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시대를 맞이하며
김영애
첫 해외여행으로 간 뉴질랜드에서 가이드가 해주는 긴 말을 듣고 참인가 싶을 정도로 놀랐었다. 그 때 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잘 듣지 못하던 낱말, 바로 ‘복지’ 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임신 수당, 출산 수당, 육아 수당이 있고, 출산한 가정에는 간호사가 방문하여 신생아를 돌봐주며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라고 했다. 육아와 교육비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니 희한한 세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또 일정연령이상의 노인들에게 수당이 나온다고 했는데 반드시 운동에 참가하는 조건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우리로 치자면 노령연금이었나 보다. 실제로 우리는 관광버스 차창 너머로 푸른 잔디밭에서 흰 운동복을 깔끔하게 입은 남녀노인들이 배드민턴을 치는 인상적인 장면을 자주 보았다. 그들의 성품이 매우 온화하며 신사적이고 양심적이라는 말을 하면서 그 예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실직을 한 사람이 다시 취직을 할 때까지 세 차례에 걸쳐서 구직수당을 받는데 새로 구한 직장의 급료가 구직수당보다 액수가 적더라도 그들은 취직을 하고 구직수당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이드는 우리 같으면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웃음으로 덧붙였다. 몇몇 교포들이 실업을 하면 자기 이름의 영자(英字) 표기를 여러 가지로 하여 마치 두 사람인양 신고를 해서 2인분의 실업급여를 챙기다가 발각되어 곤욕을 치른 사람이 있었다고도 했다. 국가가 장래를 책임지니 그들은 자식과 자신의 노후를 위해 우리처럼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고했다. 5일간 벌어서 주말에 아낌없이 쓰고, 봄에 벌어서 여름바캉스를 즐기며, 일 년을 벌어서 해외여행에 미련 없이 털어 쓰는 이유가 복지정책이 잘 되어있기 때문이라니 당시의 우리에게는 먼 산위의 구름 같은 이야기 였다.
우리나라도 몇 해 전 부터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지하철 무임승차, 9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장수수당 및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고 실업자에게 구직활동비로 실업급여를 주기에 이르렀다. 특정지역에서는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으며 영유아 교육비를 지급해주기도 한다. 복지시대가 열린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서 많이 늦었지만 어쨌든 구름같이 요원했던 복지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기초연금이 7월부터 지급된다고 한다. 당초의 공약이 수정되어 전체 대상자의 70% 정도가 수혜자이며, 받던 노인 중 3만 명의 노인들이 제외 된다는 T. V 자막이 떴다. 언뜻 보기에 3만 명이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 문구이다. 그러나 문제의 3만 명은 시세 14억 이상의 자녀 집에서 살거나 고액회원권이 있거나 고가의 승용차를 소유한 이른바 ‘부자노인’이라고 한다. 부자이기 때문에 제외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애초에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주겠다고 공약한 사안이라, 제외되는 부류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공약 파기, 대국민 사기라는 말도 있었고 노인을 우롱했다는 불평과 불만이 들끓기도 했다. 과다한 복지정책으로 국가파산의 위기에 당면한 국가도 있는데 우리처럼 외채가 많은 나라에서 가능한 일인지 처음부터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시행에 앞서 일부를 제외하는 공약 수정을 개인적으로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부자 노인을 포함한 모든 노인들은 지금까지 맨손으로 궁핍한 시절을 건넜고 온갖 희생을 해 복지국가의 초석이 되신 분들이라 노년에 보상받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곳간이 가득 차지 않은 우리의 현실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곳간이 비면 다시 채워야 할 사람도 식구들이고, 못 채운다면 고통과 불편을 감수해야 할 사람도 결국은 우리의 후손이란 걸 생각하면 가득 차지 못한 독을 두고 퍼내어서 나누자고 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우리같이 기부문화가 없는 나라에서는 세금 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그 또한 후손들이 충당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 뉴질랜드의 한 실업자, 새 일자리의 보수가 구직급여보다 적더라도 국고를 축내지 않기 위해 취업을 한다는 그 신사적인 국민성이 생각난다.
기초연금이란 복지급여로서 좋은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국가의 재정이 견고하다는 조건이 붙어야한다. 세상에 거저 되는 건 없다. 뉴질랜드의 복지를 부러워했지만, 그들이 복지를 누리기 위해 내놓는 세금이 급여의 반에 육박한다는 안 보이는 사실도 있었던 것이다.
이왕 시작된 기초연금제도가 성공적으로 발전, 지속하기를 바라며 기초연금수급에서 제외된 모든 분들은 궁핍하지 않는 자신들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이면 좋겠고, 관계기관은 실질적으로 지급받아야 할 사람이 억울하게 제외되는 경우가 없도록 잘 보살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