 사람과 서문(序文)을 쓴 사람 표문(表文)을 쓴 사람 등이 너무 많아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산해경은 이본(異本)이 아주 많은 책이다. 이에 그 대표적인 것들을 골라 간단하게 정리하고 소개한다.
산해경유수교상표(山海經劉秀校上表)
산해경유수교상표(山海經劉秀校上表)는 일명 상산해경표(上山海經表) 또는 일반적으로 산해경표(山海經表) 등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前漢말기에 유수(劉秀)가 기록한 것이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原文 . 劉秀
侍中奉車都尉光祿大夫臣秀領校. 秘書言校秘書太常屬臣望所校山海經凡三十二篇. 今定爲一十八篇. 已定. 山海經者. 出於唐虞之際. 昔洪水洋溢. 漫衍中國. 民人失據. 崎嶇於丘陵. 巢於樹木. 鯀旣無功. 而帝堯使禹繼之. 禹乘四載. 隨山刊木. 定高山大川. 蓋與伯翳主毆禽獸命山川. 類草木. 別水土. 四嶽佐之. 以周四方. 逮人跡之所希至. 及舟輿之所罕到. 內別五方之山. 外分八方之海. 紀其珍寶奇物異方之所生. 水土草木禽獸昆蟲麟鳳之所止. 禎祥之所隱. 及四海之外. 絶域之國. 殊類之人. 禹別九州. 任土作貢. 而益等類物善惡. 著山海經. 皆聖賢之遺事. 古文之著明者也. 其事質明有信. 孝武皇帝時嘗有獻異鳥者. 食之百物. 所不肯食. 東方朔見之. 言其鳥名. 又言其所當食. 如朔言. 問朔何以知之. 卽山海經所出也. 孝宣帝時. 擊磻石於上郡. 陷得石室. 其中有反縛盜械人. 時臣秀父向爲諫議大夫. 言此貳負之臣也. 詔問何以知之. 亦以山海經對. 其文曰. 貳負殺窫窳. 帝乃梏之疏屬之山. 桎其右足. 反縛兩手. 上大驚. 朝士由是多奇山海經者. 文學大儒皆讀學. 以爲奇可以考禎祥變怪之物. 見遠國異人之謠俗. 故易曰. 言天下之至. 而不可亂也. 博物之君子. 其可不惑焉. 臣秀昧死謹上.
譯 . 律坤
" 시중봉거도위광록대부(侍中奉車都尉光綠大夫)인 신(臣) 수(秀)는 궁중(宮中)에 소장된 모든 서적을 책임지고 교정, 교감하고 있습니다. 교비서태상(校秘書太常)에 속해 있는 신(臣) 망(望)이 이번에 교감한 山海經은 모두 32편이었는데 18편으로 정리했습니다.
山海經이란 책은 본래 당우(唐虞:요 임금 B.C.2357年)와 순(舜 B.C.2284年) 임금 시절에 나왔습니다.
그 당시 大陸에는 대홍수로 인해 물바다가 되어, 나라 百姓들은 땅과 집을 잃고 산과 언덕으로 헤매다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하(夏 B.C.2224年)나라 禹임금의 아버지였던 곤이 치산치수(治山治水)를 하겠다고 자청했으나, 아무런 공로가 없어 堯임금은 곤의 아들인 우(禹)에게 책임을 지게 했습니다.
우(禹)는 사승마(四乘馬)를 타고 이르는 山마다 나무를 베어 높은 산과 큰 강을 정리했습니다. 벼슬아치들은 새와 짐승들을 몰아내고 山川에 이름을 붙이고 草木을 분류한 후 물과 땅을 구분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四方의 우두머리인 제후(帝侯)들이 일을 도왔으며 여러 지역에 사람의 발자취가 미치는 곳까지 정돈했습니다. 그리고 배와 수레가 잘 이르지 못한 곳까지 다다랐습니다.
안으로는 다섯 방향으로 산을 구별하게 하고, 밖으로는 여덟 방향의 바다를 구분하게 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진귀한 보물과 기이한 물건들과 다른 지방의 강과 육지에서 나는 풀과 나무, 짐승, 곤충, 기린, 봉황이 있는 곳까지 그치지 아니했습니다. 또한 상서롭게 감추어진 곳과 바다 멀리 떨어진 외딴 나라들의 특수한 부족의 사람들까지 기록했습니다.
우(禹)는 대륙전체를 구주(九州:아홉 고을)로 나누어 토지의 등급에 따라 공물(貢物)을 정했습니다. 익(益) 등은 물건이 좋고 나쁨을 구별하여 山海經을 著述했습니다.
山海經은 모든 성현(聖賢)들이 남긴 업적이며, 옛 일에 대한 기록이 명백합니다. 그러한 사실들은 뚜렷하고 믿음이 있는 記錄입니다.
전한(前漢) 효무제(孝武帝, B.C.140-135年) 때 이상한 새를 바친 일이 있었는데 온갖 먹이를 주어도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동방삭(東方朔)이 그 새를 보고 말하기를 새의 이름과 먹이를 아뢰었는데, 그의 말 그대로였습니다.
효무제(孝武帝)는 동방삭(東方朔)에게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가를 물었더니, 바로 山海經에 나와 있었다고 했습니다.
전한(前漢) 효선제(孝宣帝, B.C.73-70年)는 상군에서 크고 넓다란 바위를 깨뜨렸는데, 깨어진 곳에는 석실(石室)이 있었습니다. 그 석실 속에 두 손이 뒤로 묶이고 형틀에 매달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신(臣) 수(秀)의 아버지였던 향(向)은 간이대부(諫議大夫)였는데, 석실에 묶인 사람은 이부(貳負)의 신하라고 아뢰었습니다. 그 일을 어떻게 알았는가 라고 하문(下問)하시자 山海經에 있다고 아뢰었다고 합니다.
山海經의 글 속에는 이부(貳負)가 알유를 죽였으므로, 천제(天帝)가 소속산(疏屬山)에서 이부(貳負)에게 오른쪽 다리를 반대로 하고 양손을 위로 다리와 함께 결박하여 죽인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때 효선제(孝宣帝)는 크게 놀라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조정(朝廷)의 선비들은 山海經을 기이하게 생각한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 후로는 문학(文學)을 하는 학자나 유학(儒學)을 하는 대학자들 모두 산해경을 읽고 배웠습니다. 이때부터 상서로운 일이나 괴이한 일에 대해서는 상세히 살폈으며, 먼 나라 다른 사람들의 노래나 풍속도 연고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고로 역경(易經)에서 말하기를, 천하에 온갖 만물이 깊고 번잡해도 어지러워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이치(理致)와 사물(事物)에 박식한 君子는 미흡함이 없을 것입니다. 신(臣) 수(秀)는 죽음을 무릅쓰고 삼가 아뢰옵니다.
"
위 내용에서 주목할 점은 때는 전한(前漢) 말기에 유수(劉秀)가 궁중(宮中)에 소장된 모든 서적을 책임지고 교정, 교감하면서 원래 32편이었던 산해경(山海經)을 18편으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해경(山海經)을 새롭게 편집하는 과정에서 고조선(古朝鮮)의 역사가 축소되고 또한 엉터리로 기록되어 졌을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게된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조선(朝鮮), 숙신국(肅愼國), 맥국(貊國), 개국(蓋國) 등 동이계 문화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산해경(山海經) 자체를 동이계의 고서로 보고 있을 정도로 동이계 상고문화에 대한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 후 후진(後晉 AD.265-420년)때에 기실참군(記室參軍)이었던 곽박(郭璞)이 산해경을 새롭게 편집하게되었는데 곽박(郭璞)은 산해경서(山海經序)에서 이 책은 世上에 나와 약 3천여 년간 내려 왔으나 漢나라 때 나타났다 곧 매몰되다시피 하였다고 실토하며 자신이 편집하게된 경위를 적었다.
산해경서(山海經序)는 곽박이 직접 쓴 것이고 상산해경표(上山海經表)는 유수(劉秀)가 기록한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산해경서(山海經序)
原文.郭璞
" 世之覽 山海經者. 皆以其閎誕迂誇. 多奇怪俶儻之言. 莫不疑焉. 嘗試論之曰. 莊生有云. 人之所知. 莫若其所不知. 吾於山海經見之矣. 夫以宇宙之寥廓. 羣生之紛員云. 陰陽之煦篜. 萬殊之區分. 精氣渾淆. 自相濆薄. 遊魂靈怪. 觸象而構. 流形於山川. 麗狀於木石者. 惡可勝言乎? 然則總其所以乖. 鼓之於一響. 成其所以變. 混之於一象. 世之所謂異. 未知其所以異. 世之所謂不異. 未知其所以不異. 何者? 物不自異. 待我而後異. 異果在我. 非物異也. 故胡人見布而疑黂. 越人見罽而駭毳. 夫翫所習見而奇所希聞. 此人情之常蔽也. 今畧擧可以明之者. 陽火出於氷水. 陰鼠生於炎山. 而俗之論者. 莫之或怪. 及談山海經所載. 而咸怪之. 是不怪所可怪而怪所不可怪也. 不怪所可怪. 則幾於無怪矣. 怪所不可怪. 則未始有加怪也. 夫能然所不可. 不可所不可然. 則理無不然矣. 按汲郡竹書及穆天子傳. 穆王西征見西王母. 執壁帛之好. 獻錦組之屬. 穆王享王母於瑤池之上. 賦詩往來. 辭義可觀. 遂襲昆侖之丘. 遊軒轅之宮. 眺鐘山之嶺. 玩帝者之寶. 勒石王母之山. 紀跡玄圃之上. 乃取其嘉木豐盍草奇鳥怪獸玉石珍瑰之器. 金膏燭銀之寶. 歸而殖養之於中國. 穆王駕八駿之乘. 右服盜驪. 左驂䱚耳. 造父爲御. 犇戎鳥右. 萬里長騖. 以周歷四荒. 名山大川. 靡不登濟. 東升大人之堂. 西燕王母之廬. 南轢黿鼉之梁. 北躡積羽之衢. 窮歡極娛. 然後旋歸. 案史記說. 穆王得盜驪騄耳驊騮之驥. 使造父御之. 以西巡狩. 見西王母. 樂而忘歸. 亦與竹書同. 左傳曰. 穆王欲肆其心. 使天下皆有車轍馬跡焉. 竹書所載. 則是其事也. 而礁周之徒. 足爲通識瑰儒. 而雅不平此. 驗之史考. 以著其妄. 司馬遷敍大宛傳亦云. 自張騫使大夏之後. 窮河源. 惡覩所謂昆侖者乎. 至禹本紀. 山海經所有怪物. 余不敢言也. 不亦悲乎. 若竹書不潛出於千載 以作徵於今日者. 則山海之言. 其幾乎廢矣. 若乃東方生曉畢方之名. 劉子政辨盜械之尸. 王頎訪兩面之客. 海民獲長臂之衣. 精驗潛效. 絶代縣符. 於戱羣惑者其可以少寤乎? 是故聖皇原化以極變. 象物以應怪. 鑒無滯賾. 曲盡幽情. 神焉廋哉. 神焉廋哉. 皆此書跨世七代. 歷載三千. 雖暫顯於漢而尋亦寢廢. 其山川名號. 所在多有舛謬. 與今不同. 師訓莫傳. 遂將湮泯. 道之所存. 俗之喪悲夫! 余有懼焉. 故爲之創傳. 疏其壅閡. 闢其茀蕪. 領其玄致. 標其洞涉. 庶幾令逸文. 不墜於世. 奇言不絶於今. 夏后之跡. 靡栞於將來. 八荒之事. 有聞於後裔. 不亦可乎. 夫蘙薈之翔. 叵以論乖天之淩. 蹏涔之遊. 無以知絳虯之騰. 鈞天之庭. 豈伶人之所躡. 無航之津. 豈蒼兕之所涉. 非天下之至通. 難與言山海之義矣. 鳴呼! 達觀博物之客. 其鑒之哉
譯 . 律坤
세상에 山海經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 내용이 황당무계하고 괴이하면서 기이한 말들이 많기 때문에 의문을 갖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山海經의 眞實性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본다.
장자(莊子 BC. 365-290)는 山海經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人間이 아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므로 나는 山海經을 理解할 수 있다고 하였다.
宇宙의 本體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으며 뭇 生命體는 그 數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많다.
이러한 現狀은 陰과 陽의 氣運이 왕성해지면 수많은 종류의 生命體가 곳곳에 나누어져 생겨나고 길러진다.
精氣가 서로 뒤섞여 스스로 격렬하게 움직일 때 혼령(魂靈)과 괴물들의 실체가 떠돌다 닿게 되면 그 形象이 나타난다.
