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미적 태도 Aesthetic attitude'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AESTHETIC이란 말은 18세기 산물이다.18세기 독일철학자 바움가르텐
Alexander Baumgarten은 '이성적 인식'과 '감성적 인식'이라는 고대의 구분을 근거로
감성적 인식과 美의 인식을 동일시 하고 미의 인식에 관한 연구를 '미학Aesthetica'라
명명했다.
이렇게 해서 근대언어에 Aesthetics란 명사와, Aesthetic이라는 '형용사'가 등장하게
되었다.
Aesthetic은 미적, 심미적, 미학적 (칸트에게 있어서는'미감美感적') 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럼, Aesthetic Attitude란 무엇일까?
미적 경험을 확장시키거나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자세나 성향을 의미한다.
이것은 삶 자체에 대한 태도에서 출발하여 자연과 사회에 대한 태도 및 세계관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그래서 삶의 미적인 완성과 향유의 촉진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
'미적 태도'를 취할 경우,
인간은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하나의 '예술적 향유'에 몰입함으로써 주체의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삶의 국면을 발견하고 다른 차원으로의 존재전이를 느끼게 된다.
이렇게 일상적 삶과 다른, '미적 세계'로의 몰입을 통해 인간은 일상적 삶에 일정한 거리
(동양에서의 '명상' 내포) 를 둠과 동시에 현실을 다른 차원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행위를
경험하게 된다.

'미적태도'의 가장 오래된 진술은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진술이다.
"인생은 운동경기와 같다. 어떤 이는 레슬러로, 어떤 이는 장사꾼으로 등장하지만 최선은
구경꾼으로 참가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미적 태도를 지닌 사람을 관중觀衆의
태도와 동일시했다.
미적 태도의 일반적인 예로는 예술작품에 대한 자아의 거리 가지기를 통해 대상의
충만함을 향유하는 미적 관조를 꼽을 수 있다. 이는 극히 수동적인 미적 태도로서 미적
경험이 어떤 태도로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문학에서 미적 태도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작품의 창작과 향유에 있어서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적 태도란 이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미적 태도는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하나의
잣대로서 기능하는데, 서사적인 미적 태도나 서정적인 미적 태도는 세계와 인간의
존재양상을 미학적인 태도로 나누어 살피는 예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세계와 어떻게
관련을 맺는가를 보는 '미적인 태도'의 문제는 미학적인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분석할 때
가능한 하나의 '분석방법'이 될 수 있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서 발췌
제 12회 열린강좌에서 미의식과 경제와 미술사의 상관관계를 공부하며, 욕망에 의해
변화, 발전하는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동시대 욕망을 읽고, 세상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제 삶을 제가 디자인하려는 의지를 다집니다.
은시님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은 얼마나 똑똑하고 근사할까하는
부러움과 존경심의 발로로 미의식은 미술전문가의 몫이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죠.
그러나, 열린강좌 10회와 12회를 통해 배운 것은,
"미의식의 주체가 나이고 이 미의식을 통해, 타자간의 욕망의 충돌에서 오는 갈등을 풀며
성장하는 인간사 속에서, 불확실한 변수로 가득한 실생활로부터 한 차원 위의 美적 향유
享有=누리어 '가짐'을 가능케 하고, 적극적으로 예술에서 오는 감동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미의식의 실체가 되자." 라는 것입니다.
쳇바퀴를 돌리는 일상에서 무의미를 상대로 의미를 찾는 도구로써 미의식을 반드시 내
몸의 일부로 의식해야 하는 이유와, 인생 여정에서 여태 날 지탱하고 감격시키고
살아가게 하는 것도 이 미의식이었음을 확인합니다.

HUR유림님의 글에서 알게 된 '마리아 린드'의 강연에서 오늘의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소개합니다.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What does ART do? 어쩌면 이 질문이야말로 이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자 목적일지도 모른다.
이상한 듯 보이는 이 논제에 접근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예술을 하나의 경험이자 세상에 작용하는 힘으로 인식하는 작품들의 구체적인 사회적
역할을 파악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예술의 도구화, 상업 예술시장이 거대하게
팽창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예술 그 자체를 무대의 한 중앙에 놓고
예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미래에 대한 투사와 상상력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
현대미술은 사회의 다른 분야들보다 앞서 동시대의 현상들을 포착하고 표현해내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이는 우리의 존재를 감지하는 지진계이며, 우리의 삶을 탐색하는 탐지견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술은 항상 우리의 미래에 대한 무언가를 섬세하고 복합적이고
어려우면서도 유쾌하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말해준다.
그리고 예술을 생산하는 작가들의 노력은 최소한 일시적으로나마 예술을 통해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지각하려는 시도이다." – 마리아 린드

