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본유의 동작 추출 통해 미학적 퀄리티 굳혀
무속‧불교무용‧민속춤‧궁중무용 등 심도있게 조명 "한국춤에 상상력 더해 새로운 심미성 개발"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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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믐 |
[그린경제=장석용 문화비평가] 윤수미(尹秀美·Yoon Sumi)는 한국창작 무용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창작 무용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고 있다. 그녀의 작품을 맛으로 얘기한다면 강하고 진하다. 제비가 돌아 올 때 쯤 피는 보랏빛 제비꽃 같은 품성으로 전형적 미인을 수계 받은 그녀는 우리 춤의 새로운 원형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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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수미 동덕여대 무용과 교수 | 윤수미는 캐나다 ‘인권·자유 수호상’을 받은 아시아 인권센터 이사장인 아버지와 45년간 교직에 몸담은 어머니 사이에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러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비교적 자유스럽게 인간의 존엄성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일찍부터 배우게 되었다. ‘이상 문학상’ 수상작 『무진기행』의 작가인 사촌오빠 소설가 김승옥으로부터 예술적 영향을 자연스레 받았고, 6세 때부터 무용을 배우게 되었다. 예술가 집안이다. 배우자 이재환 또한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희곡 작가 겸 공연예술 연출가다.
그녀는 선화예고, 이화여대 무용과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창작 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던 이화여대에서 전통춤과 창작 춤의 균형 잡힌 본격적 교육을 받았다. 일본에서 공부한 부친의 영향으로 도일(1993~1997), 한국 춤과 더불어 하나야기류와 후지마류를 후지마 간뇨 선생에게서 사사, 일본의 전통 춤과 현대 춤을 배우며 자신의 춤 방법론을 생각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국 춤과 일본 춤에 관한 지적호기심에서 탄생한 ‘오키나와 이자이호오의 무무(巫舞)에 관한 연구’(석사논문), ‘한국창작춤에 미장센 기법 도입 가능성 연구’(박사논문, 동덕여대)에서 보듯 윤수미는 예술의 상부구조에 관한 탐미적 취향을 소지한다. 이후 윤수미는 한국 춤의 새로운 해석을 통한 타 예술과의 공통성, 세계성을 위한 귀중한 접근방법을 확보한다.
대학졸업 후 한국 창작춤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35년 전통의 창무회(91년 입단)에서 20년간의 활동을 통해 상임안무가 및 수석무용수로서 수많은 국내외 공연을 하였고, 본인의 안무작으로 국내외의 전통 있는 다수의 기획공연에 초청받아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1998년 포스트극장에서 첫 공동 안무작인 창무국제예술제 ‘춤과 음악과 시의 만남-세 개의 사랑노래 『아가(雅哥)』를 안무, 출연하며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그녀의 단독 솔리스트 첫 안무작은 같은 해,『굳은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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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조 |
윤수미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 부터 ‘올해의 주목할 예술가상’(2007년)을 수상하였다. ‘대한민국무용대상’ 본선에 선정되었고, PAF ‘베스트 춤 레퍼토리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 9월 동덕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부임, 새로운 춤 역사를 왕성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탐미적인 움직임에만 천착하지 않고 생명 본유의 동작을 추출하는 작업으로 “미학적 퀄리티를 한층 견고히 한다”라는 평을 받고 있는 윤수미는 전통무용의 분야 즉 무속, 불교의식무용, 민속춤과 궁중무용 등을 깊이 있게 소화하고 있다.
자신의 춤 개성을 춤작업에 접목시키고 있는 그녀는 댄스프로젝트그룹 ‘오래된 R’과 ‘윤수미무용단’을 이끌며 독자적인 작업 활동을 병행하면서 한국 창작춤의 새로운 지평을 한층 더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제3세대 한국창작춤의 한 광채’라고 불리기도 한다.
창작춤 안무가로서 윤수미는 지난해 『움』, 『말테우리』로 우리 창작 춤의 세계에서 독특한 소재와 주제성을 개발하고 있는 춤꾼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고, 후자 『말테우리』의 경우 지난해 PAF ‘최우수 안무작’으로 지목, 2009 ‘올해의 안무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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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테우리 |
윤수미는 작품을 통해 미세한 생명체에 대한 새 인식을 섬세한 시적 감흥과 순수 동작성의 역동적 전개를 통해 표현, 오늘의 춤 예술에 대한 깊은 영감과 감동을 주고 있다.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춤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간결하게 처리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스타일로 작품력을 쌓아가고 있다. 『이끼』, 『깃』, 『말테우리』등과 같은 독창적 발상의 창작춤 안무를 통해 담대하고 시적인 공간 구성과 균형 잡힌 한국춤 동작과 함께 탁월한 춤 상상력과 기량을 발휘하여 한국 창작춤의 새로운 심미성을 개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수미의 춤은 국내의 우수한 기획공연에 다수 초청되고 있으며, 해외 동경 프린지 댄스 페스티벌, 쿨 뉴욕 댄스 페스티벌 등에 초청되어 공연한 바 있다. 해마다 무용연기상, 베스트 레퍼토리상, 여자연기상, 올해의 안무가상, 올해의 새 춤 레퍼토리상 등을 수상했다.
