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소서
박은경
굽어진 허리에 기울어진 몸뚱이
숭숭 뚫여 대나무 울음이 난다
앉았다 일어서는 농사일이 평생 직업
오늘도 실하게 달린 고추를 보며
함박웃음이 절로 나온다
간밤에도 잠 한숨 못자고
뒤척이며 날 새기를 기다린 아침
왜 이리 시침은 더디 가는지
날 밝으면 만사 제쳐놓고 병원 가리라 굳게 결심한다
무릎 등짝 손목에 파스가 붙들고 있고
아낙네들 사이에서는 효과가 즉방인
강력한 담방약 소개에 정신 바짝 차려 듣는다
윗마을 김씨 할머니 병원에서
무릎연골주사 맞고 왔더니
밤새 쑤시던 무릎이 아프지 않다고 연신
일어났다 앉았다 한다
다섯 번은 맞아야 한다고 돈 걱정 하면서
저녁답 노을빛을 바라보며 내쉬는 한숨
늙어가는 설움 누가 알아줄까
뼈마디에 달라붙은 시간의 병을
짧은 밀회
박은경
길을 걷는다
길인 듯 아닌 듯
오솔길을
혼자 걷는다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살랑살랑
솔잎을 밀며 올라오는 송이버섯 향기
하늘의 선물 같아 뒤꿈치 들고 걷는다
하늘과 바람 구름을 펼친 호젓한 길
치유의 웃음 가득 담고 걷다가
감사함만 떼어놓고 미소 지으며
호랑지빠귀 소리에 응답하며 성큼성큼 내려온다
짧은 밀회에
사랑을 확인한다
허벅지 점 봤소
박은경
보지 않는 눈이 더 밝다
네온사인 아스팔트 온기에 불붙이고
회식에 소주 한잔 걸친 금요일
집에 가기에는 뭔가 손해인 듯한 기분
몇 명이 입가심이라도 하자며 생맥줏집에 앉아
행사장에서 눈에 확 띄인 여자를 안주 삼는다
여자가 너무 쎄게 보여 매력이 없다고
살아보지도 자주 만나지도 않은 사이건만
허벅지 점까지 알고 있는 듯
비릿한 웃음기를 띠며 목소리까지 바리톤이다
코너에서 냉커피 마시며 이야기 듣던 한 사내가
뜬금없이 정색하며 ‘해봤어’한다
일시 적막만 흐르고 각자 머리를 굴린다
냉커피보다 차가운 얼음장 질문에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뿐
틀어놓은 음악 저 혼자 떠돌아다닌다
겪지 않고 세상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