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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불교는 사람의 마음이 부처라고 가리키기 때문에
▶ 배우기가 쉽습니다.
▶ 옛날에는 글자를 몰라도 참선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가 마음이 부처임은 글자를 몰라도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 실제로 선불교의 비조 육조스님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 그러나 마음이 부처라는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 스승이 한 마디 해주면 바로 알아들었어요. 그리고는 바로 부처의 행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니까 불교는 참 쉬운 것입니다.
▶ 참 이상한 것이 있어요. 여기 법당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제가 마음이 부처라고 하면 다 알아듣습니다.
▶ 그것이 불교구나....하고 별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자기가 부처이나 행을 못하고 있을 뿐 자기가 부처라는 것은 확실히 압니다.
▶ 그런데 가끔 절에 좀 다닌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불교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 하여서 제가 마음이 부처입니다. 불교는 쉬운 것이니까 바로 실천하시면 됩니다 하면
▶ 어휴~ 제가 어찌 부처입니까? 어느 스님은 수십년을 닦아도 부처가 되지 못하셨다고 하던데 절에 몇년 다닌 제가 어떻게 부처입니까? 하고
▶ 그렇게 되려면 멀었습니다.....해요.
▶ 그래서 제가 본래 마음이 부처인 줄 알면 바로 부처인데, 닦아야 부처인줄 알았기 때문에 그 스님은 부처가 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 하면, 저를 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저희들이 세속에 살면서 찌들대로 찌들었는데 그렇게 부처인줄 깨닫는 것이 쉽습니까? 하고 반문해요.
▶ 그래서 또 뭐라고 가르쳐주면 또 다른 대답을 하고.....또 뭐라고 가르쳐주면 또 다른 이유를 대고 해서 도대체 마음이 부처라는 것을 알려주기가 어려워요.
▶ 그래서 오늘은 안되겠습니다. 하옇튼 마음이 부처인 줄만 알고 가세요....하고 보내지만 그 사람은 그렇게 알고 가면 대문을 나서자 마자 바로 잊어버릴 것은 뻔해요.
▶ 바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 것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 여기 오신 법우님들은 그러지 마세요. 제가 말하는 것도 아니고 역대 선사들이 다 말한 것인데 마음이 부처임을 아는데 왜 그렇게 힘듭니까?
▶ 그냥 순진하게 받아들이세요. 그래야 쉬워집니다. 마음이 부처임을 절대 있지 말아요. 그래야 당당해지고....평등해지고.....부처의 행동이 나옵니다.
▶ 내가 부처인데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근심합니까?
▶ 언제 어디서나 항상 당당하고 고요해야 합니다. 괜히 쓸데 없는 형식에 기죽어서
▶ 누가 어디 큰 스님에게 가면 말도 못하고 떨다가 오면 안됩니다.
▶ 큰 스님 친견시에 절 삼배하고 고요히 앉아서 무엇이 부처입니까?라든가 혹은 자기가 궁금했던 것이 있으면 그것을 물어야 합니다.
▶ 큰 스님을 친견하러 가는 것은 배우러 가는 것이지 얼굴 보러 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 그러니까 꼭 물어 볼 것이 있어야 친견하려고 해야 하고....
▶ 그러니까 물음이 있으면 당당히 물어야 됩니다. 나보다 먼저 마음이 부처임을 아셨으니 큰 스님은 어떻게 가르침을 주시나 들으려고 물어야 해요.
▶ 그리고 혹시 나에게 무엇이 부처인고? 하고 반문을 하거들랑 부처임을 당당히 보여야 ........
▶ 제가 부처입니다! 하던지.....아니면 절을 3배하면 됩니다.
▶ 절을 3배하는 것은 당신이 부처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 .....누가 그렇게 말하데요....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라는 등의 불확실한 말은 안되요.
▶ "....입니다." 라는 확실한 어조가 필요합니다.
▶ 부처가 어떻게 하고 있던가 하고 물으면
▶ 모두 바빠서 여가가 없습니다 하고....
▶ 부처가 어찌 바쁘단 말인가? 하면
▶ 큰 스님께서 어찌 말을 못알아 들으십니까? 해야 합니다.
▶ 이렇게 자기가 부처임을 당당히 보여야 마음이 부처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 그런데도 너희는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범·성을 집착하고 마음을 밖으로 내달려서 도리어 마음을 스스로 미혹시키고 있다.