이때 山川의 아름다운 모양이 생기게 되고 나무와 돌들은 자태를 나타내는데 이것을 어찌 말로서 表現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상호간에 모순된 것을 통합하여 하나의 음향을 이루어 合한 것을 變化시켜 한가지 形象으로 합쳤을 때 그것을 알지 못한 사람은 世上에 이상한 것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世上에 이상하지 않는 것도 그것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物質의 그 모양자체를 본다면 이상할 것이 없으며, 내 눈으로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자기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며 物質自體로 보아서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쪽의 호인(胡人)들은 베로 된 布木을 보면 삼(麻)인가를 의심하게 되고 南方의 월인(越人)은 모직물(毛織物)을 보면 모피(毛皮)라고 놀라게 된다.
여러 사람들은 잘 보지 않고 눈에 익지 않은 것을 믿으려 하지 않으며 간혹 기이하게 들어온 사실은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지금 그것을 간략히 예로 든다면 陽의 불은 陰氣에서 發生하는 얼음물에서 생겨나고 陰의 氣運을 가진 쥐들은 火山이 있는 곳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俗世에 사는 世上 사람들은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얘기가 山海經에 記錄되어 있다고 한다면 모두 괴이하게 생각한다. 이런 現狀은 괴이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괴이하지 않다고 여기며 괴이하게 여길 만하지 않는 것은 반대로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상하게 여길만한 것을 이상하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괴이하지 않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괴이하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처음부터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이상하게 생각할만한 것을 괴이하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애당초부터 괴이하게 생각할 것도 없는 것이다.
본시 그러한 것을 그렇다하고 그렇지 않는 것을 不可하지 않다고 한다면 不可한 것은 不可한 것이므로 이치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不可한 것은 不可한 것이며 不可하지 않는 것은 不可한 것이 아니다. 不可한 것을 不可하지 않다고 한다면 道理에 맞는 것이라 할 수 없다.
탁군( 郡)에서 發行된 죽서(竹書)와 목천자전(穆天子傳)에 의하면, 周나라때 목왕(穆王 BC.1001-947年)은 西域으로 행차해 서왕모(西王母 BC.1052-947年)를 만났다.
목왕(穆王)은 西王母에게 벽옥(碧玉)과 비단을 드리고 비단의 매듭 등을 바쳤다. 목왕(穆王)과 西王母는 요지(瑤池)의 연못가에서 만나 서로가 詩를 지어 往來하였는데, 그 내용과 言語 중에 볼만할 것이 있었다.
그리하여 영인(靈人)들이 살고 있는 西域의 영산(靈山)인 곤륜산(崑崙山)의 언덕에 올라, 헌원(軒轅)인 黃帝의 宮에서 놀면서 종산(鍾山)의 봉우리를 바라보고 제왕(帝王)의 보물을 갖고 놀며 西王母의 山에 있는 돌에 文字를 새기고 仙人들이 살고있는 현포(玄圃)의 정상에 발자취를 남겼다.
그리고 곤륜산(崑崙山)의 진귀한 나무와 아름다운 풀과 이상한 새와 짐승 또한 옥돌과 진귀한 옥그릇들과 금고(金膏) 그리고 촉은(燭銀) 같은 보물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와 같은 진귀한 보물들을 中國에 퍼뜨리게 되었다.
목왕(穆王)은 여덟 필의 준마(駿馬)에 올랐다. 우쪽으로는 도려(盜驪)를 두고 가운데에 두 마리를 부리게 하고 좌쪽으로는 녹이( 耳)를 바깥쪽으로 두 마리를 부리게 했다. 조보(造父)는 목왕(穆王)의 마부(馬夫)를 하고 분융( 戎)을 오른쪽에 태워 萬里長程의 길을 쉬지 않고 달리게 했다.
목왕(穆王)은 全國 四方을 돌아다니면서, 닿는 곳마다 名山에 오르고 큰 江을 건너기도 하였다. 동쪽으로는 大人들이 있는 山에 오르고 서쪽으로는 西王母가 있던 宮에서 잔치를 베풀었으며 남쪽으로는 자라와 악어같은 것을 다리로 삼아 수레를 달리게 했다. 북쪽으로는 날짐승 털이 많이 쌓인 거리를 거닐며 즐거움과 기쁨을 마음껏 누린 후에야 돌아왔다.
史記에 記錄된 설에 의하면 목왕(穆王)은 도려(盜驪)와 녹이( 耳), 화류( )라는 名馬를 얻게되자, 조보(造父)를 앞세우고 서역(西域)을 돌면서 사냥을 하고 西王母를 만난 후 즐기느라 돌아올 것을 잊었다고 한다.
죽서(竹書)에도 같은 記錄이 있으며, 좌전(左傳)에는 목왕(穆王)이 자기 마음의 뜻대로 하기 위해 天下의 곳곳에 닿는 곳마다 수레바퀴와 말 자국을 남겼다는 竹書의 記錄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초주( 周)라는 大學者는 識見있는 理解할만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穆王이 하는 일에 평소 못마땅하게 여기고 사고(史考)에서 論하기를 망령됨을 명확하게 했다.
사마천(司馬遷)은 또한 대완전(大宛傳)에서 設한 것을 보면, 장건(張騫)이 대하(大夏)의 使臣으로 간 후 黃河의 源流를 탐색했지만, 世上에서 말하는 곤륜(崑崙)이라는 산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적고 있다.
우본기(禹本紀)나 山海經에 나오는 괴물(怪物)에 있어서는 나 자신 감히 말할 수 없으므로,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는가라고 되어있다.
만약 竹書가 감추어진지 千年後에 世上에 나타나 오늘날에 증거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山海經의 이야기는 영영 모르게 되고 폐기되었을 것이다.
동방삭(東方朔)이 필방(畢方)의 이름을 훤히 알았으며, 유자정(劉子政)은 도계(盜械)의 죽음을 알았고, 왕기(王 )는 양면(兩面)의 손님을 만나보고 어민(魚民)이 장비(長臂)의 옷을 손에 넣었던 얘기들을 상세히 음미하고 살펴본다면 時代가 變하고 지났어도 부(符)를 매달아 둔 것처럼 一致할 것이다. 아! 의혹을 품은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러한 까닭에 성천자(聖天子)는 조화(造化)의 原理대로 自然의 길을 따르게 되며, 陰陽의 變化는 物質의 形象을 形成한 후 괴이한 일들에 대처하며 심오한 理致에 막힘이 없도록 했다. 따라서 깊은 自然의 眞理에 순응하면서 그 情을 다한다면 神인들 그 眞實을 어찌 숨길 수 있으랴. 그러므로 神은 그러한 眞實을 外面하지 않고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하건데 이 책은 世上에 내려오면서 黃帝(BC.2679年), 堯舜(BC.2357-2284年), 夏(BC.2224年), 周(BC.1122年), 秦(BC.221年), 三國(高句麗·百濟·新羅 BC. 231-57年), 漢. 後晉(BC.206-AD.265年)의 七代의 歲月을 거쳐 약 3천여 년간 내려 왔으나 잠깐 漢나라 때 나타났다 곧 매몰되다시피 하였다.
山海經의 속에는 山川의 이름과 장소와 위치 등이 잘못된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現在의 명칭과는 一致하지 못하며, 先賢들의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아 드디어 소멸될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眞實이 存在한 책을 世上사람들이 잊는 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주석(註釋)을 달아, 막힌 곳을 소통시키고 황폐한 곳을 열어, 그 오묘한 뜻을 이해시킴과 동시에 심오한 이치를 깨닫게 하므로서 깊고 얕음을 나타내게 했다.
뛰어난 문장(文章)이 世上에서 없어지지 않고, 진귀한 말들이 오늘에도 끊어지지 않는다면, 하후(夏后) 임금의 업적은 장래에 있어서 잊혀지지 않고, 世界 곳곳에 관한 일들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된다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自然의 本體를 본다면 우거진 숲속에서 다리를 박차고 작은 새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 오르는 오묘한 理致를 그 누가 알 것인가?
얕은 물가에서 노는 작은 벌레들은 뿔 없는 龍이 하늘을 오르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장엄한 음률이 진동하는 天上의 뜨락에 속된 악공이 발을 디딜 곳이 아니며, 건널 곳 없는 나루터에 알지도 못한 뱃사공들은 건널 곳이 아니다.
天下의 道通者가 아니고서는 山海經의 심오한 뜻을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 通達하고 박식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거울처럼 볼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하건데 이 책은 世上에 내려오면서 黃帝(BC.2679年), 堯舜(BC.2357-2284年), 夏(BC.2224年), 周(BC.1122年), 秦(BC.221年), 三國(高句麗·百濟·新羅 BC. 231-57年), 漢. 後晉(BC.206-AD.265年)의 七代의 歲月을 거쳐 약 3천여 년간 내려 왔으나 잠깐 漢나라 때 나타났다 곧 매몰되다시피 하였다.
山海經의 속에는 山川의 이름과 장소와 위치 등이 잘못된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現在의 명칭과는 一致하지 못하며, 先賢들의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아 드디어 소멸될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眞實이 存在한 책을 世上사람들이 잊는 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주석(註釋)을 달아, 막힌 곳을 소통시키고 황폐한 곳을 열어, 그 오묘한 뜻을 이해시킴과 동시에 심오한 이치를 깨닫게 하므로서 깊고 얕음을 나타내게 했다.
뛰어난 문장(文章)이 世上에서 없어지지 않고, 진귀한 말들이 오늘에도 끊어지지 않는다면, 하후(夏后) 임금의 업적은 장래에 있어서 잊혀지지 않고, 世界 곳곳에 관한 일들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된다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
조선천독(朝鮮天毒)에 관한 몇가지 주요한 내용
山海經海經卷十三
山海經第十八
〔海內經〕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동쪽 나라 안과 북쪽의 모퉁이에 있는 나라 이름은 조선(朝鮮)이며 조선은 천독(天毒)이며, 그 사람은 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사람을 사랑하며 가까이 한다.
郭璞云: 「朝鮮今樂浪郡也.」 珂案: 朝鮮已見海內北經
곽박이 이르기를 「조선은 지금의 낙랑군이다」라 하였다. 원가가 생각건대 조선은 이미 <해내북경>에 보인다.
郭璞云: 「天毒卽天竺國, 貴道德, 有文書.金銀.錢貨, 浮屠出此國中也. 晉大興四年, 天竺胡王獻珍寶.」 王崇慶云: 「天毒疑別有意義, 郭以爲天竺國, 天竺在西域, 漢明帝遣使迎佛骨之地, 此未知是非也.」 珂案: 天竺卽今印度, 在我國西南, 此天毒則在東北, 方位逈異, 故王氏乃有此疑. 或者中有脫文와字, 未可知也
곽박이 이르기를 「천독은 곧 천축국이니 도덕을 귀하게 여기고 문서와 금은 돈과 재물 등이 있고 불타가 그 나라에서 나왔다. 진(晉)나라 대흥(大興, 東晉,AD.318∼321년) 4년 천축(天竺)의 호왕(胡王)이 진귀한 보물을 바쳤다.」라고 하였다. 왕숭경이 이르기를 「'천독'은 아마도 별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곽박은 '천축국'이라 여겼으나, 천축은 서역에 있으면서 한 명제 때 사신을 보내 부처의 뼈를 맞아들여 온 곳인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하겠다」라고 하였다. 원가가 생각건대 천축은 곧 지금의 인도로서 우리 나라의 서남쪽에 있으며 여기서 말하는 천독은 곧 동북쪽에 있으니 방위가 사뭇 다르기에 왕숭경이 그러한 의심을 품게 되었다. 혹은 그 문귀 가운데 탈락된 문장이 있거나 잘못 전해진 글자가 있다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郭璞云: 「偎亦愛也, 音隱외反.」 王念孫云: 「宗炳明佛論<弘明集卷二―珂>引作『偎人而愛人』, 又引注文: 『古謂天毒卽天竺, 浮屠所興.』」 郝懿行云: 「愛之, 藏經本作愛人, 是也.《列子》<黃帝篇>云: 『列姑射山, 有神人, 不偎不愛, 仙聖爲之臣.』 義正與此合. 袁宏漢紀云: 『浮屠, 佛也; 天竺國有佛道, 其敎以修善慈心爲主, 不殺生.』 亦此義也, 玉篇云: 『偎, 愛也.』 本此. 又云: 『北海之偎, 有國曰偎人.』 以『偎人』爲國名, 義與此異.」 珂案: 宋本·吳寬抄本正作偎人愛人
곽박이 이르기를 「'偎' 역시 '愛'의 의미이다. 음은 隱偎反이다」라고 하였다. 왕념손이 이르기를 「종병의 명불론(홍명집 권2 ― 원가 주석)에 『偎人而愛人』으로 인용되어 있으며, 또 주석의 문장을 인용하여 『예전에 말하던 천독은 곧 천축으로 불타가 일어난 곳이다』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학의행이 이르기를 「'愛之'는《장경》에 본디 '愛人(남을 사랑한다)'으로 되어 있으니 그것이 옳다.《열자·황제편》에 이르기를 『열고사산(列姑射山)에 신인이 있어 가까이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며, 선인과 성인들이 그에게 신하 노릇을 한다』 하였는데 그 의미가 바로 여기와 부합한다. 원굉의《한기》에 이르기를 『부도는 부처이다. 천축국에 불도가 있으니 그 가르침은 착하고 자비심 있는 마음을 닦는 것을 위주로 하며 살생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역시 여기서의 뜻과 같다.《옥편》에 『偎는 愛를 말한다』고 한 것은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또 이르기를 『북해의 모퉁이에 외인(偎人)이라는 나라가 있다』라 하여 『偎人』을 나라의 이름으로 여겼으니 그 의미가 여기와 다르다」라고 하였다. 원가가 생각건대 송본과 오관의 필사본에는 '偎人愛人'으로 바로 되어 있다.