그녀의 안무작은 『無人區』, 『이끼』, 『깃』, 『말테우리』, 『무거운 옷』, 『처용, 핏물어린』, 『굳은살』, 『볕』, 『오래된 R』, 『움』, 『두개의 달』, 『나비잠』, 『나비잠 Ⅱ』, 『그믐』등으로 탐미적이고 철학적 함의가 담긴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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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 |
2004년 초연된 『무인구, 無人區』(안무 및 출연)는 첫 군무 안무작이다. 그녀는 출연을 기본으로 한다. 전통 궁중무, 일무(佾舞)에서 발전한 창작 무인구는 일무가 추어지는 공간인 종묘라는 공간의 인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와 더불어 전통이라는 것이 현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수용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작업이다.
작품 『無人區, 무인구』(안무 및 출연)는 일무가 추어지는 공간에서 산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공존하는 시간이 의외로 짧다는 생각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그 둘은 결코 나뉘어질 수 없다. 언어라는 구체적인 것으로 표현되기에는 애매한 그 속에 우리는 언제나 불안하게 서 있을 뿐이다.
2007년 뉴욕타임스의 제니퍼 더잉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혼재’, ‘광채를 뿜어내는 윤수미는 세속과 천사의 이미지를 안겨주는 4명의 시녀들에 이어 등장, 『느린 달』과 다른 안무형태와 방법으로 명확하게 춤췄다.’라고 평을 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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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용 |
1999년 작 창무회 정기공연 『이끼』(안무 및 출연)는 2007년 『이끼』로 변주되고, 간결한 상징을 담아 퇴폐의 숲, 얼룩진 현실에서 극기하는 모습을 자연주의적, 신비주의적 춤사위로 엮어낸다. 춤 스타일리스트 윤수미는 만물이 정지된 가운데 신비감 충만한 도입으로 집중을 이끌어낸다. 탐미적 판타지로 서정적 분위기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몸의 조형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깃』(2007)(안무 및 출연) 은 ‘깃’이 갖고 있는 상징성을 문화평론가 문애령의 평처럼 ‘상반신의 고요함과 하반신의 활달한 움직임을 조합해 춤이 내표한 은밀함과 제의식의 신비함까지 드러낸다.’ 김태원은 『깃』은 ‘공중에 떠 있는 또 다른 미미한 생명체의 감지라고 할 수 있다.’ 고 적고 있다. 윤수미는 고도의 상위개념인 시적 ‘깃’으로 날고자 하는 인간 욕망을 잘 그려내고 있다.
우화의 형식에 의존한 『말테우리』(2009)(안무 및 출연)는 ‘사랑’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말테우리’는 제주도 방언으로 말을 길들이고 돌보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랑은 그 단순행위로부터 시작되고, 논의에 선행(先行) 된다는데 말이다. 야성과 우화성을 시적 이미지에 담아 표현한다.
사랑에 관한 두 가지 접근 방식은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며 사랑의 추상성을 이미지화하여 방향설정을 하는 작품과 과거의 시간 혹은 현재의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서사구조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무용극화 또는 에피소드식의 나열로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무거운 옷』(2008)(안무 및 출연)은 떨치지 못하는 생의 슬픔과 무거움을 연잎 하나에 맺힌 눈물에 비유한 작품이다. 가벼울수록 잘 날 수 있는 ‘깃’의 반 개념이다. 『처용, 핏물어린』(2011)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처용’에 대한 상식에다 전통과 창작의 묘미를 적절히 섞어, 버전을 달리하는 ‘처용무’로 창작 춤의 수준을 격상시킨 작품이다.
『나비잠』에서 비상을 위한 작은 움직임들, ‘사물의 움직임’(Im Lauf der Dinge)속에 내부의 움직임과 외부로의 탐색, 윤수미의 춤은 시청각적 이미지의 확장, 수의 배열과 변동으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춤, 만다라 의식과 같은 구성의 흐트러짐과 이어짐, 몰입과 일렁거림으로 전통무의 특질을 살리면서 한국 창작무의 거침없는 경지를 품격 있게 경작하고 있다.
금년 제26회 한국무용제전에서 『처용-웃다, 놀다, 울다』안무(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한국 현대춤작가 12인전 『그믐』안무(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제18회 창무국제예술제 『그믐』(소극장 버전) 안무(포스트극장) 및 기타활동은 그녀의 보석화를 가속시킨다. 존재하는 것을 다르게 본다는 것이 예술의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그 다름의 성격이 그녀의 혼란이다. 그녀의 안무의 작업과정은 새로운 춤 언어와 자신만의 빛깔을 보여주고자 하는 고민과 좌절 사이에서 느끼는 희열로 너무나 작고 순간적이다.
그녀는 그녀가 느끼는 그 순간의 감정이 춤을 통해 세상과 함께하길 원한다. 만만치 않은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면서 또한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작업하는 일을 감사하며 그녀를 통해 꿈을 키우는 미래의 무용가들을 보며 자신을 가다듬는다.
/장석용(문화비평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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