사막성 기후대에 속한 이곳은 시에서 늘상 물절약 홍보를 하니, 주민들도 점점 물을 많이
들이키는 식물보다 물 없이 잘 견디는 선인장과 다육식물로 조경을 꾸미는 추세입니다.
선인장과 다육식물의 차이는 선인장에는 가시나 솜털이 있고, 가시자리의 흔적이 있으며
다육식물은 맨질맨질 면도한 얼굴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위의 사진의 주인공들은 모두
다육이고요.
손이 안가며, 오동통하구 색이 오묘해 보는 즐거움과 이국적 분위기(이젠 익숙해 더이상
이국적이지 않지만..내 나라를 그리 오래 떠나 있다니 씁쓸합니다.)의 가시,솜털선인장과
다육식물Succulent 종류가 한없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동통이란 단어에 넓데구리가 떠오릅니다. 순하고 듬직하던 고양이가 떠났습니다.
여러분께 인사시키려고 사진에 담은 그 모습과 사연을 남긴채..위 사진 속 빨간 다육식물
오른쪽이 오동통한 얼굴의 넓데구리가 오후 느지막 앉아있길 좋아하던 장소예요.
오동통이란 말은 그 녀석 것이고, 이 단어를 만나면 전 녀석을 떠올리고 노란 코트를
멋지게 두르고 활보하던 녀석은 뺨을 부벼대는 친근함으로 언제나 살아 있을 겁니다.
마음에 비가 내립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인데.. 아웅다웅 사는 부질없는 세상사는
오동통한 내친구의 부재를 모르고, 이 글로 점점 물이 고이는 내 눈은 심장까지 아리게
하니 이제 이야기를 멈출 시간입니다. 오동통이의 이야기를 꺼내게 될 줄 몰랐습니다.
꺼낸김에 몇자 더 적기 원해 아무도 없는 카페에 혼자 들어와 혼잣말을 늘려가다 결국
먹먹해짐은 아직도 상실에 면역이 생기지 못했음이요, 그저 더 그녀석을 느껴보고 싶은
바람 때문이고, 집안에 들어오길 거부해 늘 걱정을 시킨 얄궂은 내 동무가 결국 우려대로
결별을 던지고 돌아오지 않음에의 세상이치가 다만 서러워

첫댓글 열대성의 기후 덕분에 식물의 색깔이 풍부하고 다양하네요.
그 색깔을 드러낸 시각이 이미 미학을 체득화 하신 것이 아닐까요?
산다는 것,
모든 생명들은 그 생명들을 발산하기 위해
이렇게 식물이 색을 가지듯이 예술행위를 합니다.
예술이란 스스로 살아있다는 증거를 드러내는 행위로 나타나는 결과이고...
정♡말 달콤한 칭찬과 '살아있다는 증거를 드러내는 행위'라는 묵직한 가르침에
눈물이 잦아들고 마음은 고요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열린 강좌를 들으신 후에 몇 줄의 소감문이라도 꼭 영국사랑 미디어 페이지에
남겨주시면 많은 사람들이 강의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석구석 담아가고 싶은 글 이네요. 마리아린드가 직접 강연했을때보다 Minnie님의 몇구절이 그녀가 전달하려는 핵심을 더 잘 보여주는것같아요.
전 오동통? 이란 단어에 예전 만화캐릭터 가필드가 생각났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 반창고가 붙어 덜 쓰라려요. 가필드하니까 일화가 떠올라요.
맛난 닭고기를 먹던 오동통이가 친구 고양이가 뒷마당에 찾아오니 자기 음식을 양보하고
먹는걸 지켜보더라구요. 그래 제가 한 그릇 더 주니 또 양보하고 옆에 물끄러니 지켜보고
있어요. 오동통이가 친구가 가버리고 혼자 있길래 다가가니 그제서야 절보더니 침을
불독만큼 질질 흘리는 거예요. 고양이가 입가에 끈적한 침 범벅이가 되어 줄줄
떨어뜨리는거 처음 봤어요. 가슴이 터질것같아 얼른 그의 몫으로 또 가져다주니
정신없이 먹었어요 아주 맛있게. 첫 만남 때도 제 남편이 준 밥을 제 친구에게 양보하던
순둥이는 저희 부부의 귀한 손님이었어요.
예술을 하는 자신을 늘 탐험하고 자신조차 찾기 힘드는 시대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감싸며 긍정하려는 몸짓을 찾는 사람들.
자신과 이세상을 놓고 물질을 들어서 맞짱을 뜨는 사람들.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
미네님처럼 써야 하루를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방이 하얗게 막이 둘러진 것과 같은 이 시점에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 찾아 보는 자신의 소릴 만나러 갑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또 묻고 있어요. 심우도가 생각나는 밤입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면 신병을 앓는 것이, 토속 종합
예술인인 무당만이 아니라 예술혼을 타고난 모든 이들의 공통점이라고요.
쓰고 쓰고 읽고 쓰고 쓰면서 읽고 읽다가 쓰고 그래도 더 목말라 오아시스를 찾아
끊임없이 가는, 몸도 마음도 혹사지만 길위에 서 있으니 길이 안 보일 때에 비하면
눈물나게 감사한 처지입니다. 인생선배, 예술 대선배님과 글로 만나는 것은 제게
지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