本 내용 중에서 천독(天毒)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곽박은 천독(天毒)이 곧 천축국(天竺國)이라했고 왕숭경은 천독(天毒)은 곧 동북쪽에 있으니 방위가 사뭇 다르기에 의심을 품었으며 천독(天毒)은 아마도 별도의 의미가 있을 것이 라고 하였다. 혹은 그 문귀 가운데 탈락된 문장이 있거나 잘못 전해진 글자가 있다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라고하였다.
아래글은 현 '사단법인상고사학회' 이중재회장의 저서 '完譯板 山海經' 에서 주요내용을 발췌하고 일부는 本人이 편집한 글이다.
동해지내(東海之內), 즉 동쪽의 나라안이란 대륙의 중부를 뜻하는데 그 다음 문장에서 북해지우(北海之隅)라고 한 것은 좀 말이 맞지 않다. 다시말해 대륙의 중부에서 북쪽의 모퉁이로 옮겨갔다는 말인데 이것은 조선(朝鮮)을 동북삼성(東北三城)쪽으로 몰아부쳤음을 알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夏나라 禹임금 때의 일 이므로 그 당시 조선은 천독이라 하였고 조선의 도읍지는 낙랑군(樂浪郡)의 땅이었다.
조선을 천독국이라 한 것은 천독국(天毒國)이 '하늘의 독이 있는 나라' 라는 뜻이 있음으로 당시로 말하면 최첨단 무기와 최고급 인력들이 포진해 있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수련을 통하여 얻어지는 도통(道通)으로 인해 무한한 지식과 지혜가 넘쳐났던 것이다.
본래 상고 때 부터 고조선국을 일명 동이국(東夷國)이라하였다. 그것은 BC.8937년 반고환인씨(盤古桓因氏) 이후부터 점차로 동으로 이주해 왔기 때문이며 동이(東夷)는 구리(銅)를 생산하여 각종 청동기와 철제 무기를 가장 먼저 사용하였고 그래서 '구리(九黎)'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동이(東夷)는 철을 잘 다루어서 지어진 이름이기 때문에 동철족이라고도 하였다.이러한 東夷의 막강한 힘과 기술은 바로 주변의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朝鮮을 天毒이라 한 것이다.
조선국(朝鮮國) 천독(天毒)의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곳에 살았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하백족(河伯族)이란 말이다. 다시말해 강을 끼고 도시를 발전 시켜 왔기 때문에 고대 황하문명이 인류 최초로 발전한 이래 줄곧 조선은(朝鮮) 발전하여 천독(天毒)이 된 것이다.
후에 천독(天毒)이란 명칭은 천축(天竺)으로 발전 되었을 것이라고 곽박(郭璞)은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동이(東夷)의 일부 세력이 천축(天竺)으로 되었고 동이(東夷)는 구이(九夷)로 나누어져 대륙전체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수경주소(水經注疏)의 하수(河水)편에서는 천축제국(天竺諸國)은 은(殷)나라 백성들이 남쪽 또는 서역쪽으로 가서 천축국(天竺國)을 이루었다고 적고있다.
본래 천축국(天竺國)은 인도(印度)에 없었다는 사실을 정사(正史)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천축국(中天竺國) 사람들은 은(殷)나라 백성들 이라고 적고있다. 그렇다면 석가(釋迦)의 선조(先祖)는 은(殷)나라 였음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국인 천독은 은(殷)나라에서 일부 뿌리를 내리고 천축국(天竺國)의 강역이 점 점 커지면서 다섯 천축국(天竺國)으로 나뉘어져 동 . 서 . 남 . 북 . 중앙의 오천축국(五天竺國)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천축(天竺)의 대표적인 큰 나라를 일컬을 때 오천축국이라 하지만, 소천축국(小天竺國)은 수십 나라가 있었다.
당(唐)나라의 요사겸(姚思廉)이 지은 양서(梁書)에 의하면 중천축국(中天竺國)은 대월지국(大月支國)의 동남으로 수천리(數千里)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 지역은 3만리(三萬里)이다. 일명 신독국(身毒國)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천축국(天竺國)은 중국대륙 남부의 동쪽에서 서역까지 길게 분포 했었음을 알 수 있다. 천축국(天竺國)은 漢나라때 번성하였다가 後漢 이후에 점차 사라졌는데 그 존속년대가 짧았기 때문에 현재 역사에서 비중있게 다루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혜초의 여행지를 따라 천축국의 위치를 살펴보면 과연 태국 . 동남아 . 스리랑카 등지에서 수 많은 천축국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산해경은 철처하게 동이족(東夷族) 입장에서 쓰여진 사서라고 보아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외에 특이한 해석으로 규원사화(揆園史話)가 있다.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紀)
譯註 . 김성구(金聲九)
《山海經》所謂: 「北海有國, 名曰朝鮮, 天毒育也其人, 水居偎[愛]也人」...
산해경(山海經)에 이른바 「북해에 나라가 있는데 조선이라 이름한다. 하늘이 그 사람들을 길렀고 물가에 살면서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인용하였으며 여기에서 毒은 기른다는 뜻으로 쓰였다.
" 《노자》에서 「亭之毒之(양육하고 기른다)」라 하여 毒이 '자라다' 혹은 '기르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亭毒'은 '亭育(양육하다)'과 통용되어 쓰인다.
... '毒'은 본디 '기르다(育)'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기 주석의 왕숭경도 의심하였듯이 '천독'을 '천축'으로 간주하는 것은《산해경》이 일정한 방위별로 나누어 서술한 지리서임을 감안할 때 문제성을 지닌 해석이다. 그에 비해《규원사화》는 '毒'의 본 뜻에 의거하여 해석하였으니 바른 것임을 알 수 있다. "
以下 筆者
관련문구는 老子 제51장에 있다. 인터넷검색결과 아래와 같이 나왔는데...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 莫不存道而貴德.
도생지, 덕축지. 물형지, 세성지. 시이만물, 막부존도이귀덕.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도지존, 덕지귀, 부막지명이상자연.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고도생지, 덕축지, 장지육지, 정지독지, 양지복지.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원덕.
하지만 최근에 대만에서 발견된 노자 친필본 도덕경에는 문제의 부분에 글자가 다르다.
道生之德畜之, 物形之勢成之, 是以萬物尊, 道貴德道尊, 德貴夫莫之, 爵而常自然故,
道生之畜之長之育之成之熟之養之覆之
도생지축지장지육지성지숙지양지복지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그러나 해석에 있어서는 기른다, 양육한다 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즉, 고대에 독(毒)은 '뭔가를 다독거린다' '살펴준다' 天毒의 경우 '하늘이 보살피다' 라는 뜻으로 쓰였을 가능성은 충분해 졌다.
etc.
律坤 李重宰著「한民族史」284쪽
…東夷 朝鮮人들이 너무도 영리하고 용맹스럽고 지혜가 있어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별명처럼 불려진 것이 신독(身毒) 또는 천독(天毒)이다. 그리고 후일 천축(天竺)으로 불려져 中天竺·北天竺·西天竺·南天竺·東天竺으로 불리게 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광동성(廣東省) 지방의 천축산(天竺山)에서 유래되어 청해성(靑海省)이 있는 곳으로 갔다는 기록도 보이나, 본래 天毒·身毒은 곤륜산을 배경삼아 천산산맥 등지와 타림 분지 등 여러 곳에서 수렵을 했던 용맹스러운 묘족(苗族)의 후예였다.
★ 고대 조선의 강역
山海經
卷七 海外西經
海外自西南陬至西北陬者.
해외의 서남 끝에서 서북 끝까지이다.
海外는 현재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하여 동양의 끝과 유럽의 끝까지를 말한다. 서쪽과 남쪽 그리고 서쪽과 북쪽의 끝인 구석진 곳까지를 말한다. 이 말은 고대사회의 강역을 표시한 것으로, 서북쪽 구석까지라면 프랑스ㆍ스페인ㆍ포르투칼ㆍ모로코ㆍ덴마크ㆍ폴란드ㆍ노르웨이ㆍ스웨덴ㆍ필란드ㆍ모스크바 즉 소련 등지를 뜻한다. 그리고 서남쪽 구석진 곳이라면 아프리카ㆍ이란ㆍ아프카니스탄ㆍ파키스탄ㆍ인도ㆍ버마ㆍ타이ㆍ베트남ㆍ캄보디아ㆍ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ㆍ필린핀ㆍ인도네시아 등의 지역을 말한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上」 p535.
卷八 海外北經
海外自東北陬至西北陬者.
해외의 동북쪽 구석에서 서북의 구석까지이다.
동북의 끝이라고 한다면 일본에서 서백리아(西伯利亞)까지이며, 서북의 끝이라면 포르투칼ㆍ에스파니아ㆍ벨기에ㆍ덴마크ㆍ스웨덴ㆍ필란드ㆍ모스크바까지를 말한다. 그렇다면 고대 황제(黃帝 BC 2679년)전후에는 전 대륙이 壇君의 강역이었음을 말한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上」p611.
卷九 海外東經
海外自東南陬至東北陬者.
해외의 동남 모퉁이에서 동북 모퉁이까지 이르는 지역이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上」p670.
卷十 海內南經
海內自東南陬以西者.
해내의 동남 모퉁이에서 서역의 지역이다.
海內라고 하는 것은 나라 안이라는 뜻이므로, 海內東南이라고 한다면 나라 안의 동남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고대사회에는 대륙을 나라 라고 보았기 때문에, 나라 안의 동남이라면 대륙의 동쪽과 남쪽의 끝을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산동성(山東省), 강소성(江蘇省), 절강성(浙江省), 복건성(福健省), 광동성(廣東省) 등을 말한다. 그리고 서쪽 모퉁이까지라고 했으므로 신강성(新疆省) 끝까지를 뜻하고 있다. 즉 소련령이었던 타시켄트와의 접경지대를 말하고 있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下」p17.
卷十一 海內西經
海內西南陬以北者.
해내의 동남 모퉁이에서 서역의 지역이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下」p63.
卷十二 海內北經
海內西北陬印者.
해내의 서북쪽 모퉁이에서 동쪽의 지역이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下」p124.
卷十三 海內東經
海內東北陬以南者.
해내, 즉 나라 안의 동북 끝에서 남쪽의 모퉁이까지이다.
海內란 바다 안이 아니라 나라 안으로 보아야 한다. 나라 안이란 고대부터 天子가 도읍했던 서경(西京) 즉 현재의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을 기준한 것이 海內 즉 나라 안이다. 서안(西安)에서 동북 끝에서 남쪽 끝까지의 강역(疆域)을 뜻한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下」p196.
卷十八 海內經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동쪽 나라 안과 북쪽의 모퉁이에 있는 나라 이름은 조선(朝鮮)이며 조선은 천독(天毒)이며, 그 사람은 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사람을 사랑하며 가까이 한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下」p555.
참고서적 :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上 . 下」
律坤 李重宰 譯 「老子道德經 . 十戒經」
sanggosa:
經度 80°에 걸려있는 것이 和田, 和田의 옛 地名이 伊甸園이다. 伊甸園은 于闐 于田 그리고 현재의 和田으로 地名이 바뀜. 經度 80°를 기준으로 해서 동쪽을 동이국이라고 한다.
