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모든 교훈의 완성과 실상인 사랑 (찬송 30장)
2015-2-16 가정기도
13장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의 예배에서 사랑
오늘 본문의 사랑을 감정적으로 접근해서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이고 행동적인 것이다. 또 이 사랑은 개인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을 말한다. 특히 예배의 맥락에서 행해야 할 사랑을 말한다. 11-14장 사이에
있는 본문이기 때문이다. 11장과 14장은 예언(말씀)과 방언(기도)에 대한 가르친다. 그 사이 13장도, 예언, 방언, 지식 등을
가르친다. 12:1은 “신령한 것들에 대하여서는” 으로 시작하여 14:1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하고 하여, 12-14장이 “신령한 것” 성령님이
주신 은사에 대해 가르친다. 12:31에서 말한 “더욱 큰
은사”는 14장에서 말하는 예언이다. 12;31에서 (은사로 섬기는) 제일
좋은 길, 사랑을 13장에서 가르친다. 13장은 고린도전서 앞쪽에서 말한 것과 뒤에서 말할 것 전체의 요약이다.
1. 사랑이 없으면: 은사들을 시행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님 (1-3절)
1절, 방언: 당시 방언은 외국어로
감사 찬양을 말하는 것이다. 복음이 온 세상에 확장되는 시대에 복음이 유대인에 국한 된 것만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임을 나타내는 표적으로 주신 것이 방언이다. 중요한 것은 외국어로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2절, 예언과, 신비한 것을 보고, 그 신령한 지식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3절, 구제와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은 교회와 예배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교회
지체의 경제적 도움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구제를 잘하고 가정에서 말씀을 잘 가르쳐도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말씀을 할 때도 사랑으로 전해야 한다. 사랑이
실천된 상태에서 말해야 한다. 사랑이 없으면 다른 성도들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한다.
2. 사랑이 있으면 어떻게? (4-7절)
1) 사랑이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오래 참는다 (4절). 그리고
온유하다.
2) 사랑이 하지 않는
것은 자랑하지 않는다. 성내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랑으로 가르치고 구제하면, 지체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이런 것을 못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자기 자랑과 교만이 가득차고 무례하고 자기 자랑이 가득찬
자들이다.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이런 것을 행할 수 있다.
5절, “무례히 행치” 않는다. “무례히
행한다 (아스케모스)는 ‘부분들이
균형이 맞지 않아 아름답지 못한 , 모양새가
좋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일상과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의 아름답지 못함을 채우라는 앞쪽의 교훈을 종합하여 말한다. 7:36절에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 한 것과 같은 단어다. 7:35에 ‘이치게 합하게’ 와
대조). 약혼녀가 나이가 점차 많아 지게 되었든지 등으로 모양새가 좋지 못한 경우에는, 남자는 파혼할 생각을 하지 말고, 결혼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다. 부족하더라도
약혼자와 사랑하고 부족한 지체를 덮어 주라는 것이다. 12장 23절에
‘아름답지 못한’ 지체에 대한 교훈을 다시 반복한다. 성도중에 연약함이 있는 지체, 죄가 있는 지체 그래서 덮어 주어야
할 사람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13;5‘에서 무례히 행치
않다’는 것은 방언, 예언,
설교, 기도 등 은사를 사용할 때, 성도를 영적으로
아름답게 세워 가기 위한 목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즉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은사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볼 때, 자기가 손해 보더라도 좋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 두지 말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우리도 지체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 성령을 의지할
때 가능하다.
5절,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개인의 내면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사람에 대한 유익을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 사랑이 하는 것을 6절 후반부에서 다시 다시 말한다
‘불의와 함께 기뻐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을 보고 꾸짖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필요한 것이 오래 참음이다.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7절에 ‘모든 것을 참으며’,’모든 것을 견딘다’고 한다. 4절에서도
오래 참는다고 하면서 세 가지 다른 단어를 쓰면서 인내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 인내와 함께,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바란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람을 향해 참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보고 미래를 소망하며 견디는 것이다. 목회자도 성도를 향하여 오래참고, 부모들도 인내하며 자녀들을 가르치도록 기도하자.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5절)는
10:33에서 사도 바울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한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와 정확히 같은 표현이다. “모든 것을 참으며” (판타 스테게이, 7절)도
역시 사도 자신의 사례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한
9:12과 정확히 같은 표현이다.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의 영적 부족함을
알기에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생활비를 받는 것을 포기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참으며 사랑을 실천했다. 이제
고린도 성도들도 은사들을 사용할 때, 그 사랑의 모범을 따르라고 권면한다.
3. 지식 방언 등 모든
현재의 모든 은사들은 그리스도 재림 후 사랑으로 완성되며 폐지될 것 (8-13절)
믿음 소망 사랑은 1-7절의
결론이면서, 8-13의 결론으로 다시 반복되면서 사랑을 강조한다. 8절~13절은 지금은 어린아이와 같고 불완전하지만 그 때(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온전하게 된다. 믿음, 소망, 사랑이 끝까지 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믿음, 소망은
사랑으로 완성된다 (13절).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며 온전히, 전체적으로 알 그 때에는 부분적으로 아는 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이 부분적이기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다 (12절). 구리로 만든 거울이기 때문에 직접 보는 것보다 희미했다. 그렇다고
지금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지식은 아니다. 더 온전한 것으로 완성될 것을 기다림에서 부족함은
있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신앙지식과 믿음은 확실한 것이다.
그 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2절). 문자적으로는
“내가 알아 보아 진 것 같이, 나도 알아 볼 것이다.” 이미 주님은 나를 알고 계시지만, 지금은 나는 부분적으로 주님을
안다. 그러나, 그날 이후에는 주님이 나를 아는 그런 분명한
앎을 나도 알 것이다. 이 앎은 “사랑”이다. 부부가 깊은 사랑을 하는 것 이상으로 주님과 우리는 온전한
지식 가운데 사랑할 것이다.
주님을 알고 사랑할 그 때에는 성도들과의 관계에서도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 질 것이다. 고후 1장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지만, 서로를 “아는
것”이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될 것이라.” 하면서
서도의 참된 앎과 사랑이 완성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신앙지식을 부분적으로 아는 것을 아는 성도들은, 성도의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를 부분적으로
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 주께서 온전하게 해 주실 것을 기대하며 그 때를 기대하며
오래 참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성령을 의지해서 말씀의 원리대로 사랑하자.
13장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의 사랑에 강조하면 시작하지만, 끝 부분에서는 주님을 아는 사랑으로 끝낸다. 성도를 향한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흘러 나오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믿고 복종할 일
교회 안에서, 나아가
가정에서의 성도간의 사랑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굳게 뿌리 내리기를 기도하자. 사랑이 부족한 우리가 사랑으로 교회를 세우도록 기도하자. 이 하나님 사랑과 성도 사랑을 이루기 위한 “은혜의 수단”으로 여러 은사들, 특히 말씀과 기도, 예배를 선물로 주셨다. 예배와 성경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배우고
성도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하나님이 주신 여러 은사들 말씀과 기도 등을 사랑으로 실천할 때 가장
중용한 것이 오래 참는 것이라고 세 번이나 강조했다. 성도의 잘못을 사랑으로 교정하려는 용기를 주시고, 당장 변하지 않더라도 화내지 말고, 오래 참고 가르치도록 기도하자. 가정에서도 자녀를 향하여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도록 기도하자. 직장에서도
초월적인 사랑으로 인내의 모범을 보여서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