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나와의 새로운 만남
윤 소 천
일흔에 이르러 깨달았다. 나를 성숙하게 하는 것은,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지나온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 고전에서 얻은 지혜였다.
인류가 낙원樂園을 잃어버린 실낙원失樂園의 존재라면, 인류의 화두는 혼돈을 넘어, 나를 찾는 낙원으로의 회귀回歸일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힘든 세상에 보내는 편지>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은 ‘삶을 견디는 기쁨’이라 했다. 이것은 나에게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연꽃이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듯, 세상을 견디어 내는 기쁨’으로 나의 존재의 인식이다.
공자孔子는 열다섯을 배움에 뜻을 둔 지학志學, 삼십을 뜻을 세운 이립而立, 사십을 흔들리지 않은 不惑불혹, 오십을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 지천명知天命, 육십을 듣는 귀가 순해지는 이순耳順, 칠십을 자유를 얻는다는 종심從心이라 했다. 성인의 높은 기준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자의 사례에 비추어, 나를 찾는 여정의 길 위에서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그런데 백세 시대라는 이 시대에는 일에서 벗어나는 육십 오 세를 나를 돌아보고 나의 실존을 확인하는 지천명, 칠십 오 세를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이순, 팔십 오세나 구십이 세상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종심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인류 문명의 대변혁기로 몇 년 후면 인간의 천연지능을 뛰어넘어 상상하기 힘든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到來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제아무리 발전해도 해가 서쪽에 떠서 동쪽으로 지는 일은 없을 것이고, 지구는 우주의 궤도를 따라 변함없이 자전하고 공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의 질서 그대로 계절이 바뀌면서 해가 가면 봄이 오고, 우리 삶도 여전히 뿌린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원칙대로 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세상은 깨어 열린 눈으로 맞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혜 있는 자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혼돈 속에 저주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우리가 사물을 대하고 책을 읽으며 수필을 쓰는 일이, 혼돈에서 깨어난 나와의 새로운 만남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 늘 새로워져서 좋은 글을 쓸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