山海經에는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전부 다 朝鮮이라고 하였음. 산과 바다가 있는 곳은 전부 朝鮮 즉 전 세계가 朝鮮. 고대에는 전 대륙이 조선이다. 朝 라는 글자에서 위에 있는 十 은 공간세계의 사방팔방을 나타내고 가운데 日 은 태양을 밑의 十 은 태양 아래 사방팔방을 의미하고 月 은 비춘다는 뜻으로 공간세계나 태양이 있는 곳이나 태양아래 모두를 비춘다는 의미. 鮮 은 물고기와 양이 사는 곳. 즉 五大洋 六大洲 . 山海經이라는 뜻도 山 은 羊을 海 는 물고기를 뜻하기에 五大洋 六大洲 전 강역이 朝鮮이었음을 의미한다.
天帝菀國(紀元前 數萬年前)때는 세계를 九部族으로 나누어서 통치를 해 왔는데 九部族때 즉 桓因天皇의 아버지때 和田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점차적으로 동으로 동으로 이동해 오는 과정에서 지금의 甘肅省 燉煌에서 BC 8937년 桓因天皇은 처음으로 국가 즉 神市를 건국하면서 인류 최초로 불을 사용하였다. 구약성서 창세기편에 보아도 天帝菀國때 부싯돌을 가지고 불을 사용했다고 하나,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불을 사용한 것은 桓因天皇때 정식으로 神市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사용하였다는 뜻에서 불빛 돈(燉), 빛날 황(煌) 字 를 써서 燉煌이라 하였다. 또한 神市는 신의 도시 즉 신의 사람이 세운 도시로 神人(또는 眞人)이란 道를 5,6번 이상 通한 사람이 세운 도시 를 正統國이라고 한다. 壇君朝鮮 1期 桓因(BC8937年), 2期 有巢桓雄(BC 3898年) 때 까지는 燉煌에서 다스리다가 3期 堯임금(BC2357年)때 都邑을 지금의 섬서성 서안에다가 왕검성을 세움. 이곳이 최초의 平壤이다 이곳에서 지금의 山西省 洪同縣(옛날에는 阿斯達)으로 즉 BC 2357년의 都邑地인 平壤에서 25년 만에 都邑地를 阿斯達로 옮기는 시기가 BC 2333년 이다.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는 壇紀는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들이 壇君이라고 하는 분이 바로 堯임금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檀君의 '檀'字는 日帝에 의해서 歪曲된 것이고 本 字는 '壇'이다. 壇君이란 하늘에 祭祀를 올리는 君主이기에 사상적 의미가 전혀 없는 박달나무 단(檀) 字 가 아니라 제단 단(壇) 字로 표기해야 한다.
後漢서 東夷전에 보면 '王制云.東方曰夷.夷者柢也.' 왕의 제도가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서 최초로 생겨났는가, 동방에있는 동이들로부터 생겼다. 바로 동이야 말로 인류의 뿌리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銅ㆍ鐵器文化는 中國보다 韓國이 앞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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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泓鎭 |
國際書法藝術聯合 韓國本部 理事 / 本聯合會 指導委員 |
http://www.hanja-edu.com/0410_month/8.html
"...「山海經」 海內經에 「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人愛之」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 나오는 「天毒」을 東晋의 郭璞(276~324)은 부처가 태어난 天竺國의 옛이름으로 해석함으로써 당시 中原에서 보아 東海의 안쪽 北海의 모퉁이에 있는 朝鮮과 天毒(인도의 古名)이 같은 方向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였고 심지어 방향이 다른 나라를 같은 방향에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게 하므로 인하여 朝鮮과 天毒이라는 글자 사이에 어떤 글귀가 빠진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까지 提起하게끔 하고 있다.
그러나 觀點을 달리하여 보면 天毒의 ‘天’은 帝王의 敬稱인 天을 의미하고, ‘毒’은 康熙字典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다스린다(毒:治也)’는 의미가 있는 바 天毒은 ‘帝王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해석은 ‘東海의 안쪽, 北海의 모퉁이에 나라이름이 朝鮮이라 하는 나라가 있는 데 帝王이 다스리는 나라로서 그 백성들은 물가에 살며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帝王이 다스리는 나라의 그 帝王은 누구일까? 말할 나위 없이 朝鮮의 王 檀君王儉이 아닐 수 없다. "
山海經海經新釋卷十三
山海經第十八
〔海內經〕
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1、天毒,其人水居2,偎人愛之3。
1 郭璞云:「朝鮮今樂浪郡也。」珂案:朝鮮已見海內北經。
2 郭璞云:「天毒即天竺國,貴道德,有文書、金銀、錢貨,浮屠出此國中也。晉大興四年,天竺胡王獻珍寶。」王崇慶云:「天毒疑別有意義,郭以為即天竺國,天竺在西域,漢明帝遣使迎佛骨之地,此未知是非也。」珂案:天竺即今印度,在我國西南,此天毒則在東北,方位迥異,故王氏乃有此疑。或者中有脫文訛字,未可知也。
3 郭璞云:「偎亦愛也,音隱隈反。」王念孫云:「宗炳明佛論(弘明集卷二--珂)引作『偎人而愛人』,又引注文:『古謂天毒即天竺,浮屠所興。』」郝懿行云:「愛之,藏經本作愛人,是也。列子]黃帝篇)云:『列姑射山,有神人,不偎不愛,仙聖為之臣。』義正與此合。袁宏漢紀云:『浮屠,佛也;天竺國有佛道,其教以修善慈心為主,不殺生。』亦此義也,玉篇云:『偎,愛也。』本此。又云:『北海之隈,有國曰偎人。』以『偎人』為國名,義與此異。」珂案:宋本、吳寬抄本正作偎人愛人。
西海之內,流沙之中,有國名曰壑市1。
1 郭璞云:「音郝。」珂案:水經注禹貢山水澤地所在云:「流沙在西海郡北,又逕浮渚,歷壑市之國。」
西海之內,流沙之西,有國名曰氾葉1。
1 郭璞云:「音如氾濫之氾。」珂案:水經注無此國,疑脫。
流沙之西,有鳥山者1,三水出焉2。爰有黃金、璿瑰、丹貨、銀鐵,皆流于此中3。又有淮山,好水出焉。
1 珂案:水經注云:「流沙歷壑市之國,又逕於鳥山之東。」
2 郭璞云:「三水同出一山也。」
3 郭璞云:「言其中有雜珍奇貨也。」郝懿行云:「流于此中,藏經本作皆出此水四字。穆天子傳(卷一)云:『天子之(古寶字--珂):玉果、璿珠、燭銀、黃金之膏。』即此類。」
流沙之東,黑水之西,有朝雲之國1、司彘之國。黃帝妻雷祖,生昌意2,昌意降處若水3,生韓流4。韓流擢首、謹耳5、人面、豕喙、麟身、渠股6、豚止7,取淖子曰阿女,生帝顓頊8。
1 珂案:水經注云:「流沙又逕於鳥山之東,朝雲之國。」
2 郭璞云:「世本云:『黃帝娶于西陵氏之子,謂之纍祖,產青陽及昌意。」郝懿行云:「雷,姓也;祖,名也。西陵氏姓方雷,故晉語云:『青陽,方雷氏之甥也。』雷通作纍。郭引世本作纍祖,大戴禮帝繫篇作嫘祖,史記五帝紀同,漢書古今人表作絫祖:並通。」珂案:路史後紀五云:「黃帝元妃西陵氏曰儽祖,以其始蠶,故又祀先蠶。」王瓘軒轅本紀云:「帝周遊行時,元妃嫘祖死於道,帝祭之以為祖神。」是關於雷祖之神話也。
3 珂案:史記五帝本紀「昌意降居若水」索隱云:「降,下也,言帝子為諸侯。若水在蜀,即所封國也。」此神話之歷史解釋也。其本義當為自天下降,謫居若水。
4 郭璞云:「竹書云:『昌意降居若水,產帝乾荒。』乾荒即韓流也,生帝顓頊。」畢沅云:「韓、乾聲相近,流即流(去水)字,字之誤也。」
5 郭璞云:「擢首,長咽;謹耳,未聞。」郝懿行云:「說文(九)云:『顓,頭顓顓謹貌;頊,頭頊頊謹貌。』即謹耳之義。然則顓頊命名,豈以頭似其父故與?說文(十二)又云:『擢,引也。』方言云:『擢,拔也。』拔引之則長,故郭訓擢為長矣。」
6 郭璞云:「渠,車輞,言跰腳也。大傳曰:『大如車渠。』」郝懿行云:「跰當為胼,依字當為骿,見說文(四)。尚書大傳云:『取大貝大如大車之渠。』鄭康成注云:『渠,車罔也。』是郭注所本。」
7 郭璞云:「止,足。」珂案:止,甲骨文作●,金文作●,象足跡之形,即足之本字也。
8 郭璞云:「世本云:『顓頊母濁山氏之子,名昌僕。』」郝懿行云:「大戴禮帝繫篇云:『昌意娶于蜀山氏之子,謂之昌僕氏,產顓頊。』郭引世本作濁山氏,蜀,古字通濁,又通淖,是淖子即蜀山子也。曰阿女者,初學記九卷引帝王世紀云:『顓頊母曰景僕,蜀山氏女,謂之女樞。』是也。」