▶ 범(凡)=평범한 사람
▶ 성(聖)=성인
▶ 보통 사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부처가 자꾸 다른 데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되요.
▶ 신비로운 것...무슨 무슨 경지....등등을 찾으면 죽을 때까지도 부처를 모르고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 이걸 모르고 동정일여, 오매일여, 숙면일여라는 말만 얻어듣고 이렇게 되어야 견성이고
▶ 이렇게 확철대오하여야 부처아닙니까? 하고 똥을 지고 와서 나에게 따지듯이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 이런 사람들은 여기 전심법요부터 공부해야 합니다.
▶ 숙면일여를 얻어도 부처이고 못얻어도 부처입니다.
▶ 마음은 항상 똑 같아요. 어떤 사람이 화살을 잘 쏘는 사람이 있어요.
▶ 수년을 연습해서 화살의 달인이 되었어요. 쏠데 마다 적중입니다.
▶ 그러면 사람들은 그를 궁사라고 해요.
▶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방면에 좀 뛰어난 것이지 그 사람이 사람이 아니고 무슨 신이 된 것은 아니잖아요.
▶ 그렇다고 세상을 남보다 더 잘 산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 그런 기술이 없어도 사람의 가치가 있고, 더 잘 사는 사람 많아요.
▶ 마찬가지로 숙면일여를 얻어도 이 마음이고.... 사람이고, 못얻어도 이 마음이고....사람입니다.
▶ 사람은 다 똑 같듯이 이 법은 마음이 있으면 다 부처입니다.
▶ 왜냐하면 마음이 곧 행복과 불행을 만드는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 숙면일여(熟眠一如)=잠이 깊이 들었을 때도 화두가 들리는 경지
▶ 정통 선불교는 자기가 곧 부처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고 부처의 길을 가는 것을 수련합니다.
▶ 그러니까 이 불교는 좀 쉬워요. 누구든지 할 수 있고.......
▶ 만약 이 마음을 놔두고 따로 부처를 찾으면 그 찾는 마음이 있어서 오히려 미혹됩니다. 그리하여 절대로 부처를 발견하지 못해요.
▶ 그러므로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하였으니,
▶ 한 생각 뜻이 생기면 그 즉시 6도의 다른 곳에 떨어지게 된다.
▶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여기서 더이상 의심하지 말고 바로 그런 줄 알아야지 한생각이라도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 뜻=생각
▶ 6도에 윤회하는 과보를 받습니다.
▶ 육도=중생이 윤회하는 여섯 세계, 천상, 인간, 축생, 아귀, 아수라, 지옥
▶ 즉 더이상 윤회를 중지하려면 마음이 부처라는 여기서 한생각도 다른 생각을 내지 마시고 바로 알으세요.
▶ 바로 알면 깨달음입니다.
▶ 이렇게 깨달으면 모든 선불교가 쉽게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 비롯없는 옛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다르지 않아 어떠한 다른 법이 없었으니,
▶ 그러므로 그것을 일컬어 정등각(正等覺)을 성취했다고 하느니라."
▶ 정등각이란 바른 깨달음이라는 말인데
▶ 무엇이 바른 깨달음인가?
▶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데서 한 생각도 다른 의심이 없으면....
▶ 그것이 바로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쭉 그랬던 고요한 부처의 마음'이고 이것이
▶ 정등각을 성취한 마음입니다. 즉 원래부터 정등각은 성취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 그런데 다른 의심이 들면 그것은 정등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냥 아는 지식일 뿐입니다.
▶ 마음이 부처라고 하더라.....라는
▶ 다시 정리하자면 한번 '마음이 부처' 임을 알아듣고 다시는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을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정등각 즉, 바른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 이제 부터 즉시 부처의 행만 하면 됩니다.
▶ "스님께서 말씀하신 '곧 『卽』'이라 함은 무슨 도리입니까?"
▶ "너는 무슨 도리를 찾는 것이냐? 어떤 도리라도 있기만 하면 곧 본래의 마음과는 달라지느니라."
▶ 마음이 부처라는 말의 한자가 '심즉시불心卽是佛'입니다.
▶ 여기서 '곧' 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무슨 특별한 도리가 있지 않을까요? 옐들어 아는 순간 머리에서 스파크 현상 같은 것이 있다든지, 아니면 수십년 닦아서 마음이 좀 다르다던지
▶ 하는 것이 끼어있지 않을까요? 하는 물음입니다.
