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식 생활칼럼] 마지막 총알
수필가 김혜식 gyeong7900@daum.net 입력 2023/06/22 19:14수정 2023.06.2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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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인지 저하 증(치매)을 앓고 있는 친정어머니다. 이 병 특징은 방금 전 일은 기억 못해도 오래전 일은 선명히 떠올리는 특성이 있다. 전후戰後 세대인 필자다. 어머닌 이런 필자 앞에서 지난날 6.25 전쟁 시 당신이 겪었던 순간만큼은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한다.
“얘야, 6.25 사변 때 인민군이 우리 집에 들이닥쳐 식구들에게 총구를 겨눌 땐 너무 겁이 나서 오금이 저렸다. 이때 주먹밥 몇 덩이를 줬더니 살려줬다.”라고 벌써 수 백 번도 더 되뇌는 어머니 이다. 비록 6.25 전쟁은 직접 겪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로부터 귀가 젖도록 들어온 6.25 전쟁 참상은 어느 정도 그 상황을 미뤄 짐작할만하다.
이는 어느 문헌에 의해서 더욱 확고해졌다. 이 글에 의하면 6.25 전쟁에 대한 당시 전시 상황은 어머니 말씀 못지않게 극한 공포감마저 안겨준다. 1950년 11월 함경남도 장진호湖까지 진격했던 미7사단 3개 대대가 중국군 매복에 걸려서 궤멸 당할 때 이야기다. 이는 중국군이 전쟁에 개입 할 것이라는 첩보를 무시한 채 감행한 북진 탓이었다. 이 때 중국군 제 9병 단장 송시륜은 군사 15만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넌 뒤, 낮엔 근처 산에 몸을 숨기고 밤에만 이동, 장진호 주변에 매복했다. 이런 상황인 줄 모르고 무모하게 진격했던 아군이다.
더구나 장진의 날씨는 살을 에는 강추위였다고 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중국 황포군학교 출신인 중국군 제 9단장 송시륜은 산을 따라 부대를 배치하는 전술을 펼쳤다고 한다.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도로로 진군하던 미 해병 1사단, 그리고 7사단 및 영국 해병 3 만 명이었다. 송시륜이 이끄는 중국군은 이런 아군을 마치 커다란 자루에 주워담듯 포위하는데 성공했나보다.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포위망은 서서히 좁혀오며 계곡을 따라 23km에 이르렀다. 영하 45도 혹한 속에서 병사 절반이 동상에 걸리기도 했다. 아마 이 때 중국군 공격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살을 에는 추위였을 것이다. 오죽하면 선두에 섰던 어느 장교는 훗날 이 길을‘지옥 불 계곡 Hellfirevalley’이라고 했을까. 이렇듯 미군이 가장 고전했던 장진호 전투다.
6,25 전쟁 때 소총수로 참전했던 마틴 러스는 ‘포위망 탈출Breakout’이란 제목으로, 장교였던 조지프 오언은 ‘지옥보다 더한 추위Colder than Hell’라는 제호의 책을 펴냄으로써 한국이 치렀던 6,25 전쟁의 전황戰況을 자신들 저서를 통하여 낱낱이 증언 하고자 했다.
비근한 예로 미 해병대 출신 영화감독 브라이언 이글레시아스도 장진호 전투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 제목은 ‘잊혀진 전쟁 Forgtten War’이다. 이 영화는 ‘초신 퓨’ 회원들을 인터뷰하여 전멸 위기를 벗어난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외국 참전용사들도 지난 6.25 전쟁을 엊그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자 애쓰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어느 사이 6.25 전쟁은 까맣게 잊은 채 안보엔 해이해진 게 아닌가 하는 반성마저 든다. 필자가 어렸을 땐 반공, 방첩 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히 받았다. 이게 아니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귀한 인명과 재산을 잃었던 나라를 폐허로 만든 6,25 전쟁의 비극을 잊어선 안 될 일이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물지 않은 상처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이산가족의 회한이다. 또한 73년 전 전쟁 발발 당시 북괴 총탄에 무참히 희생한 병사들 유해도 거두지 못한 유가족들이 주변에 많다. 현재도 북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처지다. 눈을 돌려보면 세계정세 역시 불안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를 증명하잖은가.
한반도에서 전쟁의 총성은 멎은 지 오래이나 연일 북한은 핵으로 우릴 위협하고 있는 실정 아닌가. 마치 보이지 않는 총구에 총알을 장전한 채 늘 우릴 향해 겨누고 있는 형상이다. 총알은 전쟁 시 가장 필수적인 무기다. 비록 요즘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우리도 역시 가슴엔 항상 총알을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철저한 안보 태세를 갖추는 게 그것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최고의 성능을 지닌, 핵보다 더 위력 높은 ‘마지막 총알’이라면 지나치려나.