流沙之東,黑水之閒,有山名不死之山1。
1 郭璞注:「即員丘也。」珂案:水經注禹貢山水澤地所在云:「流沙又歷員丘不死之山西。」本此為說也。員丘山上有不死樹,食之乃壽,見海外南經「不死民」節郭注。
華山青水之東,有山名曰肇山,有人名曰柏高1,柏高上下于此,至于天2。
1 郭璞云:「柏子高,仙者也。」郝懿行云:「據郭注,經文當為柏子高,藏經本正如是,今本脫子字也。莊子天地篇云:『堯治天下,伯成子高立為諸侯,禹時伯成子高辭為諸侯而耕。』史記封禪書說神僊之屬有羨門子高,未審即一人否?又郭注穆天子傳(卷一)云:『古伯字多從木。』然則柏高即伯高矣。伯高者,管子地數篇有黃帝問於伯高云云,蓋黃帝之臣也。帝乘龍鼎湖而伯高從焉,故高亦仙者也。」珂案:經文柏高,宋本作高;王念孫校亦增子字。
2 郭璞云:「言翱翔雲天,往來此山也。」珂案:郭說非是。「柏高上下于此,至於天」者,言柏高循此山而登天也,此山蓋山中之天梯也,說詳下文「九丘建木」節注。
西南黑水之閒,有都廣之野1,后稷葬焉2。爰有膏菽、膏稻、膏黍、膏稷3,百穀自生4,冬夏播琴5。鸞鳥自歌,鳳鳥自,靈壽實華6,草木所聚7。爰有百獸,相群爰處8。此草也9,冬夏不死。
1 王念孫云:「(後漢書)張衡傳注作廣都,御覽百穀一(卷八三七)作都廣,木部八(卷九五九)作廣都,類聚地部(卷六)作都廣,百穀部(卷八十五)作廣都,鳥部上(卷九十)同。」珂案:據此,則古有二本,或作都廣,或作廣都,其實一也。楊慎山海經補注云:「黑水廣都,今之成都也。」衡以地望,庶幾近之。華陽國志蜀志云:「廣都縣,郡西三十里,元朔二年置。」曹學佺蜀中名勝記謂在今成都附近雙流縣境。
2 郭璞云:「其城方三百里,蓋天下之中,素女所出也。離騷曰:y絕都廣野而直指號。』」郝懿行云:「楚詞九歎云:『絕都廣以直指兮。』郭引此句,於都廣下衍野字,又作直指號,號即兮字之訛也。王逸注引此經有『其城方三百里,蓋天地之中』十一字,是知古本在經文,今脫去之,而誤入郭注也。因知『素女所出也』五字王逸注雖未引,亦必為經文無疑矣。素女者,徐鍇說文繫傳云;『黃帝使素女鼓五十弦琴,黃帝悲,乃分之為二十五弦。』今案黃帝史記封禪書作太帝,風俗通亦云:『黃帝書:泰帝使素女鼓瑟而悲,帝禁不止』云云,然則素女蓋古之神女,出此野中也。又郭注天下之中當為天地之中。」珂案:楊慎云:「素女在青城天谷,今名玉女洞。」亦可存以俟考。
3 郭璞云:「言味好皆滑如膏。外傳曰:『膏粢之子,菽豆粢粟也。』」郝懿行云:「趙岐注孟子云:『膏梁,細粟如膏者也。』郭注味好,藏經本作好米。又引外傳膏粢之子,晉語作膏粱之性,與此異文,所未詳。」珂案:郭注膏粢之子,王念孫校改粢作粱。
4 珂案:博物志異草木云:「海上有草名,其實食之如大麥,七月稔熟,名曰自然穀,或曰禹餘糧。」即此之類也。經文百穀,齊民要術十引作百●。
5 郭璞云:「播琴猶播殖,方俗言耳。」畢沅云:「播琴,播種也。水經注(汝水)云:『楚人謂冢為琴。』冢、種聲相近也。」郝懿行云:「畢說是也。劉昭注郡國志『鮦陽』引皇覽曰:『縣有葛陂鄉,城東北有楚武王冢,民謂之楚武王岑。』然則楚人蓋謂冢為岑,岑、琴聲近,疑初本謂之岑,形聲訛轉為琴耳。」
6 郭璞云:「靈壽,木名也,似竹,有枝節。」郝懿行云:「爾雅]釋木)云:『椐,樻。』即靈壽也。漢書孔光傳云:『賜太師靈壽杖。』顏師古注云:『木似竹有枝節,長不過八九尺,圍三四寸,自然有合杖制,不須削治也。』」吳承志云:「呂氏春秋本味篇:『菜之美者,壽木之華。』高誘注:『壽木,崑崙山木也;華,實也,食其實者不死,故曰壽木。』壽木蓋即靈壽,都廣之野在黑水間,於崑崙山相近也。」珂案:吳說得之。
7 郭璞云:「在此叢殖也。」
8 郭璞云:「於此群聚。」
9 郝懿行云:「此草猶言此地之草,古文省耳。」
珂案:有關后稷葬所神話,已見海內西經「后稷之葬」節注。
南海之外1,黑水青水之閒2,有木名曰若木3,若水出焉4。
1 珂案:宋本、吳寬抄本、藏經本、毛扆校本均作內,作內是也。
2 珂案:水經注若水引此經無青水二字。
3 郭璞云:「樹赤華青。」珂案:若木已見大荒北經,云「赤樹,青葉赤華」。此注華蓋葉字之訛,藏經本正作葉。
4 珂案:水經注若水云:「若木之生,非一所也,黑水之閒,厥木所植,水出其下,故水受其稱焉。」又云:「若水出蜀郡旄牛徼外,西南至故關,為若水也。」
有禺中之國。有列襄之國。有靈山1,有赤蛇在木上,名曰蝡蛇,木食2。
1 珂案:靈山已見大荒西經,為「十巫從此升降」之所,此靈山揆其地望當亦是也。
2 郭璞云:「言不食禽獸也;音如耎弱之耎。」
有鹽長1之國。有人焉鳥首,名曰鳥氏2。
1 郝懿行云:「太平御覽七百九十七卷引作監長,有上有西海中三字。藏經本亦作監長。北堂書鈔一百五十七卷引與今本同。」
2 郭璞云:「今佛書中有此人,即鳥夷也。」王念孫云:「書鈔地部二(應是地部一,即卷一五七--珂)兩引鳥民,下有四蛇相繚四字。」郝懿行云:「鳥氏,御覽(卷七九七)引作鳥民,今本氏字訛也。鳥夷者,史記夏本紀及(漢書)地理志并云:『鳥夷皮服。』大戴禮五帝德篇云:『東有鳥夷。』是也。又秦本紀云:『大費生子二人,一曰大廉,實鳥俗氏。』索隱云:『以仲衍鳥身人言,故為鳥俗氏。』亦斯類也。」
有九丘,以水絡之1:名曰陶唐之丘2、有叔得之丘3、孟盈之丘4、昆吾之丘5、黑白之丘、赤望之丘、參衛之丘、武夫之丘6、神民之丘7。有木,青葉紫莖,玄華黃實,名曰建木8,百仞無枝,有九欘9,下有九枸10,其實如麻11,其葉如芒12,大爰過13,黃帝所為14。
1 郭璞云:「絡猶繞也。」郝懿行云:「文選遊天台山賦及景福殿賦注引此注并云:絡,繞也。」
2 郭璞云:「陶唐,堯號。」
3 珂案:有叔得之丘,有字疑衍。
4 郝懿行云:「叔得孟盈蓋皆人名號也。孟盈或作蓋盈,古天子號]見路史前紀三--珂)。」
5 郭璞云:「此山出名金也。尸子曰:『昆吾之金。』」郝懿行云:「昆吾之山已見中次二經。此經昆吾,古諸侯號也。大戴禮帝繫篇云:『陸終產六子,其一曰樊,是為昆吾。』淮南墜形訓云:『昆吾丘在南方。』」
6 郭璞云:「此山出美石。」珂案:南次二經云:「會稽之山,其下多砆石。」郭注云:「砆,武夫石,似玉。」是也。
7 郭璞云:「言上有神人。」郝懿行云:「文選遊天台山賦注引此經作神人之丘,書鈔仍作神民,以郭注推之,似民當為人。」
8 珂案:建木已見海內南經。揆此經文意,建木乃生於上文所說「九丘」之上,下文「(上)有九欘,下有九枸」,義即與「九丘」相應。吳任臣廣註引游氏臆見云:「建木在西若水濱,鹽長之國,九邱之上。」是也。
9 郭璞云:「枝回曲也;音如斤斸之斸。」郝懿行云:「玉篇云:y欘,枝上曲。』本此。藏本經文枝下有上字,今本脫也。」珂案:郝說是也;御覽卷九六一引此經正作上有九欘,應據補。
10郭璞云:「根盤錯也。淮南子(說林篇)曰:『木大則根欋。』音劬。」
11郭璞云:「似麻子也。」
12郭璞云:「芒木似棠梨也。」珂案:中次二經云:「葌山有木焉,其狀如棠而赤葉,名曰芒草。」
郭注蓋本此為說。
13郭璞云:「言庖羲於此經過也。」郝懿行云:「庖羲生於成紀,去此不遠,容得經過之。」珂案:郭郝之說俱非也。過非經過之過,乃u上下於此,至於天」(見前「柏高」節)之意也。淮南子墜形篇云:u建木在都廣,眾帝所自上下。」高誘注:「眾帝之從都廣山上天還下,故曰上下。」云「上天還下,故曰上下」,得「上下」之意矣,然云u從都廣山」,則尚未達於一間也。揆此文意,「眾帝所自上下」云者,實自建木「上下」,非自都廣「上下」,此「建木,……大皞爰過」之謂也。古人質樸,設想神人、仙人、巫師登天,亦必循階而登,則有所謂「天梯」者存焉,非如後世之設想,可以「翱翔雲天」(「柏高」節郭璞注語)任意也。自然物中可藉憑以為天梯者有二:一曰山,二曰樹。山之天梯,首曰昆侖。淮南子墜形篇曰:「昆侖之丘,或上倍之,是謂涼風之山,登之而不死;或上倍之,是謂懸圃,登之乃靈,能使風雨;或上倍之,乃維上天,登之乃神,是謂太帝之居。」高誘注:「太帝,天帝。」是緣昆侖以登天也。次即前文所記華山青水之東之肇山,「柏高上下于此,至于天」:其以山為天梯而梯天之狀本甚明白,而郭注以「翱翔雲天,往來此山」,則是臆說無根也。且「上下」亦絕不同於「翱翔雲天」式之「往來」,郭注之非,不待深辯。再次即海外西經所記巫咸國境之登葆山,云「群巫所從上下也」。「群巫所從上下」者,亦「上下於天」之意,非如郭注所謂「採藥往來」也。從來巫師之主業,皆在於下宣神旨,上達民情,而不在於「採藥」。諸巫或亦採藥療死者,特其業餘耳。再次即大荒西經所記「十巫從此升降,百藥爰在」之靈山,疑亦登葆山之異名也。郭璞注云:「群巫上下此山,採藥往來也。」以「上下」釋「升降」,固得其意矣,而復云「採藥往來」,仍未免失之。「十巫從此升降」者,亦謂十巫循此以登天,為人神之介也。以此山「百藥爰在」,故或亦便道「採藥往來」,然固非以次要之醫職替巫職也。山之天梯大約可以考見者在於是矣。黃梅戲「天仙配」「槐蔭別」一齣,織女謂董永曰:「董郎,你看這兩塊頑石,一塊高來一塊低,好似為妻上天梯。」猶存以山為天梯之古誼。至於樹之天梯,則古籍中可考者唯此建木。他如山海經所記三桑]北次二經、海外北經)、尋木(海外北經),淮南子墜形篇所記之若木,十洲記所記之扶桑,雖皆長數百丈、數千丈乃至千里之大樹,然未聞可以緣之以登天也。唯此建木,乃云「大爰過」。「過」者非普通於樹下「經過」之「過」,如僅係普通於樹下經過,亦不值如此大書特書。此「過」者,實「眾帝所自上下」之「上下」:此「為百王先」(漢書、帝王世紀)之大皞庖羲,亦首緣此建木以登天也。於是乃有記敘書寫之價值。樹之天梯,古籍雖僅載建木,然後世民間則續有所傳:盛森編花的故事凌霄花云,七仙姑撒下凌霄花種子,頃刻長成天梯,自天送董永之子還家;中國民間故事選春旺和九仙姑云,九仙姑下凡經年,忽於天井種葫蘆,遂踏葫蘆葉升天為壽於其父:均樹之天梯之遺意也。漢唐地理書鈔輯唐李泰括地志云:「佛上忉利天,為母說法九十日。佛上天青梯,今變為石,沒入地,唯餘十二磴,磴間二尺餘。彼耆老云,梯入地盡,佛法滅。」赫胥黎進化論與倫理學(一九七一年科學出版社出版)頁三二云:「有這樣一個有趣的故事,名叫『傑克和豆桿』。這是一個關於一顆豆子的傳說,它一個勁兒地長,聳入雲霄,直達天堂。故事的主人公,順著豆桿爬了上去,發現寬闊茂密的葉子支著另一個世界,它是由同下界一樣的成份組成的,然而卻是那樣新奇。」是外國民間亦有以山或樹為天梯之說矣。