▶ 그런데 여기에서 황벽스님은 단호하게 잘라버립니다.
▶ 아무 도리도 없느니라. 만약 특별한 도리가 있으면 마음에 어떤 형체가 세워지는 것이므로 그것은 오히려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니라 라는 말입니다.
▶ 마음.......... 이것은 형체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맛도 없어요.
▶ 그런데 무슨 특별한 도리가 있겠습니까? 숙면일여를 얻어도 바로 지금 이 마음에서 조금도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 만약 다른 것이 있으면 본래 마음과 .....부처님 마음과 달라지는 것입니다.
▶ 영판 달라지는 것이므로 그것은 사도일 뿐입니다.
▶ "앞서 말씀하신 "비롯없는 옛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다르지 않다"고 하신 이치는 무엇입니까?"
▶ "찾기 때문에 네 스스로 그것(心)과 달라지는 것이니라. 네 만약 찾지 않는다면 어디에 다를 것이 있겠느냐?"
▶ 하하, 그렇습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오늘은 황벽스님이 본전을 다 내놓고 마네요.
▶ 여러분이 현재 그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무엇을 찾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몰랐던 것입니다.
▶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 말을 잘 들어봐야 합니다.
▶ 이 마음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함없이 항상 그대로였습니다.
▶ 부처님도 이 마음이셨고 역대 선사도 이 마음이었습니다.
▶ "이미 다르지 않다면, 굳이 "곧 『卽』"이라고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 "네 만약 범·성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누가 무엇 때문에 너에게 굳이 "곧 『卽』"이라는 말을 하겠느냐?
▶ 요점은 평범인과 성인을 따로 구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같은 사람을 중생이니 부처이니 하고 나누어 부르지 아니하면 '곧' 이라는 말도 필요 없으나
▶ 사람들이 꼭 나누어 놓기 때문에 굳이 '마음이 곧 부처' 이라는 말을 쓴 것이라는 말입니다.
▶ "곧 『卽』"이 "곧 『卽』"이 아니라면, 마음 또한 마음이 아닌 것이니,
▶ 곧이 필요 없으면 마음이라는 말도 필요 없는 것이니 라는 말인데
▶ 사람이 중생과 부처를 나누지 않으면 '곧'도 필요 없고
▶ 마음이니 부처이니 하는 말도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 그냥 사람이면 되요. 다른 명칭이 왜 필요하겠어요?
▶ 이런 가운데 마음과 "곧 『卽』"이라는 것을 다 잊으면, 네가 더 이상 무엇을 찾겠느냐?"
▶ 이치가 이러하니 네가 곧이라는 말도 잊어버리고 마음이라는 말도 잊어버려라.
▶ 중생이라는 말도 잊어버리고.... 부처라는 말도 잊어버리고......마음이라는 말도 잊어버려라.......
▶ 그러면 더이상 찾을 것 없는 완전한 그 자리.... 부처니라.
▶ 그러면 바로 네가 그 어느 명칭에도 유혹되지 않는 부처니라.
▶ 모든 선사들의 선문답은 듣는 자가 정말로 이런 명칭도 잊어버렸는지 시험을 하는 밀일 뿐입니다.
▶ 그러니까 선문답에 답을 할 때에는 부처이니, 마음이니, 중생이니 하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아야해요. 원래 이런 것들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도를 나타내는 글자는 아닙니다.
▶ 12.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다『以心傳心』
▶ "망념(妄念)이 자신의 마음을 가로막는다는데 무엇으로써 망념을 없애야 합니까?"
▶ 마음은 이미 완벽합니다.
▶ 이대로 완벽한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 여기서 무엇인가 찾으면....털끝만한 무엇이라도 세우면 그것은 망념이 됩니다.
▶ 마음은 원래 행복한 것입니다. 단지 당신의 생각이 그 행복을 가로 막고 있어요. 그러니까 오직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중지하고 다 잘라내세요.
▶ "망념을 일으키고 그것을 없애려는 것 또한 망념이 되느니라.
▶ 망념을 없애는 방법을 잘 설명하고 있군요.
