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14:2 본질을 봅시다
(유머는 유머일 뿐입니다. 심각하게 들으면 안 됩니다. 한번 웃고 끝나야 합니다.)
옛날에는 남자가 가정 정권을 잡았을 때는 밥하면 밥상이 눈앞에 차려지고 물 그러면 물이 눈앞에 생겼습니다. 창세기 1장이 가정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지금은 가정 정권이 여자로 바뀌었습니다. 아직 안 바뀐 집도 있습니다.
여자가 정권을 잡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잔소리와 심부름’입니다. 견뎌내야 합니다. 교육이라 생각하고 운동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여자가 가정에 정권을 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①남자보다 7~8년 오래 삽니다.
②남자보다 잘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여자는 공감을 잘합니다.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남자는 판단합니다. “나도 다 알고 있다.” 합니다. 때론 웃겨서 웃음이 나와도 꾹 참습니다. 그러니 오래 살겠습니까? 모르는 소리를 하면 “별것을 다 말하네” 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다릅니다. 여자는 아는 이야기를 하면 ‘맞아 맞아’ 공감하면서 웃습니다. 모르는 소리를 하면 “아 그렇구나.” 학습합니다. 누가 더 오래 살겠습니까? 정권 누가 잡겠습니까?
어떤 중년 남자가 상담했습니다.
보통은 화가 나면 그냥 놔두면 괜찮아지는데 우리 아내는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입니다. 그러자 “혹시 그냥 두지 않고 건드리지 않나요?”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존재 자체가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존재 자체가 미울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안 보여야 합니다. 집을 나갔다가 한참 후에 들어가세요. 그러면 좋아져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기분이 나쁠 때, 화를 낼 때 몸 안에서 노르-아드레날린이란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이 호르몬은 자연계의 뱀의 독 다음으로 강한 독성입니다. 화를 계속 내면 노르-아드레날린 호르몬이 과잉, 지속적으로 분비되어 혈압이 오르고 혈액의 흐름에 장애가 일어나 뇌에 있는 굵은 혈관이 막히게 됩니다. 그러면 뇌경색이 일어나고, 가는 혈관이 막히면 기억상실이나 치매에 걸리게 됩니다. 반면에 기쁜 마음일 때는 베타-엔돌핀이란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이 호르몬은 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북돋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나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잠 17:22)
마음의 분노, 근심, 슬픔은 신경조직을 나쁘게 만들고 위장 세포를 약하게 하여 소화 기능이 약해집니다. 뼈까지 마르게 합니다. 나를 망가뜨립니다. 반면 기쁨과 웃음과 기도는 면역력이 높아지고 자연치유력을 높여 줍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이 말씀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시기 위해, 짐이 되게 항상, 쉬지 말고, 범사라는 단어를 쓰셨을까요? 우리의 건강, 우리의 행복을 위함입니다. 혹자가 말하기를 성공을 위해 “뜨거운 열정보다 지속적인 열정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이 오래가기 위해서는 항상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그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
신앙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교회를 다니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예배드리는 것, 직분을 받아 주님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어 내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교회 나오고 예배하고 헌금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믿을 수 있으니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는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의 본질은 예수님을 믿어 죄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신앙은 시작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심에 감사하고 그 사랑과 그 은혜 고마워서 천국 갈 때까지 평생 보답하며 사는 삶이 참 신앙입니다. 그런데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보다 더 중요시하고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 완벽을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낮아져 왜 오셨습니까?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왜 부활하셨습니까? 죄인 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4-17)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전해서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는, 구원받게 하는 방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이를 위해 성령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질을 알고 싶으면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전도는 왜 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성경에서 답을 찾으면 그게 본질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구원받기 위해서. 교회가 왜 존재합니까? 복음을 전해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전도를 왜 합니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든지 질문을 해서 뿌리를 찾으세요. 본질을 알아야 깊이가 있고 바르게 오래갈 수 있습니다.
고난의 본질
고난의 본질을 아십니까? 모르면 더 힘듭니다. 방황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의심도 들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고난을 주실까요? 고난을 본질을 알아보겠습니다.
➀모세는 고난의 본질을 알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때로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길이 험하여 고생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우리로 왜 이런 거칠고 힘든 광야를 통과하게 하십니까?” 하며 보이는 현상만 보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본질을 모르니 원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달랐습니다. 그는 고난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 8:15, 16)
광야에서 고난을 통해 높은 마음을 낮추고, 내 힘과 능과 머리로 산다는 생각 다 내려놓게 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와 복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쳐 알게 하시기 위해, 그릇 만들어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복이 목적입니다. 현상은 광야이고 고난이지만 본질은 축복입니다.
➁사도바울도 고난의 본질을 잘 알았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후 1:8~9)
힘에 겨운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도 없었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아 여기가 끝이구나! 느낄 만큼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밑바닥에서 깨닫고 배운 것이 있습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이런 환난에서, 사망의 구덩이에서 건지고 살려주시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심이 목적이고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위로
➂야고보도 고난의 본질을 알았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해 인내의 힘이 길러지고 인내하다 보면 부족함이 없는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어집니다. 광야는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켜 인내의 열매를 맺게 해 주는 곳입니다. 이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참 마음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를 괴롭히고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고소하여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로 준비된 사람, 성숙에 이르게 하려고, 맡기고자 하는 일에 그릇 준비를 위해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고난의 본질을 알면 하나님의 선한 마음과 뜻이 보입니다.
성공의 본질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거친 광야를 통과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성공의 자리에 설 때 우리는 성공의 본질을 읽어야 합니다. 고난의 본질이 있듯 성공의 본질도 있습니다. 먼저 깨달은 자들의 고백입니다.
➀요셉이 깨달은 성공의 본질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성공자 요셉은 자기를 노예로 팔아넘긴 형님들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형님들 때문에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노예로, 죄수로 고생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님들을 통해 애굽으로 자기를 먼저 보내어 흉년 가운데 있는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큰 그림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본질을 아니까 복수가 아닌 섬김으로 살아냈습니다.
➁다윗이 깨달은 성공의 본질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의 나라가 높이 들림을 받았음을 앎이었더라” (대상 14:2)
요셉은 자기를 국무총리로, 다윗은 자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유를, 본질을 알았습니다. 성공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많은 백성 구원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본질을 깨달아야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성공의 본질을 읽어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➀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는 단순히 돈을 벌려고 창업한 것이 아니라, 온 세계의 사람과 기업의 잠재력을 돕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➁구글의 레리페이지는 세상의 정보를 모두에게 유익하게끔 만들기 위해서이고,
➂페이스북의 마크주커버그는 세상을 지금보다 좀 더 열린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창업했다고 합니다.
➃애플의 스티브잡스 또한 창업할 당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세상을 변화시킬 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➄세종대왕께서도 백성 모두를 이롭게 하기 위함에 뜻을 두고 출발하여 위대한 한글이 탄생하였습니다. 자기를 뛰어넘어 타인을 위할 때, 거기에 사업, 창업의 의미와 가치를 둘 때 성공과 행복이 따르게 된 것입니다.
➅카카오톡 김범수 회장 많은 사람의 소통을 위해 카카오톡을 창업했습니다. 남을 성공시켜야 나도 성공하는 법입니다. 사업의 본질을 분명하게 아시고 큰 사업가, 거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이든지 본질을 보시고 본질을 목표로 최선의 삶을 살아내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