14郭璞云:「言治護之也。」珂案:郭此注亦似是而實非也。中次十一經云:「豐山有羊桃,可以為皮張。」郭注云:「治皮腫起。」彼u為」固可以訓治,然此亦訓治(護),則於義殊未諧也。試思統治宇宙、日理萬機之黃帝,何暇兢兢於「治護」一樹乎?此「為」者,當是u施為」之「為」,言此天梯建木,為宇宙最高統治者之黃帝所造作、施為者也。正如七仙姑撒下一粒仙種、頃刻長成天梯然,黃帝之「為」建木亦應如是也。古代學者於神話缺乏理解,恆以哲理玄談或人事現象釋之,宜每扞格而難通也。
有窫窳,龍首,是食人1。有青獸,人面2,名曰猩猩3。
1 郭璞云:「在弱水中。」珂案:窫窳居弱水中已見海內南經。
2 郝懿行云:「郭注海內南經云:『狌狌狀如黃狗。』此經云『青獸,人面』,與郭異。太平御覽九百八卷引此經無青獸二字,蓋脫。藝文類聚九十五卷引作『有獸』,無青字,當是今本青字衍也。」珂案:王念孫校同郝注,青字實衍。
3 郭璞云:「能言。」珂案:禮記曲禮:「猩猩能言,不離禽獸。」此郭注所本。呂氏春秋本味篇云:「肉之美者,猩猩之脣。」高誘注云:「猩猩,獸名也,人面狗軀而長尾。」狌狌知人名,已見海內南經。
西南有巴國1。大2生咸鳥,咸鳥生乘釐,乘釐生後照3,後照是始為巴人4。
1 郭璞云:「今三巴是。」
2 珂案:大,吳任臣、郝懿行注以為即伏羲,是也。然大(太皞、太昊)與伏羲在先秦古籍中,本各不相謀,至秦末漢初人撰世本,始以太昊與伏羲連文,而為太昊伏羲氏。故呂氏春秋孟春紀云:「其帝太皞。」高誘注云「太皞,伏羲氏。」或即本於世本之說也。此經無伏羲而唯有大,若非大皞、伏羲各不相謀,即作者直以大為伏羲矣。從其發展觀之,後者之可能性尤大。考「伏羲」一名,古無定書,伏羲、宓犧、庖犧、伏戲、包犧、包羲、伏犧、炮犧、虙戲……均是也。伏羲神話今存者已尟,太平御覽卷七八引詩含神霧云:「大跡出雷澤,華胥履之,生宓羲。」而列子黃帝篇記華胥氏之國,略云:「華胥氏之國,其民入水不溺,入火不熱,斫撻無傷痛,指擿無痟癢,乘空如履實,寢虛若處林,雲霧不其視,雷不亂其聽,美惡不滑其心,山谷不躓其步。」說者謂即伏羲母華胥所居之國(王瓘軒轅本紀注),以書闕有間,不可知已。
3 珂案:御覽卷一六八引此經照作昭。
4 郭璞云:「為之始祖。」珂案:世本氏姓篇(秦嘉謨輯補本)云:「廩君之先,故出巫誕。巴郡南郡蠻,本有五姓,巴氏、樊氏、曋氏、相氏,鄭氏,皆出於五落鍾離山。其山有赤、黑二穴,巴氏之子生於赤穴,四姓之子皆生黑穴,未有君長,俱事鬼神。廩君名曰務相,姓巴氏,與樊氏、曋氏、相氏、鄭氏凡五姓,俱出皆爭神。乃共擲劍於石,約能中者,奉以為君。巴氏子務相,乃獨中之,眾皆嘆。又令各乘土船,雕文畫之,而浮水中,約能浮者,當以為君。餘姓悉沉,惟務相獨浮,因共立之,是為廩君。乃乘土船從夷水至鹽陽,鹽水有神女,謂廩君曰:『此地廣大,魚鹽所出,願留共居。』廩居不許。鹽神暮輒來取宿,旦即化為飛蟲,與諸蟲群飛,掩蔽日光,天地冥晦,積十餘日。廩君不知東西所向,七日七夜。使人操青縷以遺鹽神,曰:『纓此即相宜,云與女俱生,宜將去。』鹽神受而纓之。廩君即立陽石上,應青縷而射之,中鹽神,鹽神死,天乃大開。廩君於是君乎夷城,四姓皆臣之,世尚秦女。」路史作者羅泌及世本輯者之一雷學淇均以為廩君姓巴氏,即太皞伏羲氏之後也,姑存以俟考焉。
有國名曰流黃辛氏1,其域中方三百里,其出是塵土2。有巴遂山,澠水出焉3。
1 郭璞云:「即酆氏也。」珂案:流黃酆氏之國已見海內南經。又南次二經云:「柜山,西臨流黃。」亦此也。
2 郭璞云:「言殷盛也。」楊慎云:「出是塵土,言其地清曠無囂埃也。」郝懿行云:「言塵坌出是國中,謂人物喧闐也。藏經本域字作城,出字上下無其是二字。」珂案:諸說意或正或反,然皆以出產塵土或超出塵土之「塵土」為言,俱非上古種落所有景象也。獨清蔣知讓於孫星衍校本眉批云:「塵土當是麈、麀等字之訛。」為巨眼卓識,一語中的。今按此經「塵土」確係麈字誤析為二也。麈字形體本長,如書之竹簡,其長當又特甚;鈔者不慎,誤析為「塵土」二字,乃極有可能。u其出是麈」者,言此國之出產唯麈也。藏經本無其是二字,「出麈」則義更曉明。山海經大荒南經:「黑水之南,有玄蛇食麈。」大荒北經:「大人國有大青蛇,黃頭,食麈。」白氏六帖、藝文類聚、太平御覽等引之,均以麈為麈而誤入塵部,益知此經「塵土」為「麈」之誤析,蓋無可疑焉。
3 郝懿行云:「水經若水注云:『繩水出徼外。』引此經亦作繩水。(漢書)地理志云:『蜀郡旄牛,若水出徼外,南至大莋入繩。』即斯水也。」
又有朱卷之國。有黑蛇,青首,食象1。
1 郭璞云:「即巴蛇也。」珂案:巴蛇食象,已見海內南經。
南方有贛巨人1,人面長臂2,黑身有毛,反踵,見人笑亦笑3,脣蔽其面,因即逃也4。
1 郭璞云:「即梟陽也;音感。」珂案:梟陽國已見海內南經。
2 珂案:海內南經作長脣,是也;長臂當是長脣之訛。
3 珂案:當依古本作「見人則笑」,見海內南經「梟陽國」節注。
4 珂案:藏經本「即」作「可」,於義為長。
又有黑人,虎首鳥足,兩手持蛇,方啗之。有嬴民,鳥足1。有封豕2。
1 郭璞云:「音盈。」
2 郭璞云:「大豬也,羿射殺之。」珂案:吳其昌卜辭所見殷先公先王三續考略云:「『封豕』疑即『王亥』之字誤。第一,凡古書中遇y封豕』『封豨』字,下必記羿殺之文,獨此文下絕無『羿』字,或羿射封豕之記載。第二,『封豕』與『王亥』字形極相近。」又云:「大荒東經云:『有困民國,勾姓而食。有人曰王亥,……名曰搖民。』而海內經云:『有嬴民,鳥足。有封豕。』『困民』之『困』,乃『因』字之誤,『因民』、『搖民』、『嬴民』,一聲之轉也。」如吳所說,則此經之嬴民,即大荒東經之因民(困民)、搖民,此經之「封豕」,即大荒東經之王亥,「有嬴民,鳥足;有封豕」者,蓋亦王亥故事之節述也。前節所記「又有黑人,虎首鳥足,兩手持蛇方啗之」者,或亦與王亥故事有關。大荒東經云:「有易潛出,為國於獸,方食之,名曰搖民。」搖民其虎首鳥足之黑人乎?
有人曰苗民1。有神焉,人首蛇身,長如轅2,左右有首3,衣紫衣,冠旃冠,名曰延維4,人主得而饗食之,伯天下5。
1 郭璞云:「三苗民也。」
2 郭璞云:「大如車轂;澤神也。」
3 郭璞云:「岐頭。」
4 郭璞云:「委蛇。」
5 郭璞云:「齊桓公出田於大澤,見之,遂霸諸侯。亦見莊周,作朱冠。」珂案:莊子達生篇云:「桓公田於澤,管仲御,見鬼焉。公撫管仲之手曰:『仲父何見?』對曰:『臣無所見。』公反,誒詒為病,數日不出。齊有皇子告敖者,曰:『公則自傷,鬼惡能傷公?』桓公曰:『然則有鬼乎?』曰:『有。山有夔,野有彷徨,澤有委蛇。』公曰:『請問委蛇之狀何如?』皇子曰:『委蛇其大如轂,其長如轅,紫衣而朱冠,其為物也,惡聞雷車之聲,見則捧其首而立,見之者殆乎霸。』桓公辴然而笑曰:『此寡人之所見者也。』於是正衣冠與之坐,不終日而不知病之去也。」是郭注之所本也。聞一多伏羲考謂延維、委蛇,即漢畫象中交尾之伏羲、女媧,乃南方苗族之祖神,疑當是也。
有鸞鳥自歌,鳳鳥自舞。鳳鳥首文曰德,翼文曰順,膺文曰仁,背文曰義,見則天下和1。
1 郭璞云:「言和平也。」珂案:南次三經云;「丹穴之山,有鳥焉,其狀如雞,五采而文,名曰鳳皇。首文曰德,翼文曰義,背文曰禮,膺文曰仁,腹文曰信。是鳥也,飲食自然,自歌自舞,見則天下安寧。」與此略異。然此經作「翼文曰順,背文曰義」則是也,王念孫校引有多證,此不具。說文四云:「鳳出於東方君子之國,翱翔四海之外,過崑崙,飲砥柱,濯羽弱水,莫宿風穴,見則天下安寧。」風穴蓋丹穴之訛也。韓詩外傳卷八云:「黃帝即位,宇內和平,未見鳳凰,惟思其象。乃召天老而問之,天老對曰:『夫鳳象,鴻前麟後,蛇頸而魚尾,龍文而龜身,燕頷而雞喙,載德負仁,抱忠挾義,小音金,大音鼓,延頸奮翼,五彩備明。天下有道,得鳳象之一,則鳳過之;得鳳象之二,則鳳翔之;得鳳象之三,則鳳集之;得鳳象之四,則鳳春秋下之;得鳳象之五,則鳳沒身居之。』黃帝曰:『於戲,允哉,朕何敢與焉!』於是黃帝乃服黃衣,戴黃冕,致齋於宮,鳳乃蔽日而至,止帝東囿,集帝梧桐,食帝竹實,沒身不去。」鳳之靈異備於此矣。論語子罕云:「子曰:『鳳鳥不至,河不出圖,吾已矣夫!』」孔子猶興不至之歎,則其傳說之古可知已。
又有青獸如菟,名曰(上山下囷)狗1。有翠鳥2。有孔鳥3。
1 郭璞云:「音如朝菌之菌。」而郝懿行云:「(上山下囷)蓋古菌字,其上從,即古文艸字也。如芬薰之字,今皆從草,古從,作(上山下分)(上山下熏)字,是其例也。(上山下囷)狗者,周書王會篇載伊尹四方令云:『正南以菌鶴短狗為獻。』疑即此物也。」
2 珂案:周書王會篇云:「倉吾翡翠。」楚詞招魂「翡翠珠被」王逸注云:「雄曰翡,雌曰翠。」洪興祖補注引異物志云:「翠鳥形如燕。赤而雄曰翡,青而雌曰翠,翡大於翠。其羽可以飾幃帳。」
3 郭璞云:「孔雀也。」珂案:周書王會篇云:「方人以孔鳥。」爾雅翼卷十三云:「孔雀生南海,尾凡七年而後成,長六七尺,展開如車輪,金翠斐然。始春而生,至三四月後彫,與花萼同榮衰。」
南海之內有衡山1。有菌山2。有桂山3。有山名三天子之都4。
1 郭璞云:「南嶽。」郝懿行云:「郭注中次十一經衡山云:『今衡山在衡陽湘南縣,南嶽也,俗謂之岣嶁山。』宜移注於此。衡陽郡湘南見晉書地理志。」
2 郭璞云:「音芝菌之菌。」郝懿行云:「菌即芝菌之字,何須用音?知郭本經文不作菌,疑亦當為(上山下囷)字,見上文。」
3 郭璞云:「或云衡山有菌桂,桂員似竹,見本草。」珂案:文選蜀都賦劉逵注引神農本草經云:「菌桂出交趾,圓如竹,為眾藥通使。」