▶ 본래 만족함을 알고 '찾는 생각'이 없으면 부처의 마음인데
▶ 거기서 찾으려하니까 형상이 세워지고
▶ 그 세워진 것이 망념이고
▶ 또 이 망념을 없애려고 하면 그것이 또 망념에 망념을 더하여 손자 망념이 된 것이라
▶ 망상만 버글대는 것이니
▶ 망상을 없애려고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 단지 이 마음에 '행복'과 '부처'가 갖추어진 것인줄 알고 욕구를 쉬고
▶ 기타 당신이 필요한 것이 이미 다 갖추어져있다는 것을 알고
▶ 찾는 마음만 쉬면 될 뿐
▶ 따로 망상을 없애려하지 마라.
▶ 없애려하면 더 망상이 치성할 뿐이니라라는 말입니다.
▶ 망념은 본래 뿌리가 없다. 다만 분별 때문에 생긴 것이다.
▶ 마음은 형체가 없으니 뿌리가 있을 리도 없고 깊이 박혀있지도 않습니다.
▶ 그러하니 단지 당신이 중생이다, 부처이다, 잘났다, 못났다, 옳다, 그르다 라는 분별......
▶ 더럽다, 깨끗하다,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부자다 가난이다 라는 분별만 없애면 됩니다.
▶ 그래서 부처님은 반야심경을 설하셨던 것입니다.
▶ 온갖 분별은 마음에서 일어난 허망한 개념들의 조합이니까 거기에 빠지지 마라고.........
▶ 사실이 아닌 허망한 개념들.........
▶ 네가 다만 범·성의 두 곳에 알음알이를 내지 않는다면,
▶ 네가 지금 폄범인이다 성인이다 라는 생각만 없애면
▶ 자연 망념은 없어지는 것이니,
▶ 자연히 망념이 없어지는 것이니 따로 없애는 방법은 필요 없어요.
▶ 명심하세요. 당신의 의식 깊은 곳에서 저 서양사람들 처럼 사람은 평등하여 다 같다라고 생각하여
▶ 성인과 범부는 따로 없다고....... 의식 깊은 곳에서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망념은 없어집니다.
▶ 다시 그것을 어떻게 떨쳐버리겠느냐?
▶ 다시 따로 떨쳐내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잘 명심하세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파악하세요.
▶ 오직 헤아림만 멈추어라. 그러면 망념은 없어진다.
▶ 떨 끝만큼도 의지하여 집착함이 없으면,
▶ 당신이 정말로 범성이 없음을 명백하게 안다면.....그래서 털끝만큼도 그런 개념에 의지하지 않거나 집착하지 않는다면
▶ 이른바 "내가 두 팔을 다 버렸으니 반드시 부처를 이루리라"고 한 것이 되느니라."
▶ 두 팔은 양변을 말합니다.
▶ 선악, 더러움과 깨끗함, 시비, 장단, 남녀 등등의 상대적인 개념들이어요.
▶ 양손으로 잡을 것을 다 놓아버리면 반드시 부처를 이루게 된다는 말이 그말이라는 말입니다.
▶ 즉, 양변이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다 떨어져 나가면 바로 부처라는 말입니다.
▶ 자꾸 쉬어라, 버려라, 일키지 말아라 하니까 어렵게 생각하는데
▶ 원래 쉬어있고, 원래 무심이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 그러니까 자기 마음을 잘 들여다 보세요.
▶ 그래서 원래 쉬어있고 원래 무심임을 깨달아야 그 다음부터 쉬워집니다.
▶ 즉시 일으키지 않을 수 있어요.
▶ 마치 하수도물을 못먹는 것이니라 하고 한번 알려주면 즉시 안먹듯이......
▶ 특별한 노력없이....수행같은 것 없이 즉시 안먹듯이....
▶ 마음이 부처임을 확실히 알고......
▶ 마음이 무심임을 확실히 알면 저절로 쉬어지고 무심해져요.
▶ 그러니까 무심해지려고 노력하고, 쉬려고 노력하지 말고
▶ 마음이 원래 비었다는 것, 그리고 형체가 없다는 것
▶ 그리고 두 가지 상대적인 모든 개념들은 마음이 만든 허상이라는 것을
▶ 깊이 이해하도록 하세요. 그래야 저절로 쉬어지고 무심해지는 것입니다.
▶ 원래 무심임을 알면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무심해지려고 해요.
▶ 이렇게 근원을 끊어서 쉬고 무심해지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을 확실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 확실히 그렇다 라고 이해될 때까지 기다리세요.....
▶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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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나...속이 후련합니다...무심으로...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