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3:1-10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
[충청도 화법 사투리]
급하게 이동해야 해서 충청도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님이 길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방향을 이리저리 속사포처럼 설명하니까 점잖은 기사님이 보시며,
"저기~ 아가씨! 기냥 핸들 드릴까유?”
충청도 과속방지 현수막입니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복날 40분을 기다려서 먹은 삼계탕인데 닭이 설익었습니다.
함께 있던 충청도 출신 부장님은 "솜씨 좋은 의사는 이 닭 살리것어~”
오래된 미장원에 보일라 물이 뜨거운 물, 찬물이 제멋대로 번갈아 가며
쏟아졌습니다. 머리를 감으려 누웠는데 엄청 뜨거운 물이 나오자 "닭 튀겨?”
식당에서 옆 테이블 음식을 잘못 가져왔을 때 다 알면서도,
"이건 서비스유?" ("잘 못 가져 왔어요.")
계산하고 영수증 드리냐는 물음에, (No라고 하는 대신,) "무거워서 됐슈!”
사진을 잘 찍으려고 한참을 준비하고 있는데, ("빨리 찍어요.")
"이러다 영정사진 되겠슈."
차를 빠르게 운전하면 “목적지가 천국이여~”
배가 고파 중국집에 음식 시키면 “짜장 1, 짬뽕 1요. 3일 굶었슈!”
[엄청 빠른 충청도 사투리]
춤 함께 추시겠습니까? 출텨?
돌아가셨습니다. 갔슈!
괜찮습니다. 됐슈!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봐유!
이 콩깍지가 깐콩깍지인가, 안깐 깐콩깍지인가? 깐겨 안 깐겨!
보신탕 드실 줄 아셔요? 개혀?
예수님의 첫 기적은 혼인 잔칫집에서 물이 포도주 되는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 부활 승천 후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고 성령 강림 후 첫 기적은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게 된 기적입니다. 조금 전에 우리가 읽었던 말씀입니다. 따라가 보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 기도시간에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찾았습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태어나면서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앉은뱅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메고 와서 미문에 두면 구걸해서 먹고 사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기 위해 찾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자 구걸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행 3:6)
어떻게 되었을까요?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행 3:8)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행 4:10)
이 말씀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산이 하나 있는데 이 산에 올라가는 길은 다르지만 각각 다른 길로 모두 올라가면 정상에서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하나라고 합니다. 이게 세상이 말한 종교 다원주의입니다.
수행하든, 착하게 살든, 어떤 종교가 되었든, 어떤 신이 되었든 산에 오르다 보면 구원이라는 정상에 만나고 거기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강조하고 평화, 화합을 강조하며 여기에 뜻을 같이하지 않으면 비판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왜 기독교는, 교회는,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너희만 구원이 있다 하느냐 합니다. 여러분, 왜 그럴까요?
첫째, 나면서 걸을 수 없는 앉은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나면서 걸을 수 없는 앉은뱅이처럼 인간은 걸을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산에 오를 수가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①허물과 죄로 죽은 자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태로 하나님을, 구원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더듬어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죽었으니, 죽은 상태이니 무엇을 하겠습니까?
②이 세상 풍속과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른 상태였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2)
한마디로 마귀의 종으로 마귀를 주인으로 따랐습니다. 마귀의 지배 아래서 죄만 짓고 살았습니다.
③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3)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마귀와 함께 지옥 불에 들어가는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산에 오르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나의 노력이나 행위로 도달하고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둘째, 산 아래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앉은뱅이인 나를 위해, 죄와 허물로 죽은 나를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산 밑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에수님이 이 땅에, 세상에, 산 밑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구원은 내가 노력해서 도달하고 이르는 것이 아니라 얻은 것입니다. 선물로 주시니 받은 것입니다. 말씀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엡 2:4~5)
산 아래에서 죄와 허물로 죽은 나를, 앉은뱅이로 스스로 걸을 수 없는 나를 하나님께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겨 찾아오셔서 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하셨나요
요한복음 5장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이라는 곳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질병에 시달리며 보낸 시간이 38년입니다. 그 당시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희망 섞인 전설을 듣게 됩니다. 베데스다 연못이라는 곳이 있는데 천사가 연못의 물을 동하면 제일 먼저 들어가는 환자는 어떤 질병이든지 치료를 받게 된다는 전설입니다. 의학으로는 안되니 이 38년 된 환자도 베데스다 연못을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38년 된 병자이니 몸이 말이 아니겠지요. 자기보다 다른 환자들이 그 연못에 먼저 들어가 버려 지금껏 기다리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그러고 있는 그곳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찾아오신 주님은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6)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38년 전에는 그에게 절망이 찾아왔지만 38년 만에 희망도 찾아왔습니다. 그 희망은 다름 아닌 찾아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앉은뱅이인 나를,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마귀의 종으로 심판받아 마땅한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이십니다. 38년 된 환자가 있는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오시듯 내가 산 아래 있으니, 이 세상에 있으니 나 있는 곳으로 하늘 영광 버리시고 찾아오시고 내려오신 것입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구원을 얻게 하려고 오셨고 나의 죄와 허물을 위해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 복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에 주신 유일한 구원의 한길인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 진리, 이 복음을 버리고 자기 노력으로, 자기 선행으로, 다른 이름과 종교로도 구원받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진리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나면서 걷을 수 없는 사람 고침받고 달라졌습니다.
은혜받기 전에는,
①앉은뱅이로 구걸하는 인생이었습니다.
②성전 미문에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③사람 의지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은혜받은 후에는,
①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행 3:8)
성전 밖에서 구걸만 하던 인생이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은혜가 참 귀합니다. 목포에 460개의 교회가 있어도 교회 안으로 못 들어갔습니다. 들어오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하고 못 들어오고 끝나기도 합니다.
②하나님을 찬미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예배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니"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③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행 4:10)
앉은뱅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니 본인도 놀라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도 놀랐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기이한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좋은 일과 잘됨과 형통을 경험하고 좋은 일과 잘됨과 형통, 기적이 잘 어울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받은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이 달라지듯 찾아오셔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나도 바뀌게 됩니다.
첫째, 죽은 자가 성령의 의해 중생합니다. 살아납니다.
둘째, 죄 용서를 받습니다.
셋째, 마귀의 종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넷째, 영생을 얻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31)
다섯째, 예수님 밖 인생에서 예수님 안 인생이 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고 물 안에서 있어야 살 듯 이제 우리도 예수님 안에 있어 구원받은 성도, 교회 안 성도, 예배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새가족 여러분, 나를 구원하기 위해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믿고 영생 얻어 새롭고 변화된 성도의 삶을 사시길 축원합니다.
저를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옵소서!
저를 위해 죽으시고, 저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 들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생명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