4 郭璞云:「一本三天子之鄣山。」郝懿行云:「注一本下當脫作字,或云字。三天子鄣山已見海內南經。藏經本經文直作三天子之鄣山,無郭注。」
南方蒼梧之丘,蒼梧之淵,其中有九嶷山1,舜之所葬,在長沙零陵界中2。
1 郭璞云:「音疑。」
2 郭璞云:「山今在零陵營道縣南,其山九谿皆相似,故云『九疑』;古者總名其地為蒼梧也。」郝懿行云:「蒼梧之山,帝舜葬于陽,已見海內南經。說文(九)云:『九嶷山,舜所葬,在零陵營道。』楚詞(離騷)史記(五帝本紀)並作九疑,初學記八卷及文選上林賦注引此經亦作九疑,琴賦注又作九嶷,蓋古字通也。羅含湘中記云:『衡山九疑皆有舜廟。』又云:『衡山遙望如陣雲,沿湘千里,九向九背,乃不復見。』」
珂案:舜亦古神話中之神性英雄,如羿禹然。其一生之功業,厥為馴服野象。然舜服野象神話之最古面目已湮昧難曉矣,可考者惟舜與其弟象鬥爭之神話,楚辭天問云:「舜服厥弟,終然為害,何肆犬豕而厥身不危敗?」是此一神話之大概也。其詳則見於楚辭天問洪興祖補注引古本列女傳,云:「瞽叟與象謀殺舜,使塗廩。舜告二女。二女曰:『時唯其戕女,時唯其焚汝,鵲如汝裳,衣鳥工往。』舜既治廩,戕旋階,瞽叟焚廩,舜往飛。復使浚井,舜告二女。二女曰:『時亦唯其戕汝,時其掩汝,汝去裳,衣龍工往。』舜往浚井,格其入出,從掩,舜潛出。」今本列女傳已經修改,無鳥工龍裳之事,唯云:「瞽叟又速舜飲酒,醉,將殺之。舜告二女,二女乃與舜藥浴汪,遂往,舜終日飲酒不醉。舜之女弟繫憐之,與二嫂諧。」舜之女弟繫,即世本「敤手作畫」之敤手,俗書連寫,誤合敤手二字為擊,再誤遂成為繫也(清王照圓說)。是象所以謀殺舜之三事:塗廩、浚井、飲酒,均得堯二女之謀而解免,二女亦神其術矣。中次十二經云:「洞庭之山,帝之二女居之。」最古之神話,二女蓋天女也,虞人之舜(虞舜)得天女之助而使凶悍狡譎之野象馴服。逮古說沈湮,始有舜服弟象之說。然何以知舜之弟象必野象乎?曰:從象之封地、葬所、神祠以見之也。史記五帝本紀正義引帝王世紀云:「舜弟象封於有鼻。」集解引王隱晉書云:「大泉陵縣北部東五里有鼻墟,象所封也。」此封地之以「鼻」為名者也。路史發揮五辯帝舜冢注云:「幽明錄云:始興有鼻天子冢、鼻天子城,昔人不明為何人,乃象冢也。」此葬地之以「鼻」為名者也。史記五帝本紀引括地志云:「鼻亭神在道縣北六十里。故老傳云:舜葬九疑,象來至此,後人立祠,名鼻亭神。」此神祠之以「鼻」為名者也。而鼻者,乃動物象之最特徵,民間傳說中既名象之封地、葬所、神祠以「鼻」,則此「鼻」者豈非最古神話中野生長鼻大耳象之鼻之殘留乎?劉賡稽瑞引墨子佚文云:「舜葬蒼梧之野,象為之耕。」舜服野象,益信而有徵矣。
北海之內,有蛇山者1,蛇水出焉,東入于海。有五采之鳥,飛蔽一鄉2,名曰翳鳥3。又有不距之山,巧倕葬其西4。
1 郝懿行云:「海內北經之首有蛇巫山,疑非此。」珂案:蛇巫山本應在海內西經,自非此北海內之蛇山也。
2 郭璞云:「漢宣帝元康元年,五色鳥以萬數,過蜀都,即此鳥也。」珂案:文選思玄賦注引經作飛蔽日。郭注蜀都,明藏本作屬縣,元康元年何焯校三年,蜀都校屬縣,云:「三輔諸縣也。」黃丕烈、周叔弢校同。太平御覽卷五十引此注蜀都正作屬縣,元年仍舊。
3 郭璞云:「鳳屬也;離騷曰:『駟玉芑而乘翳。』」郝懿行云:u廣雅云:『翳鳥,鸞鳥,鳳皇屬也。』今離騷翳作鷖,王逸注云:『鳳皇別名也。』史記司馬相如傳張揖注及文選(思玄賦)注、後漢書張衡傳注引此經並作鷖鳥,上林賦注仍引作翳鳥。」
4 郭璞云:「倕,堯巧工也;音瑞。」珂案:下文云:「帝俊生三身,三身生義均,義均始是為巧倕,是始作下民百巧。」則此巧倕即義均也。郭云「堯巧工」者,淮南子本經篇云:「周鼎著倕,使銜其指,以明大巧之不可為也。」高誘注云:「倕,堯之巧工也。」蓋本於此。然世本作篇(張澍集補注本)宋衷注則又或以為「黃帝工人」,或以為「神農之臣」,均莫知所據。實則據書舜典:「帝(舜)曰:『俞!咨垂(倕),女共工。』」倕乃舜臣,且即舜子商均也;見下文「帝俊生三身」節注。
北海之內,有反縛盜械1、帶戈常倍之佐,名曰相顧之尸2。
1 吳任臣云:「漢紀云:『當盜械者皆頌繫。』注云:『凡以罪著械皆得稱盜械。』」
2 郭璞云:「亦貳負臣危之類。」珂案:劉秀上山海經表亦稱貳負之臣「反縛盜械」,已見海內西經「危與貳負殺窫窳」節注。
伯夷父生西岳,西岳生先龍,先龍是始生氐羌,氐羌乞姓1。
1 郭璞云:「伯夷父顓頊師,今氐羌其苗裔也。」郝懿行云:「周書王會篇云:『氐羌鸞鳥。』孔晁注云:『氐地之羌,不同,故謂之氐羌。』郭云『伯夷父顓頊師』者,漢書古今人表云:『柏夷亮父顓頊師。』新序雜事五云:『顓頊學伯夷父。』是郭所本也。」
北海之內,有山,名曰幽都之山1,黑水出焉。其上有玄鳥、玄蛇2、玄豹3、玄虎4、玄狐蓬尾5。有大玄之山。有玄丘之民6。有大幽之國7。有赤脛之民8。
1 王念孫云:「類聚祥瑞下(卷九九)作武都,文選注七之二十九]子虛賦--珂)作幽都,爾雅釋獸郭注同,白帖十七作武都。」珂案:楚辭招魂云:「君無下此幽都些。」王逸注云:「幽都,地下后土所治也;地下幽冥,故稱幽都。」此幽都之山,有玄鳥、玄蛇、玄豹、玄虎、玄狐蓬尾,又有大玄之山、玄丘之民、大幽之國等,景象頗類招魂所寫幽都,疑即幽都神話之古傳也。招魂復寫幽都之門者土伯之狀云:u土伯九約,其角觺觺些;敦血拇,逐人駓駓些;參目虎首,其身若牛些。」王逸注:「土伯,后土之侯伯也。」此幽都之黯慘恐怖又倍於幽都之山也。
2 珂案:大荒南經云:「黑水之南,有玄蛇食麈。」
3 珂案:中次十一經云:「即谷之山,多玄豹。」
4 郭璞云:「黑虎名虪,見爾雅(釋獸)。」
5 郭璞云:「蓬,叢也;阻留反。說苑曰:『蓬狐文豹之皮。』」郝懿行云:「小雅何草不黃篇云:『有芄者狐。』言狐尾蓬蓬然大,依字當為蓬,詩假借作芃耳。郭云阻留反,於文上無所承,疑有闕脫。太平御覽九百九卷引此注作『蓬蓬其尾也』,無『阻留反』三字,非。牟廷相曰:『叢字可讀如菆。』則阻留當是叢字之音也。」
6 郭璞云:「言丘上人物盡黑也。」
7 郭璞云:「即幽民也,穴居無衣。」郝懿行云:「郭注疑本在經中,今脫去。」
8 郭璞云:「已下正赤色。」
有釘靈之國,其民從已下有毛,馬善走1。
1 郭璞云:「詩含神霧曰:『馬自鞭其,日行三百里。』」珂案:三國志魏志烏丸鮮卑東夷傳裴松之注引魏略云:「烏孫長老言,北丁令有馬脛國,其人音聲似鴈鶩,從膝以上身頭人也,膝已下生毛,馬脛馬蹄,不騎馬,而走疾馬。」即此釘靈之國也。
炎帝之孫伯陵1,伯陵同吳權之妻阿女緣婦2,緣婦孕三年3,是生鼓、延、殳4。始為侯5,鼓、延是始為鍾6,為樂風7。
1 珂案:國語周語云:「大姜之姪,伯陵之後,逢公之所憑神。」左傳昭公二十年云:「有逢伯陵因之。」即此伯陵。然韋昭杜預均注云u殷之諸侯」,則與此經所謂「炎帝之孫」不合,或正以見神話與歷史之殊途也。
2 郭璞云:「同猶通,言淫之也。吳權,人姓名。」
3 郭璞云:「孕,懷身也。」
4 郭璞云:「三子名也;殳音殊。」
5 珂案:經文始為侯上疑脫殳字。侯,射侯也。
6 郭璞云:「世本云:『毋句作罄,倕作鍾。』」郝懿行云:「初學記十六卷引此經與今本同。說文(九、十四)云:『古者毋句氏作磬,垂作鐘。』與郭引世本同。又初學記引世本毋作無,蓋古字通用。又引樂錄云:『無句,堯臣也。』」珂案:緣婦所生三子形貌未有所聞,唯路史後紀四云:「鼓兌頭而(鼻丘)。」獨記鼓貌,當非臆說,或有所本。
7 郭璞云:「作樂之曲制。」
黃帝生駱明,駱明生白馬,白馬是為鯀1。
1 郭璞云:「即禹父也。世本曰:『黃帝生昌意,昌意生顓頊,顓頊生鯀。』」郝懿行云:「郭引世本云:『昌意生顓頊,顓頊生鯀』,與大戴禮帝繫世次相合,而與前文『昌意生韓流,韓流生顓頊』之言卻復相背,郭氏蓋失檢也。大抵此經非出一人之手,其載古帝王世系,尤不足據,不必彊為之說。」珂案:郝說是也。且尤有進者,神話之世系尤不可以歷史之世系律之。即如此經「駱明生白馬,白馬是為鯀」之白馬,亦當是生物之白馬,而非人姓名也。此與大荒北經記「黃帝生……弄明,弄明生白犬,白犬有牝牡,是為犬戎」,疑亦當是同一神話之分化,彼經之「白犬」即當於此經之「白馬」也。犬馬既俱生物,則經所記者,自是神話,何可以歷史律之乎?以歷史釋神話,宜恆扞格而難通也。
帝俊生禺號,禺號生淫梁,淫梁生番禺1,是始為舟2。番禺生奚仲,奚仲生吉光,吉光是始以木為車3。
1 郝懿行云:「北堂書鈔一百三十七卷引此經淫作經。大荒東經言黃帝生禺(豸虎),即禺號也,禺號生禺京,即淫梁也,禺京、淫梁聲相近;然則此經帝俊又當為黃帝矣。」珂案:黃帝即「皇帝」(古籍多互見無別),初本「皇天上帝」之義,而帝俊亦殷人所祀上帝,故黃帝神話,亦得糅混於帝俊神話中,正不必以禺號同於禺(豸虎)便以帝俊即黃帝也。
2 郭璞云:「世本云:『共鼓貨狄作舟。』」
3 郭璞云:「世本云:『奚仲作車。』此言吉光,明其父子共創作意,是以互稱之。」珂案:說文十四云:「車,夏后時奚仲所造。」管子形勢解篇云:「奚仲之為車也,方圜曲直,皆中規矩鉤繩,故機旋相得,用之牢利,成器堅固。」元和郡縣圖志卷九云。「奚公山在(滕)縣東南六十六里,奚仲初造車於此。」滕縣屬今山東省。
少皞生般1,般是始為弓矢2。
1 郭璞云:「音班。」
2 郭璞云:「世本云:『牟夷作矢,揮作弓。』弓矢一器,作者兩人,於義有疑,此言般之作是。」郝懿行云:「說文(十)云:『古者夷牟初作矢。』郭引世本作牟夷,疑文有倒轉耳。宋衷云:『夷牟,黃帝臣也。』說文(十二)又云:『揮作弓。』與世本同。吳越春秋(勾踐陰謀外傳)云:『黃帝作弓。』荀子解蔽篇又云:『倕作弓,浮游作矢。』俱與此經異也。」珂案:墨子非儒下云:「古者羿作弓。」呂氏春秋勿躬篇亦云:「夷羿作弓。」蓋均傳聞不同而異辭也。
帝俊賜羿彤弓素矰1,以扶下國2,羿是始去恤下地之百艱3。
1 郭璞云:「彤弓,朱弓;矰,矢名,以白羽羽之。外傳(國語吳語--珂):『白羽之矰,望之如荼』也。」珂案:御覽卷八百五引隨巢子云:「幽厲之時,天賜玉玦於羿,遂以殘其身,以此為福而禍。」當亦帝俊賜羿彤弓素矰神話之異聞也。楚辭天問云:「馮珧利玦。」郝懿行以為亦是帝俊賜羿弓矢之事,其或然與?
