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빌립보서 3장 17절 제목 : 바울의 간곡한 부탁...
저는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바울의 간곡한 부탁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합니다.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두 번째로는 너희가 위를 본 받은 자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고 합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말을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 할 수 있습니까?
실지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본받으라는 말은 하기가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그럼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행전 7장 58절의 말씀을 보면 사울의 행보를 알 수가 있습니다.
찾아보겠습니다.
‘성 밖으로 내체고 돌로 칠새 중인들의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니 사울이라는 사람은 스데반집사를 죽이는데 앞 장을 섰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울이 이렇게 한 이유에 대해서 8장 1절에서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이렇게 행동할 때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사도행전 9장에서 보면 예수가 구주가 되심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9장1절에서 5절입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
사울은 다메섹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이런 고백합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1절에서 10절입니다.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사울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분이심을 알고 난 후 그의 삶을 변화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20절입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그 이후 사울은 자신의 이름을 히브리식에서 로마식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13장 9절입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바울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신의 학문에 의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온 각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핍박을 하고 죽이는데 앞장을 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후는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그의 삶을 변화기 시작합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이요, 자신의 뜻보다는 주님의 뜻에 의해 자신의 삶을 마티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삶은 형통함이 임하기보다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고난과 핍박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 당시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출세가 보장 되어 있었고 정말 차기 지도자라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4절에서 6절에 보면 나옵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이런 조건 속에서 있던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빌립보서 3장 7절과 8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바울은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 외에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없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당한 모습이 고린도 후서 11장 24절에서 27절에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
바울이 이렇게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그 심판 속에 상벌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에서 8절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
삶의 내용이 상급과 연결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도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빌립보서 1장 27절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그러므로 지혜로운 성도들은 사람의 말보다 사람들의 행실을 잘 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말과 행실이 같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방부한 말씀도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15절입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루를 주의하라고 했습니까?
여기서 누룩은 행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행실을 주의하라고 했습니까?
그 이유는 이들은 말과 행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나, 권능이 있는 자나 어떤 능력이 있는 자보다 믿음으로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 그리고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요,
주님은 선지자를 원하고, 권능이 있는 자와 능력이 있는 자보다 바로 영혼을 사랑하는 자, 이웃을 섬기는 자, 그리고 묵묵히 충성하는 자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7장 20절에 보면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 못된 자들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을 잘못 해 석하여 무조건 전도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의 특징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하여 주니 전도만 하라고 하면서 직업, 학업, 결혼까지 하지 말라고 하면서 전도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그리고 데살로니가 후서 3장 6절에서 8절을 찾아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신명기 25장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찌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말씀을 이런 인용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18절입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일 즉 노동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에서는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는 일은 축복이요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인데 마귀를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주니 너희는 전도만 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행하게 합니다.
성령님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질서 속에 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는 맡은 일에 충성를 다하는 것이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목사의 일은 성도들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성도는 삶의 현장에 주어진 일에 일을 하고 복음의 동역자로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
다.
오늘 우리는 믿는다고 하는 자들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자들의 삶의 내용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그들의 말과 행실이 인격적이고 덕이 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아니면 잘못된 행실인지...
이것이 바로 분별력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일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직업을 귀히 여겨야 하고 그 직업이 곧 축복의 선물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복을 내려 주시고 그는 그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