2 郭璞云:「言令羿以射道除患,扶助下國。」珂案:楚辭天問云:「帝降夷羿,革孽夏民。」即其事也。
3 郭璞云:「言射殺鑿齒、封豕之屬也。有窮后羿慕羿射,故號此名也。」珂案:羿射鑿齒事已見海外南經「羿與鑿齒戰」節。羿蓋東夷民族之主神,故稱夷羿,與傳說中之夏代有窮后羿,確是兩人。羿「扶下國」,乃帝俊所命。「恤百艱」者,正如郭注所云,是「射殺鑿齒、封豕之屬」也。然其主要功業,乃在於上射十日。而十日者,帝俊之子也。羿射十日,得罪天帝,故天問紀其事云:「馮珧利決,封豨是射,何獻蒸肉之膏而后帝不若?」「不若」云者,天帝有憾於羿之射殺其子也。推想羿必因此降謫凡間,故其後乃有往求不死之藥於西王母,嫦娥竊以奔月之事。此羿自非代夏而有天下、任用寒浞、受其愚弄、「將歸自由、家眾殺而亨(烹)之」之有窮后羿。然羿與后羿故事,先秦典籍即已混殽不清。如羿射封豕,左傳昭公二十八年亦有后羿射「實有豕心」之伯封之記敘。而屈原離騷云:「羿淫遊以佚田兮、又好射夫封豬(豬原作狐,從聞一多楚辭校補改);固亂流其鮮終兮,浞又貪夫厥家。」天問於羿「射河伯」、「射封豨」二問之後,又云:「浞娶純狐,眩]玄)妻爰謀,何羿之射革而交吞揆之?」是均混羿之神話於后羿之傳說矣。高誘注淮南子(俶真篇、氾論篇)已屢辨之,今郭注亦同高說,知二者實殊不宜混同也。
帝俊生晏龍1,晏龍是為琴瑟2。
1 珂案:帝俊生晏龍,晏龍生司幽,已見大荒東經。
2 郭璞云:「世本云:『伏羲作琴,神農作瑟。』」郝懿行云:「說文(十二)云:『琴,神農所作;瑟,庖犧所作。』此注蓋傳寫之訛也。初學記十六卷引琴操曰:『伏犧作琴。』又引世本、說文、桓譚新論,並云:『神農作琴。』二說不同。據初學記所引說文,是與世本同之證。」珂案:北堂書鈔卷一百九引此經是下有始字。御覽卷五七七引此經是作始。王念孫校「為琴瑟」上有「務」字,「務為琴瑟」,則是以琴瑟為戲弄之具,非造作之意,似於義為長也。郭璞所見本或即如此,否則其所注釋便與正文牴牾。
帝俊有子八人,是始為歌舞1。
1 郝懿行云:「初學記十五卷、藝文類聚四十三卷、太平御覽五百七十二卷引此經並云:『帝俊八子,是始為歌。』無舞字。」珂案:路史後紀十一注引朝鮮記(吳任臣說即此經荒經已下五篇)云:「舜有子八人,始歌舞。」是逕以帝俊為舜也。
帝俊生三身1,三身生義均2,義均是始為巧倕,是始作下民百巧3。后稷是播百穀4。稷之孫曰叔均,始作牛耕5。大比赤陰6,是始為國7。禹鯀是始布土,均定九州8。
1 珂案:帝俊妻娥皇生三身之國,已見大荒南經。
2 珂案:此義均即大荒南經與舜同葬蒼梧之舜子叔均(商均),亦即大荒西經「稷之弟台璽生叔均」之叔均及此經下文稷之孫叔均:均傳聞不同而異辭也。說已見大荒南經「蒼梧之野」節注。
3 珂案:巧倕葬不距山西,已見上文。此云「義均是始為巧倕」,知義均即巧倕也。郭璞云:「倕,堯巧工也。」然呂氏春秋古樂篇云:u帝嚳命有倕作為鼙、鼓、鐘、磬、笭(原作吹苓,據許維遹呂氏春秋集釋改)、管、壎、箎、鞀、椎鍾。」則倕亦堯父帝嚳之臣也。其實倕乃舜子商均。路史後紀十一云:「女罃(英)生義鈞。義鈞封于商,是為商均。」是其證。以傳說演變無定,遂成歧出,實皆一也。世本(張澍集補注本)云:「倕作鐘。垂作規矩準繩。垂作銚。垂作耒耜。垂作耨。」墨子非儒下篇云:「巧垂作舟。」筍子解蔽篇云:「倕作弓。」則倕之創制亦多矣,此其所以稱「巧倕」也;經又謂其「始作下民百巧」,明其如羿、禹之具有神性也。神話之義均原為帝俊之裔,原有大功於民,歷史化而為舜子商均後,遂與堯子丹朱同稱「不肖」矣。神話人物與歷史人物其評價之顛倒常有如是者。淮南子本經篇云:「周鼎著倕,使銜其指,以明大巧之不可為也。」以與「作下民百巧」之頌美態度比,顯持貶斥態度矣。此則後世統治者愚民之謬論,未可以厚誣古之神話英雄也。
4 珂案:此承上文「倕作下民百巧」而言。「百巧」者,主要蓋指耒、耜、銚、耨等農具也。故云「后稷是播百穀,稷之孫曰叔均,始作牛耕」。義均、叔均,在此又為二人:均神話之歧變也。大荒西經云:u帝俊生后稷。」后稷,神話上為帝俊之子、歷史上復為帝嚳之子也。
5 郭璞云:「始用牛犁。」珂案:經文「叔均始作牛耕」,大荒西經作「叔均始作耕」,無「牛」字;御覽卷八二二引此經亦無「牛」字。
6 郭璞云:「或作音。」郝懿行云:「『大比赤陰』四字難曉,推尋文義,當是地名,大荒西經說叔均始作耕,又云有赤國妻氏,大比赤陰豈謂是與?」珂案:郝說大比赤陰即赤國妻氏,是也;然謂當是地名則非,疑均當是人名。「大比」或即「大妣」之壞文,赤陰,或即后稷之母姜原,以與姜原音近也。
7 郭璞云:「得封為國。」珂案:史記周本紀云:「封棄於邰。」邰、姜原所居國也。此「大比赤陰,是始為國」之意乎?
8 郭璞云:「布猶敷也。書曰:『禹敷土,定高山大川。』」珂案:郭引書禹貢文,今作「奠高山大川」。此亦承上文播百穀、作牛耕之意而言。
炎帝之妻,赤水之子聽訞生炎居,炎居生節並,節並生戲器1,戲器生祝融2,祝融降處于江水,生共工,共工生術器,術器首方顛3,是復土穰,以處江水4。共工生后土5,后土生噎鳴6,噎鳴生歲十有二7。
1 郝懿行云:「史記索隱補三皇本紀云:『神農納奔水氏之女曰聽詙為妃,生帝哀,哀生帝克,克生帝榆罔。』云云,證以此經赤水作奔水,聽訞作聽詙,及炎居已下文字俱異。司馬貞自注云:見帝王世紀及古史考。今案二書蓋亦本此經為說,其名字不同,或當別有依據,然古典逸亡,今無可考矣。訞與妖同;詙音拔。」
2 郭璞云:「祝融,高辛氏火正號。」珂案:大荒西經云:「顓頊生老童,老童生祝融」,祝融又為黃帝裔。然黃炎古本同族,故為炎帝裔者,又可以傳為黃帝裔也,說已見大荒西經「太子長琴」節注。
3 郭璞云:「頭頂平也。」郝懿行云:「顛字衍,藏經本無之。」珂案:路史後紀四云:「術囂(器)兌首方顛。」顛字似不衍。
4 郭璞云:「復祝融之所也。」郝懿行云:「穰當為壤,或古字通用;藏經本正作壤。」珂案:路史後紀四亦作壤。
5 珂案:國語魯語云:「共工氏之霸九有也,其子曰后土,能平九土。」即此經「共工生后土」神話之歷史化。有關共工神話,詳海外北經「共工臣相柳氏」節注。
6 珂案:孫星衍校增「音咽」二字於「后土生噎鳴」句下,未知所據。
7 郭璞云:「生十二子皆以歲名名之,故云然。」珂案:古神話當謂噎鳴生十二歲或噎鳴生一歲之十二月。大荒西經云:「黎(后土)下地是生噎,處於西極,以行日月星辰之行次。」即此噎鳴,蓋時間之神也。
洪水滔天1。鯀竊帝之息壤以堙洪水2,不待帝命3。帝令祝融殺鯀於羽郊4。鯀復生禹5。帝乃命禹卒布土以定九州6。
1 郭璞云:「滔,漫也。」
2 珂案:據上文「黃帝生駱明,駱明生白馬,白馬是為鯀」,則此帝自應是黃帝。滔天洪水正是身為上帝之黃帝降以懲罰下民者。舊約創世紀云:「耶和華見人在地上罪惡很大,就後悔造人在地上,(便)使洪水氾濫在地上,毀滅天下。」即斯之類也。
3 郭璞云:「息壤者言土自長息無限,故可以塞洪水也。開筮曰:y滔滔洪水,無所止極,伯鯀乃以息石息壤,以填洪水。』漢元帝時,臨淮徐縣地踊長五六里,高二丈,即息壤之類也。」
4 郭璞云:「羽山之郊。」珂案:南次二經有羽山,郭璞注云:「今東海祝其縣西南有羽山,即鯀所殛處,計其道里不相應,似非也。」是羽山古傳在東裔;然而神話傳說中地名,往往亦非可以實指也。
5 郭璞云:「開筮(歸藏啟筮--珂)曰:『鯀死三歲不腐,剖之以吳刀,化為黃龍』也。」珂案:初學記卷二十二引歸藏云:「大副之吳刀,是用出禹。」亦其事也。經文「鯀復生禹」即楚辭天問所謂「伯鯀腹禹」(原作「伯禹腹鯀」,從聞一多楚辭校補改)也;復即腹之借字。郭注黃龍,藏經本作黃能。
6 郭璞云:「鯀績用不成,故復命禹終其功。」
珂案:有關鯀禹治水之神話,楚辭天問言之綦詳,云:「不任汨鴻,師何以尚之?僉曰『何憂,何不課而行之?』鴟龜曳銜,鯀何聽焉?順欲成功,帝何刑焉?永遏在羽山,夫何三年不弛?伯鯀腹禹,夫何以變之?纂前就緒,遂成考功,何續初繼業,而厥謀不同?洪泉極深,何以窴之?地方九則,何以墳之?應龍何畫?河海何歷?鯀何所營?禹何所成?九州安錯?川谷何洿?東流不溢,孰知其故?東西南北,其修孰多?南北順橢,其衍幾何(內數字與今本不同,據聞一多楚辭校補及他家校釋改)?」雖已歷史與神話雜糅,然「鴟龜曳銜」、「應龍何畫」云云,猶可以補古神話闕佚,餘則大體同於此經所記。然則鯀之被殛,乃因盜竊天帝息壤平治洪水,非如歷史家所目之為「方命圯族」(書堯典)也。故屈原離騷云:「鯀婞直以亡(忘)身兮,終然夭乎羽之野。」九章惜誦云:「行婞直而不豫兮,鯀功用而不就。」均有歎惋憐惜之意:蓋鯀之功烈在古神話中猶未全泯也。鯀被殛羽山,死三歲不腐,其腹生禹,行跡乃又過於希臘神話取火者之普洛米修斯矣。惟鯀入羽淵所化,則諸書所記不一。歸藏啟筮云:「化為黃龍。」左傳昭公十七年云:「化為黃熊。」國語晉語八云:「化為黃能。」拾遺記卷二云:u化為玄魚。」龍、熊、玄魚均無疑問矣,惟「能」解釋各異。左傳釋文云:「熊一作能,三足鱉也。」史記夏本紀正義亦云:「鯀之羽山,化為黃熊,入於羽淵。熊,音乃來反,下三點為三足也。束皙發蒙記云:『鱉三足曰熊。』」由是言之,熊者熊字之訛,熊即能也。然說文十云:「能,熊屬,足似鹿。」韋昭注國語亦云:「能似熊。」任昉述異記亦云:「陸居曰熊,水居曰能。」則此熊屬之獸,又可以居水也。三足鱉或係誣辭,水居之能說亦牽強,熊不可以入淵,玄魚則古「鯀」字之析離,更不足據,要以古說黃龍為近正也。鯀原為天上白馬,周禮夏官庾人:「馬八尺曰龍。」則天馬化龍,亦想象之自然,無足異也。至于鯀與天帝作鬥爭,則有呂氏春秋行論篇記其異聞,云:「堯以天下讓舜,鯀為諸侯。怒於堯曰:『得天之道者為帝,得地之道者為三公。今我得地之道,而不以我為三公。』以堯為失論。欲得三公,怒甚猛獸,欲以為亂。比獸之角,能以為城,舉其尾,能以為旌。召之不來,仿佯於野以患帝。舜於是殛之於羽山,副之以吳刀。」固已相當歷史化,然仍可以窺見其神話之本來面目也。此「怒甚猛獸」、「比獸之角,能以為城,舉其尾,能以為旌」、「仿佯於野以患帝」之鯀,其鬥志亦堅、神力亦偉矣!「鯀復(腹)生禹」後,為天帝者,乃不得不「卒命禹布土以定九州」,鯀雖被殛潛淵,此一鬥爭則終獲勝利,雖天帝之嚴威亦不得不暫為斂息,其為民望之所屬固可見也。楚辭天問「應龍何畫」王逸注云:「禹治洪水時,有神龍,以尾畫地,導水所注,當決者因而治之也。」應龍,吾人已知乃黃帝神龍,曾以「殺蚩尤與夸父」(大荒東經)立大功者,今乃助禹治水,則亦當為黃帝之任命也。拾遺記卷二云:「禹盡力溝洫,導川夷岳,黃龍曳尾於前,玄龜負青泥於後。」「黃龍曳尾」,自即是「應龍畫地」也,「玄龜負青泥」者,青泥當即是息壤,即「帝卒命禹布土」之「土」也。淮南子墬形篇逕云:「禹乃以息土填洪水,以為名山。」知禹治洪水初亦專用湮塞之一法,與其父同,非若歷史記敘禹用疏而鯀用湮也。逮後文明日進,反映於神話中治水之禹乃始湮疏並用,故天問於「洪泉極深,何以窴之」問語之後,乃復有u應龍何畫?河海何歷」問語,「窴之」者湮也;「何畫」者疏也:是天問之禹已湮疏並用矣。拾遺記「黃龍曳尾」、「玄龜負青泥」仍湮疏並用也。而海內經所記「帝卒命禹布土定九州」,乃專主於湮,是海內經之神話,較天問更原始,猶存古神話本貌,洵可珍也。關於禹治洪水神話,說最紛繁,然後起者多,概從略不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